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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나를 지켜준 엄마·딸·남편에 대한 고백

2019-11-21 08:32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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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는 가을볕 같았다. 세월의 흔적이 슬쩍 묻은 눈웃음이, 나긋나긋한 말씨가 그리고 인사를 건넨 이들에게 짓는 미소가 따사로웠다. 따뜻하고 온화해서 자꾸만 쬐고 싶은, 그런 가을볕 같은 온기가 전해졌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남는 시간이다. 가수 최진희가 데뷔한 지 어느덧 35주년이 됐다. 35년 전 풋풋한 봄 같은 얼굴로 대중 앞에 선 최진희는 이제 자신의 감성만큼 짙은 계절을 살고 있다. 가수로 살면서 매 순간이 소중했다며 웃는 미소가 가을볕처럼 따사로웠다. 사랑하기 좋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최진희를 만나러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근처에 있는 그의 식당으로 갔다. 볕이 좋은 날이라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좀체 보기 힘든 ‘최사장’이 나와 있으니 식당을 찾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나왔다. 기자가 그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최진희 씨~ 팬이에요”, “우리 단체로 콘서트 티켓 샀어요, 그날 봐요” 하는 이들이 꽤 많이 지나갔다. 전날 밤늦게 중국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였다.
 

# 팬들이 지켜준 35년

콘서트 준비는 잘돼가세요? 가수생활을 어릴 때부터 해서 예민한 편이에요. 불면증도 있고. 노래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콘서트 준비도 해야 하고 다른 일정도 소화해야 하니 그게 힘들어요. 그래도 콘서트 준비는 잘되고 있어요. 그동안 팬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않았던 모습도 보여드리려고 해요.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줘요. 후배들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는데 특히 (정)미애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죠.

정미애 씨가 나온 <미스트롯> 영향으로 다시 트로트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트로트는 우리 전통음악이에요. 이 음악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색을 다시 찾은 것 같아 기뻐요. ‘한국 사람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음악의 뿌리는 버릴 수 없구나’ 하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미스트롯> 방송으로 붐이 일었다기보다 잠시 숨어 있던 한국의 음악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고 생각해요.

트로트에 있는 한국의 음악성이요? ‘한’이죠. 민족의 한. 어느 나라든 그네들이 살아가는 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그 정서가 한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한이라는 정서는 우리만 갖고 있어요. 이런 정서 때문인지 트로트는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애기들도 트로트를 좋아하잖아요. 조그만 애들이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도 모자라 거기 젖어서 눈물도 흘리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요.

35주년 기념 콘서트 제목이 <사랑하기 좋은 날>이에요. 그렇게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일단 제 노래 제목이고.(웃음) 나이가 드니까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인생이 참 짧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를 미워할 시간이 없어요. 날마다 사랑만 하고 살고 싶다, 그런 생각에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죠.

그런 생각을 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글쎄요. 순간순간 따지면 미워할 일이 많죠.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내 마음만 힘들지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미워하는지도 몰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내가 편해요.

데뷔하고 35년간 선생님 목소리는 한결같아요. 호소력이 짙고, 힘 있는 소리죠. 제가 처음부터 트로트를 불렀던 건 아니에요. 그룹사운드에서 외국 곡으로 시작했어요. 1983년 데뷔할 때까지 한국가요를 부른 적이 없었죠. 외국 노래만 7~8년 했으니까. 제 노래가 발라드가 가미된 록발라드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때 쌓았던 소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 시절이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은 이유가 뭘까요? 하고 싶은 음악을 실컷 할 수 있었던 것? 그게 엄청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하모니를 맞추고 완벽해질 때까지 몇 번이나 연습하고 그랬어요. 즐거운 시절이었죠. 그리고 실전 경험도 그때 많이 쌓았어요. 예전에는 나이트클럽 같은 무대에서 노래할 기회가 많았거든요.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돈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경험을 돈 벌면서 했어요. 그때 경험이 나에게 큰 자산이 됐죠.

또 선생님을 행복하게 하는 추억을 꺼낸다면요. 작년에 북한에 갔을 때도 참 행복했어요. 처음 북한에 간 게 1992년인데 그때는 다들 너무 굳어 있어서 어떻게 노래를 해야 할지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편안한 느낌을 받을 만큼 달라졌어요. 등장할 때 “와~” 하는 함성 소리도 들리고 웃는 얼굴도 보이고. 우리가 아직 정치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지만 음악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했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요.

1991년 연변 공연도 기억에 남아요. 그때 현지 사정으로 공연 시간이 저녁 7시에서 새벽 2시로 미뤄졌어요. 그런데 아무도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공연을 보고 가셨다는 거예요. 이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팬들이 사랑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듣고 보니 모두 팬들 앞에 섰을 때를 말씀하시네요. 35년 동안 팬들이 나 최진희라는 사람을 지켜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노래할 수 있었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팬들이 나를 지켜주고 가수 최진희라는 사람을 사랑해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팬들이 아니었으면 가수를 접고 다른 일을 하거나 집 안에서 살림하고 있었겠죠.

