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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의사 후배 & 후배 치료한 선배 의사

2019-08-14 09:17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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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1년 차는 막 의사가 되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시기다. 박경희 교수는 만 스물여섯에 레지던트 1년 차가 됐다. 밤낮없이 환자를 보고 논문을 뒤적이며 공부하던 때 유방암 3기 선고를 받았다. 의사에서 환자로 순식간에 입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장소 프츠커피 원서점(02-747-8101)
차분하고 밝았다. 병원은 월요일 아침이 제일 바쁘다며 인사를 건네는 박경희(세브란스병원 알레르기내과 조교수) 교수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환했다. 박 교수가 조곤조곤한 말씨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이수현(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파란 수술복에 의사 가운을 걸치고 목에는 청진기를 둘렀다. 때아닌 의사 선생님의 등장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힘 있는 목소리로 막힘없이 대답하는 이 교수는 목소리만큼이나 대답도 시원시원했다. 성격은 달랐지만 똑같은 커트머리에 흰 가운을 입은 탓인지 자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두 사람은 연세대 의대 선후배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 교수가 박 교수보다 4년 먼저 입학했지만 나이는 10살 더 많았다. 같은 학교를 졸업해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생이 암이란다. 그것도 유방암 3기라니. 슬프고 안타까웠다. 스물여섯밖에 안 된 동생이 치료를 받는 내내 얼마나 갑갑하고 속상할까 싶었다. 그래서 좀 다른 처방전을 내렸다. 매일 일기를 쓸 것. 하루 동안 느낀 감정, 그날 받았던 치료를 기록하라고 시켰다.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애한테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얼마나 나쁜지는 제가 잘 아니까요. 어쭙잖은 위로 대신 경희의 버팀목을 만들어야 했어요. 그래서 일기를 쓰라고 한 거죠. 자기 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안 할 수도 있는데 잘 쓰더라고요.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랬나.(웃음) 그 기록이 책의 초고가 된 셈이죠.”

두 사람이 함께 쓴 책 <유방암, 굿바이>는 박 교수가 유방암을 치료하며 쓴 투병기와 이 교수가 쓴 유방암에 대한 지식이 한데 어우러진 ‘유방암 교과서’다. 이들의 두 번째 책이다.
 

가운을 벗고 환자복을 입은 의사

2010년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라는 제목으로 낸 첫 책은 유방암 환자 커뮤니티에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힐 만큼 인기였다. 의사가 아닌 같은 병을 앓는 환자가 쓴 책은 유방암 환자들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일찍 절판되는 바람에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환자 가족들끼리 책을 빌려 보거나 복사해서 돌려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언젠가 책을 한 번 더 내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그러다 박 교수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지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책을 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 박 교수는 유방암 중 예후가 가장 나쁜 ‘삼중 음성 유방암’에 ‘3기’였다. 만 스물여섯인 3기 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50%. 살 수 있는 확률은 딱 절반이다. 병기도 안 좋고 세포도 나빠서 치료를 하더라도 재발할 위험이 높았다. 서른도 되기 전에 죽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박경희 교수는 암 진단을 받자마자 병가를 내고 1년 동안 치료에 매달렸다. 암세포가 있는 한쪽 유방을 떼어내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꾸준히 병행했다. 박 교수가 치료를 받는 동안 이 교수는 살뜰히 동생을 챙겼다. 병원생활이 바빠 잘 시간이 부족할 텐데도 신촌에서 분당까지 찾아와서 몸 상태를 체크했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수술로 사라진 한쪽 가슴을 누가 알아차릴까 봐 어깨를 움츠리고 다녔다. 바깥에 나갈 때면 혹여나 균에 감염될까 더운 날씨에도 꼭 마스크를 썼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긍정적으로 생활했다. 투병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건강해지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생존확률도 신경 쓰지 않았다. 50%라는 숫자도 과거의 숫자일 뿐 의학은 쉬지 않고 발전하고 있으며 생존율도 같이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외출도 자주 했다. 병원에만 있느라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났다. 서른이나 마흔쯤은 되어야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다니고 운동도 시작했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만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수업에 나갔다. 치료도 잘 받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까지. 의사라 그런지 환자로서도 모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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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들과 함께 맞은 유방암 10주년

