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간 배너
  •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WHO ARE YOU? 안다빈

WHO ARE YOU? 안다빈

2014-03-13 14:57

멀리서도 눈에 띄는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외모는 그를 좀 더 부각시켜주는 ‘디테일’일 뿐이다.
그는 실력으로만 인정받고 싶은 꿈 많은 청년이다. 언젠가 영화배우 누구가 아버지라는 부연설명 없이도 자신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날, 어쩌면 그때는 오늘보다 편하게 아버지의 얘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년 화가 안다빈을 만났다.


제대한 지 한 달
20대 화가의 활발한 움직임

영화배우 안성기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 안다빈(23)은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 작은아들 안필립(18)은 시카고 소재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 안다빈을 만나러 반포동의 한 작업실을 찾았다. 이사온 지 일주일 된 작업실은 벽에 칠한 페인트도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의류사업을 하는 지인이 창고로 쓰던 방을 직접 개조한 공간이다. 가구라고는 테이블과 의자 몇 개, 벽 한 켠에 세워 놓은 캔버스 대여섯 개가 전부다. 미완의 공간에서, 톤다운된 파란 벽의 사연을 물어보았다.
“아는 형이 쓰던 공간인데, 마음대로 꾸며도 된다길래 평소 같았으면 꿈도 못 꿨을 색깔을 한번 칠해봤어요. 제 그림에는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색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강한 원색을 쓰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잘 안 써본 색을 써보고 싶었어요.”
편안한 느낌의 그림을 그려온 그는 따뜻한 이미지를 가진 아버지를 닮았다. 조각같이 잘생긴 데다, 몇 마디 나눠보면 느릿한 말투와 여유로운 표정 속에 아버지 안성기의 모습이 있다.
“공군 제대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됐어요. 군에 있는 동안 4㎏ 정도 살이 빠졌죠. 타 군에 비해 휴가 횟수가 잦다 보니까 사회로 복귀했을 때 크게 어색하진 않았어요. 3, 4일 만에 적응한 것 같아요.”
가수 비가 입대하던 날, 그의 트위터에는 ‘전역 인증샷’이 올라왔다. 여느 젊은이들처럼 소셜네트워크 활동이 활발한 그는 연예인의 자녀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올리는 편이다. 사이버공간을 통한 자신의 작품 언급과 홍보는 꽤 효과를 발휘한다. 소셜네트워크는 알려지지 않은 신인 화가가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통로다.
“소셜네트워크나 홈페이지에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편이에요. 오로지 제 그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어요. 간혹 네티즌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받더라도 선뜻 답장을 못 해요. 그림 얘기만 하고 싶거든요.”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을 단 아버지의 아들인지라, 고작 140자 트윗글에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여느 20대 대학생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즐기는 편에 가깝다는 것.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나 봐요. 관심받는 게 싫지 않아요. 저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알아봐주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고, 제 이름과 그림의 제목까지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게 참 좋아요.”

“색약이지만
그림 그리는 데 문제되진 않아”

몇 달 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기본적인 디자인 작업은 가능한데, 기술적인 게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홈페이지 제작사에 의뢰를 했어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그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상해주는가도 중요하다. 만드는 사람만 있고 보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작가의 가치를 인정해주겠는가. 남들이 찾기 전에 먼저 찾아가는 미술, 안다빈은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
“작업실에 앉아 그림만 그리면 알려질 기회가 없어요. 발로 뛰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가급적이면 덜 상업적이면서 파급효과가 있는 루트를 찾고 있어요.”
지난 몇 개월간 남성의류 브랜드 커스텀멜로우는 11인의 아티스트와 ‘소년’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아티스트’라는 공통점만 갖고 열린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누구의 아들’이 아닌 ‘화가 안다빈’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그의 그림은 주로 편안한 색채를 사용한다. 그는 자신의 ‘보물’로 비슷한 색감과 색채를 사용하는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집을 뽑는다.
“작가마다 영감을 받는 루트가 제각각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어딜 놀러가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얻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화집이나 예전 그림들을 꾸준히 보면서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그중 유독 클림트와 에곤 실레라는 두 작가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고 있어요. 감히 그 작가들의 스타일로 가볼까 했지만, 그들의 기법이 어려운 건 차치하더라도 역시나 작가의 고유 기법이라든지 내재한 성향이 다르다 보니 마음먹는다고 해서 똑같이 되진 않더라고요. 다행히 그 안에서 제 고유의 것이 계속해서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작품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미묘한 색깔이 있다. 노랑인데 노랑 같지 않은 노랑, 남색인데 남색 같지 않은 남색. 여기에 대한 답변은 그의 홈페이지 첫 소개글에 나와 있다.
“사실 저는 색약(Color Blindness : 색을 정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 적, 녹, 청 세 가지 색깔의 구분에 특히 어려움을 겪는다)이에요. 색을 잘 못 본다는 인식에 따른 두려움으로 한때는 물감을 회피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물감보다 연필이나 콩테처럼 무채색 계열의 재료들만 사용했죠. 무채색 재료로 그림을 그리려면 사물의 밝기와 어둡기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연습이 많이 됐어요. 미대에 들어가 물감을 쓰기 시작하면서 남들과 다르게 엉뚱한 색들을 조합하곤 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그게 미술을 하는 데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색감이 더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색약인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요.”

