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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사막 마라톤 완주한 임희선

2020-03-24 07:26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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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제대로 뛰어본 적 없던 주부 임희선 씨가 첫 달리기 무대로 ‘사하라사막’을 골랐다. 온전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사막이었다. 그렇게 떠난 230㎞ 여정의 끝은 도착점이 아닌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다. <차라리 사막을 달리는 건 어때?> 저자 임희선 씨를 만났다.
꽤 말랐다. 200㎞가 넘는, 그것도 숨이 턱턱 막히는 사막을 뛰고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한 체구는 아니다. 흔히 말하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겠구나 싶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임희선 씨는 “와, 내가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건가 했다”며 사막 마라톤을 회상했다.

임희선 씨는 지난해 4월, 6박 7일간 230㎞를 지나는 모로코 사하라사막 마라톤(MDS)을 완주했다. 그전까지 운동은커녕 뜀박질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막 마라톤 출전 의사를 밝혔을 때 “꼴통”, “저러다 말겠지” 등 주변 반응은 당연했다. 그러나 임 씨에게 ‘사막’은 오래전부터 꼭 가고 싶은 곳이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마주한 그날부턴 더욱 그랬다.

“아버지를 뵈러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아버지가 우는 저를 보시면 너무 슬퍼하실까 봐 울지 않은 척 손을 꼭 잡아드렸어요. 몇 마디 나누고 돌아 나오는데 ‘아, 더 이상 내가 울고 싶다고 해서 마음껏 울 수 있는 나이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딱 터진 것 같아요. 어릴 적 쌓인 상처 그리고 엄마, 아내로서 쌓인 스트레스들을 풀어낼 곳에 대한 갈증이….”

갖가지 고민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극한 환경에 자신을 놓아두고 싶었다. 그 속에서도 끝까지 따라붙는 고민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오랜 시간 동경의 대상이 되어온 ‘사막’에서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임 씨에게 사막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세상의 끝’과 같은 존재였다.

“다들 말하길 사막 말고도 극한 덴 많지 않냐고.(웃음) 근데 엄마가 저 어릴 때 ‘나는 사막에서도 살 사람이다’라고 자주 말씀하셨거든요. 또 아버지 애창곡이 ‘페르시아 왕자’였어요. 그 노래를 듣다 보면 모래 언덕도 나오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도 나와요. 대체 사막이 뭔데 우리 부모님은 저렇게 입에 달고 사시는 걸까. 막연하던 호기심이 너무 커져버린 거죠.”

출전을 결심했다지만 대회를 위한 준비는 막막했다. 우선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이 출간한 책에서 정보를 얻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출판된 지 오래된 서적이 많아 구입이 쉽지 않았고 그나마 최근 도서도 절판된 상태였다는 것. 어렵게 구한 책 세 권을 밤새워 읽어도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끝에 사하라사막 마라톤 아시아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을 찾았고, 그를 통해 기존 참가자들의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대회에 필요한 해외 송금을 비롯해 장비, 운동법 등을 상세히 공유해줬다. 다만, 운동법만은 개인 체력과 몸 상태에 맞춰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긴 시간 제대로 걸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뛰기부터 하니까 바로 부상을 입었어요. 양쪽 무릎엔 측부인대염이 오고 발목엔 염좌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처럼 뛰기만 하는 운동은 제게 안 맞았던 거죠.”

사하라사막 마라톤은 최소 6.5㎏, 최대 15㎏의 배낭을 메고 임해야 하는 자급자족형 대회다. 운동을 시작하고 6개월 동안 훈련 거리, 배낭 무게를 순차적으로 늘린 것도 그래서였다. 출전 한 달 전까진 어린이집 보육교사 업무와 운동을 병행하다가, 대회 준비에 오롯이 몰두하고자 사직서를 냈다. 사하라에 다녀오면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묘한 기대감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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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회 시작 전 아침, 천막을 철거하며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2 대회 3일 차 사막의 평원을 지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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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차엔 경사가 가파른 모래와 암석 산을 올랐다.

상처로 쌓인 모래 언덕, 드디어 넘었다

드디어 출발점에 올랐다. 출발 신호음과 동시에 다른 참가자들을 쫓아 달려 나갔다. 웬걸, 겨우 출발했을 뿐인데 온몸이 땀에 절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그들과 맞춰 달렸다간 죽을 것 같아 속도를 늦췄다.

“사람들이 저더러 무슨 생각하면서 뛰었냐고 자주 묻는데 실은 대회 둘째 날부턴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웃음) 여기 듄(모래 언덕)만 넘으면 나는 기권할 거다. 고민의 깨달음이고 뭐고 다 개똥같은 소리였구나. 지금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는데 깨달음은 무슨.(웃음) 사전에 서약을 해둔 게 있었어요. 혹 죽게 되면 시체 운반비 1000만원을 당사자가 지불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해도 대회 측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등등. 서약서 내용이 스치면서 내가 죽을 장소를 찾아온 거구나. 나 여기서 죽는 거구나 했어요.”

듄과 듄 사이를 오르내리다 결국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뺨을 때리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외국인 참가자들이 임 씨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임 씨에게 물과 정제염을 먹이며 ‘포기’를 권했다.

“안색이 정말 안 좋았던가 봐요. 의료진 차량도 오더니 얼른 타라고. 막상 정신이 좀 드니까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더 뛰어보고 정말 안 되겠으면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일어났어요.”

그는 자신의 표현처럼 “죽는 줄 알았던” 6박 7일을 기어코 마쳤다. 마구 울고 싶어 떠난 사막에서 정작 눈물이 흐른 때는 결승점을 통과하고서였다.

“완주 메달이 쥐어지는 순간 처음으로 (눈물이) 펑펑 흘렀어요. 과거 미웠던 나와 마주한 느낌이랄까요. 저는 평생을 틀 안에 갇혀 산 사람이에요. 다수가 정한 틀 안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사막을 넘고 보니 정도(定道)라는 건 없어요. 내가 가고 싶은 길이면 되더라고요.”

열두 살,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혼을 겪은 뒤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누구든 언제나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람을 대하는 게 두려웠다. 연애도 하지 못했다. 첫 맞선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바삐 사는 데 나름의 즐거움을 찾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역할들이 끝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애들은 사춘기 때부터 자기들만의 세계로 들어가서 엄마에 대해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남편도 굉장히 바빠졌고요. 가정에서 제 역할이 다 해가고 나의 시간이 돌아오고 있는 건데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막 마라톤을 다녀와서야 비로소 ‘나’로 출발하는 지점에 서게 됐어요.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운전면허를 땄어요. 그것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계속 생기고 있고요.”

그는 진짜 사막을 뛰어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사막과 같이 거친 지대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곳을 지나보라고 다독이고 싶었다.

“여태껏 상처 받은 열두 살의 모래 언덕에 서 있었어요. 넘어볼 용기를 내니까 언덕 뒤의 삶이 이젠 보이네요. 저마다 가슴에 사하라사막을 품고 있을 겁니다. 달려보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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