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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북엇국

서갑원 전 신한대학교 총장의 북엇국에 담긴 인생철학

2019-09-11 12:57

진행 : 강부연 기자  |  정리 : 장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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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싫다고 하신 자장면, 주머니가 가벼울 때 배를 든든히 채웠던 라면. 두 가지 음식 모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울푸드’다. 하지만 서갑원 전 신한대학교 총장의 소울푸드는 따로 있다. 바로 인생의 기로에 서있던 때마다 먹었던 북엇국이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났을 때, 고국을 떠나 홀로 유학생활을 할 때도 어김없이 북엇국을 끓여 먹었다. 정치에서 한걸음 물러나 교육자로 지낸 그가 오랜만에 다시 북엇국을 끓였다. 무슨 사연이 그를 다시 불 앞에 세웠을까.

사진 안규림
북엇국을 끓이려면 꼭 필요한 재료가 있다. 국물 맛을 내는 국 간장, 무, 파를 비롯해 기호에 따라 달걀물, 청양고추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게 갖춰줘도 북어가 없으면 북엇국을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서 전 총장이 선 조리대 앞에는 북어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그에게 물으니 아직 재료 준비가 덜 됐단다. 조금 뒤 누군가 빠진 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그 안에는 북어가 아닌 낯익은 종이상자가 들어있었다. 인스턴트 북엇국 상자였다.

“자, 이게 제 요리의 핵심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쉽게 북엇국을 끓일 수 있어요. 물이 팔팔 끓으면 블록스프를 넣으면 돼요. 참 쉽죠?(하하)”

서 총장을 제외한 사람들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 요리(?)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그가 무를 썰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대파였다. 썰어놓은 채소를 뚝배기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맛을 보더니 국 간장을 살짝 넣었다. 국자로 휘적휘적 뚝배기를 저은 다음 불을 끄고 참기름을 넣었다. 열기가 그대로 남은 뚝배기는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었다. 그리고 조심조심 국그릇에 내용물을 옮겨 담더니 새 숟가락을 기자에게 건넸다. 맛 한번 보라며. 인스턴트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나 싶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국물 맛을 봤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맛이 났다. 시원한 국물 맛 뒤로 조미료의 감칠맛이 미각을 깨웠다. 손이 가는 맛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죠? 인스턴트만 쓰면 이런 맛이 안나요. 다른 재료를 더 넣으면 훨씬 맛이 풍부하고 깊어져요. 제가 고향이 전라도라 미식가인 편인데 요리 실력은 그저 그래요. 그래서 어떡하면 혼자서도 맛있는 북엇국을 만들 수 있을까하다가 생각한 방법이죠. 쉽고 빠르고 실용적인데 맛있어요. 저에게 딱 맞는 요리 방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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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쌀과 북엇국

서 전 총장의 인스턴트 요리 예찬은 계속 이어졌다. 인스턴트 요리의 기본인 카레부터 시작해 레트로트 갈비탕, 소고기뭇국을 맛있게 먹는 법을 설명했다. 그의 요리 비결은 인스턴트 음식에 재료를 더하는 것이다. 어설퍼 보이지만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맛을 내려는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그의 북엇국 솜씨만 보면 무딘 미각을 가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꽤나 미식가다. 음식에 대한 철학도 북엇국 끓이는 법처럼 간단하다. 맛없는 음식은 두 번 먹지 않는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우는 것만큼 속상한 게 없어서다. 대쪽 같은 음식철칙에 위기가 찾아왔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서 전 총장은 어릴 때부터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랐다. 하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한 음식은 구경하기 어려웠다. 요리에 능숙하지 않은 스무 살 청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밥 짓기 뿐이었다. 다행이 부모님이 맛있는 순천만 쌀을 보내주었고 그걸로 연탄불에 밥을 지어먹었다. 좋은 쌀로 지은 밥은 때깔부터 다르다. 투명한 막이 덮은 듯 보이는 쌀밥은 마치 젓가락도 미끄러질 것 같은 윤기가 흐른다. 달큰한 밥 냄새는 또 어떤가. 냄새만 맡아도 자동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뜨거운 김이 나는 쌀밥을 호호 불어서 씹으면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맛있는 쌀밥만 있으니 반찬이 따로 필요 없다. 그때부터 밥 짓기에 정성을 들였다. 집에서 보내준 쌀이 떨어지면 쌀집에 가서 가장 비싼 쌀을 샀다. 좋은 쌀로 고실고실 지은 밥만 있으면 학생식당에서 나오는 부실한 반찬도 먹을 만했다. 그때부터 서 전 총장의 음식에 대한 원칙이 하나 더 생겼다. 맛없는 음식은 먹지 않고 좋은 쌀로 밥을 짓는 곳에서 밥을 먹겠다고. 이후론 묵은 쌀로 밥을 짓는 집은 가지 않으려한다.

