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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김태원 부인 이현주의 필리핀 이야기6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 간다는 것

2012-12-11 16:01

저는 요즘 ‘엄마의 인생’에 대해 깊게 고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 있죠? 엄마인 제 입으로 드리기엔 좀 머쓱한 말씀이지만, 네, 엄마의 삶은 사막의 여행길처럼 힘들 때가 있네요.

필리핀엔 저희처럼 식구들이 떨어져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우현이처럼 마음의 병을 앓는 친구들도 꽤 있답니다. 우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스페셜 그룹이 있으니까요. 엄마들끼리 잘 지낼 것 같지만, 생각보다 교류가 많은 편이 아니에요. 엄마들은 각자의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너무 버거워서 서로를 쳐다볼 겨를이 없거든요. 사실 따지고 보면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애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모든 엄마들이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의 삶은 더 고단하고 여유가 없어요. 

동병상련 엄마들과의 만남
 
저 개인적으로는 그 점이 이해가 되면서도 아쉬웠어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너무 삭막하잖아요. 그래서 얼마 전에 필리핀 와서 처음으로 시도를 해봤습니다. 우현이의 친구들과 엄마들을 모두 초대해서 캠프 자리를 만들었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는,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거든요. 다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엄마들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예요. 거의 모든 사람이 가톨릭 신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엄마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수도원에 모였습니다. 수녀님까지 계시니 흡사 피정지로 나온 것 같더라고요. 이색적인 시간이 만들어지니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녀님께서 아이들을 잘 돌봐주신 덕분에 엄마들의 시간은 그보다 더 평화롭고 가치 있었습니다. 엄마들끼리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그날 모인 엄마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어요.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금세 말이 잘 통했습니다. 저희, 참 많이 울었어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몇 가지 프로그램을 짜서 움직였습니다. 수녀님께서 제안을 하셨어요. 산책하면서 나와 닮았다고 생각되는 사물을 가지고 오라고요. 각자 흩어져서 본인을 닮은 사물을 하나씩 들고 오는데요, 다들 어찌나 같은 마음이던지요. 먼저, 한 엄마가 돌멩이를 하나 가지고 왔더라고요. 설명을 해보라니, 본인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대요. 마음으로는 바위를 들고 오고 싶었는데, 너무 커서 돌멩이를 대신 들고 왔다고 했어요. 또 다른 엄마는 풀을 가지고 왔어요. 잡초요. 본인은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는 풀이라고 하네요. 다른 분은 코코넛을 가지고 왔어요. 코코넛은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과즙뿐 아니라 껍데기까지 유용하게 써요. 코코넛처럼 본인도 자식과 남편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애가 있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여기저기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요? 작은 꽃을 들고 왔어요. 작은 꽃잎들이 모여서 무리로 피어있는 빨간색 꽃이요. 처음에는 한 송이만 들고 왔다가 두 송이 더 가지고 왔어요. 의미가 뭐냐면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각각 하나씩, 몸을 세 개로 쪼개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모두 저만 바라보고 있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공평하게 셋으로 나눠서 함께하고 싶어요. 필요 없다고 안 찾을 수도 있는데, 정반대의 상황이니 행복한 고민인 거죠? 그리고 꽃에는 다른 의미가 더 숨어있어요. 쑥스럽지만 저는 신앙심이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깊은 사람이에요. 작은 꽃잎은 신 앞에서 작은 존재, 점과 같고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예요. 내 이웃에게 작은 존재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신앙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답니다. 

이렇게 엄마들끼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니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캠프의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치르고 보니 신앙적으로 무척 좋은 시간을 가진 게 됐어요. 힘들지만 자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마무리를 했죠. 저도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했어요. 필리핀에서의 앞으로 시간도 이렇게 늘 충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자 상처받은 마음들을 서서히 씻어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면서 말이에요.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이를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켜라.”

