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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장애인 대학총장 이재서·한점숙 총신대 총장 부부

2019-07-15 09:41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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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재밌는 만남이었다. ‘뜻밖에’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이 총장 부부의 타이틀만 봐도 짐작 가능하다. 진솔하고 감동적이고, 엄중하면서도 격식 있는 만남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점숙 여사와 이재서 총장 부부는 진솔하고 감동적이었다. 엄중하고 격식 있는 분위기가 될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위트 있고 편안했다. 인터뷰를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총장실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토록 유머러스하고 재밌는 총장님이라니.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었다.

이재서 총장과 한점숙 여사를 만나러 총신대학교를 찾았다. 총장에 임명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어서인지 총장실 앞 비서실은 오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앞서 진행한 회의가 길어지자 다시 오겠다며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문이 열렸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소파에 앉아 있던 이 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넨 손이 따뜻했다. 테이블에는 점자기가 놓여 있다. 기자 이름을 묻더니 점자기로 이름을 입력했다. 이 총장은 1967년부터 점자로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 일기에는 기자의 이름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를 쓸 거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그의 손은 점자기를 떠나지 않았다. 꼼꼼하게 메모하는 습관을 50년 넘게 유지해왔다. 이렇게 꼼꼼하고 노력파이니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구나 싶은 것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총장실은 이 총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화환들로 푸릇푸릇했다. 원목 가구들과 화분이 어우러져 마치 수목원에 온 것 같았다. 기자가 “수목원에 온 것 같다”고 하자 이 총장이 “원래 화분이 더 많았는데 여기저기 나눠주고 남은 것”이라며 “지금이 수목원 같다고 하니 전에는 밀림이었을 것”이라며 농을 건넸다. 총장실을 가득 메운 화분은 출처가 다양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보낸 화분도 많단다. 어떤 이는 이 총장 인터뷰가 실린 일간지를 액자에 고이 넣어서 보내기도 했다. 대부분 이 총장 이야기에 감명받은 사람들이 보낸 것이다. 장애인이 보낸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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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5월 필라델피아성서대학 졸업식

만장일치로 얻은 총장 자리

“총장 당선 소식이 알려지고 내 일처럼 기뻐해준 장애인이 많았어요. 어떤 30대 여성은 갑자기 시력을 잃어서 절망에 빠져 있었는데 저를 보고 희망을 되찾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일본하고 축구할 때 골이 터지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고도 하더라고요. 한이 풀렸다, 응어리가 풀렸다는 의견이 많았지요. 제가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과 편견을 깼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장애인이 많았어요.”

많은 이들이 기뻐한 소식인데, 정작 부부는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담담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총장 선출 기간이 워낙 길었다. 올해 1월 후보를 추천받기 시작해서 지난 4월 13일에 당선이 확정됐다. 이 총장은 최종선거까지 열린 4번의 선거에서 줄곧 1위를 지켰다. 천지개벽 할 변수가 아니면 총장에 당선될 것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 짐작한 결과라 담담했지만 기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한 여사는 남편이 시력을 잃은 후 겪은 온갖 어려움에 대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은 당신이 총장이 될 수 있었던 숨은 공로자는 학교 구성원들이라고 말해요. 시각장애인이 총장선거에 나가겠다는데 아무도 시비 걸지 않았다고요. 2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한 게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

이 총장은 열다섯에 시력을 잃었다. 두세 달 사이 시력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신생아 때 앓은 열병 때문이라고 했다. 뒤늦게 찾아온 열병 후유증은 작가를 꿈꾸던 소년을 암흑 속에 가뒀다.

세상이 어두워지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뒤뜰에 있는 감나무에 목을 매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죽기엔 억울해서 유서라도 제대로 남기고 싶었다. 유서를 쓰려고 점자를 배우다가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때부터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성실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모습을 되찾았다.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어렵사리 총신대에 입학했다. 시각장애인은 입학원서를 받아주지 않는 학교에 대항해 입학원서를 받아달라고 온종일 서서 시위를 했다. 찬바람이 매서운 1977년 겨울이었다. 숱한 차별과 수모를 견디며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박사학위를 따는 와중에 장애인 선교단체 ‘밀알선교단’을 세워 세계적인 규모로 키워냈다. 모교에서 교수직 제의를 받고,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 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간 겪은 인생 역경을 설명하던 이 총장은 목이 타는지 물을 찾았다. 한 여사가 남편의 손을 잡고 컵의 위치를 알려줬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편과 남편의 눈이 되어주는 아내는 호흡이 남달랐다. 한 여사는 남편과 함께 걷다가 계단이 나타나도 계단이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아내가 걷는 발소리나 행동을 느끼고 따라 움직인다. 식사할 때는 아내가 반찬이 뭐가 있는지 알려주면 남편이 가만히 듣고는 혼자 젓가락질을 한다. 그야말로 쿵짝이 잘 맞는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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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미국 럿거스대학교에서 사회복지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찍은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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럿거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아내와 함께 도서관에서