그만큼 선생님 노래에 위로받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요? (활짝 웃으며) 그러면 정말 좋죠. 가수에게 그만큼 좋은 말이 또 있나요. 늘 엄마, 아버지한테 감사해요. 좋은 목소리를 물려주셔서. 특히 우리 엄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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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딸, 남편 그리고 나, 최진희

‘엄마’라는 말을 뱉자마자 최진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의 어머니 국옥순 여사는 2009년 사랑스러운 딸의 곁을 떠났다. 엄마를 잃고 최진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든든한 울타리 같던 엄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가수에게 목소리를 앗아갈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엄마 소리만 나와도 눈물이 고이시네. 아직도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기 힘드세요? (한참 눈물을 닦고) 엄마가 나를 애기처럼 키웠어요. 그래서 그걸 잊지 못하나 봐요. 마음이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도 잘 안 돼요. 이래서 엄마 이야기는 하면 안 돼.

그럼 딸 이야기를 할까요? 딸에게 어떤 엄마이신가요? 저는 딸 같은 엄마고, 딸이 엄마 같아요.(웃음)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요. 딸이 있어 참 든든해요. 지금도 그런데 얘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자기가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많이 의지하셨겠어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싶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우울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딸이 참 의지돼요. 내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이기도 하고. 어젯밤에도 딸이랑 한 시간 넘게 통화했어요. 마지막에 끊으려고 하니까 얘가 “엄마 내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마워” 그러더라고요. 사랑한다는 말도 잘해요. 엄마한테 다정하고 잘해요. 우리 딸이.

남편을 힘들 때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경제적으로도, 마음도 정말 힘들었어요. 그 사람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지요. 그래서 확 빠져들었나 봐요. 사랑의 타이밍이었어요. 우리 남편이 키가 크고 다리도 길어요. 그래서 내걸음으로 못 따라가. 한 번도 같이 걸어간 적 없어. 걸어가는 뒷모습이 참 멋있었어요. 백마 탄 왕자님이 걸어간다 싶을 만큼. 나를 많이 사랑해줬어요. 그때는 ‘똥’도 버리기 아깝다 그랬으니까. 근데 살아보니 똑같아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웃음)

그럼 이제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신가. 지금은 아니에요.(하하) 좋은 사람이에요, 우리 남편. 경제적으로 날 힘들게 한 적이 없어요. 부부 사이에 그 문제로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을 봐도 그렇고. 난 지금까지 돈 가지고 힘들어보거나 돈 때문에 싸운 적이 없어요. 사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면에서는 철저해요. 여전히 날 지켜주려고 노력해요. 그 사람은 내가 없으면 못 산대요. 그런데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한 번씩 소리를 질러.(웃음)

주변 사람들 말고 최진희는 어떤 사람인가요? 우리 남편 말로는 내가 너무 감성적이고 여리대요.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가수 최진희로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꼬박꼬박 운동도 하고, 컨디션 관리도 해요.

35년을 한결같이 사랑받는 가수로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참 열심히 살았어요. 노래하면서 게을러서 펑크 내본 적이 없어요. 아, <열린음악회> 한 번 펑크 낸 적이 있네. 그날 방송 녹화가 세 건 있었는데 두 번째 녹화가 길어졌어요. 작가들이 붙잡고 놔주질 않는 바람에 결국 못 갔어요. 그 한 번 말고는 없어요. 일부러 마음먹고 한 건 아닌데 뒤돌아보니 그렇게 살았더라고요. ‘나 참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구나’ 싶어요. 패티김 선배님이 그런 말을 하셨어요. 패티김이라는 이름을 위해 김혜자는 완전히 희생했다고. 선배님 나이가 되진 않았지만 그 말에 동감해요. 나 역시 최진희라는 이름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니까.

가수 최진희 때문에 인간 최진희를 희생하신 거네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너무 열심히 살았어. 화장을 안 한 날이 없을 정도로 일했어요. 그게 힘들어, 싫어. 엄마 돌아가시고 2년 동안 말을 못 했을 때 빼고 한 30년 넘게 하루도 안 쉬고 일했어요.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어요.

어떻게 쉬지 않고 일하셨어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 때는 그렇게 안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내가 가장으로 살기도 했지만. 돈 안 벌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이제 그렇게까지 안 하려고요. 힐링도 하고 내 시간도 갖고 노래도 하고 적당히 분배를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너무 열심히 살지 마요. 적당히 열심히 살아야지. 난 우리 딸도 그렇게 살았음 좋겠어요.

그렇게 열심히 사셨는데 스스로에게 칭찬 좀 해주셔야겠어요. 낯간지러운데.(웃음) ‘정말 잘했다. 최진희 열심히 살았다.’ 그런 생각은 해요. 잠이 안 오는 날이면 이제 나를 위해 살자, 인간 최진희를 사랑하자는 다짐을 많이 해요.

이제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사랑해야 할 시간이 왔나봐요. 이제 사랑할 시간 있어요, 나는. 적당히 조절하면서 일하고 나를 위해 살아야죠. 가족들이랑 여행도 좀 다니고요. 요즘 날이 참 좋잖아요. 이번에 콘서트 끝나고 여행을 좀 다녀올까 봐. 그래, 진짜 그래야겠어요.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내야겠어요. 스스로한테 수고했다, 고맙다, 잘했다 격려도 해주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남은 시간 그렇게 사랑만 하고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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