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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어 제과 제빵 대를 잇는 김영훈 명장

2019-02-21 01:28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김영모과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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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재미를 붙이는 데 족히 10년이 걸렸다. 좋아서 제빵을 시작했지만 모든 과정이 도전이었고 고비였다. 물론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인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버티는 게 가장 강하다’는 말마따나 버텼더니 프랑스가 인정한 최초의 외국인 제과 장인이 됐다. 김영훈 명장 이야기다.
프랑스가 인정한 최초의 외국인 장인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이 있다. 부모 자식을 여기 대입하면 신뢰도가 좀 떨어진다. 부모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자식도 있고, 부모의 재능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한 자식도 있다. 김영모, 김영훈 부자는 결과적으로 아버지 재능을 아들이 온전히 이어받은 케이스다. 이렇게 말하면 빵빵한 집안의 서포트를 받아 타고난 재능을 꽃피운 ‘엄친아’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제빵 기술을 배우던 시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혀 예상과 달랐다.

“이 일을 좋아했던 건 맞아요. 아버지 제과점이 놀이터였으니까요. 어린 시절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빵을 할 거라는 막연한 꿈이 있었죠. 아버지는 제가 어려서 그러려니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도 공부는 안 하고 제과점에 있으니까 아버지가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일했어요. 그걸 보고 이 일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으셨대요.”

그의 아버지 김영모 명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알려진 이름이다.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기능한국인 제과1호이며 제빵 분야 명장6호다. 1982년부터 이름을 내건 ‘김영모과자점’으로 성공한 동네 빵집 신화를 썼다.

제과 명장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겠다는 아들에게 유학을 권했다. 이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영어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영국 유학이 결정됐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다음 제과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계획은 한 사람의 말로 바뀌었다. 그의 스승인 파티시에 ‘필립 이리야’다.

그는 필립의 밑에서 18살 때부터 제과 제빵을 배웠다. 프랑스 제과 제빵은 도제식 교육이 일반적이다. 스승 밑에서 보조자 역할을 하면서 이론이며 실습을 배운다. 생각지 못한 기회가 빨리 찾아와 들떠 있던 18세 소년은 막상 교육이 시작되자 견디기 힘들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이틀은 이론 공부를 하고 나흘은 현장실습을 했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책상에 앉아서 이론을 배우는 것도 힘들었다. 더군다나 한국에 있을 때도 공부와 담쌓고 지낸 그였다. 결국 1년 만에 편지 한 장만 남겨두고 도망쳤다. 다시 필립 앞에 나타난 건 한 달 뒤였다.
 

10년 만에 제과에 재미를 느끼다

“한 달 만에 집에 갔더니 바닥에 팩스 종이가 나뒹굴며 엉켜 있었어요. 예전에는 팩스 용지가 롤로 말려 있었는데 그 종이가 다 빠져서 바닥에 널려 있었죠. 다 한국에서 보낸 거였어요. 걱정되신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는데 그걸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죠. 바로 어머니께 연락해서 다시 해보겠다고 하고 스승님을 찾아갔죠. 받아줬냐고요? 5시간 동안 문도 안 열어줬어요.” 

5시간은 한 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당시에는 그가 보낸 어떤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시켰으니 다시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5시간을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대뜸 대청소를 하라고 했다. 청소를 다 하고 스승과 마주했다.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질문이 던져졌다.

“사과나무에 사과 10개가 달려 있는데 3개가 썩었다. 썩은 사과는 어떻게 할래?”

“그대로 두면 싱싱한 사과가 다시 열리겠죠.”

그의 대답을 들은 스승은 “사과나무가 사람과 같다”며 말을 이었다.

“싱싱한 사과가 장점이라면 썩은 사과는 단점이야. 너의 썩은 사과가 난 자리에 싱싱한 사과가 맺힐 때까지 내가 도와주마.”

이런 말을 들었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를 저버린 그를 다시 믿어준 스승에게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 뽀로로 노래가사처럼 ‘노는 게 제일 좋은’ 18살 소년은 노는 시간을 줄이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1999년 시작해 10년간 묵묵히 공부했다. 어려움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꾸준히 나타났고 그는 온전히 파도에 맞서 이겨냈다.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이 고비였다. 하지만 고비를 넘길수록 일에 애착이 생기고, 재밌어졌다. 10년 동안 가치관도 변했다.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 작은 것이라도 배울 수 있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2003년에는 처음으로 세계대회에 도전했다. 월드 페이스트리 컵에서는 아이스카빙 대상을, 국제 기능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받았다. 분야는 얼음조각과 아이스크림이다. 큰 스승, 작은 스승이 모두 아이스크림 명장이라 자연스럽게 제과를 하면서 아이스크림도 배웠다. 제과를 기반으로 제빵사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에게 외국인 최초 프랑스 최고 장인이라는 영예를 안긴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는 지난해 11월에 열렸다. 1924년 처음 생긴 이래 3~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장인 공모전’이다. 워낙 유서 깊은 대회라 명예와 권위도 대단하지만 매달 수여식에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다. 200개 넘는 분야 중에 디저트, 제빵, 요리 분야가 특히 치열하다.

MOF는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만큼 선발 과정이 철저하고 엄정하다. 그도 두 번 도전했다. 심사는 11월 중순에 나흘 동안 진행했다. 주제인 ‘어린 왕자’에 대한 논문을 준비해 발표하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이스카빙을 만들었다. 심사위원 24명이 논문을 검토하고, 제작 과정을 꼼꼼히 살펴본 후 시식까지 했다. 16명이 참가해 3명이 MOF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대회에서 외국인 최초로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대회 결과를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도 되나 싶었죠. 아버지요? 아버지가 기뻐서 표정관리가 안 되는 건 처음 봤어요. 워낙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안 하셔서 세계대회에서 상을 받아도 내색 한 번 한 적 없어요. ‘아들이 세계대회에 가서 좋은 성과도 얻었는데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이런 생각도 했으니까요. 결과를 알고 나서도 가족들에게 ‘안 될 것 같다’고 밑밥을 뿌려놨었어요. 서프라이즈를 하려고요.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 프랑스 명장에게만 주는 파티시에 옷을 입고 들어갔죠. 처음에 다들 쟤가 왜 저걸 입고 나타났나, 하시다가 어? 어! 이러면서 결과를 알게 됐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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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김영모 명장(좌)과 김영훈 명장
2) 김영민과자점의 팡도르

각자 자리에서 가업을 이은 삼 남매

대회가 끝난 후 김 명장은 프랑스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다. 형 김재훈 부사장은 영국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현재 김영모과자점의 경영을 맡고 있다. 여동생 역시 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한다. 그가 합세하면서 삼 남매 모두 각자 다른 방법으로 가업을 이었다.

그는 요즘 경영을 배우고 있다. 사업 부분에서는 초보라 배울 점이 많다. 한국의 제과 제빵 스타일도 배우려 한다. 기자가 “요즘 ‘빵지순례’가 유행이니 해보라”고 하자 “전국에 있는 제과점을 두루 가보는 것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후배들에게 제과 기술을 가르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지 누구보다 잘 안다. 아버지에게 일을 배웠듯 그가 프랑스와 한국에서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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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현  ( 2019-02-24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5   반대 : 0
최초이긴하지만 혼자는 아니에요
예술제본 세션에 한국인 한명 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