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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de Veteran 3]올드 팝과 함께한 <저녁스케치> 20년, DJ 배미향

“신청곡 순서 짜는 거… 잘하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2020-02-19 20:01

글 : 이상문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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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 <저녁스케치>가 어느 덧 20년. 여고 3학년 어린 나이에 음악감상실 보조로 시작한 것부터 따지면 40년이 넘는 시간이다. 오직 한길밖에 모르고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소회가 깊고 진하리라 짐작되지만, 그는 무심한 듯 태연했다. 그냥 재미있게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렀단다. 시작은 알지만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 그저 묵묵히 음악으로 우리네 삶을 스케치하는 사람, 배미향의 ‘나에 관한 이야기’.
CBS(기독교방송) 라디오 음악FM 저녁 6시. 시그널이 끝날 때쯤 차분히 가라앉은 개성 있는 목소리가 시작을 알린다. 장수 프로그램 <배미향의 저녁스케치>다. 40~60대 중장년층 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꽃중년의 우상’이라는 표현도 오간다. 지금의 50~60대라면 팬덤 문화에 익숙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쪽 동네는 예외. 나이답게 점잖지만 나이답지 않게 열정적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함께 나이 들며 호흡해온 동호회가 있고, 수년 전엔 밴드도 새로 만들어졌다. 한 프로그램, 한 사람을 놓고 두 개의 팬클럽이 존재하는 셈이다.
 

배미향(62)은 이 프로그램의 안방마님이다. 제작 PD와 DJ를 겸한다. 오랜 시간 동안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올드 팝과 샹송, 칸초네, 라틴음악 등 월드뮤직을 모두 다루는 저녁 방송.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주부들, 퇴근길에 들어선 직장인들의 친구다. 일과를 함께 정리해주는 친구 같은 마감재도 되고 문득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도 된다.

연중 하루도 빠짐 없이 신청곡과 사연이 밀려들어 온다. 음악FM 전용 앱인 ‘CBS 레인보우’ 출석부엔 출석랭킹이 공개된다. 수천 번을 출석한 팬이 수두룩하니 그 열성팬들이 증발해버리지 않는 한 지금 시작해서는 상위권 진입이 불가능에 가깝다. 게시판엔 방송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팬들의 채팅창이 열린다. 이미 서로를 아는 단골손님들은 DJ의 지휘에 따라 음악에 취하고 대화에 취한다.

하지만 정작 ‘꽃중년의 우상’이라는 그는 남 앞에 나서길 꺼린다. 고작 동호회 팬미팅에 나가는 정도다. 수려한 경력에 비해 인터뷰도 극히 적은 편. 방송대상 수상 등 이슈가 있을 때 몇 번 소개된 리포트가 전부였다. 인터뷰를 요청해놓은 뒤 결국 해가 바뀐 것도 드러내기 싫어하는 그 성품 때문이다 싶었다. 여전히 뭔가 어색해하는 그를 목동 CBS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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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니 올해가 <저녁스케치> 20년 되는 해다. 소감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20년이 된 지도 몰랐다. 너무 엊그제 일 같으니까. 소감이라면 그냥… 처음엔 이 일이 내게 이렇게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다 보니 점점 잘 맞는다고 느꼈고, 이제는 너무 잘 맞는 일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말하면 소감이 되나?(웃음)

2000년부터 이 방송을 시작했다. 10년 후인 2010년의 배미향과 20년 후인 지금의 배미향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그저 내 일만 해왔으니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다. 나와 내 주변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낀 계기는 방송한 지 5년째 되던 해였던 것 같다. 처음 5년 동안은 프로그램 이름이 그냥 <저녁스케치>였다. 반응이 좋자 팝스콘서트 행사도 기획해 가수들 공연도 했는데, 그게 이슈가 되니까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사도 많이 나왔고 그 덕에 아침드라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 제의가 들어왔다. 대한항공 등 여러 곳에서 CF 제의가 들어온 것도 그때쯤부터였다. 타샤 튜더 책을 오디오로 녹음하는 일도 했다. 원래 방송국 사람은 외부 일 못 하게 돼 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허락해줬다. 감사한 일이다. 아무튼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나는 그대로인 것 같다.

