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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꽃 이야기

2013-05-14 15:06

딸이 물었다. “아빠, 이 꽃 이름이 뭐야?” 꽃 이름을 알 리 없는 아빠는 그저 얼버무리고 만다. 그랬던 아빠가 꼭 10년 뒤 책을 냈다. <문학 속에 핀 꽃들>은 저자가 두 딸에게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는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점순이는 소복이 깔린 동백꽃 바위 틈새에 앉아 버드나무 피리를 분다. 점순이가 ‘폭 파묻혀버린’ 대상도 동백꽃이다. <동백꽃>은 노란색의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는 김유정의 대표작이다.

사실 동백꽃은 노랗지 않다. 대부분 붉고, 어쩌다 흰색을 띤다. 그러니까 소설 속 동백꽃은, 강원도에서 ‘동백나무’라고도 불리는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생강나무꽃인 소설 속 동백꽃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김민철 작가는 자신의 첫 책 <문학 속에 핀 꽃들>에서 33편의 소설 속 야생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두 딸의 호기심을 채워주려던 아빠는 이제 ‘야생화 박사’가 다 됐다.



헤드라인 장식한
‘노무현 대통령은 처녀치마를 보았을까?’


“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2003년 봄 무렵부터예요. 어느 날 여섯 살짜리 큰딸이 아파트 공터에 자란 꽃 이름을 묻더라고요. 그땐 도통 몰랐어요. 어쩔 수 없이 야생화도록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죠.”

호기심 많은 첫째 딸이 그때 물은 꽃 이름은 ‘씀바귀’였다. 그렇게 시작한 꽃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가 붙었다.

“책에서만 본 야생화를 실제로 보았을 때, 그 재미가 참 쏠쏠했어요. 사진 찍어온 꽃을 도감이나 야생화 사이트에서 발견할 때의 기쁨도 컸고요. 신비로울 정도로 환상적인 접사 꽃 사진을 찍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죠.”

사실 김민철 씨의 본업은 기자다. 20년 이상 일간지에 몸담은 그는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현재 사회정책부 차장직에 있다. 그런 그가 평생 써온 글은 ‘팩트’만 나열하는 건조한 기사. 하지만 야생화 공부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기사에 ‘꽃’이라는 감성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2004년 한나라당에 출입할 때 일이에요. 그 당시 박근혜 대표가 삼성동 자택을 공개했어요. 다른 기자들은 거실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림, 서재에 놓인 가족사진 등만 언급했는데, 저는 ‘마당에는 모과나무와 감나무가 있고, 옥잠화·비비추·패랭이꽃 등을 기르고 있었다’는 한 줄을 더 쓸 수 있었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꽃 이름 섞인 제목만으로 조횟수 10만을 거뜬히 넘겼다. 인센티브까지 챙긴 이 기사의 제목은 ‘노무현 대통령은 처녀치마를 보았을까’.

“‘처녀치마’는 이른 봄에 피는 꽃 이름이에요. 로제트형으로 퍼진 잎이 치마 모양을 닮은, 앙증맞고 예쁜 꽃이죠.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광릉수목원을 방문했어요. 그때가 4월 10일, 그러니까 처녀치마가 한창 꽃을 피울 시기예요. 전에 광릉수목원에서 처녀치마를 본 기억을 떠올려 그런 제목을 붙였어요. 원래는 그 제목이 아니었는데, 바꾸자마자 조횟수가 폭발적으로 늘더라고요.”(웃음)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꽃다운 여자들이 등장한다


<문학 속에 핀 꽃들>에는 총 33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부터 박범신의 <은교>나 정유정의 <7년의 밤>까지, 신구 세대의 취향을 모두 아우를 만한 작품으로 가득하다. “목록을 짜는 게 90%였다”는 그의 책 속 ‘야마’는 소설 속 야생화와 그 비하인드 스토리.