중1 이후 유학생활
한국, 서울에 대한 그리움

안다빈의 가족은 온 식구가 예술가다. 영화배우 안성기를 비롯해 그의 어머니는 조각가 오소영, 올해 대학생이 된 남동생은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 어머니와 분야가 같은 예술의 길을 택한 그는 돌잡이에서 돈도 책도 마이크도 아닌 붓을 잡았다.
“자랑할 만한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다른 과목은 몰라도 미술은 늘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았어요.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도 수학, 과학, 역사 과목의 지지부진한 성적을 미술 과목 덕분에 평균점수로 맞출 수 있었어요. 고3 들어서면서 다른 친구들은 대학에서 뭘 전공할지 고민했지만, 저는 진작부터 미술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죠.”
꽤 일찍 부모의 손을 떠났다. 미국유학은 그의 뜻이었다.
“제가 원해서 떠났지만, 어린 나이에 떠나서인지 막연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귀소본능 같은 게 생겨버렸어요. 요즘은 한국 유학생이 많아졌지만, 제가 갔을 무렵에는 한 반에 두세 명 정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약간의 외로움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어딜 가도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생긴 것 같아요. 그건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곳의 문화에 딱히 적응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대신 언제부턴가 서울은 그에게 그리움을 안겨주는 도시가 되었다.
“빠르면 졸업(그는 현재 미국에 있는 프랫대학교 휴학 중이다)과 동시에 개인 작업실을 열겠죠. 그 작업실은 한국, 특히 서울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에 드나들며 활동할 수는 있지만, 주 무대는 서울이었으면 싶어요.”
그는 “같은 칭찬이라도 한국 사람에게 받는 칭찬이 더 좋다”고 말한다.
“리액션은 미국인들이 더 크고 과장되어 있지만, 같은 민족이라 그런지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로 칭찬받을 때 다가오는 느낌이 더 큰 것 같아요. 운동선수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해외에서 잘나가도 인터넷으로는 한국인들의 댓글을 찾아보게 되잖아요.”
제대 후, 그의 작가적 가치관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다행히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손은 녹슬지 않았어요. 기술적인 건 그대로인데 스스로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조금 바뀌었다고 할까요? 입대 전에는 별 매력을 못 느꼈던 색채를 이제는 작품 안에 담고 싶다거나, 예전에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이제는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 싶다거나… 주제나 시각적인 부분의 폭이 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연기하는 아버지
그림 그리는 아들

인터뷰 내내 안다빈은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질문과 답변 사이에는 늘 생각하는 몇 초간의 침묵이 있었다.
“사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인터뷰상이라 더 조심스럽거든요. 특히 아버지에 대한 질문은 더욱 그래요.”
조심스레 물어본 그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 사실 안다빈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너무’ 클지도 모르지만 지울 수도 없는 존재가 아닌가.
“아버지가 영화 쪽에서는 유명한 배우지만, 미술에 대한 건 그만큼 잘 모르시다 보니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세요. 대신 ‘무언(無言)’으로 용기를 주시죠.”
영화, 조각, 그림, 사진을 하는 네 명의 가족구성원이 모이면 문화토론의 장이 열릴 것 같지만, 되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단다.
“예술 하는 부모를 둔 것에 비하면 그쪽 얘기는 오히려 잘 안 하는 편이에요. 마치 가수들이 노래방 안 가고, 피자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집에 가선 한식을 먹는 것처럼요. 넷이 모이면 정작 (일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얘기만 해요. 굉장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요.”
사실 그는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뿐 아니라, 그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진지함을 가졌다. 자연스레 작품도 시선이 간다. 사실 작품의 매력이란 작가 본인의 매력과도 상통하는 것 아니겠나.
“또래에 비해서는 제가 일에 대한 욕심이 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시기가 짧았고요. 미술계통에서 저보다 띠동갑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분들과 어울리며, 듣고 말하고 배우는 게 더 흥미로웠어요.”
어느 분야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 그는 국민배우인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걸 봐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알아봐주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오요. 그런데 커가면서 ‘아버지처럼 되려면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아버지가 자신에게 “연기를 잘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일부 인터넷 기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연예가중계>에서 저와 아버지를 찍은 영상을 본 기자분이 인터넷으로 기사를 올린 것 같아요. 편집 전 영상을 보면 (아버지가 제게) 연기가 아니라 ‘노래를 잘한다’고 말씀하세요. 근데 그걸 정교하게 편집해서 ‘연기를 잘한다고 했다’로 나갔더라고요. 솔직히 연기에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저는 남들 앞에 서는 게 좋은데, 그 이유는 영상이든 잡지든 카메라 앞에서의 긴장감을 좋아해서인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게 현재 제가 걷고 있는 길이에요.”


안다빈은…
‘국민배우’ 안성기의 장남 안다빈 군은 14세가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뉴저지 주의 한 명문 사립고에 다닐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자를 비롯한 재미교포 세 명과 ‘DMZ 유스포럼’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한반도의 평화와 자연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도 한 ‘개념청년’이다. 뉴욕에 있는 프랫대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고, 2학년까지 마친 후 지난 2009년 귀국, 군에 입대했다. 지난 3월 갤러리 소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약 한 달 전 전역해 작업실 준비에 한창이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