처음 방송국에 들어올 때 꽤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걸로 안다. 마음고생을 꽤 했을 것 같은데. 이 방송은 97년도쯤 <저녁스케치 939>라는 타이틀로 시작됐다. 내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방 방송이 가능해지면서 주파수를 딴 이름 ‘939’는 빼고 <저녁스케치>로 나갔다. 그런데 99년부터 1년 넘게 파업이 있었다. 현업이 다 빠지고 차장급 이상 간부들 중 방송 경험 있는 이들이 차출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저녁스케치>를 임시로 맡아 들어오게 됐다. 파업이 끝나고 원래 스태프가 복귀하기로 했는데, 청취자들의 반대가 거셌다. 난 주인이 있는 자리에서 임시로 진행한 거라 이름도 안 밝히고 음악만 틀어주는 방송을 했었다. 주인이 돌아올 거였으니까 나를 내세우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내부에서 갈등이 많았겠다. 견디기 힘들지 않았나?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열성 청취자들이 회사에 탄원서를 내는 건 물론이고 전화를 하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길 반복했다. 가장 상처 받았을 때는, 게시판에 올린 글이 내 가족이 쓴 거라고 오해받을 때였다. IP까지 추적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분들 입장을 너무나 이해하면서도 속이 상했다. 하지만 입장 바꿔놓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그렇지 않았겠나. 난 욕심은 없었다. 언제든 누가 오든 자리를 비워준다 생각하며 매일 방송을 이어갔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속을 많이 끓였을 텐데 잘 견딜 수 있었던 건 성격 덕분일까? 원래 욕심이 없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고 속을 끓이지 않을 수야 있나. 힘들긴 했다.
 

상처가 아물고도 남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기억이 사라지진 않을 텐데, 그는 꽤 태연한 듯 보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충실한 무던한 성격 덕인 듯하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순리를 기다리며 안으로 소화하고 체화하는 기질, 방송에서 보여주던 절제와 여백의 품성과 닮았다.

기독교방송 입문 전에도 그는 남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여고 3학년 때 음악감상실에서 임시 보조 DJ를 한 게 시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아무 욕심 없이 시작한 일인데 정식 DJ로 발탁되고 방송국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던 것. 결례가 될 줄 알면서도 “시쳇말로 ‘땜빵’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는 농담을 건네자 개의치 않고 환하게 웃었다.

“그렇네요. 땜빵 맞아요. 두 번씩이나.(웃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내게 그런 기회가 온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고 그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기에만 급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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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은 어떻게 가게 됐나? 음악감상실에서 방송국으로 점프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아버지가 경찰 간부셨고 어머니는 대구에서 손꼽는 부잣집 셋째 딸이었다. 딸 둘 키우며 사는 그리 어렵지 않은 집안이었는데, 아버지가 은퇴 후 사업을 하시다가 실패하셨다. 가계가 어려워져 돈을 벌어야 했다. 당시 고등학교 졸업한 여자들의 진로는 뻔했다. 잘사는 집 딸들은 대학 갔다가 일찍 시집가는 거였고 평범한 집 딸들은 직장에 취직해 돈 버는 거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은행원 되면 최고 좋은 케이스였다. 우연히 대구에서 제일 큰 음악감상실에 누군가의 소개로 가서 여자 DJ를 봤다. 얼마 후 그분이 개인 사정으로 못 나오게 돼 며칠간 임시로 일을 맡았다. 오픈 전에 일찍 가서 청소하고 디스크를 닦고, 마감 후에 다시 디스크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 뒤 퇴근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 DJ가 아예 그만두게 되었고 내가 선곡 일까지 맡게 됐다. 그때만 해도 사장이 멘트는 하지 말고 판만 올리라고 당부했었다.(웃음) 그러다 나중엔 멘트도 하게 됐고 반응이 좋으니까 아예 정식으로 눌러앉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 기독교방송에서 우리 감상실에서 공개방송을 하다가 여자 DJ를 아나운서와 공동 진행 시켜보자 해서 실험 삼아 해봤고, 그게 또 반응이 좋았다. 그 일이 있은 뒤 PD가 다시 찾아와 방송국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때도 임시직이었다.

처음으로 멘트가 허락됐을 때 무슨 말을 했나? 기억날 리가 있나. 너무 덜덜덜 떨어서 뭐라고 했는지 그 당일 끝나고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방송국 들어와 첫 방송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워낙 떨어서.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잘 아니까 가능했을 텐데…. 팝 음악은 언제부터 통달하게 된 건가? 통달은 무슨…. 그냥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사촌오빠들이 그야말로 팝송에 통달한 사람들이었다. 작은오빠는 클리프 리처드 마니아였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누워 있을 때가 많았는데 조그만 전축을 틀어놓고 오빠들이 준 음반을 종일 듣곤 했다.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학교 동창들도 ‘넌 교실에서 만날 팝송 제목이랑 가사만 끄적거리더니 딱 그런 일을 하는구나’라고 하더라. 오래전부터 팝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우쭐하진 않았다.

결국 대학 진학은 포기한 셈이다. 아쉽지 않았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전혀 아쉽지 않다.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음악 하는 일이 제일 재미있었고 그걸 가장 잘하고 싶었으니까. 대학 갈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안 했다.

