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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소년’ 원종건

“효자요?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에요”

2019-07-22 17:00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방송화면 캡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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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효자 소년’이라고 불렸다. 청력과 시력을 잃은 엄마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내던 소년 원종건은 대중의 뇌리에 박혀 오랜 시간 회자됐다. 공익 예능프로그램 <느낌표-눈을 떠요>(이하 ‘눈을 떠요’)의 그때 그 소년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웃을 때면 서글서글하게 휘는 눈매가 여전하다. 인사를 건네는 원종건의 얼굴에서 방송 당시 어린 소년이 겹쳐 보인다. 올해 스물일곱 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교복 값, 학비를 걱정하던 소년은 그사이 번듯한 외국계 대기업 직원이 되어 있었다. ‘참 잘 컸다’는 흔한 표현이 꼭 들어맞는 청년이다.

그의 엄마는 2005년 <눈을 떠요>를 통해 개안 수술을 지원받은 출연자다. 당시 시청각 장애를 안은 채 폐지를 수거해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모자의 사연은 대중의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열세 살에 불과한 아들이 엄마를 지키는 모습에 ‘효자 소년’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방송에서 엄마는 수술 직후 아들에게 “우리도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얘기했다. 그래서일까. 원종건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찾아주시는 게(인터뷰 요청) 부담스러운 적도 있었는데, 2016년 즈음부터 바뀌더라고요.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제 이야기가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해요.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는 회사에서 맡은 사회공헌 업무 외에도 전국을 돌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강연료가 지급되지 않아도 자비로 교통비를 충당하면서 이어오고 있다. 어렵던 시절 자신이 받은 것들에 대한 일종의 보답 차원이라고 했다.

“성인이 돼서 보육원에서 퇴소해야 하는 친구들을 위한 강연 요청이 들어온 적 있어요. 그것만 세 달을 준비했어요. 저는 어머니라도 계시지만 그 친구들은…. 특히 마음이 쓰여서 한참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무료 강의인데다 교통비를 제가 내도 괜찮아요. 평생 돈이 없어서인지(웃음) 돈 없는 게 낯설지 않거든요.”
 

학비 때문에 대학 진학 포기한 적도

개안 수술을 받은 엄마는 한쪽 시력을 회복했지만 가정형편이 달라지진 않았다. 기초생활수급비가 필요하던 터라 그는 곧장 취업할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일부러 입학했을 정도다.

“성인이 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끊기는 줄 알았어요. 근데 고등학생 때 만난 사회복지사 분이 대학생이 돼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공부를 시작했죠. 고 2때예요. 시각디자인을 공부해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붙은 대학도 있었는데.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충격을 받았어요. 등록금이… 취직을 선택했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그의 가정사가 언급됐다. 대화를 들은 사장은 그에게 “수능 때까지 매달 30만원을 줄 테니 일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했다. 동네 보습학원 선생님은 전용 공부방을 내줬다. 1년 가까이 공부에 매달린 끝에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 합격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방송을 만드는 일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는 것만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눈을 떠요> 피디가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았다면 제 가정사는 바뀌지 않았을 거예요.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바란 것 같아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엄지장갑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벙어리’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으로 부르자는 내용의 인식개선 프로젝트였다. 청각장애인 어머니를 둔 지라 ‘벙어리’라는 단어가 늘 마음에 걸렸다고. 목표 금액 300만원으로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은 총 2500만원이 모였고, 다수 언론이 이 프로젝트를 조명하며 ‘효자 소년’의 근황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가 실천해온 ‘좋은 일’의 배경엔 항상 엄마가 있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할 법도 하건만 아들이 너무 들떠 있진 않은지 신중하게 살피고 다독이는 엄마다.

“입사하자마자 10억짜리 예산 업무를 맡았어요. 1년 동안 예산 한도에서 소방공무원들에게 지원물품을 보내는 일이었어요. 10억, 얼마나 커요.(웃음)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했더니 대뜸 겨울이면 저희 집으로 지원되는 배추김치 이야기를 꺼내세요. 김치를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두 식구가 먹기엔 버거운 양이라 매번 음식물 쓰레기가 됐거든요. ‘봉사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받는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라’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라’고 조언하시더라고요.”

청각장애가 있어 취업이 어려운 엄마는 여전히 파지와 빈병을 주우러 다닌다. 다만 낮에는 노인들이 주울 수 있도록 꼭 새벽 시간에만 줍는다. 그렇게 7년 동안 ‘길’이라 이름 붙인 저금통에 돈을 모아 최근 노숙인 의료센터에 기부했다. 길에서 수거한 것들이 가져다준 돈이니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쓰고 싶어서였다.

“한번은 성과금을 받아서 드렸는데 근처 고깃집에서 독거노인 분들에게 한 턱 쏘시던걸요. 정말 통이 크신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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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MBC에서 방영된 <느낌표-눈을 떠요>의 한 장면

엄마에게 신장이식 계획

엄마는 그의 유일한 가족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심장에 구멍이 발견됐지만 경제적 여건상 치료 받을 수 없어 스웨덴으로 입양됐고,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시절 일자리를 잃고 데모하다 간경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는 또래보다 일찌감치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눈이 되고 귀가 돼야 했기 때문에 눈도 귀도 네 개씩 있는 것처럼 살아왔어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에요. 스스로 경험하고 깨우쳐야 할 때가 많았죠.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제 역할은 다양했고, 그래서 더 빨리 큰 게 아닐까.”

최근에는 엄마의 신장 상태가 부쩍 나빠진 탓에 그는 자신의 신장이식 가능 여부 확인을 기다리고 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얘기를 하면서도 그는 흔들림이 없다.

“전혀 고민 없이 결정했어요. (신장을) 드려도 상관없어요. 하나를 기증해도 나머지 하나가 커진대요. 무엇보다 엄마가 혼자 저를 키워오신 시간과 신장 하나는 비할 수도 없고요.”

“효자 소년답다”는 말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에이, 효자 아녜요. 일한답시고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오히려 많은 분이 저를 너무 ‘착한 아이’ ‘올바른 아이’로만 바라보셔서…. 저 클럽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웃음) 집에선 음악 프로그램을 보거나 이어폰을 꽂지 않아요. 자칫 어머니에겐 부러운 행위가 될까 봐서요. 대신 밖에선 크게 음악 들을 수 있는 곳을 찾아요. 클럽 얼마나 좋아요. 음악도 있고 술도 있고 이성도 있고. 저도 제 나이대 사람과 다를 바 없어요.(웃음)”

그와의 대화는 결국 ‘엄마’로 귀결됐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까지 출장 때문에 귀가를 못했는데, 엄마한테 연락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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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민  ( 2019-09-16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0
2005년 당시엔 학생 입장에서, 지금은 사회복지사 입장에서, 또 대한민국의 청년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여전히 그립고 반가운 얼굴, 이름, 또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