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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계약해지 딛고 SBS 주말 뉴스 앵커까지... 김민형 아나운서의 ‘봄날’

2020-03-19 09:58

취재 : 장가현  |  사진(제공)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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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로 세 번 직장을 옮긴 ‘능력자’가 있다. 올해 2월부터 SBS <궁금한 이야기 Y>의 스토리텔러가 된 김민형 아나운서다. 연합뉴스TV, MBC를 거쳐 SBS에 안착하기까지, 고된 시간 끝에 빛을 본 그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났다.
김민형 아나운서를 만난 날은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었다. 살짝 상기된 채 기자 일행을 바라보던 그는 비구름 같은 회색 슈트 차림이었다. 사방이 잿빛투성이라 그런지 기자를 반기는 밝은 얼굴이 유독 눈에 띄었다. 김민형 아나운서는 차분한 태도로 인터뷰에 임했지만 가지런히 모은 손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매체 인터뷰가 처음이라는 그는 수줍고 어색한 신입사원의 모습을 먼저 드러냈다.
 

# 신입사원, 뉴스 앵커, 스토리텔러

김민형 아나운서가 SBS에 입사한 지 1년이 지났다. SBS의 파릇파릇한 새내기지만 출연하는 방송은 베테랑 급이다. 입사하자마자 약 두 달 만에 맡은 <SBS 8 뉴스> 주말 앵커를 1년째 하고 있고, 올해 2월부터 <궁금한 이야기 Y>의 스토리텔러가 됐다. <궁금한 이야기 Y>는 SBS를 대표하는 박선영 아나운서가 오랫동안 활약했던 프로그램이다. 대선배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프로그램을 신입사원이 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엄청 부담이었어요. <궁금한 이야기 Y>는 선영 선배님이 워낙에 기틀을 단단하게 마련하신 프로그램이니까요. 제가 아나운서 지망할 때 허수경 씨에서 선영 선배님으로 스토리텔러가 바뀌었어요. 낯익던 목소리가 바뀌니까 어색했던 기억이 있는데, 누군가는 그때 저처럼 어색하게 들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대선배 뒤를 잇는 자리라 부담스러웠지만 내심 그 자리에 앉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다. 아나운서는 입사를 하면 선배들에게 꼭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너는 어떤 프로그램이 하고 싶니?” <궁금한 이야기 Y>가 하고 싶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나운서 선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범답안을 내놨다. “저는 다 좋아요. 다 하고 싶어요.”

꿈꾸던 방송의 첫 녹화를 하던 날, 속으론 긴장했을지 몰라도 방송에선 당당했다. 첫 방송에 그가 선택한 옷은 빨간 원피스. 이유를 물으니 “이상했어요? 차분한 색 입을걸” 하며 부끄러워했다. 그 빨간 원피스 때문에 놀림이라도 받은 걸까. 단순히 튀려고 고른 옷은 아니다. <궁금한 이야기 Y>는 시청자 사연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인데, 주로 여성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사연을 보내는 여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스토리텔러로 보이고 싶어 선택한 옷이었다고. 그가 <궁금한 이야기 Y>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다.

프로그램을 함께 이끄는 배우 김석훈과의 만남은 어땠을까. 프로그램 특성상 따로 내레이션 녹음과 녹화가 진행되다 보니 정작 얼굴을 본 건 포스터 촬영 때뿐이다. 짧게 몇 마디만 나누었는데 배울 점이 보였다. 특히 사연의 분위기에 맞게 톤을 조절하는 점은 꼭 닮고 싶다고. 어떻게 입사 1년 만에 방송국 대표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었을까. 사실 김민형은 SBS에서 방송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는 올해로 5년 차 아나운서가 됐다. SBS 입사 전 그에게는 ‘MBC 계약직 아나운서’라는 낙인이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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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직 아나 낙인 딛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서다

연합뉴스TV를 거쳐 MBC에 입사해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일했다. 하지만 사측의 말이 달라졌다. MBC는 김민형을 포함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그는 크게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간절했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싫어질 만큼 힘들었다. 그래서 잠깐 다른 직업으로 전향할 계획도 세웠다. 비행기 조종사 시험을 준비했단다. 엉뚱한 대답에 현장에 있던 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한번 해볼까 싶었다고.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건데….(웃음) 어느 날 하늘을 보는데 비행기가 지나갔어요. 비행기를 보다가 조종사 한번 해볼까 싶어서 조종사 시험을 준비했어요. 옆집에 항공사 기장님이 살아서 그분한테 코칭을 받고 비행학교 시험도 봤어요. 거기 들어가려면 신체검사에서 통과해야 하는데 안구검사에서 떨어졌어요.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데 기장을 하기 적합한 눈이 아니래요. 어쩔 수 없이 포기했어요. 하하.”

