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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귀농귀촌 가이드 1]축제·사업 추진으로 주민 화합과 마을 개발에 성공한 안충선씨

2019-09-16 15:23

글 : 전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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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 영월군 무릉도원면 운학1리에 흥겨운 마을 축제가 열린다. 주민들이 1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선보이는 사물놀이, 라인댄스 공연에 주민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연출하는 패션쇼까지 펼쳐진다. 오가다 들르는 외지인까지 팔 벌려 환영하는 이 행사의 이름은 ‘삼돌이 축제’다. 박힌 돌(원주민), 굴러온 돌(귀농귀촌인), 굴러올 돌(예비 귀농귀촌인)을 합친 ‘삼돌이’들이 마을 화합을 도모하는 축제라는 뜻이다. 이 축제가 화제를 모으면서 운학1리는 ‘운학삼돌이마을’이라면 이름도 갖게 되었다. 이 흥겹고 기발한 축제를 기획한 사람은 운학1리 이장 안충선(62)씨. 흥미롭게도 안충선씨 자신도 굴러온 돌이다.
귀촌인으로 운학1리 이장이 된 안충선씨는 마을 축제 개최와 다양한 사업 추진으로 운학1리를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고 있다. 사진은 마을 사업장 ‘행복꿈터’를 소개하는 안충선씨.

-영월군에 정착하기 전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나?
“경기도 수원시가 고향이다. 부모님이 하시는 정미업을 물려받아 30여 년 동안 했다. 수원서 나서 자라 52년 동안 수원을 떠나지 못했다.”

-귀농귀촌을 결심한 계기는?
“도시에서 사업하고 살면서 언젠가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아토피와 비염에 걸렸고 증세가 심해 그동안 마음속 간직했던 귀농귀촌을 실천하기로 했다.”

-어떻게 영월군 운학1리를 찾게 됐나?
“여러 지역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월군 운학1리에 놀러와 마을 주민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주민들이 정말 선량해서 이런 분들 곁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터도 정말 좋았다. 놀러 온 후 두 달 만에 이곳의 해발 530m 지역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지었다. 그게 2008년이니 이곳에서 산지 11년 됐다.”

-귀촌 초기에는 어떤 일을 했나?
“도시에서 살 때 사업만 열심히 해 취미생활 등 나를 위한 시간을 누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귀촌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취미생활만 하려 했다. 농사지을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운학1리에 살다보니 적잖이 불편했다. 마을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열악했다. 이왕 내가 살기로 결심한 지역이니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을 개발위원이 되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지인인데 마을 사업에 참여하기 힘들지 않았나?
“처음에는 힘들 수밖에 없었지만 열심히 했다. 그런데 내가 마을 개발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마을 총무로 일하는 이웃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만두었다. 본의 아니게 그 이웃 후임으로 마을 총무가 되어 마을 재무 상태를 관리하고 책임지게 됐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귀촌하고 2년 뒤인 2010년 일이다. 마을 총무가 된 후 매일 마을을 둘러보며 주민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래도 마을 이장까지 되는 건 힘들었을 텐데?
“2013년 경 박동희 운학1리 이장님이 적극 추천해 성사됐다. 그 때만해도 “칠삭둥이가 이장을 하더라도 외지에서 온 사람은 절대로 이장하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박 이장님의 의지가 컸다. 마을이 성장하려면 원주민과 외지인 상관없이 진취적인 사람이 이장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박 이장님은 많은 수모를 겪으면서 자신의 의지를 알렸고, 나 역시 “나를 믿어 달라, 이장이 되고 1년 후 변한 것이 없으면 물러나겠다”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이장이 된 후 무엇보다 마을 환경 개선에 신경 썼다. 마을 곳곳에 있는 쓰레기들을 치우고 공원화했다. 환경이 정비되면서 주민들이 믿어주기 시작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주민들이 함께 움직이며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후 어떤 마을 사업을 추진했나?
“주민 간 단합을 도모하는 사업부터 신경 썼다.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의 마인드를 새롭게 바꿨다. 갈등 해소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다양한 동아리 결성은 주민 단합에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성인을 위한 뜨개질, 라인댄스, 컴퓨터, 사물놀이 동아리가 있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 동아리 ‘구름아이들’도 있다. 마을 이정표 등을 직접 만드는 ‘서각 동아리’까지 총 6개가 활동한다. 주민 간 화합을 도모하는 사업 이후에는 마을 소득을 창출하는 사업에 돌입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마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업을 추진하는 거 같다. 6년 전부터 하고 있는 부녀회 중심의 마을 먹을거리 장터 운영이 주목할 만하다. 원래 정미소였던 자리에서 열고 있어 ‘정&미소’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마을 사업비가 많은데 우리 마을의 경우 2015~2019년에 총 24억원을 지원받거나 지원받을 예정이다. 운학1리는 2014년에 농협의 ‘팜스테이’ 마을, 2015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받았다. 이후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폐교된 운학분교를 사들여 ‘행복꿈터’라는 마을 사업장을 만들었다. 학교 내에는 아이들의 세미나장과 식당으로 구성된 ‘주민공동문화시설’도 만들었고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운동장에는 오토캠핑장을 조성해 운영한다. 주민들이 함께 일구는 아로니아 밭도 조성한다. 마을 행사인 ‘삼돌이 축제’도 우리 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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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철 운학1리 마을 부녀회 중심으로 운영하는 먹을거리 장터 ‘정&미소’.