“최명희의 <혼불>에는 ‘여뀌’라는 꽃이 자주 등장해요. 주인공 강모가 강실이를 범한 장소도 여뀌가 무성한 텃밭이죠. 그래서 강실이가 이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와요. 근데 왜 하필 여뀌였을까. 소설의 배경이 전북 남원이에요. 남원을 가로지르는 강이 요천인데, 이 요천의 ‘요’자가 ‘여뀌 요’ 자죠. 여뀌가 만발한 이곳이 소설의 배경이니, 아마도 소설 속에 자연스레 등장했지 싶어요.”

그런가 하면 강석경의 <숲 속의 방>에는 샐비어(사루비아)가 등장한다.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은 ‘선혈을 뚝뚝 흘리는’ 샐비어의 강렬한 색상과 더불어 극대화된다.

“이 책은 제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에요. 주인공 소양이 운동권으로 살지도, 이기적으로 살지도 못한 채 ‘회색인’처럼 방황하다 자살하죠. 이후 샐비어를 볼 때마다 ‘소양의 고민을 짊어진 꽃’이라는 인상을 받아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이야기할 때는 각 주인공들을 꽃에 비유했다. 소화(박꽃), 외서댁(치자꽃), 장터댁(접시꽃), 들몰댁(맨드라미) 등 여성 캐릭터들을 꽃에 빗댄 표현은 당장이라도 책꽂이에서 책을 다시 꺼내들고 싶게 만든다.

“하대치의 아내 들몰댁은 맨드라미에 가까워요. 들몰댁 집 장독대 옆에는 붉은 볏의 맨드라미가 집을 지키고 있어요. 그녀는 ‘미륵불 현신인 듯 편안한 느낌을 주는’ 얼굴로 부지런한 여자였지만, 남편이 오래 집을 비우자 질기고 억세졌어요. 맨드라미는 한 번 심거나 씨를 뿌리면 따로 돌보지 않아도 해마다 피는 억센 꽃이에요. 그녀와 꼭 닮았죠.”

꼭 담고 싶었지만 꽃이 등장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던 작품은 정이현의 <삼풍백화점>. 그는 “두고두고 아쉽다”고 말한다.

“사회부 시절에 마지막으로 취재한 사건이 삼풍백화점 사건이에요. 그 후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소설이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정이현의 단편만큼 잘 쓴 작품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꼭 담고 싶었는데, 도통 꽃 이야기가 안 나오더군요. 은희경, 성석제, 김애란 등도 다루고 싶었지만 꽃이 등장하지 않아 아쉽게 포기한 작가들이에요.” 

쭉 나열된 작품만 봐도 ‘중·고등학생 필독도서’로 손색이 없다. 거기에 ‘꽃’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취했다. 아이들 감성교육으로도 딱이다.

“큰애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꽃 이야기 들려주는 걸) 수용해요. 식물에 관심도 많고요. 학교에서 야외 체험학습을 갔는데, 꽃 이름을 많이 아니까 선생님이 ‘식물박사’라고 그랬대요. 애들 때문에 꽃 공부를 시작했으니, 이 책도 우리 애들에게 들려주는 기분으로 썼어요.”

‘어머니가 책 속 꽃 사진을 소중히 쓰다듬으며 향수에 잠기셨다’는 네티즌의 서평이나, ‘고향의 산과 들에 피었던 꽃들이 지척에 와 있는 듯 생생하더라’는 친구의 문자메시지는 마음을 울린다. “한때 문학 담당기자를 꿈꾸기도 했다”는 그는 이 책을 계기로 마음 한구석의 미련을 털어낸 기분이다.

“새벽 3~4시까지 글을 쓰고 아침에 출근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어요. 자려고 누우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노트북을 다시 켜기 일쑤였죠. 몸무게가 5kg이나 빠졌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감성적인 글 감각이 살아난 것 같아 기뻐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책에 등장한) 소설도 다시 읽고 꽃에도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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