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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김예원 변호사가 한 눈으로 담는 세상

2020-02-19 11:15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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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변호사는 배속에서 나와 처음 보게 된 순간부터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담았다.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일지라도 누군가의 두 눈에 담긴 것보다 넓다. 구석진 곳까지 뻗친 그의 시선을 따라 듣는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장소 카페미뇽 신촌점(02-338-5553)
이른 아침 말 그대로 ‘틈을 내’ 만났다. 의뢰인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 상담을 나누는 그이다 보니, 하루 동선을 맞추려면 지체 없이 움직여야 한다. 김예원 변호사는 최근 전라남도 광주로 거취를 옮겨 서울까지 오는 데만 몇 시간이 훌쩍 지난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오전 상담이 있어,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더란다.

“아니죠, 아니요. 그분들은 저를 찾아올 수가 없죠.”

사무실이 아닌, 의뢰인이 있는 근처까지 굳이 오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김 변호사는 비영리 1인 법률사무소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하는 공익 변호사다. 장애인과 여성, 아동 가운데서도 특히,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 법률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

“대개 같이 일하는 여성단체, 장애인단체, 아동단체에서 어려운 사건들을 만나요.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서 진행하기엔 너무 어려운 사건들, 또 당사자가 취약한 상황이라 일반적인 지원 체계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사건들이죠. 신문 사회면을 읽다가 (당사자를) 발견하기도 해요. 사건 보도만 될 뿐 사실상 지원이 힘든 경우가 있거든요. 보도한 기자한테 연락을 한 뒤 피해자가 원한다고 하면 만나러 가요.”

수임료를 일절 받지 않는다. 강의, 연구용역 등을 해서 번 돈으로 수임료를 대신한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그만의 분명한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다.

“제가 맡는 대부분 사건의 당사자들은 돈을 낼 수 없는 분들이에요. 돈을 쥐어짜듯 받아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런 이야기 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돈은 살아가는 데 지장 없을 정도면 될 것 같거든요. 어느 날 되게 치킨이 먹고 싶은데 망설임 없이 시킬 수 있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음, 제가 아직 엄청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를 못 찾아서 그럴까요?”(웃음)
 

의료사고로 한쪽 눈 잃었지만…

첫 직장이었던 대형 법무법인 ‘태평양’을 스스로 나와 장애인권법센터를 연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변호사는 2012년 태평양 공익재단법인 ‘동천’에 입사해 주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를 대리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마주한 사건들이 인권 활동에 눈뜨게 했다고 한다. 로펌까지 이른 사건은 그의 표현대로 “어느 정도 진행돼 곪아 터진” 상태였고, 그는 그러한 사건을 초기에 들여다보지 못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후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직장을 옮겼지만 관할지가 정해져 있다 보니 도움을 건넬 수 없는 지역의 장애인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위치와 관계없이 무료 법률 지원이 가능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내린 답이 장애인권법센터다.

“사실 돈만 포기하면 아주 간단하더라고요.(웃음) 신랑한테 말했어요. 돈이 한 푼도 안 벌릴 수 있고 오히려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고. 근데 신랑이 정말 담담하게 그게 옳은 방향이면 그렇게 하면 되지, 뭘 그리 고민하느냐는 거예요. 바로 (센터 개소) 준비를 시작했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익 변호사로서 그의 삶은 운명적인 부분도 있다. 그는 두 번의 의료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은 6급 시각장애인으로, 장애의 어려움을 더욱 파악할 줄 안다. 2017년 친모 동거남의 무차별 폭행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아동을 변호할 당시 자신의 의안을 직접 빼 보인 뒤 “의안을 바꿔 넣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피해 아동을 생각해서 가해자들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고 호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변호사는 겸자분만(집게 등으로 태아의 머리를 집어서 잡아당기는 방법)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분만 도구에 눈을 찍혔다. 그러나 의료진은 아이의 눈동자가 터진 줄 모르고 높은 안압의 원인을 눈암으로 진단해, 안구와 주변 신경 그리고 근육조직까지 들어냈다.

그의 장애와 관련해 조심스레 건넨 물음에 오히려 그는 호탕하게 답하곤 했다. 학창시절 몇몇 아이들의 놀림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던 이야기가 절로 이해됐다.

“애들이 엄청 놀렸죠. 나쁜 애들은 항상 있는 거고.(웃음) 근데 제가 공부를 잘하고 힘이 셌어요. 지금도 남자들이랑 팔씨름을 하면 어느 정도는 이겨요. 운동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어릴 땐 놀리는 애들이 있으면 때려줬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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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존경스러운 사람 내 남편”

변호사이자 세 아이를 둔 엄마다. 법정에 셋째 아이와 함께 들어가 수유를 하면서 변론을 한 적도 있다.

“태어난 지 40여 일 된 아기인데 봐줄 사람은 없고 제가 안 갈 수도 없잖아요. 판사인 남편에게 (법정 내 모유 수유가) 재판장 모독이라고 생각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모성에 대한 법원의 인식 개선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얻고 하게 됐어요.”

업무와 가정,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녀들과 보내는 순간만큼은 긴급한 상담 전화를 제외한 업무를 온전히 내려놓는다. 집 안에 ‘휴대폰 쉼터’라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스마트폰을 넣어두고, 일부러 TV 없이 산 지도 오래다.

“애들이 동화책 삼매경에 빠져 있으면 저는 플랭크 7분, 스쿼트 150개, 팔 벌려 뛰기 200회를 해요. 그러고선 애들이랑 같이 누워서 아이들을 재우고 꿈같은 표정을 지켜보다 밀린 제 일을 하죠. 그렇게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남편이 김 변호사의 일상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도 크다. 그는 남편을 “좋은 사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존경스러운 사람, 많이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연수원 동기로 만났어요. 남편은 언제든 틈을 내줄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대요. 실제로 그런 사람이고요. 남편이랑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줄 때가 있어요. 기분 좋게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죠.”

부부는 ‘기부’에도 뜻을 같이한다. 매달 수입의 10~20%를 42개 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돈이 완전히 자신에게만 귀결되면 탈이 나는 것 같다는 게 이유다.

일각에선 김 변호사의 행보가 결국 정계 입문과 같은 목적성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일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최근 여러 정당에서 내놓은 입당 제안도 거절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정당에서) 제 스토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정치권)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충분히 많아요.”

김 변호사의 꿈은 지금 하는 일을 오래오래 하는 것. 그리고 ‘소확행’을 누리는 것일 뿐이다.

“셋째가 만삭일 때 큰애가 혈액암으로 생사를 오갔어요. 암 병동을 다녀보니 일상이 타의로 파괴된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아, 적어도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감사한 기적이구나! 그걸 잊지 않고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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