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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술가! 예술과 함께라서 인생이 아름답다[1] 솔비

part 1 예술이 있어 아름다운 인생

2019-11-20 01:49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조지철, 엠에이피크루, 셔터스톡, 스완스발레단, 송파뮤즈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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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계절 가을이다. 하늘은 유독 파랗고 거리는 온통 그림 같은 계절이 왔다. 이런 계절에는 괜스레 음악도 찾아 듣고 노트 한 귀퉁이에 그림도 끄적거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인간에게 예술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존재라고들 말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슴속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던 경험을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예술이 준 경험을 토대로 인생이 아름다워진 사람들을 만나 예술이 전해준 마법 같은 변화를 들어봤다. 가수 솔비에서 ‘아트테이너’가 된 권지안 작가를 비롯해 발레, 오케스트라, 팝아트 그리기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났다. 20대에서 50대까지 주부들이 요즘 어떤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작가 권지안×가수 솔비
음악, 미술, 춤이 만든 새로운 자아

예술로 인생이 달라진 사람을 논할 때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있을까. 가수에서 작가로 활동 영역을 확장한 솔비, 아니 권지안 작가다. 익숙한 얼굴에 아트테이너라는 낯선 수식어를 단 그를 만났다.

음악이 흐르는 공간 바닥에는 커다란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 캔버스 위로 선명한 물감이 흩뿌려진다. 캔버스 위를 지나는 건 붓이 아니고 사람이다. 손발에 물감을 잔뜩 묻힌 작가가 댄서와 함께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춘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가슴에 멍이 드는 과정이 <하이퍼리즘> 시리즈 ‘바이올렛’으로 완성된다. 음악과 춤, 물감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작업 형태가 특이한 <하이퍼리즘> ‘바이올렛’의 작가는 권지안이다. 아니, 권지안과 솔비다. 음악 하는 솔비와 미술 하는 권지안이 협업한 ‘셀프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다. 권지안도 솔비고, 솔비도 권지안인데 무슨 뜻일까.

“한 사람이 가진 여러 자아를 모으는 작업이에요. 셀프 컬래버레이션을 하게 된 건 분리된 자아끼리 묶을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우리 모두 어디에,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잖아요. 그 다른 모습이 만나는 지점이 없어서 다들 우울하게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작업을 하면서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다는 거예요. 퍼포먼스를 할 때는 권지안도 솔비도 아닌 또 다른 자아가 나왔어요. 확실한 건 평소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아이라는 거예요.”
 

자유를 다시 안겨준 그림

현대에는 예술에 경계가 없다고 말한다. 예술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음악, 춤, 퍼포먼스, 그걸 기록하는 회화까지, 여러 가지 레이어드 사이에 작가가 서 있다. 이 다양한 레이어드를 권지안이라는 매개체가 엮어서 표현하는 게 ‘셀프컬래버레이션’이고 권 작가가 하고 있는 작업이다. “현대예술이 나에게 철학이자 기준”이라고 말하는 그가 이런 작업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 작가는 스스로 솔직하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감도 똑같이 솔직하고 예민했다. 물감을 만지면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비슷한 성질끼리 만나니 터지는 에너지가 남달랐다. 권 작가는 제어할 수 없이 솔직하고 예민해서 물감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처음 작업했던 6개월은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그래도 놓을 수 없었다. 물감을 만질 때마다 느끼는 짜릿함이 좋았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연예계 생활로 상처가 많았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오해를 받고 루머 때문에 고통 받았다. 솔비라는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는 불분명했다. 경찰에 의뢰해 루머 유포자를 잡았지만 그들을 정말 평범했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다. 악성 루머나 악플 때문에 상처 받은 그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선처하길 원했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뤘는데 그 일로 정체성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이미지로 살던 솔비는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자유로워졌다. 시작은 취미였지만 점점 빠져드니 그림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때 지금 권 작가가 소속된 창작그룹 엠에이피크루 이정권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가나아트센터에서 총괄을 지냈다.

“대표님과 저는 대화를 정말 많이 했어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같은 걸 많이 물었어요. 어느 날 저한테 2년간 방송 안 하고 그림만 그릴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바로 할 수 있다, 그림에 빠져서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그림과 삶을 연결시켜보라는 숙제를 줬어요. 그림에 삶이 녹아 있어야 한다고. 그때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가사를 쓰다가 생각이 났어요. 음악을 그려야겠다고. 대표님도 그거 좋다, 해보자 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죠.”

셀프컬래버레이션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5년 <트레이스>부터 음악과 춤, 회화를 결합해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쏟았다. 2016년 발표한 <블랙스완>까지 작가로서 자아를 찾는 실험을 했다. 그해 열린 2016 ‘청주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직지’는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권 작가는 정보를 확산하는 데 쓰인 직지가 현대의 SNS와 맞닿아 있다는 데 착안해 ‘솔비가 결혼한다’는 루머를 스스로 만들었다. 본인의 SNS에 결혼을 암시하는 사진 몇 장을 올리고 가십과 루머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실험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한 그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시작했다.

