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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수도원에서 찾은 건축의 진리

2019-07-12 09:58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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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볕이 따가워진 6월, 서울 동숭동에 있는 이로재에서 건축가 승효상을 만났다. 대학로에 즐비한 극장을 지나 빌라 사이에 숨어 있는 철재 건물이다. 본디 까만색이었을 철판은 공기에 산화하고 시간을 머금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시간에 저항하는 건축을 기피하는 그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학자를 꿈꿨다. 태어나니 자그마한 교회 목사의 아들이었고, 귓가에는 늘 찬송가와 기도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태어난 승효상은 신학자가 아닌 건축가로 살아야 했다. 생각과 다른 삶을 살았지만 종교가 그에게 준 철학은 건축으로 표출됐다. ‘빈자의 미학’과 ‘지문’이다. 빈자의 미학은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을 말하고, 지문은 시간을 머금은 건축, 터가 가진 고유의 무늬를 살리는 건축을 말한다. 땅과 사람이 존엄하게 공존하는 것. 승효상이 추구하는 건축 철학이다.
 

# 수도사와 건축가의 공통점은 성찰
승효상이 건축과 영성이 함께하는 수도원에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관심에 여행과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에세이 <묵상>을 냈다. 배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뜻밖의 행보다.

책이 엄청 두꺼워요. 하고 싶은 말이 그만큼 많았나요? 이 책 쓰려고 원고지 한 1000장은 썼나? 그동안은 쓴 글을 모아서 책을 낸 게 대부분인데 <묵상>만 유일하게 책으로 내려고 글을 새로 썼어요. 여행 다니면서 키워드만 적어놨다가 다녀와서 다시 정리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다 보니 술을 덜 마셨지.

그러기엔 와인 마신 이야기가 많던데요? 하하하. 술을 아예 안 마실 수는 없지. 평소보단 좀 덜 마셨어요.

사진이 다 흑백이에요. 제작비를 싸게 하려고(웃음). 사진으로 담는 색은 진짜 색이 아니에요. 사진이 눈으로 보는 색을 다 못 담아요. 어차피 사진으로 보는 것도 다 상상인데, 기왕이면 더 자유롭게 상상하라고 흑백으로 했어요. 흑백을 좋아해서 내 건축 설계도도 다 흑백이에요. 내가 색을 잘 못 써(웃음). 수도원은 또 빛과 그림자가 지은 건축이라 그 정갈하고 검박함이 흑백과 잘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수도원을 주제로 택한 이유가 선생님의 건축철학과도 연관이 있나요? 수도원 기행을 떠나기 전에도 여러 번 수도원을 다녔어요. 수도원에서 잠시 생활한 적도 있고요. 수도사는 절박해요. 수도사가 된 이유도 절박감 때문이고, 수도사가 된 후의 삶도 절박감이죠. 절박한 이들이 모이는 곳이니 건축에 곁가지가 붙거나 쓸데없는 장식이 필요 없어요. 그런 장식은 판단을 흐리게 만들거든. 검도와 비슷해요. 검도에 이기고 때리라는 말이 있어요. 이기고 나서 확인하려고 호구를 치는 거지. 그 말이 바로 ‘단도직입’이에요. 내 성질과 잘 맞고, 수도원과도 닮았지.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니셨을 텐데 건축가는 무엇을 눈여겨보나요?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줘요.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일상이 너무 증오스럽지. 결국 우리가 사는 게 일상인데 그 일상을 행복하게 하려면 여행이 꼭 필요해요.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 처음 여행을 다닐 때는 건축을 보러 다녔어요. 그다음 도시와 마을을 보고, 더 지나서는 풍경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더라고. 요새는 여행을 가면 사람들이 사는 걸 봐요. 어떻게 사는가를 보면 어떻게 집을 지어야 하는지 알게 되지요.

몇 달 전 경북 경산에 교회를 완공하셨죠. 절제미가 돋보이던데 수도원의 영향을 받은 건가요? 물론이죠. 종교와 수도원이 내 건축철학에 영향을 줬으니까요. 교회다운 교회를 건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가난한 교회일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어요. 교회다운 교회의 핵심은 절제예요. 교회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만 남겨두면 돼요. 자신을 성찰하고 신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교회다운 교회지.

여행 에세이를 처음 냈는데 주제가 종교입니다. 이유가 있나요? 책에 네 가지 이야기를 담았어요. 건축가가 쓴 여행 책이니 건축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갔고, 또 다른 것은 종교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예요. 요즘 종교가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슬펐어요. 종교는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건축이 삶과 생명의 존엄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 종교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두 가지를 결부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수가 건축가였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나 봐요. 신선하던데요. 신학을 하는 사람도 반박을 못 해요. 그럴듯하거든(웃음). 히브리어 성경에 요셉의 직업이 ‘텍톤(tekton)’이라고 나오는데 이게 건축을 뜻하는 ‘아키텍처(architecture)’의 텍트(tekt)와 어원이 같아요. 텍톤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목수를 뜻하는 ‘카펜터(carpenter)’가 됐죠. 그런데 그 시대에는 목수니, 석수니 하면서 직업이 전문적으로 분류됐을 리 없거든. 집 짓는 사람을 그렇게 통칭하지 않았을까. 건축은 다른 이의 삶에 관한 일을 해야 하니 건축가는 성찰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보면 건축가의 삶이 예수의 삶과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죠.