36년간 손발이 되어준 아내

36년이 넘도록 호흡을 맞춰온 부부는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처음 만났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났다. 이 총장이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있는 교회에서 중고등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 한 여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진 것은 시간이 더 흐른 후다. 이 총장이 장애인 선교단체 ‘밀알선교단’을 키우려고 대학마다 동아리를 만들러 다니던 중 전남대를 찾았을 때 이 학교 3학년이던 한 여사와 재회했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던 소녀는 그사이 여인이 되어 있었다. 서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하고 결혼하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결혼까지 왔냐고요? 남편이 밀어붙였어요. 그만큼 제가 좋았나 봐요.(하하) 남편을 놓치면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밀어붙일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갔죠.”

식을 올리자마자 부부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본격적으로 고생길이 열렸다. 이 총장은 공부하느라, 한 여사는 남편 뒷바라지에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고생했다. 부부가 겪은 차별과 서러움은 말로 다 못 할 정도다. 사지육신이 멀쩡한 사람도 타향살이 서러움을 풀어놓자면 눈물 없이 말하기 힘든데 장애인은 오죽했을까. 모진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고생이 부부를 하나로 만들었다. 금슬이 좋아 슬하에 세 아이가 태어났다. 둘만 낳아도 많다고 하던 시절이다. 부부는 “미국에서 막내를 가진 걸 알았을 때는 한동안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말도 못 했다”며 웃었다.

척하면 척인 부부라 비슷한 점이 많을 것 같지만 부부는 입을 모아 “서로 정말 다르다”고 말한다. 한 여사는 “남편은 꼼꼼하고 매사 논리적인 사람이에요.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런데 저는 완전 반대예요. 앉아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걸 더 좋아해요. 남편이 제가 말하면 주어가 없다고 얼마나 놀리는지 몰라요”라며 눈을 흘겼다. 그러자 이 총장이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허허 웃었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며 보낸 세월이 36년이다. 이 총장 부부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40년 가까운 세월을 부부로, 한 팀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총장이 “가정생활은 인내가 중요해요. 인내의 반대말이 뭔 줄 알아요? 이혼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 박장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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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고마움이 공존하는 결혼생활

“부부 사이에는 인내와 고마움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요. 결혼생활을 잘하는 비법이요? 참는 거예요. 결혼생활만 참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인생 자체가 인내예요. 끝없이 견뎌야 하는 인생길에 동반자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워요. 함께 고생하니 서로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지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아내와 가족이 함께 견뎌줬기 때문이에요.”

결혼생활을 인내로 정의한 이 총장이 인생에서 가장 큰 인내가 필요하던 때가 언제였을까 궁금했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산 그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박사 논문을 쓸 때였단다. 그때 이야기가 나오자 한 여사가 “우리에 갇힌 호랑이를 보는 것 같았다”고 거들었다. 40대 초반 팔팔한 나이에 한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게 미치도록 싫었다. 박사학위가 뭐라고 이렇게 나를 괴롭히나 싶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한번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 했다. 견디는 고통보다 중도하차가 더 싫었다.

“젊은 사람들이 명심했으면 하는 게 있어요. 지금의 판단과 생각이 옳은 것 같아도 세월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당시에는 박사학위를 따려고 시간을 보내는 게 사치 같고 개인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온당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타이틀로 더 좋은 기회를 만들었더라고요. 시각장애인 박사가 가지는 상징성도 있고 무엇보다 장애인을 위해서 보람 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막 총장 임기가 시작됐다. 그냥 총장도 아니고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대학총장이다. 어깨가 무거울 법하다.

“장애인을 위한 길을 열어야 하니 매사에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어요. 제가 디딘 첫발이 장애인의 앞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깨는 동력이 되도록 온힘을 다할 겁니다. 밀알선교단을 세계적인 조직으로 키운 것처럼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일할 거예요. 제 곁에는 좋은 사람이 많아요. 제 눈이 되어준 아내처럼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과 합심하면 잘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장애인을 위해”라고 말하는 이 총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던 한 여사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어려운 길을 가는 남편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내의 표정을 볼 수 없는 남편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내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맞잡은 두 손은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서로에게 온기로 전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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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태욱  ( 2019-07-16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6   반대 : 0
목사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밀알의 섬김을 통하여 모든 믿음의 장애우들에게 하나님이 계심을 가르쳐 주시고 이땅에 밀알의 아름다운 섬김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축복받은 나라라는 것을 목사님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God bless you. underwoodmoon in Bu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