배미향은 1975년 기독교방송에 입사했다. 물론 계약직이었지만 방송 프로그램을 한 시도 놓은 적이 없었다. 지방 방송국 시절에도 팝송 프로그램 몇 가지를 거쳤고,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에도 기독교방송에서 계속 자리를 지켰다. 통폐합으로 조직이 개편되고 사람들이 떠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쓸모를 인정받아서였다. 쓸모란 프로그램 제작과 진행을 모두 할 수 있는 PD 겸 DJ였기 때문이다. 각종 음악 프로그램과 정보, 교양 프로그램을 일순한 뒤 1983년 드디어 기독교방송 PD로 정식 발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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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방송을 하려면 생활이 규칙적일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패턴이 지겹지는 않은가? 원래 성격이 그렇다. 무던하다 해야 할지 야무지다 해야 할지….(웃음) 해야 하는 일은 끝까지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다. 돌아보면 20대부터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살았다. 방송국 처음 일할 때도 사실은 음악감상실 두 곳에서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한 군데 하고 나서 자리를 옮겨 심야 음악감상실에서도 음악을 틀었다. 특별한 고집이 없는 대신에 뭔가 어중간한 걸 싫어하는 것 같다. 시간을 허투루 버리는 게 싫어서 늘 타임 테이블을 정해놓고 그에 따르는 편이다. 그런 기질 때문인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특별히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지금 이런 생활도 내 편한 대로 정하고 익숙해지면 그뿐이다.

매일 마이크 앞에 앉기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아침 8시쯤 일어나고 한 시간 정도 운동 나갔다 온다. 운동이라곤 늘 걷기다. 아침은 간단히 사과 반쪽과 달걀프라이, 치즈 한 쪽 정도를 먹는다. TV 좀 보다가 샤워하고 책 보고, 12시쯤에 서운하면 누룽지 밥 정도 먹고 2시쯤 집에서 나오면 3시에 방송국 도착. 4시쯤에 점심을 먹는다. 방송 하고 뒷정리하고 집에 오면 9시 되고 그때 저녁을 먹는다. 그렇게 매일 반복된다. 일요일 분만 녹음이고 나머지는 다 생방송이다. 3일 이상 휴가를 떠나본 적이 없다. 걷는 걸 좋아해서 제주 올레길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긴 휴가를 못 떠난다. 가깝게 여행 다녀오거나 집에서 쉰다.

방송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에는 어떤 게 있나? 특별히 공부하는 건 없다. 예전에 월드뮤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신청곡이 들어오면 잘 읽었다 싶어도 발음이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프랑스어랑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모르는 신청곡이 들어올 때가 지금도 있다. 그런 건 수시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옛날엔 신청곡을 모르면 당황하고 겁이 났는데 지금은 겁은 안 난다.

선곡하는 데 DJ의 취향이 묻어날 텐데,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보나? 팝 음악과 월드뮤직 골고루 다 틀어드린다. 옛것만 고집하지 않고 요즘 곡도 내보낸다. 다만, 하드록 같은 요란한 음악보다는 편안하고 조용한 음악 위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취향이 그렇기도 하고 프로그램 성격 자체가 노을 지는 저녁 잔잔한 음악과 함께하는 거니까. 빠른 음악이나 하드록을 듣고 싶으면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로 가서 들으시면 된다.(웃음) 내 성향은 당연히 편한 음악이다. 어릴 때부터 저녁 무렵이면 누군가 이럴 때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걸 20년 넘게 하고 있다.

한때 동 시간대 청취율 1위를 고수했다. 지금은? 동 시간대 타 방송 진행자들이 쟁쟁하다. 배철수, 이금희, 박소현 씨 등 대단하신 분들이다. 지금은 박소현 씨 방송이 1위인 걸로 알고 있다. 젊은 팬층은 거기로 몰리니까. 사실 동 시간대 청취율 1~2위는 따지지도, 잘 의식하지도 못한다. 방송국 내에선 라디오 전체 청취율 20위 안에 드느냐에 관심이 있다.

청취율 1위를 기록하거나 방송 관련 상을 받을 때 기분은 어떤가. 자신에게도 상을 주나? 살면서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처음 벌어진 일들이었다. 당연히 기뻤다. 하지만 기쁨을 막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술도 안 마시고 노래방도 안 간다. 노래를 정말 못하니깐.(웃음) 사람들이 다들 그런다. 그럼 무슨 재미로 사냐고.