2017년부터 발표한 <하이퍼리즘> 시리즈다. 하이퍼리즘은 권 작가가 만든 신조어다. 정보와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는 사람의 욕망도 커지고 기대치도 높아진다.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이라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런 시대적 현상을 하이퍼리즘이라는 말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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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6월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권지안 작가의 개인전 <리얼리얼리티>. 권지안 작가가 <하이퍼리즘>시리즈 ‘레드’앞에 섰다.
2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9 파리 뉘 블랑쉬’ 축제에 참가한 권지안 작가가 파리 스트리트 드림 갤러리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
3 ‘파리 뉘 블랑쉬’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권지안 작가.

권지안과 솔비를 잇는 셀프컬래버레이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하이퍼리즘 시리즈는 ‘레드’, ‘블루’, ‘바이올렛’으로 이어진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레드’는 상대적 약자로 상처 받는 여성의 삶을 표현했다. 권 작가 역시 여성으로서 겪었던 아픔이 있는지라 작업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토해내듯 ‘레드’를 완성하고 1년을 멍하게 살았다.

“‘레드’ 작업을 마치고 나니 속이 뻥 뚫린 느낌이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동안 작품을 못 봤어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는 게 엄청 많이 곪아 있었구나 싶었어요. 그림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작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내 것을 드러내야만 작품이 나오니까요. 그 고통이 담긴 게 순수 예술이고 감내하는 게 작가 아닐까요? 그래도 지금은 그 고통을 즐기는 방법을 아주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직 모자라지만 절제했던 본능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법을 익히고 있어요.”

‘레드’로 겪었던 창작의 성장통을 지나 ‘블루’는 계급사회의 부당성과 사회계층의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블루’ 작업을 마치고 다음 퍼포먼스를 준비할 때는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업한 결과물이 하이퍼리즘 시리즈의 마지막 ‘바이올렛’이다. 인간 최초의 사랑과 원죄를 표현한 ‘바이올렛’은 그들이 하늘에서 춤을 춘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퍼포먼스를 펼친다.

지금껏 했던 작업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9 파리 뉘 블랑쉬’에 참가했다. 2002년부터 시작된 현대미술축제인 파리 뉘 블랑쉬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 아티스트 30명이 참가한다. 올해 참가한 한국 작가는 권 작가가 유일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한국 작가는 권 작가를 비롯해 김수자, 최정화 작가까지 딱 세 명뿐이다.

파리는 그의 퍼포먼스를 신선하게 바라봤다. 물감을 뒤집어쓰고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인상파 그림이 생각난다는 평을 들었단다. 지금 인상파 그림은 클래식에 멈춰 있지만, 현 시점에서 인상파의 그림이 다시 그려지는 느낌이라는 평이었다.

파리에 다녀오자마자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개막식에서도 퍼포먼스를 펼쳤다. 연예인 솔비를 알아본 사람들이 솔비가 뭘 하는 건가 싶어 삼삼오오 모여들다가 같이 작품에 빠져들었다. 무엇을 표현하려고 저런 퍼포먼스를 하는지 고민하는 관객의 모습을 보면 작가로서 행복감을 느낀다.

“퍼포먼스를 보일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오로지 퍼포먼스에만 집중해서 다른 건 잘 보이지도 않죠. 제가 하는 퍼포먼스가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 계획 아래 이뤄지는 것이거든요. 캔버스 크기, 물감의 색과 퍼포먼스까지 정한 다음에 그 정해진 틀 안에서 무의식에 맡기는 거죠. 그다음 관객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이 참 떨려요. 내 안에 있는 모든 걸 꺼내놔서 그런지 발가벗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다고 평가를 두려워하진 않아요. 그건 적어도 예술에 대해 말하는 거지, 나라는 사람을 욕하는 게 아니잖아요. 예술가는 어쨌든 화두를 던져야 하는 사람인데 제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건 좋죠. 그런 게 참 재밌어요.”

결과물을 통해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것도 좋다. 작업을 할 때마다 권지안이라는 사람 안에 숨어 있던 새로움을 찾는다. 권지안이라는 사람은 아직 미완성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완성된 인생이 행복하다고 보지 않는다. 미완성이라 인생이 아름답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손을 떠났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작품에 오라를 더하는 시대와 사회의 시각을 만나야 한다. 어렸을 때 의미도 모른 채 들었던 노래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이해되듯이.

다가오는 11월이면 권 작가는 새 앨범을 낸다. 솔비는 대중가수이기 때문에 여전히 음악을 한다. 권지안은 작가이기 때문에 미술을 한다. 선을 지운 두 자아는 함께 비엔날레에도, 현대미술축제에도 서고 <뮤직뱅크>에도 설 수 있다. 이 벽을 허무는 과정이 재밌다.

“요즘은 나이를 먹는 게 너무 아쉬워요. 늙기 싫어서가 아니라 에너지가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서요. 나이 먹으면 나이 먹은 대로 연륜이 배겠죠. 하지만 뿜어나오는 에너지 양이 적어지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요. 제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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