-삼돌이 축제란 무엇인가
“2014년에 우리 마을이 주민 화합이 잘 되고 있다며 강원도에서 귀농귀촌인 단합 대회의 성격을 띤 잔치를 해보라 권했다. 행사 이름을 고민하다 원주민은 박힌 돌, 귀농귀촌인은 굴러온 돌, 예비 귀농귀촌인은 굴러올 돌이라 해서 삼돌이 축제라고 이름 붙여봤다. 매년 10월 둘째 주 금요일에 개최하는 데, 마을 잔치에서 시작해 강원도 지원을 받는 축제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우리 마을과 자매결연 맺은 LG유플러스, 농협도 함께 참가해 성황리에 개최했다. 주민 간의 화합 외에도 귀농귀촌인을 유치하는 효과도 거뒀다.”

-축제 참가 후 운학1리에 이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인가?
“운학1리에 별장을 가진 사람들이 10여 명 있다. 지난해 그 사람들 중 3명이 삼돌이 축제에 와서 행사를 즐긴 후 아예 거주지 주소를 이전했다. 축제를 통해 3가구가 이주한 것이다. 이밖에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 ‘운학1리 귀농귀촌센터’를 짓고 있다. 작년에 지원받은 마을 사업비로 17평 규모 2체와 21평 규모 1체의 거주 시설을 짓는 것이다. 일정 심사를 통과한 예비 귀농귀촌인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줄 계획이다. 마을이 성장하려면 젊은 귀농귀촌인이 많이 이주해야 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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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가을 운학1리에서 개최되는 ‘삼돌이 축제’.


-영월군에 살아보니 어떤 점이 좋은가?

“좋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 인연을 맺고 있다. 이웃 주민들뿐만 아니라 군청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 만나면 “당신이 나의 재산이다. 오늘 당신을 만나 내 재산 더 늘었다”고 말한다. 영월군에 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내년 봄, 지금 추진하는 마을 소득 사업이 본격 운영되면 주민들이 더 바빠질 것이다. 앞으로 인근의 마을 서너 개와 함께하는 마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비도 50억원 정도로 규모를 늘릴 것이다.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도 같이 발전해야 한다.”   


안충선씨의 귀농귀촌 성공 3계명


첫째_ 주민들과 ‘정’으로 소통해라
귀농귀촌 과정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갈 ‘이웃’을 만드는 일이다. 원주민들과의 화합과 교류가 중요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마음으로 대하지 말고 먼저 베풀려는 마음으로 대하라. 진심을 보이고 정으로 소통하면 주변에 정다운 이웃이 자연스레 늘게 된다. 

둘째_ 배우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함께 움직여라
배우자는 귀농귀촌의 소중한 파트너다. 귀농귀촌 과정에서 많은 일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때 배우자와의 논의가 많은 힘이 된다. 배우자를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일들을 함께 결정하라.

셋째_ 귀농귀촌 할 지역의 미래를 원주민들과 공유하라
귀농귀촌 할 지역에는 마을 사업의 다양한 과제가 있기 마련이다. 마을 사업을 추진할 때는 사업의 당위성과 미래를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가령 운학1리에는 중학교 1학년생 이하의 아이들이 8명이 있다. 비록 소수라 해도 이들에게 ‘너희들이 미래 우리 마을의 주인공’이라 말하며 마을의 미래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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