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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발칙한! 스타일리스트 김우리

2019-03-18 10:28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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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스타일리스트’ ‘잘나가는 뷰티 컨설턴트’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김우리에게 곧잘 덧붙는 수식어다. ‘화려한 사람이네’ 싶은 찰나, 인터뷰 내내 쏟아내는 그의 답변이 반전이다. 하나같이 ‘가족’으로 귀결된다. 얼마 전 발간한 첫 책이 뷰티, 패션도 아닌,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니 말 다했다.
수려한 얼굴, 멋들어진 패션의 그를 보고 있자니 좀체 평범한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번쩍이는 연예인 인맥으로도 유명한 그이기에 어쩐지 가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였다. 김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서였다. ‘보여주기’에 정신없는, 요즘말로 ‘관종끼’ 다분한 남자라고 여겼다. 그런데 살짝 들춰보면 조금 놀랍다. 아내와 함께 펴낸 <#유쾌하고 발칙한 #가화만사성 우리 가족>을 보니 그는 열심히 진통하고 성장하는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오는 길에 책을 다 읽었어요. 금방 읽히던데요. 오, 정말? 어때요? 재밌던가요? 솔직하게 말해줘요. 제가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읽어보라고 줬어야 하는데….

퍼주면 안 되죠. 수익금 전액 기부한다고 했잖아요. 우리 가족 팔아서 쓴 책인데 기부를 안 하고선 도저히 이 책을 홍보할 자신이 없었어요. 기부 선언을 하고 나니까 “내 책 좀 사줘”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던데요.(웃음) 아내 허락도 안 받고 기부하겠다고 밝힌 건데, 아내가 “당신 돈도 1000만원 보태서 기부해”라고 해서 고마웠어요.

가족 이야기를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개인 소셜미디어에 일상을 담다 보니까 가족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자연스럽게 라이브 방송에도 아내, 딸들이 비치게 되고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많은 분이 “힘을 얻어 간다”고 하면서 “책으로 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제 가족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좋잖아요. 예전엔 아내가 소셜미디어에 본인 모습이 나오는 걸 싫어했는데 “힘이 된다”는 반응을 보면서 뿌듯해하더라고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예요. 남이 볼 땐 잘 먹고 잘사는 가족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저희만의 갈등이 많았거든요. ‘어린’ 부모로서 겪은 일련의 과정을 담았어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금은 얼마나 끈끈한 가족이 됐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 홈쇼핑 매진 보증수표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스타일리스트로 시작해 숱한 스타들의 매무새를 만졌고, 뷰티 컨설턴트가 되고선 경이로운 매진 기록을 세웠다. 항상 플랜비를 염두에 두고 산다는 그만의 철학이 있어 가능했다.

패션에서 뷰티로 주 분야를 바꾼 배경은요? 무엇을 하든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하자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달리다 보면 끝이 보이더라고요. ‘어느 시점, 어느 부분에서 움직여야 하는구나.’ 가수 스타일링에서 배우 스타일링으로 넘어올 때 미련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예요. 최선을 다했고 끝을 봤는데 더 쥐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늘 ‘다음’을 생각해야죠. 지금 뷰티를 하면서도 다음을 준비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강조해요. 세 번 생각하고 두 번 행동하라고.

홈쇼핑계에선 ‘믿고 쓰는 김우리’라던데, 자랑할 만한 성과는요? 하하, 수치 같은 걸로 말해야 하나요. 관계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작년에 홈쇼핑 시상식 있었으면 김우리가 무조건 대상이었을 거래요. 작년 제 승률이 87.5%였어요. 10개 중 8개 반이 매진이었다는 뜻이에요. 10개 방송하는 것도 힘든데 매진율도 높으니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아요.

매진하면 기분 좋죠? 당연히 좋죠. 근데 그때 잠깐이에요. 처음엔 마냥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담감이 아휴… 요샌 부담만 300배입니다.

