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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러스트레이터계의 거장 그림동화 작가 나가타 모에(永田萠)

2019-07-17 09:53

글 : 문선영 문선영  |  사진(제공) : 문선영 문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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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치고 그녀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이름을 모를 뿐. 올해 일흔을 맞은 나가타 모에는 여전히 ‘꽃과 요정’을 그린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을 위해서 말이다. 그녀의 그림이 곧 한국에서 다양하게 소개될 거란 얘기를 듣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소협조 일본 교토 히메지 시립미술관
“혹시 나가타 모에라는 일러스트 작가를 아세요?”

“아뇨, 모르는데요.”

“그럼 이 그림들은 본 적 있으세요?”

“아, 이거요? 잘 알죠. 학교 다닐 때 이런 그림의 책받침과 공책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데요. 지금 보니 반갑네요.”

그랬다.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일명 해적판으로 접했다. 불법 유통된 그림이 새겨진 책받침, 공책, 엽서, 필통, 책가방 등. 하지만 그림의 작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등 당시 일명 ‘책받침’ 여배우들 이름은 다 알면서 말이다. 그녀는 일본의 삽화작가로 유명한 나가타 모에다.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국의 동화작가 안젤라 송과 함께 <코코의 숲>을 펴내기도 했다.

영혼이 맑은 분이라 그런지 소녀 같으세요.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독자분들께 제 원화를 보여드린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전시회를 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제 그림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 그림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죠.

작품 활동도 여전히 왕성하게 하시지요? 사실 최근에는 그림과 차분히 마주할 시간을 가질 수 없었어요. 시간을 대부분 두 군데 시설의 관장직과 몇 개 위원회 업무 그리고 학교나 행정기관의 강연회 활동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두 개 시설 중 하나는 교토시 공립 육아지원종합센터입니다. 이곳은 학교에 가기 전인 유아의 육아 상담과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죠. 또 한 곳은 공립 히메지 시립미술관입니다.

전시회나 그림책 작품 활동을 전혀 못 하시나요? 그건 아니고요. 일본 아마미 오시마를 무대로 한 그림책을 최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남쪽 섬의 자연을 그리고 있죠. 7월 초에는 화랑에서 회화 개인전을 열기 위해 가능한 한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평소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른 제작 활동은 제게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2년에 한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림은 컬러 잉크의 투명하고 선명한 색감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잉크 컬러 대신 아크릴 물감으로 재료를 바꿨다고요? 컬러 잉크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을 시작한 스물여섯 살부터 나와 함께한 화구예요. 컬러 잉크의 가장 큰 매력은 선명하고 경쾌한 아름다운 색채로, 내 그림 세계의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재료였죠. 하지만 퇴색하기 쉽다는 큰 결점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전시회를 해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 극복해야 할 부분이죠(컬러 잉크는 역사가 짧아 사용하는 작가가 적을 뿐 아니라 나가타 모에 스스로 테크닉을 개발한 점도 있고, 작가 야나세 타카시로부터 ‘컬러 잉크의 마술사’라 명명될 정도로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10년 전부터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유는 대규모 전시회가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사실 컬러 잉크로 작업해서 인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원화 전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큰 전시장을 무대로 한 전시가 늘었다는 게 문제였죠. 개최 장소를 특수 조명기구를 배치한 미술관으로 한정하거나 액자 유리를 UV 컷 가공으로 바꿔도 퇴색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크릴은 강한 조명 아래에서도 거의 퇴색하지 않아 밝은 환경에서도 장기간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아크릴 물감으로 바꾸면서 그림 분위기도 바뀌었을까 봐 은근 걱정이 됩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컬러 잉크만큼 경쾌함은 없지만 여러 번 덧칠이 가능해 유화와 같은 중후한 느낌을 낼 수 있어 오히려 작품에 깊이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아크릴 물감은 캔버스나 종이 모두 사용할 수 있어요. 큰 전시장에서 돋보이도록 강한 화면을 원하거나 큰 작품을 제작하고 싶을 때는 캔버스에 색상을 충분히 넣고, 컬러 잉크와 비슷한 부드러운 느낌으로 하고 싶을 때는 물을 조금 많이 사용해 종이에 그리면 됩니다. 원래는 컬러 잉크의 단점인 퇴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지금은 각각의 특징을 살려 용도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대학에서는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고교 시절 연극부에서 클럽 활동을 했어요. 한번은 신입 부원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그렸는데, 평판이 아주 좋아서 부원 수가 크게 늘어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만든 포스터가 사람들 눈에 띄어 부원이 증원되는 홍보 역할을 해낸 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이런 일이 내게 적합할지도 모른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말이나 장르가 없는 시대였기에 그와 가장 가까운 디자인 계열 대학에 진학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었다고 봐요. 일반 회화와 달리 일러스트레이션은 디자인 센스도 필요하거든요. 실제로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중에는 디자인 분야 출신이 많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전도유망했을 텐데 26살 나이에 일러스트레이터로 방향을 바꾼 계기는 무엇인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양과자 회사 기획실에 근무하면서 초콜릿 패키지를 만들 때였어요.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설명해도 상대방이 내놓는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그런 과정이 여러 차례 되풀이되다 보니 상대방이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직접 그려봐.”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 패키지가 제품화되었습니다. 사실 다양한 색을 사용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래픽디자인에서는 세 가지 색밖에 쓸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내가 원하는 색을 쓰려면 일러스트가 맞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다양한 색을 쓰고 싶었다면 일러스트레이션 말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림을 그리는 데도 장르가 있는데, 어떤 장르를 선택할지는 작가의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순수 회화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완성한 뒤 한 사람이라도 그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매매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은 먼저 의뢰가 있어야 일이 시작되죠. 상품 광고와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일 등 매번 다른 의뢰 내용에 따라 대응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일을 진행합니다.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끌 필요가 있기에 사회 정세나 유행에도 민감해야 하고, 현실적인 지식도 필요하죠. 이처럼 사람들 생각에 대처해야 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제게는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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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 야나세 타카시가 그녀의 사부