동호회원들과 자주 접촉하는 편인가? 기억에 남는 팬들 이야기도 듣고 싶다. 정기모임 두 번 하고 가끔 번개를 한다. 정기모임엔 꼭 나간다. 음악 얘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사연마다 소중하니 기억에 남는 팬들은 많다. 오래 방송하다 보니 같이 나이를 먹는다. 열혈 청취자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아파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끝내 돌아가시고 나서 부인이 남편 생각날 때마다 신청곡을 보낸다. 매일 학원 앞에 차를 세워놓고 고3 딸을 기다리며 우리 방송을 들으셨다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 딸이 대학을 가고 졸업하고 이제 결혼한 맞벌이 부부가 되었는데, 삶이 팍팍하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저녁스케치>를 듣는다고 한다. 며칠 전엔 너무나 따뜻한 사연을 받았다. 중년 부부가 차를 타고 가다가 남편이 부인의 손을 잡아다가 핸들에 얹고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했다 하더라. 부인께서 사연을 보냈는데 그 순간 연애할 때 생각이 나 가슴이 너무 설다고 했다. 그런 사연을 접하면 너무 마음이 좋다. 50~60대 중년이 되면 자식들도 다 떠나고 부부만 남는다. 옛날 감정을 소환하며 불을 지필 수 있는데 그걸 잘 모르고 밖으로 도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도타워지면 좋겠다. 밖으로 돌던 남편이 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땐 이미 늦는다. 부인도 이미 밖으로 돌고 있을 거 아닌가.(웃음)
 

비단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그 역시 60대 부부이고 아직 미혼인 아들이 독립해 살고 있다. 그 집 사정은 어떠냐고 물으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아내의 방송을 빠지지 않고 듣는다니 모범중년에 가까울 듯한데, 여기에 “남편이 안 하던 설거지를 하면 좋은 신호다”라는 좋은 신호를 보냈으니 집 안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광고계에서 알아주는 목소리다. 신뢰를 주는 목소리여서일 텐데 정작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얘기 많이 듣는데, 나도 잘 모른다. 신뢰의 보이스 같은 건 잘 모르겠고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한다.(웃음) 일부러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니고 나 있는 그대로 내는 소리니까, 그들이 신뢰한다면 나를 신뢰하는 거 아닐까 생각해본 적은 있다. 나 스스로도 나를 믿는다. 사람의 목소리엔 음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과 억양이 각각이다. 사람을 처음 만나 5분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지 않나. 톤과 매너, 인상 즉, 그 사람의 모든 게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단순히 목소리 자체만으론 전부가 아닌 것 같다.

그럼, 배미향을 40년 넘게 마이크 앞에 있게 한 핵심은 뭔가? 무엇을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나? 난 원래부터도 주특기가 목소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생방송할 때 신청곡이 들어오면 작가와 내 손이 무척 빠르게 돌아간다. 사연 고르고, 원고 띄우고, 신청곡 검색해 띄우고, 많은 신청곡들의 순서를 정하고, 멘트도 하고…. 이게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신청곡들이 내 앞에서는 자동으로 줄을 선다. 어떻게 구성할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내 장기는 그거 하나다. 음악을 구성하는 것.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편안하게 곡을 선정해 순서를 정하는 걸 잘한다.
 

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리면 경청하게 하는 목소리. 믿게 하는 목소리, 위로하는 목소리, 공감하게 하는 목소리라고 표현하게 된다. 매일 저녁 그 목소리를 통해 힐링 음악을 듣고, 그 목소리 덕에 더 멋지게 하늘을 날아 참 좋은 여행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목소리가 경쟁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소리의 함정(?)을 걷어내고 나니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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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배미향 추천 명곡 30
내 삶을 달래준 ‘이럴 땐 이런 음악’

비 오는 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 Tony Bennett
Eternally - Placido Domingo
Crazy - Julio Iglesias
Quizas Quizas Quizas - Nat King Cole
Moody’S Mood - George Benson
Ma Solitude - Georges Moustaki
La Mer - Kevin Kline
Et Si Tu N’Existais Pas - Joe Dassin
Abrazame - Laura Fygi
Sensitive Kind - J J Cale

커피 한잔과 어울리는 명곡
Solo Hay Una Para Mi - Semino Rossi
In Love With You - Dana Winner
Besame Mucho - Andrea Bocelli
Soledad - Amy Sky
Bella Luna - Jason Mraz
Querer - Cirque Du Soleil
Home - Michael Buble
Un Break My Heart - Toni Braxton
Koop Island Blues - Koop (Feat. Ane Brun)
Life In Mono - Mono
 
산책길에 함께하면 좋은 곡들
Aspri Mera Keya Mas - Agnes Baltsa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 Francis Cabrel & Mercedes Sosa
Hommage Au Passant D’Un Soir - Yves Duteil
Manha De Carnaval - Luis Miguel
La Vie En Rose - Dalida
Maintenant Je Sais - Jean Gabin
Jurame - Gisselle
Roda Vida - Teofilo Chantre
How Insensitive - Sting, Antonio Carlos Jobim
Avant De Nous Dire Adieu - Jeane M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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