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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회고록 낸 신동진 아나운서

“어머니…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2020-04-15 13:06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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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마주할 순간이라 여겨왔지만 이토록 갑작스레 다가올 줄은 몰랐다. 여느 때처럼 마친 전화통화가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 마지막임을 알았다면, 오늘 그리움의 크기가 덜했을까. 신동진 아나운서는 5년 전 그날부터 어머니를 그리지 않은 날이 없다. 사무친 그리움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냈다. 최근 그가 펴낸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는 ‘어머니’로 시작해 ‘어머니’로 귀결된다.
내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신동진 아나운서는 ‘어머니’를 이야기함에 있어 담담했다. “슬픔의 바다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거기서 빠져나올 때쯤 되자 안도의 한숨도 절로 나온다”라는 말마따나 쌓기만 한 그리움을 비로소 덜어낼 줄 알게 되었는지도.

어머니를 보낸 뒤로 그의 머리맡엔 펜과 수첩이 늘 자리했다. 자다가도 어머니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면 무조건 써 내려가기 위함이었다. 한 달 동안 정리한 이야기 목록만 90개였다. 그렇게 시작한 기록은 5년이 지나 한 권의 책이 됐다. 누군가에겐 ‘공감’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집 책꽂이에 두는 저만의 기록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출간을 앞두니, 이왕 이렇게 열심히 쓴 것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했으면 해요. 부모님을 잃고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더불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갑자기 떠난 어머니, 오지 않았으면 했던 그날

살다 보니 ‘그런 날’이 온다고 했다. 예기치 못한 날 그리고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 5년 전 1월의 어느 날이 그랬다. 10년 동안 매일같이 해온 안부전화는 그날 저녁에도 당연했다. 어머니는 “사레가 들린 것 같으니 이따 전화하겠다”며 통화를 마쳤다. 이따금 듣는 소리였던 터라 아들은 큰 걱정 없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잘못이 있다면 그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큰누나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더라고요. 전화를 거니까 어머니가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계신대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급하게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긴 했는데 불길한 예감이 너무 강하게 드는 거예요. 응급실 커튼을 딱 젖혔는데 이미 돌아가셨어요. 이렇게 헤어질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너무 원통하고….”

그해 첫날 찾아뵌 인사가 살아생전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헤어짐을 준비 중이었다. 세배를 드리는 아들에게 맞절을 하고선 “너를 내가 낳았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하셨다. 처음 듣는 그 말이 너무 어색하기만 했다. 몸이 불편한 탓에 절은 하지 않는 어머니였는데, 직전 해 추석엔 아버지 묘지 앞에서 큰절을 올린 적도 있다.

“고모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집안 가장 큰 어른이 되셨는데, 그 무렵 당신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고 싶어 하셨어요. 학교 주변을 두 바퀴 돌고선 됐다고 이제 가자고. 그런 모습들이 다 연결되면서 아, 어머니는 마지막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어머니와 함께한 순간을 되짚다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날도 많았다. 틈이 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꾹꾹 눌러 적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까지 떠오르곤 했다. 어느 날의 어느 순간이 눈앞에 선명히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안의 어머니는 늘 아들을 그윽이 바라보고 계셨다.

“어머니는 제가 잘되건 그렇지 않건 항상 같은 자리에서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셨어요. 제겐 성모마리아상 같은 존재, 나의 마리아님. 제 어머니는 그런 분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일지라도 부족함 없이 자란 네 아이가 되길 바랐던 모양이다. 자식들 먹이는 것과 입히는 것만큼은 아낌없이 쓰셨다고 자주 이야기했고, 아들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몸이 약하신 편이었는데 정신력은 정말 강하셨어요. 옛날 우리 어머니 세대는 다 그러셨겠지만, 부모님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힘든 상황이었지요.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우리 사남매 다 대학 보내시고, 자식들 부족하지 않게 하려고 하셨어요.”

신동진 아나운서가 태어나고서 가족이 집을 가진 시기는 2년뿐이라고 했다. 그가 고등학생일 당시 부모님은 모든 돈을 들여 당산역 인근 연립주택을 샀는데, 그로 인해 부모님의 일상은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어머니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쓰러졌고 새 집은 병원비를 내는 데 쓰였다. 집이 생긴 지 2년 만에 여섯 가족의 보금자리는 다시 작은 전셋집이 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힘들수록 도리를 다하신 어머니”라고 회상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외식을 하면 당신이 돈을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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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부터 파업까지, 유난히 기다림을 안긴 아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유난히 그리운 어머니라고 했다. 매년 그날 밤 모자는 손을 잡은 채 자정 미사를 하러 갔다. 미사가 끝난 뒤엔 다과상이 차려지는데 어머니는 그 자리에 들러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다고. 그래서인지 아들은 어느 성당을 지나도 어머니부터 추억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랑 성당을 같이 다녔어요. 문득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그랬죠. 저도 원래 여느 아들처럼 표현을 어려워하는 아들이었어요. 손잡거나 껴안고 이런 건 어머니도 징그럽다 하시고.(웃음) 근데 처음이 어렵지 한번 표현하니까 그다음부턴 뭐. 사랑한다는 애정 표현은 훗날 내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해두자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어요. 지금도 그건 잘한 것 같아요. 그때그때 제가 얘기하고 싶은 말은 남김없이 다 했어요.”

