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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투병 김철민 “나를 살려준다면…”

2020-05-20 08:15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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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내 차례가 왔구나.’ 김철민은 폐선암 선고 앞에서 담담했다. 부모님과 두 형을 암으로 보낸 뒤인지라, 조금은 쉽게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삶의 욕심을 덜 수는 없었다. “나를 살려준다면…” 그를 마주한 3월의 어느 날, 그맘때 드문 눈이 날렸다. 마치 그가 기다리는 어떤 기적처럼.
사진 촬영 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고 있다.
숨이 찬 채로 현관을 열어줬다. 자신이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느라 노래 두 곡을 부른 직후라고 했다. 유난히 흐린 날씨 탓도 있었다. 그의 몸 상태엔 ‘기온’도 큰 변수가 된다. 그를 만나기 며칠 전 보낸 문자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은 건 그래서였다. “너무 아파서 문자를 쓸 수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고된 투병생활이 짐작됐다.

김철민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요양원에서 혼자 지낸다.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오랜 낮잠을 자는 게 요즘 하루의 전부다. 해가 지면 통증이 몰려와 잠자리에 들 수 없어, 밝을 때 눈을 붙여야 한다.

“물에 된장만 풀어서 끓이고 거기에 밥 한 그릇 말아서 식사를 때워요. 이틀에 한 번은 지팡이 짚으면서 완만한 길도 좀 올라보고. 밤 10시쯤 몸이 으스스 떨려와요. 살을 불에 태우는 것처럼 막 쪼그라드는 고통…. ‘마약패치’ 두 장을 붙이고 나면 통증이 그나마 덜한데 자는 건 여전히 힘들더라고요.”

지난해 7월 폐선암 4기 진단을 받았다. 3년 전부터 가슴 부위가 따끔하고 마른기침이 자주 나오곤 했지만 이따금 나타나던 증상이었다. 그래서 대수로이 여기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버틸 수 없을 정도의 등골 통증을 느끼다 쓰러졌다. 병원 다섯 곳에서 협착증, 디스크, 노화 등이라고 진단했다. 주사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야 찾은 병원에서 암임을 알아차렸다.

“의사가 저를 의자에 앉히더니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몰랐냐고 해요. 폐에서 온몸 뼈로 다 전이됐대요. 아, 이제 내 차례가 왔구나 싶었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 부모님 두 분 다 20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작은형이랑 큰형도 2014년, 2017년에 암으로 떠났고요. 부모형제가 그렇게 투병하다 하늘로 가버렸으니 나도 올라갈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가족들이 날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쉽게 받아들여졌어요.”

의사는 그가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 길게는 2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가입된 보험이 전혀 없어 매달 600만~700만원이 들더란다. 수중에 3만8천원이 전부였던 때다. 선뜻 치료에 나서지 못하던 그때, 이외수 작가가 SNS를 통해 그의 투병 소식과 경제적 어려움을 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시민들이 돈을 모아 보낸 데 이어 정치인, 연예계 선후배들까지 도움을 더했다.

“이미 몇몇 방송에 출연해서 말씀드렸지만 너무 감사한 분들이 많아요. 제가 꼭 살아서 보답해야 돼요. 유재석, 조세호, 남창희 씨가 한날 같이 병문안 온 적도 있고 이승철 씨는 홍콩에서 제 기사를 보고 여기까지 오셨고. 엄용수, 김학래, 추가열, 박명수, 컬투 등등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후원금도 보내주시고.”

김철민의 투병이 더 알려진 계기는 ‘펜벤다졸’을 복용하면서다. 펜벤다졸은 미국인 조 티펜스가 복용한 지 3개월 만에 암을 완치했다고 주장한 개 구충제다. 김철민은 항암제와 펜벤다졸을 병행 중이며 스스로 효과를 봤다고 말한다. 다만 국내에서 의학적으로 입증된 사례는 없다.

“항암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제가 구충제로만 좋아졌다고 할 순 없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론 구충제가 더…. 저도 처음에는 조 티펜스 이야기를 듣고도 내키지 않았어요. 저건 100% 가짜 뉴스다 했어요. 그렇지만 삶에 대한 욕심은 끝도 없더라고요. 가짜 뉴스일지언정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어차피 죽음을 앞두고 있는 거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심정이었어요. 제가 (펜벤다졸을) 복용하고서 안 좋아졌으면 절대 더는 안 먹죠. 근데 저는 좋아지고 있으니까!”
 

남을 위해 살고 싶다

그는 개 구충제 효과를 느낀 뒤로 살고 싶다는 의지가 더 커졌다. 어쩌면 살 수 있겠다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살아야 할 이유도 생겼다. 의사가 진단한 대로라면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1년 4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

“살고 싶어요. 왜냐고 묻는다면 너무 앞만 보고 살아와서요. 뒤도 보고 옆도 봤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제가 벌어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룬 것도 없잖아요. 갈 때 되니까 남들한테 주고 가는 게 없다는 거죠. 도움 받은 게 다 빚이잖아요. 어느 정도 치유되면 저처럼 고통 받는 분들에게 따뜻한 노래나 개그를 들려주고 싶어요. 너무 나만 알고 살았거든요. 나를 더 살려준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지내고 싶네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겠지만요.”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도 이어졌다. 김철민이 1994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후 방송활동을 한 기간은 6년. 데뷔 전부터 해온 업소 행사 출연료가 쌓이면서 방송 욕심이 사라진 탓이다. 그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했다.

“돈을 펑펑 썼어요. 방송을 목숨 걸고 하지도 않았죠. 결국 신인들이 들어오면서 밀리더니 6~7년 뒤 저는 사라질 수밖에요.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박명수 레벨은 됐을 거라 생각하는데.(웃음) 박명수는 진짜 가난했어요. 제 지갑에 3만원이 있다면 그 친구 지갑엔 3천원이 있었을 정도로. 그래서 제가 맥주도 사주고 고기도 사줬는데 그 정 때문인지 지금 저한테 정말 잘해줘요.”

대화를 술술 풀어내던 그가 유일하게 멈칫한 순간은 가정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그는 “노코멘트”라며 더 이상의 답변을 꺼렸다. 질문을 바꿔 형들에 대해 물었다. 김철민의 둘째 형은 ‘나훈아 모창가수’로 유명한 너훈아다.

“우리 가족은 참 불쌍해요. 가정형편 때문에 형들이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다 흩어져 살았어요. 큰형은 너무 가난하게 살았고 작은형은 너무 바쁘게 살았어요. 형들이 하늘에서 좀 편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큰형은 부자로 살고 있으면 좋겠고 훈아 형은 평생 가짜로 살았으니 위에선 당신 목소리로 원 없이 노래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막바지 무렵 바깥이 부쩍 흐려졌다.

“어? 눈이 오네요.”

그의 한마디에 모든 시선이 일제히 창으로 향했다. 3월 말에 내리는 눈이라기엔 제법 굵직했다.

“이때도 눈이 내리던가요?”

봄날의 눈을 한참 바라보던 그. 자신에게도 ‘봄날의 눈’ 같은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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