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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이 전남 강진으로 간 까닭은?

2년만에 무대로 돌아온 김성민 단독인터뷰

2012-05-30 10:35

2010년 1월, 배우 김성민은 정상과 바닥을 동시에 경험했다. <남자의 자격>이 국민 호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정점을 달리던 그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정말로 죄송하다. 드릴 말씀이 없다”던 그는 지난 2년을 침묵 속에서 보냈다. 2012년 5월, 전라남도 강진에서 긴 터널을 지나 세상에 나온 김성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문화 소외 지역 청소년을 위한 공연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에서 땀방울을 쏟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던 배우 김성민은 지금 전라남도 강진에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예산에 있었고 그전에는 고흥에 있었다. 이 지역의 공통점은 공연이나 뮤지컬 같은 문화행사를 접할 기회가 적다는 거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협은 문화 소외 지역을 위해 무료 공연을 기획했다. 배우 김성민은 그 무대에 서는 극단의 배우다. 출연하는 작품은 <사운드 오브 뮤직>. 그는 가정교사 마리아를 만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게오르그 폰 트라프 대령 역을 맡았다. 


제가 이 무대에, 서도 될까요 

처음 극단에서 함께하자는 제의를 받고 김성민은 망설였다. 자신의 등장이 혹여 공연이나 극단에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용기가 아닌 염치의 문제였다. 지난 1년 반 동안 그는 홀로 뉘우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문을 열고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멤버로 많은 사랑을 받던 그는 2010년 1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심 판결이 나기까지 3개월을 경기도 의왕의 구치소에서 보냈다. 당시 재판부는 필로폰 밀수가 영리 목적이 아닌 소량이었다는 점, 반성의 의지를 보인다는 점 등을 들어 집행을 유예했다. 자택으로 돌아온 그는 최근까지 두문불출했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입양한 강아지 봉구의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린 것 외에 그의 근황을 알 길은 없었다.
그로부터 2년 5개월이 흘렀다. 2012년 5월 18일 강진에서의 공연은 오후 3시와 8시에 두 번있었다. 새로 지은 강진아트홀의 객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객석 사이 계단과 뒤편 공간에도 관객이 가득했다. 대부분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었다. 공연을 마친 후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기된 얼굴의 폰 트라프 대령이 분장실로 돌아왔다. 땀에 젖은 의상을 갈아입고 기자와 마주섰다. 아직은 인터뷰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미리 약속을 잡고 만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여섯 시간 걸려 자신의 공연을 보러 내려온 사람을 내칠 만큼 모진 사람이 못 되었다.  
 
공연 잘 봤습니다. 반응이 뜨겁던데요. 이번 공연을 하면서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순수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작은 몸짓에도 큰 반응을 보여주시니까 무대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굉장히 커요. 이번 공연의 목적이 ‘문화 소외 청소년들을 위한 공연’이거든요. 강진은 저도 처음 와보는데 아트홀 시설도 좋고, 공기도 참 좋네요.(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번 공연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제가 어디 나설 처지가 못 돼요.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고요. 공연은 아는 선배가 추천했어요. 이런 취지(소외 지역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연)의 공연이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고. 저는 감히 생각을 못했어요. 극단과의 미팅에서도 여쭤봤어요. “제가…가능하겠습니까?”라고. 대표님이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손을 내밀어주셨죠. 감사하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멤버들도 정말 좋아요. 아무래도 장거리 공연을 함께 다니다 보니까 더 끈끈해지는 게 있어요. 저희는 거의 지방 공연을 하기 때문에 최소 인원만 움직여요. 의상, 소품 같은 건 다 각자 챙기죠.

왈츠도 곧잘 추던데요.(웃음) 연습을 엄청 했어요. 현대극장 극단이 연습을 많이 하기로 유명해요. 3개월을 꼬박 연습했어요. 아, 근데 이번 공연에서는 왈츠 장면에서 제가 넥타이를 깜박한 거예요. 아무리 찾아도 넥타이가 없는데 나가야 할 타이밍이 다돼서 할 수 없이 그냥 셔츠만 입고 나갔죠. 어찌나 땀이 나던지. 공연 끝나고 와보니까 여자 분장실에 있는 거예요. 누가 가져다 놨지?(웃음)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폰 트라프 대령이 춤추는 장면은 공연의 클라이맥스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다. 배우 김성민에게 특별한 장면은 또 있다. 트라프 대령이 기타를 치며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장면이다.