애정표현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지만 아들로서 미안한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 대학 삼수 시절을 거쳐 아나운서가 되고, 사내 파업을 지나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많은 기다림’을 안겼던 아들이기 때문이다.

“불효 저지른 게 여러 가지 있지만 특히 삼수…. 첫 학력고사 실패하고 재수 때 육사에 합격했는데 바라던 학교가 아니라서 삼수하겠다고 가출까지 했으니까요. 저 같은 자식 있으면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 받았을 거예요.(웃음) 그땐 내 인생 내가 개척하겠다! 지금은 부모님 속을 좀 썩이더라도 나중에 다 갚겠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세 번의 입시를 치르고 군대를 다녀와 스물아홉 살, 입사 제한 나이의 끝자락에서 MBC 아나운서가 됐다. 아나운서가 되고서 언젠가 어머니에게 “아들이 아나운서 된 게 좋으신가, 육사 가서 별을 달아서 장군 되는 게 좋겠느냐”고 물으니 단번에 “아나운서”라는 답이었다. 아나운서 아들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신 만큼 어머니가 MBC 파업 기간 남몰래 쌓았을 속상함은 아들에게 ‘한’이다.

“아나운서가 효도하는 게 방송 나오는 거예요. 어머니는 제가 하던 아침뉴스를 빠짐없이 보셨어요. 방송 마치고 곧장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잘 보셨느냐고 하면, 늘 잘 나왔다고 말씀하셨어요. 아주 가끔 잠이 들어 방송을 못 보시면 세상 큰일 놓친 것처럼 어떡하느냐고 하셨죠. 자식 나오는 방송 보는 게 어머니 인생의 큰 낙이었는데… 더군다나 (파업 기간은) 몸이 나빠지셨을 때니까 그런 게 가장 맺히는 부분이에요. 정작 어머니는 한 번도 묻거나 속상함을 드러내지 않으셨어요. 그저 제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너희 사장님이 너 박사 학위 받은 거 아니?’ 하시더라고요. 에둘러 표현하시는 그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죠.”

2012년 1월 파업을 시작해 반년을 보낼 즈음 어머니와 다니던 미사를 잠시 쉬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과의 미사가 어머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상처를 드린 것 같아, 여태껏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주중에 파업이 길어지다 보니 너무 힘들다고, 휴일엔 좀 쉬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하라고 답하셨지만 그 속은 어땠겠어요. 일주일 내내 성당 데이트만 기다리시는 걸 뻔히 아니까 저 스스로도 무척 아픈 말이었어요.”

아들을 향한 엄마의 기다림, 때로는 근심이 되었을 그 흔적은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신동진 아나운서가 그 휴대전화를 정리할 때 복받친 감정도 여전히 생생하다.

“발신자도 제 번호, 수신자도 제 번호. 다른 번호는 거의 안 받으셨던지 거의 저하고만 통화를 하셨더라고요. 저랑 멀리 떨어져 있는 걸 힘들어하셔서 해외 출장 가서도 한국에 있는 것처럼 저녁 6시에 맞춰서 전화를 드렸었어요. 그렇게 저랑 소통한 게 남은 휴대폰이라 지금까지 해지를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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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나운서 아들은요…”

신동진 아나운서는 이번 책 말미에서 ‘아나운서’에 관해 소상히 말하고 있다. 어머니 정성에 힘입어 오늘날 자리에 있게 됐다는 일종의 감사인 동시에, 아나운서로서 정체성에 대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못난 아들이지만 어머니께 가장 큰 기쁨을 안겨드린 게 MBC 입사였어요. 그래서 남모를 아나운서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는데 그냥 쓰면 너무 딱딱해질까 봐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형태로 풀어 쓰게 됐어요.”

역할, 성격, 범주 등 아나운서의 다양한 면모를 풀어낸 그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아나운서 캐릭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캐릭터는 없는 것 같다”며 차분히 답을 이어갔다.

“아나운서가 캐릭터를 갖는 건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캐릭터를 갖고 있다면 그 아나운서는 그쪽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거고, 그만큼 능력도 있다는 거죠. 이 나이에 ‘지향한다’는 표현을 쓰는 게 좀 그렇지만, 제가 지향하는 건 시사, 교양, 보도 부문이에요. 다만 저 같은 경우엔 중간에 공백기가 길었기 때문에….(웃음) 분명한 건 아나운서가 된 걸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주무시다가도 제 방송을 봐주셨잖아요. 아나운서로 태어나게 해주시고 길러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들은 무심코 어머니에게 “이 세상에 다시 또 태어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던 때가 있다. 어머니는 “너를 아들로 만난다면 또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더 간절한 염원을 덧붙여보는 아들이다.

“어머니,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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