좋은 쌀에 대한 집념은 중국 유학시절에도 이어졌다. 중국 유학시절은 그에게 아픈 기억이다.  국회의원에서 물러나 실의에 빠졌을 때 북경대로 유학을 갔다. 고국을 떠나 홀로 타지에서 생활할 때 외로운 시간을 채워준 게 요리였다. 맛있는 밥과 국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 때 그의 끼니를 책임졌던 게 하얼빈 쌀과 북엇국이다. 하얼빈 쌀은 중국 쌀 중에서 비싼 축에 속한다. 일반 중국 쌀로 지은 밥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처럼 건조하다. 반면에 하얼빈 쌀로 밥을 지으면 찰진 밥이 된다. 하얼빈 쌀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북엇국은 가장 궁합이 좋은 음식이었다. 한국 식품점에서 북어와 참기름 등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북엇국 맛을 떠올리며 찬찬히 요리를 했다. 물에 불린 북어를 참기름에 덖은 다음 물을 붓고 각종 채소와 국 간장으로 맛을 냈다. 비록 어머니 솜씨만큼 훌륭하지 않지만 제법 맛을 낸 북엇국은 배를 채울 뿐 아니라 심리적 허기도 달랬다. 북경의 매서운 겨울바람도 한 달에 한번 한국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뜨끈한 북엇국 한 그릇이면 견딜 수 있었다.

할 줄 아는 음식이 생기니 요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여자보다 남자가 주방에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중국 분위기도 한몫했다. 특별히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만들어 먹으니 재미도 있었다. 국회의원에 물러나면서 생긴 스트레스도 차츰 사라졌다. 요리를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치과의사로 일하는 아내는 집에 오면 식구들을 위해 저녁상을 차린다. 그 일이 얼마나 고되고 수고로운 일인지 결혼한 지 십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집사람과 연애할 때만 해도 변변한 직업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프로포즈를 하니 탐탁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결혼만 해주면 밥 먹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밥만 먹고 살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과일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어요. 결혼 후 정치하면서 집을 잘 돌보지 못했어요. 아내에게 과일을 사다주긴 해도 직접 요리한 적은 없더라고요. 미안했죠.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 맘도 모르면서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읽겠나 싶기도 하고. 요즘은 아내를 위해 가끔씩 북엇국을 끓여줍니다. 집사람이 좋아하냐고요? 물어본 적 없는데 오늘 들어가서 한번 물어 봐야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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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둘러 앉아 오순도순

요리를 하면서 아내 맘을 헤아리게 됐다니 테스트가 필요했다. 요즘 그의 아내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입시를 앞둔 아들”이라고 답했다.

“제가 다시 국회에 돌아가면 '고3 갑질 금지법'을 만들고 싶을 만큼 유세가 보통이 아니에요. 아이도 힘들겠지만 집사람이 스트레스 때문에 쓰러질 지경이에요. 저도 집에 들어가면 집사람과 아들 눈치를 봐야할 정도에요. 원래 오늘 인터뷰도 저희 집에서 하려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허락을 못 받았어요.(웃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게 아이의 잘못은 아니죠.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그만큼 입시 스트레스가 크다는 반증입니다. 제가 대학교 총장을 하다 보니 대학 입시가 문제가 아니라 취직이 더 큰 문제였어요. 지금 고등학생들은 대학교 정원보다 졸업생 수가 적어서 얼마든지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입시스트레스가 줄지 않는 이유는 가고 싶은 직장, 안정된 직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죠. 국회에 다시 돌아간다면 산업자원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이나 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지원해 구체적인 법안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서 전 총장은 우스갯소리로 꺼낸 ‘고3갑질금지법’을 시작으로 노동시장 문제해결, 양육비 이행관리원 문제 등 정치를 벗어난 동안 구상해 둔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냈다. 그는 이미 존재하지만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정책을 제대로 운영하는 방법을 찾는데 관심을 보였다. 그 중 하나가 ‘양육비이행관리원’이다. 이혼 등의 사유로 아이의 양육권을 맡은 한부모를 대신해 정부가 다른 한쪽에게 양육비를 받아 주기 위해 설립됐다. 출범한지 4년이 넘었지만 서울에만 지부가 있고 운영 인원이 적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서 전 총장은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전국 광역 단위로 확대하고 변호사를 위촉하는 등 추가적인 방법을 동원해 제도가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그가 인스턴트 북엇국에 다른 재료를 첨가해 맛을 낸 것처럼 말이다.

그는 양육비이행관리원 외에도 복지제도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만 18세가 될 때까지 아이 몫의 수당과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 독일의 복지정책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년 우리 정부 예산이 500조로 책정됐습니다. 전보다 예산 규모가 커서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 예산은 다 국민이 잘 살기 위해 쓰이는 거예요. 정부 예산을 기업경영의 시선으로 봐선 안 됩니다. 이윤을 남기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끔 하는 게 정부예산이 존재하는 이유에요. 우리는 그동안 경제개발에만 치중해 제대로 된 복지제도를 갖추지 못했어요. 아마 우리나라처럼 국민에게 해준 게 없는 나라도 드물 겁니다.  복지제도가 이제 얼추 틀을 갖췄지만 더 촘촘하게 제도를 구축해야한다고 봐요. 사회 전반에 인프라를 구축해 국민이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복지 제도가 제대로 갖춰줘야 국민이 원하는 저녁이 있는 삶도 가능해지겠죠. 가족이 둘러 앉아 편하게 식사하고 오순도순 대화하는 것이 당연한 대한민국, 제가 그리는 우리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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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소  ( 2019-09-18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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