본인의 어떤 점이 통했다고 생각하나요? 홈쇼핑스럽지 않은 게스트라서? 전문가인데, 말하는 건 일반인 입장이거든요. 전문가라고 기술적인 면에서 이야기하면 비전문가는 활용을 못 해요. 저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고 실제로 해볼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게 우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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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리스트 만들어준 은인 신효범

운도, 연도 잘 만났다고 했다. 김우리가 스타일리스트가 된 계기,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동력에서 ‘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스타일리스트 개념이 부족하던 시절에 어떻게 시작했나요? 그전에 저 가수였어요. 열아홉 살에 데뷔해서 망했고, 군대 다녀와서 또 했는데 안 돼서 접었지만요.(웃음) 당시 안무 담당하던 친구가 “신효범 누나가 옷 해줄 사람 구한다”면서 저를 소개했어요. 가수 하면서 우리 그룹 옷은 제가 직접 만든 걸 그 친구가 알고 있었거든요. 누나가 좋게 봐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운이 따른 거죠.

옷 만드는 소질은 타고났나 봐요? 잔재주가 많았던 것 같아요. 가수 때 미용실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헤어, 메이크업을 배웠어요. 효범 누나한테 어필하고 싶어서 “저 헤어랑 메이크업도 할 줄 알아요”라고 했더니 시켰어요. 엄청난 포부를 가지고 3단짜리 메이크업 연장통 꽉꽉 채워서 누나 집에 갔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아무튼 그때 제가 퍼펙트하게 하지 않았는데 누나가 정말 좋아했어요. 뭐 하러 가수 했냐고 하던데요.(웃음)

1세대 인기 가수를 다 맡았으니 능력자네요. 효범 누나 도움이 컸어요. 요즘말로 ‘츤데레’ 같은 분이에요. 일 못 한다고 혼내시면서도 정작 밖에선 김우리 잘한다고, 같이 일해보라고 여기저기 말씀하셨더라고요. 알음알음 알려져서 태사자 스타일리스트까지 하게 됐죠. 때마침 엔터테인먼트 개념이 퍼지고 아이돌 콘서트도 시작되면서 일이 많아졌어요. 신화, 핑클, 박효신, 이수영, 플라이투더스카이 등.

가수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무대에 서봤으니 어떻게 입으면 더 멋지고 예쁜지 헤아릴 수 있었죠. 사비까지 엄청 쓸 정도로 원단에 돈을 아끼지 않았어요. 정말 잘해내고 싶었으니까요. 그게 빛을 발하더라고요. 연예인들 사이에서 “저 사람 옷 입으면 잘될 것 같아” 그랬대요. 매니지먼트 통하지 않고 연예인이 직접 일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자고 일어나면 담당할 연예인이 생기고 또 생기고, 어느 날은 <인기가요> 출연진 15팀 모두 제가 담당한 적도 있어요.

초창기 스타일리스트로서 ‘이건 내가 바꿨다’ 하는 게 있나요? 우선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널리 알렸죠. 가요계에선 유일무이하게 움직인 스타일리스트가 저였으니까요. 급여 개념도 정확히 했어요. 예전엔 월급 개념은커녕 뮤직비디오, 재킷 촬영 비용도 별도로 없었어요. 저야 먹고살 수 있다지만 후배들은 어렵잖아요. 그 부분을 해결하려고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그때와 지금,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있나요? 신중해졌어요. 뭐든 결정하기 전에 딸들이 투영돼요. 애들이 크면서 실패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더니 그 나이대 후배들이 다시 보여요. 미처 공감하지 못하던 부분을 먼저 이해하게 되고요. 예를 들면 직원을 뽑더라도 이 돈을 주면 얘들이 잘 먹고살 수 있을까 생각해요. 부모 마음이죠.

아빠가 아니었다면 또 다른 지금일까요? 아주 못된 사람이 됐을 거예요.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가시 돋친 채 살았을 거예요. 일찍이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기르면서 거친 ‘단짠단짠’ 시간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앞으로 계획은요? 없어요! 그래서 항상 정신이 없어요. 하하. 먼 미래를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당장 오늘을 잘사는 게 좋아요. 오늘 잘못 살면 내일도 괴롭고, 모레도 괴롭고…. 당장 지금 제대로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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