잠깐 외도를 했지만 결국 아나운서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마음을 돌렸던 것은 말 한마디였다. 당시 상황을 안타깝게 보던 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 염용석 SBS 아나운서가 김민형을 비롯한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아나운서 시험을 보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아나운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선배가 건넨 위로의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제가 시험장에 들어가니까 지망생들이 막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그들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왜 왔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저한테는 마지막이라 시험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면접에 가니까 면접관이 아무도 저에게 그 질문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바보같이 모른다고 생각해서 좋아했는데 합숙전형에 가니까 다들 알고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합숙전형은 말만 시험이었지 힐링캠프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합숙전형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눈물의 힐링캠프 이후 아나운서 생활 4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직이 됐다.

입사하자마자 처음 주어진 숙제가 주말 뉴스 앵커 오디션이었다. 그는 신입이지만 신입이라고 할 수 없는 경력자였다. 회사는 ‘김민형이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기대가 있을 테니 그 ‘당연한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혼자 뉴스 스튜디오에 가서 워킹 연습, 손 짚는 연습, 말하는 연습을 하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 기대에 부응했는지 좋은 결과를 받았다.

주말 뉴스를 진행한 지 1년이 지나니 처음보다 한결 여유가 생겼다. 처음엔 스스로 쓴 멘트를 잘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는데 이제 그 외의 일도 할 수 있다고. 프롬프터를 보지 않고 멘트를 한다든지 손으로 화면을 가리킨다든지 표정을 찡그리며 말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가 뉴스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공정함이다. <궁금한 이야기 Y>가 강인하고 감정을 녹여 사연을 전달하는 반면 뉴스는 다르다. 그래서 의상이나 메이크업도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깔끔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숫자 하나, 글자 하나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앵커 멘트를 준비한다. 한 기사당 스무 번은 읽으면서 준비하느라 앵커 멘트를 쓰는 시간만 해도 족히 세 시간은 걸린다고.

“뉴스 앵커는 쉽지 않은 자리예요. 뉴스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 시사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또 공정하게 전달해야 하잖아요. 앵커 멘트는 제가 직접 다 쓰는데 혹시 제 멘트에 공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봐 여러 번 확인해요. 그래서 힘든 자리라기보다 어려운 자리인 것 같아요.”

김민형의 뉴스 파트너는 김범주 앵커다. 평소에는 아빠 같은 자상한 면모가 있지만 일을 할 때는 냉철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후배들에게 하는 칭찬도 인색한 편이라고. 그런 김범주 앵커가 “오늘 잘했어요”라는 칭찬을 할 때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김범주 앵커에게 칭찬을 들은 횟수는 네 번. 칭찬을 들을 때마다 ‘와! 칭찬받았다’ 하고 집에 가서 일기를 써서 정확하게 기억한다.
 

# 매일 일기 쓰는 희한한(?) 20대

‘칭찬 일기’처럼 김민형 아나운서에게는 요즘 보기 드문 버릇이 있다. 퇴근 후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다. 어쩌다 일기 쓸 시간이 없었으면 다음 날 미뤄둔 일기를 쓸 만큼 열심이다. 일기 쓰기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쓰기 시작했는데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 일기 쓰기는 그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도 작용했다. 입사 초반 SBS 유튜브 채널에 그의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가 공개된 적이 있다. 거기에서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면서 썼던 일기와 필승전략이 담긴 노트를 보여줬는데, 노트를 빼곡하게 채운 노력의 흔적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김민형 아나운서는 이처럼 열심히 사는 와중에 연애도 했다. 그럴 시간이 있었냐고 물으니 “바빠도 연애할 시간은 항상 나는 법이니까요”라며 씩 웃었다. 이상형을 물으니 ‘좋은 질문’이라며 신나게 말을 이었다.

“제가 키가 크니까 저를 왜소하게 만들어주는 키 크고 덩치가 있으신 분. 그리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음 좋겠어요. 제가 배우는 걸 좋아해서요.”

여기까지 오는 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는 아직 스물여덟이다. 연애하고 친구들과 다닌 맛집을 추천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힘들던 시절을 떠올려도 이제 웃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학창시절에는 노력한 만큼 점수가 안 나오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항상 남들보다 더 노력하려 했어요. 아나운서를 준비할 때는 일부러 공강 시간을 만들어서 아나운서 공부도 했어요. 화려함만 보고 카메라 앞에 섰다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그런 노력이 있어 아나운서가 됐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직 끝이 아니니까 계속 배우면서 일하고 싶어요.”

힘들게 왔으니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한데 여전히 배울 게 많다. 경험이 더 쌓이면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 싶고, 대학 시절 전공이었던 그림도 다시 그리고 싶다. 묵묵한 노력으로 봄을 불러온 김민형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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