결국 신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건축으로 이룬 거네요. 바른 건축가가 되려면 수도사와 맞먹는 수행이 필요해요. 건축가는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지 알아야 하거든. 꽤 많은 이야기를 알아야 하고, 그만큼 인간의 삶을 존엄하게 여겨야 하고, 사물에 정통해야 해죠. 예수도 건축으로 사람이 바뀐다는 것을 잘 알았을 거예요. 서른 나이에 건축가라는 직업에 달통했기 때문에 세상을 다시 지으려 광야에 나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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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건축이 행복을 부른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종교는 승효상 건축철학의 근간이 됐다. 고요와 묵상, 영성에 대한 관심은 건축의 본질에 더 깊이 닿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 예수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세상을 다시 지으려 했듯 건축가 역시 인간의 존엄함을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승효상의 건축철학이다.

잘사는 것은 무엇인가요? 유엔 인권헌장 서문에 참 좋은 말이 나와요. 우리 모두의 내면의 존엄성을 지키게 하는 것이 인권이라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된 존엄함이 있는데 그걸 발휘하도록 해주는 게 잘사는 것 같아요. 그것만 서로 인지하면 세상이 짜증나게 해도 항상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혼자서는 잘살 수 없겠네요. 틀림없어요. 내가 잘살려면 남도 잘살게 해야지. 저 사람이 나와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야 해요. 저 사람은 저 사람이니까 다르고 나는 나니까 다르다는 걸 서로 인정해야죠. 그게 공존이고 화이부동이에요. 다른 가치를 인정 안 하니까 불행한 거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한 데는 건축이 저지른 잘못도 있어요.

건축이 저지른 잘못이요? 유엔이 발표하는 행복지수를 정하는 기준의 반 이상이 도시와 건축에 관한 것이에요. 사람이 주택에 대한 다양성을 누릴 수 있나, 문화시설을 향유하는 데 부족함이 있느냐 이런 것들이지요. 우리나라 건축은 삶과 건축을 결부시키지 못하고 외형만 키워놨어요. 아파트를 공동주택으로 부르지만 공동의 삶이 없어요. 공동체가 와해되니 옆집에 사람이 죽어도 몰라요. 건축이 저지른 일이고, 건축시스템을 조장한 정부의 나쁜 정책이에요. 이건 개선으로 부족해요. 혁명을 해야지 혁명.

그러고 보니 공직을 맡은 적도 많죠? 지금은 국가건축위원회(이하 국건위) 위원장이고. 그게 다 스트레스예요. 국건위 위원장은 10개월 남았는데 벌써부터 연임하라는 소리를 해요. 끔찍한 소리죠. 공직은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위원장 안 하려고 재작년에 비엔날레로 1년간 도망갔어요. 후배들이 몰려와서 해달라고 하는데 나 편하자고 안 할 수 없었지. 2년만 딱 하겠다고 하고 맡은 거예요.

앞서 말한 문제를 ‘혁명’하고 계신가요? 우리나라 건축 시스템은 후진적이고 때로는 야만적이에요. 건축을 만드는 발주, 설계, 공사 세 가지 단계가 너무 미개해요. 이걸 바꾸려고 그동안 건축하는 사람들 설득하러 다녔고, 동의를 얻었어요. 혁명 과정으로 치면 이제 혁명 공약서를 쓰는 중이죠.

국건위 위원장으로서 지향하는 건축은 무엇인가요? 수요자가 원하는 집을 짓는 거죠. 15평형, 30평형 집이 아니라 집에 살 사람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듣고 거기에 맞게 설계해야 해요. 오스트리아 빈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했어요. 빈은 주택정책이 아니라 삶에 초점을 맞춘 주거정책을 내놔요. 에너지 제로마을, 어떤 사람은 공유마을, 어떤 사람은 아이들이 천국인 마을 등 원하는 대로 공급해요. 지금 정부가 3기 신도시를 만들고 있는데, 국권위 차원에서 지난 시대 관행대로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했어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건축으로 도시를 만들어야지 아니면 또다시 불행해지니까.

건축가로서 다음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국건위 임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건축을 해야죠. 건축가들이 걸작을 남긴 나이가 60~70대예요. 여태까지 글이나 책을 쓸 때 맹세하듯 썼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 지향하는 것이 이렇다는 진리를 만든 거지. 진리가 널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있잖아요. 진리를 벗어나면 불안하지만 그 안에서 놀면 자유롭죠. 나는 불안하지 않으려 글을 써요. 그동안 만든 진리 안에서 놀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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