‘에델바이스’가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노래인 줄 몰랐습니다. 트라프가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대목은 저한테도 의미가 깊어요. 우상민 대표가 그러시더라고요. “너에게 부르는 노래라 생각하고 불러라.” 가사 중에 ‘눈 속에서도 자라서 꽃을 활짝 피우려무나’라는 부분이 있어요. 그 부분을 부르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때가 있죠.


여전히 끈끈한 ‘남격’ 멤버들 

그러고 보니 <남자의 자격> 밴드에서도 보컬이었잖아요. 그때는 어떤 걸 해도 다 즐거웠어요. 프로그램에서 도전했던 미션이 다 제가 해보고 싶었던 거거든요.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희미하게 웃으며) 참 좋았죠, 그때.

2010년 당시 김태원 씨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마음이 여린 친구인데, 걱정이다.” (잠시 정적) 얼마 전에도 (김)태원이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가끔 통화해요. 전화해서는 대뜸 “뭐하냐?” 그러세요. 긴 말 안 하고 이러시죠. “형을 봐, 응?!”(일동 웃음) 윤석이 형은 연습할 때 와서 극단 식구들한테 밥을 사고 갔어요. 그러고 보니 경규 형님은 라면 보내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시네.(웃음)

김태원은 자신의 저서 《우연에서 기적으로》에서 1987년부터 1992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보컬이던 이승철은 ‘부활’에서 나간 뒤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정작 ‘부활’은 해체됐던 시기. 마약의 힘을 빌어서라도 음악을 만들어 복수하고 싶었다고 했다. ‘부활’도 잃고, 명성도 잃고, 음악도 잃었던 그때, 그 바닥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아내가 전해준 책 《벽오금학도》를 읽고,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지금의 김태원을 있게 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김태원의 “형을 봐, 응?!”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맏형 이경규는 구치소에 있는 김성민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수감된 3개월 동안 두 번 면회를 갔던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웃음) 저도 강진에는 처음 와봐요. 여기 오기 전에는 예산, 고흥에 갔었어요. 취지가 좋은 만큼 공연하면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요. 공연 보셔서 아시겠지만, 관객 반응이 거의 아이돌 수준이거든요.(공연 중 마리아와 트라프 대령의 키스 장면에서 터져나온 환호성은 그의 말대로 정말 아이돌 못지않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워낙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지금은.

불쑥 찾아왔는데,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감사해요. 여기까지 찾아와주시고. 저를 보러 분장실에 와주신 분은 처음이에요.(웃음) 아무래도 지방 공연이 많다 보니까 지인들이 찾아오기는 힘들거든요. 음료수 받은 것도 처음이에요.
지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겠어요. 죄송하고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아직은 제가 어디에 나설 입장도 안 되고요. 언젠가 다시 뵐 기회가 되면 그때는 제가 차라도 한 잔 꼭 대접할게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이렇게 보내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밖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인터뷰를 나누며 그가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그의 혐의가 처음 보도됐을 때 그가 트위터에 남긴 말도, 집행유예를 선고받던 공판장에서도, 1년여의 칩거를 끝내고 처음 남긴 메시지도 모두 “죄송하다”였다. 지난 2년은 하루하루가 길었다고 했다.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가 늘 두렵던 시간이었다. 이곳은 그가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자리다. 생전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고장에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그 땀방울은 정직해서 아낌없는 박수를 받는다. 죄에도 값이 있고, 땀에도 값이 있다. 그는 지금 그 둘을 정직하게 치르는 중이다.
김성민은 1995년 극단 성좌의 단원으로 데뷔했다. 바닥을 치고 다시 선 곳도 극단의 무대다. 큰형 이경규의 말처럼 ‘정말 열심히 살다’ 보면 국민 할매 김태원이 말했듯 ‘기적처럼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에델바이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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