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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출신 청년이 정육점 차린 이유

2020-05-22 08:53

취재 : 엄혜원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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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아 가장 신선한 돼지고기를 오늘 바로 먹을 수 있는 온라인 정육점이 있다. 온라인 배송 정육점 ‘정육각’이다. ‘신박한’ 정육점의 주인장 김재연 대표에게 미국 유학행을 포기하고 돌연 돼지고기를 팔기 시작한 사연을 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풋풋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명함을 내밀며 수줍게 인사하던 그는 겉과 다르게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온라인 배송 정육점 ‘정육각’ 김재연 대표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다 밟았다. 중학교를 조기 졸업해 한국과학영재고에 입학했고, 카이스트를 졸업했다. 그 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유학이 예정돼 있었다. 탄탄대로의 삶이 예정(?)돼 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에서 고기가 가장 좋다는 청년

“미국 유학이 확정되고 떠나기까지 8개월이 남았을 때, 돼지고기를 미친 듯이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서는 ‘코리아 바비큐’가 비싸잖아요.(웃음)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이 잔칫날 계를 모아 지리산 자락에서 바로 도축한 돼지를 사 먹었어요. 그때 먹어본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거든요.”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남들이 화장지 사서 갈 때 김재연 대표는 돼지고기를 사 갔다. 삼시 세끼 고기만 먹은 날도 허다하다. 기자를 만난 날에도 “인터뷰 끝나고 고기 먹으러 갈 생각에 가슴이 뛴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 맛’을 ‘추억’에 담기 위해 친구들을 꾀어 한 달간 ‘제주도 돼지고기 맛집 기행’을 시작했다. 별의별 돼지고기 식당은 다 갔다. 그리고 가까운 도축장에도 찾아갔다. 갓 도축한 돼지고기를 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인은 구입이 불가능해 당시 음식점 사업을 하고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어렵게나마 살 수는 있었지만, 도매로만 판매하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괜한 자존심에 과외로 모았던 돈을 털어서 20만원어치 돼지고기를 샀다. 집에 돌아와 갓 산 돼지고기를 구워 먹어보니 바로 그가 찾던 ‘그 맛’이었다.

“그때가 시작이었죠. 사실은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어요. 미국에서 쓸 돈을 조금만 불려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3개월만 장사를 하려고 했어요. 온라인 농산물 직거래 카페를 통해 판매했는데, ‘저세상 맛이다’라는 후기로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죠. 한 달 동안 종일 고기만 썰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어요. 주문량이 워낙 많아서요.”
 

재능으로 탄생한 축산유통업계의 혁신

몸이 힘들어 ‘기계’를 만들기로 했다. 미국행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정육각’이 시작된 것이다.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건 정육점 사업에도 도움이 됐다. 그동안 대학에서 공부했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정육점 유통에 도입해 ‘1세대 정육각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후 전문 개발자의 손길을 더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지금의 신선 정육 유통 시스템이 구현됐다.

‘정육각’의 유통 시스템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고객이 주문하는 즉시 컴퓨터가 그 정보를 받아 작업량과 가장 효율적인 작업 순서를 계산한다. 그리고 작업자에게 모니터를 통해 작업을 지시한다. 이 때문에 주문한 시간부터 고기를 작업하고 포장까지 마치는 데 아무리 늦어도 한 시간 반이면 끝이다. 그리고 가장 신선한 상태로 곧바로 배송이 시작된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오늘 아침에 주문한 고기를 오늘 저녁상에 올릴 수 있다.

또한 ‘정육각’의 시스템은 그동안의 주문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재고량과 주문량 예측을 정확하게 계산해준다. 그야말로 깐깐하고 똑똑한 작업반장인 셈이다. 그 때문에 재고 없이 매일 갓 도축한 돼지고기를 들여올 수 있다. ‘정육각’에서는 도축한 지 4일이 지난 돼지고기는 판매하지 않는다. 일반 정육점이라면 여러 차례 거치는 유통과정을 ‘정육각’에선 이 시스템 하나가 다 관리한다. 이런 간편 유통 시스템은 유통비용과 인건비를 아끼고 결국 고기 가격을 낮출 수 있게 했다.
 

축산유통업에 대한 선입견과 부모님의 반대

정통 산업이라 불리는 축산유통업에 젊은 청년이 뛰어든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극명했다. ‘젊은 친구들이 뛰어들 때도 됐다’라는 격려가 있는 반면,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애가 투자만 받으려고 한다’라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김재연 대표 주위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학업을 더 해 교수를 꿈꾸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길을 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더구나 그것이 축산유통업이라는 것에 부모님과의 마찰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생 시절에 이미 창업 실패 경험이 한 번 있어요. 그 당시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어쨌든 창업이라는 진입 장벽은 한 번 깬 셈이죠.(웃음) 그래서인지 이번에 창업한다고 했을 땐 열심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드디어 나를 믿어주시는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제 착각이었어요. 지금에 와서 여쭤보니 금방 포기할 줄 알고 말씀하신 거였대요.(웃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니 대학 동기들 어머니 모임에 나가서도 자랑을 많이 하세요. 홍보도 많이 해주시고요.”
 

근거 있는 자신감

그에게 돼지고기가 질리지도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김재연 대표는 오히려 “어떻게 질릴 수가 있냐”며 의아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뷰 시간 중 가장 밝은 표정으로 그가 알고 있는 전국의 돼지고기 맛집을 전부 알려주었다.

창업한 지 4년, 코로나19가 터지고 ‘정육각’의 매출은 3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뛰었다. 신선한 제품으로 고객 신뢰도도 두 배로 쌓였다.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곧 이유식 생육 사업도 시작하고 축산시장 노하우를 토대로 수산물도 출시할 예정이다. 자신감도 넘친다. ‘초신선’을 외치며 당당하게 표기하고 당당하게 지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고기를 사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죠. 예전에 실패했던 경험도 있을뿐더러 눈으로 직접 보고 사는 게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한 번쯤 ‘신선함’이라는 것에 도전해보세요. 드셔보시면 ‘고기의 신선한 맛’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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