박 교수는 병원에 복귀한 후에도 암의 잔재와 싸웠다.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열심히 운동하고 나름대로 건강을 챙기면서 살았다. 지난 5년간 얼마나 건강하게 살았는지 성적표를 받는 날이 다가왔다. 중증만료 검진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암환자라면 통과하길 간절하게 바라는 검사가 중증만료 검사다. 이 검사를 통과했다는 것은 이제 암세포가 몸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이 ‘통과했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드디어 암환자가 아니라 평범한 30대 여자가 됐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스물여섯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잘 버틴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박 교수가 꼽는 인생의 순간 중 하나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제 박 교수 몸에서 암세포는 사라졌지만 방사선치료가 남긴 후유증이 있다. 갑상선 기능이 떨어져서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고 림프부종이 생겨서 정기적으로 재활치료도 받고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고 있다. 그것 외에는 평범하다. 박 교수는 여전히 의사이고 결혼해 사랑스러운 아들도 낳았다. 한쪽뿐인 가슴에 다 담지 못할 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쪽 가슴만 갖고 아내, 엄마가 되다

박 교수의 지난 10년 중 임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임신은 병원과 암환자들 사이에서 큰 이슈였다. 박 교수가 임신을 알렸을 때는 치료 후 3년이 다 됐을 무렵이었다. 유방암은 치료가 끝나고 3~5년 사이에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도 좀 더 있다가 임신을 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엄마를 일찍 찾아왔다. 임신 기간에 암이 재발한다면 산모의 건강을 포기하든가 아이의 생명을 포기해야 할 만큼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다 이 교수는 어디선가 본 논문이 떠올랐다.

“제가 임신한 소식을 들은 다음 선배가 ‘Happy Mother Theory’라는 이론을 알려줬어요. 어디에 나온 논문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임신을 하면 행복 호르몬이 나와서 유방암이 재발할 위험이 줄어든다는 내용이었죠. 제가 이미 임신을 했으니까 마음 편히 지내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선배다운 축복이었어요.”

유방암 환자의 결혼과 임신, 출산까지 평범한 엄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복한 지난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누구보다 암 환자의 마음을 잘 아는 박 교수는 왜 암 전문의가 아닌 알레르기 전문의를 선택했는지. 박 교수는 “병원에 복귀할 때 저도 암 전문의가 되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암을 겪었으니까 환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복직할 때 종양내과를 선택했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병원에 입원하는 암환자는 치료 중 재발한 경우나 말기 암 환자가 여명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보는데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실 암이 재발할까 봐 복직도 어렵게 결정했거든요.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처음 암 진단을 받던 날이 떠오르고 재발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힘들었어요.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될 만큼 우울하고 불안했죠. 정신과 진료를 받았더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어요. 그때는 치료를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제 상황을 극복할 여력이 없었죠. 결국 전공을 바꾸기로 하고 알레르기내과를 선택했어요.”

중증만료 검사 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후인 3월쯤에 검사를 받았다. 방사능치료 후유증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한 덕에 정상수치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것이 박 교수가 만든 ‘해피엔딩’이다.

동생 경희가 훌륭히 치료를 받고 책을 쓰게끔 만든 이 교수는 지금 종양혈액내과에서 소화기내과를 담당하고 있다. 유방암 환자였던 박 교수가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쓴 것처럼 <한쪽 대장으로 살아가기>, <왼쪽 대장으로 살아가기> 같은 환자가 쓴 치료기도 책으로 내고 싶단다. 똑같은 병을 앓은 이가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가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의술이든 마음술이든 말이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들이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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