선생님께도 아주 멋진 사부님이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분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호빵맨>으로도 유명한 야나세 타카시 선생님이 사부입니다. 이분에게 그림지도를 직접 받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마음가짐을 가르쳐주신 분이고, 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건성으로 대충 그리는 화가는 나는 싫어. 아이들이기에 더 정성과 힘을 다해 그려줬으면 좋겠어. 아이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니까. 성인이 되었을 때 ‘뭐야, 이런 그림을 좋아했어?’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어른 눈에도 감동을 줄 만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돼. 모에 씨는 좋은 사람 같으니까, 꼭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일을 해주면 좋겠는데”라고 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제 지침서랍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아이를 위한 그림을 그리시나요? 그래픽디자인 경력을 쌓느라 남보다 뒤늦게 일러스트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누군가를 위한 그림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아, 이건 모에 그림이다’라고 알 수 있도록 말이죠. 제게 있어 일러스트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을 위한 예술 작품이고,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그림은 어린 시절의 순수를 잃지 않은 어른을 위한 작업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혹시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단 한 번도 없어요. 다만 그림을 못 그린 적은 한 번 있습니다. 24년 전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죠. 불행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그림이 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요. 한동안 그리지 못했죠. 나중에 제 그림을 보고 현실을 이겨내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서야 다시금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때는 오히려 더 열심히 그렸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그림을 그만두고 싶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선생님 작품의 테마는 ‘꽃과 요정’입니다. 선생님께 꽃은 어떤 의미이며, 작품 속에서 꽃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그냥 꽃이 좋을 뿐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꽃을 그리는 건 아닙니다.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잠시라도 그 고민을 잊고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바랄 뿐이죠. 그림은 화가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하죠. 나 자신이 어두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그림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싶은 꽃과 감상용으로 즐기고 싶은 꽃은 조금 차이가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수국이며, 그림책에 가장 많이 실리기도 했죠. 이유는 수국의 색채 그러데이션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에요. 가령 파란 수국은 하늘색에서 보라색까지 블루 계열이 가진 색채의 폭을 하나의 꽃에서 볼 수 있는데, 그리고 있으면 즐거워지는 꽃 가운데 하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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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시회 개최 희망

선생님의 꽃 주변에는 늘 요정이 있습니다. 요정 모티프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저는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꽃을 좋아해서 항상 계절마다 피는 꽃들에 둘러싸여 자랐어요. 정원에도 꽃이 만발했음은 물론 아무리 시들한 식물이라도 어머니가 가꾸면 금방 생생해지곤 했죠. 그래서 모두가 “녹색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렀답니다. 어릴적 저는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과정을 보면서 꽃을 지키는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할 거라고 믿었어요. 그 믿음으로 꽃 속을 들여다보며 살피는 그런 아이였죠. 어린 시절 기억이 지금의 그림이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그리는 꽃의 요정은 꽃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 꽃을 모티프로 하고 있어요. 같은 모양의 꽃잎 치마를 입기도 하고, 옷의 무늬가 되기도 하죠. 꽃에 맞는 의상을 고민하는 일도 꽤 즐거운 작업이랍니다.

선생님의 그림을 오래 보고 있으면 선생님과 닮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선생님 자신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을 쓸 건가요?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사람됨이 그대로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림을 그릴 때는 어두운 기분이 들지 않도록 즐거운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저는 성격이 지극히 낙천적으로 사소한 부분에 집착하지 않고, 싫은 일이 있어도 길게 끌지 않고 빨리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신에 대해 의외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은 법이라 어떤 색깔로 표현할지 망설여지네요. 반대로 여러분에게 “제가 무슨 색이라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고 싶네요.(웃음)

최근 한국 내 저작권 관리위임 협약을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한국에서 어떤 형태로 만날 수 있나요? ㈜더피엠 파트너스(대표 이해열)라는 곳과 저작권 관리위임 협약을 맺었습니다. 다양한 협업을 통해 제 작품이 AR 북이나 미디어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들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흥미롭다 여겨지는 것이 일본에서도 유행할 수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나 관심에도 그 흐름이나 타이밍의 차이는 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궁리하고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일환으로 진행된다면 더욱더 좋겠지요.

조만간 한국의 전시 공간에서 선생님 작품을 접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림이 완성된 후 그 그림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혹은 전시회를 어떤 식으로 개최할 것인지는 그 분야 사람들에게 맡겨왔죠. 저 혼자 힘으로는 그 표현에 한계가 있기에 디자인이나 영상, 인쇄 등 각 전문 분야 사람들 손을 빌려 작품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한국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것을 참고로 기획하고 일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가타 모에展>이 한국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나가타 모에 그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동안은, 실체는 없지만 아름답고 경쾌한 판타지를 계속 그릴 것이다. 그녀의 동심이 시키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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