이 말이 정답인 것 같아요. 만약 엄마와 아이, 둘만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아이를 이해시켜서 천천히 걸어가면 되겠죠. 그런데 애석하게도 세상은 둘만 사는 곳이 아니에요. 아이를 사회 안에서 살아가게 해주려면, 주변 사람을 이해시키는 게 맞아요.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어른들을 먼저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이에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인데, 말이 나온 김에 혹시 아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 우현이 어렸을 때 에피소드를 조금 더 말씀드리면요. 식당에 가면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하루는 식당에 있는 모든 숟가락과 냅킨을 꺼내서 테이블에 얹는 거예요. 아이의 눈에는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숟가락을 꺼내 모든 테이블에 얹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곧장 주인에게 가서 아이가 이렇게 해도 괜찮은지 양해를 구했어요. 그런데 저희 언니가 안 된다면서 우현이한테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아픈 아이들도 가끔씩 정상적으로 보일 때가 있거든요. 자폐 없는 아이들도 아이는 아이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비슷해요. 어른의 입장에서는 가르치면 될 것 같죠. 언니도 그런 생각에서 그렇게 행동했던 거고요. 그런데 아니거든요. 아이는 아이고, 아픈 아이는 아픈 아이예요. 속상했던 것은, 가까운 사람도 이 아이를 두고 가르치려 한다는 거였어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이해를 못 하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어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아이를 이해시키려고 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른들이 먼저 이해를 해야죠. 그리고 중요한 거요. 상처를 많이 받지 않았으면 해요. 저도 기대하던 분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이젠 기대를 안 해요. 병원에 가서 만난 의사의 말, 가족의 말, 모든 것이 상처가 될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서운한 감정들이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니까 평생 혼자 안고 가야 할 숙제겠지만, 엄마가 의도적으로라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서현이는 주인공 스타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서현이는 주인공의 운명을 타고났나 봅니다. 여전히 서현이가 저희 집안의 분위기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독한 사춘기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서현이는 휴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네, 결국 그렇게 되었어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아이의 일탈(?) 행동에 펄쩍 뛰었던 저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아들은 6년이나 늦었는데, 딸이 겨우 1년 늦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긴 시간 아니니까 괜찮겠지요. 옆에서 남편이 휴학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는데, 저는 괜찮아요. 휴학을 했다는 사실이 서현이 인생의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서현이와 감정싸움을 하다 보면 정말 온갖 감정이 다 나옵니다. 이래저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서현이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예요. 제가 서른두 살에 낳았거든요. 그때만 해도 늦은 나이였어요. 집안에 한참 동안 아이가 없다가 10년 만에 태어난 아이라 진짜 사랑을 듬뿍 받았어요. 특히 아빠의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남편은 그야말로 딸바보였어요. 딸의 유치원 소풍도 다 따라다닌 아빠예요. 그때만 해도 아빠 혼자 아이 유치원 따라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때였는데, 아빠의 딸 사랑이 대단했죠. 당연히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딸의 웃는 얼굴 한 번 보려고 유치원에 몰래 간, 못 말리는 부부였답니다. 저는 서현이를 낳고 우현이를 낳을 때까지, 서현이를 품에서 놓질 않았어요. 배불뚝이 임신부가 다 큰 아이를 배 위에 올려 안고 다니는 모습, 상상이 안 가시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위태로우니 제발 내려놓으라며 말릴 정도로 서현이를 끼고 살았답니다. 우현이 두 돌 때까지, 그러니까 우현이가 병이 있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 서현이는 저희 가족의 중심이었어요. 그때까진 우현이를 아줌마에게 맡겨놓고 서현이와 셋이서 외출도 자주 했어요. 우현이의 아픔을 알았을 때는 서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인데, 그때부터 저희 가족의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혼자서 조용히 생각해보면, 우리 딸이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어요. 서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요. 엄마는 아픈 동생을 거드느라 정신이 없지, 스트레스를 본인에게 다 풀지, 그나마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아빠인데 필리핀으로 떠나와 있지.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서현이 입장에서는 항상 자기편이던 아빠의 상실감이 많이 컸을 것 같아요. 그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습니다. 



아픈 동생을 둔 누나
우현이가 어릴 때 아이의 테라피를 위해서 상담실에 다녔었어요. 아시죠? 언어치료, 행동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요. 거기 가보면 많은 아이들이 병들어 있어요. 대부분이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들, 자폐아들이죠. 그곳에 가면 인상적인 장면이 많습니다. 폭력적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여기에도 슬픈 스토리가 있는데, 그건 아이들이 본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에요. 아이의 이상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한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많이 때리거든요. 병인지도 모르고 제대로 키워보겠다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본 대로 행동하잖아요. 폭력적인 성향의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죠. 

그리고 또 슬픈 장면 중 하나는 아픈 아이의 언니, 오빠, 동생, 누나예요. 형제자매 자녀를 둔 경우에는 엄마들이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잖아요. 그곳에 데리고 와요. 이 형제자매 아이들 역시 부모와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우현이는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성향이 순해서 서현이와 부딪힌 적은 거의 없지만, 아픈 아이의 형제자매가 가족의 실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은 틀림없어요. 이 사실을 저는 요즘의 서현이를 보면서 제대로 알았죠. 서현이도 상처가 많다는 사실은 작년에 처음 발견했어요.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병들어 잠재되어 있었던 거예요. 동생 때문에 힘든 거, 엄마와 아빠가 동생으로 인해 받았던 충격, 누나로서의 부담감과 무게감이 더해져서 서현이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이 와중에 사춘기는 제대로 앓았지, 남자친구에 대한 상실감도 크지, 힘들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서현이의 결정적인 캐릭터. 선천적으로 과거 집착적인 성향이 있어요. 동생이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제가 많이 안아주지를 못했어요. 항상 했던 말이 “다음에 안아줄게, 서현아.”였어요. 서현이는 그렇게 병들어왔던 것 같아요.

요즘 제가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 있어요. 우현이와 서현이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살고 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남매 사이지만, 둘이 함께 놀아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싸우기도 하고 어울려 지내기도 하는 것이 가족이잖아요. 그렇게 부딪히면서 각고의 정이 생기고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은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한공간에 있다 뿐이지 함께 놀지도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물론 감정적으로 서로 의지하는 부분은 굉장히 크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겠지요. 

난생처음 찾아온 엄마의 우울증

사춘기인 서현이는 아무에게나 화를 낼 수 있어요. 그 ‘아무나’는 엄마가 되었어요. 서현이는 과거 회상 성향이 강한데, 만 가지를 잘하는 엄마도 한 가지를 잘못하니까 이렇게 나쁜 사람이 되네요. 서현이는 제가 잘못한 것만 기억나나 봐요. 부모는 자식이 힘들게 한 것보다는 반대로 행복했던 기억만 나는데. 물론 잘 극복하리라는 믿음은 있지만, 저도 살짝 우울증이 온 것 같습니다. 

저는 멘탈 프로그램이 강하게 훈련된 사람이에요.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편이라서 우울증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편이라고 자부해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서현이와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이다가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병원 신세까지 졌네요. 밥을 못 먹다가 물을 먹었더니, 탈수현상이 왔어요. 링거를 꽂고 먹지를 못하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남편이 위암 수술을 할 때도 쓰러진 적이 없는데, 자식이 힘들어하니까 제가 이렇게 무너지네요. 

평소 일상의 사소함 가운데 감사한 걸 찾아내는 습관이 있어요. 이번 일에서도 감사한 걸 찾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답니다. 제가 제일 감사한 것은 이렇게 아픈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 감정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또 성장하는 거니까요. 아프면서 많이 쉴 수 있어서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기도도 많이 하고, 묵상도 많이 하고요. 그땐 참 힘들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제가 성장했던 귀한 시간이었네요. 물론 딸에게 받은 수모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지만요.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자식을 보면서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을 하잖아요. 어디선가 실험을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대요. 진짜 간장의 일부가 녹는다고요. 부모는 그렇게 사는 거예요. 간을 녹이며. 엄마니까 버티고 사는 거죠, 뭐.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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