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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아이돌? 시인 박준

2019-02-20 09:38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박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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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11만 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16만 부 팔렸다. 최근 6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5만 부에 돌입했다. 출판계에서도 가장 인기 없는 분야로 꼽히는 ‘시’ 부문에서 이변을 만든 주인공, 시인 박준을 만났다.

장소협찬 무슈부부 커피스텐드
“시인이 명함을 주면 좀 이상하지 않나요?”

기자가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자, 그도 지갑에서 천천히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하얀 명함에는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편집팀 기획위원 박준’이라고 씌어 있었다. 첫 시집을 펴내자마자 ‘출판계의 이변’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박준 시인의 직업은 출판사 편집자다. 평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회사에 반차를 내고 외출한 길이다.

“지금 제 헤어스타일이 시인이랑 거리가 멀지 않나요?”

인터뷰 직전 진행한 사진 촬영, 그가 혼잣말처럼 몇 번이나 물었다. 목에 두른 스카프는 그만의 ‘루틴’이다. 일상인이 아닌 시인이어야 할 때 그는 일종의 의식처럼 머플러를 두른다. 시인이라는 아이덴티티(정체성)가 필요하다면 필명을 쓰는 것도 간단한 방법일 것 같다고 하니, 본인의 행동이 그런 형태적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란다.

“‘시인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상의 박준과 시인 박준을 구분 짓고 싶어서예요. 하루 24시간 중 시인으로 사는 시간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 시인이고 싶은 상태이고,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시인이 됩니다. 그런데 혼자가 된다고 바로 시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주로 일을 하는 날이니까 ‘시인 모드’로 바뀌는 과정이 힘들어요. 그 과정 안에서 나름 형식을 갖추고자 하는, 작은 장치예요.”

그가 시인이 되고 가장 많이 받았을, ‘왜 전업 작가의 길을 가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차례다.

“제 삶은 먹고사는 일과 시를 쓰는 일이 같이 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시를 쓰기 위해서 일하는 것 같아요. ‘생활이라는 문제가 해결되면 시를 잘 쓰겠냐?’ 물어보면, 그건 아니거든요. 시를 쓴다는 건 대상(독자)을 염두하는 행위예요. 그분들이 읽는 글을 쓴다면, 그분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해 제 시를 읽는 수많은 분이 출근을 하고 야근을 하는 삶을 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일상이 시를 쓰는 데 방해만 되는 건 아니에요.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일상과 시의 관계는 ‘나를 죽이러 온 나의 구원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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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함께 장마를 보자’는 뭉근한 사랑 고백

이번에 펴낸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시집이다. 문학 작품을 두고 숫자 따지는 걸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있겠지만, 11만 부 넘게 팔린 첫 시집의 인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인기는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시집은 출간 한 달 만에 5만 부가 팔렸다. 2년 전 출간한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15만 부를 기록했다.

“전과 3범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세 번 연속 실수한 것 같은 느낌? 겁도 나고 무섭기도, 두렵기도 해요.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은 당연히 있고,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있어요. 시집 안의 시는 상품이 아니잖아요. 문학적으로 잘된다는 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말하는 거니까요.”

두 번째 시집은 제목부터 불친절한 시의 화법을 느끼게 한다. 그는 ‘첫눈을 함께 보자’는 말이 ‘사랑한다’의 다른 말로 쓰인다면, ‘장마를 함께 보자’는 말은 좀 더 뭉근한 사랑 고백이라고 말한다.

“장마가 별게 아니에요. 첫눈도, 벚꽃도 아니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같이 보자고 할 만한 현상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무런 가치 판단이나 감정이 안 들어가는 말이죠. 그럼에도 장마를 함께 본다는 것은 장마가 아닌, 장마를 보고 있는 당신을 보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서 하는 말이에요. 장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너나 봐’라고 할 거잖아요. 이번 책에 등장하는 장마는 그렇게 직접적이지 않은 표현을 쓴 시적 언어예요.”

시집은 봄·여름·가을·겨울 순으로 흘러간다. 계절에 맞게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세끼를 챙겨 먹는 일 등이다. 세월호를 다룬 시도 있다. “멀리 안 나간다.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라는 시구는 지난 2016년 ‘416 단원고 약전’을 쓸 때 썼다고 한다. 강렬한 기억, 강력한 슬픔은 깊은 상처로 남아 시로 쓰지 못해 조금 어렵게 탄생했다고 한다. 그는 그 과정을 빨랫줄에 빗대어 설명했다.

“마음의 빨랫줄이라는 동화적 상상을 해요. 기억을 빨랫줄에 하나씩 널어놔요. 어떤 기억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선혈이 낭자하고, 또 어떤 건 너무 바삭하게 말라서 변색되기도 해요. 기억과 감정이 나와 일정 거리가 유지될 때 시를 쓸 수 있어요. 크게 슬픈 일은 끙끙 앓아야 하는데,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아버지와 관련한 시도 눈길을 끈다.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로 된 ‘생활과 예보’라는 시는 실제 아버지가 한 말을 따왔다.

“첫 시집이 나왔을 때 부모님께 보여드렸어요. 어머니는 ‘나왔구나’ 하시고는 마당의 개똥을 치우셨어요. 시집은 안 읽으셨고요. 아버지는 시집을 받자마자 우셨어요.(웃음) 아버지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감성적인 분이세요. 어릴 때 여름 장마철이면 아버지와 수건 하나씩 목에 걸고 비 맞으러 산에 갔어요. 어머니는 ‘이 폭우에 뭐하는 짓이냐’며 싫어하셨지만요. 그런 아버지의 정서를 알게 모르게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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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계 활력 넣은 젊은 시인
“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어요”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선보인 그의 시는 대체로 다정하고 다감하다. 그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순한 내용의 시가 특히 마음에 닿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박준이 쓴 시’라는 개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중에게 어떤 스타일로 규정된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다행이기도 하고, 일종의 숙제이기도 하다.

“같은 상황을 놓고 저를 떠올린다면 어떤 틀 안에서 안주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시인이 예술가라면 어떤 예술이 지속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복되고 변화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인기 작가로, 유독 젊은 여성 팬이 많은 작가로 사는 삶에 대해서도 물었다. 소셜미디어(SNS) 등을 살펴보면 그의 시에 대한 감상뿐 아니라 “준수한 외모에 반해 팬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독자도 많다.

“문학판이 관대해요. 제가 큰 키가 아닌데 시인치고는 크다고 말씀해주시고, 젊다고 말씀해주세요.(웃음) 시인들 연령이 대체로 높으니까 상대적으로 저는 젊은 축에 들어가죠. 시인에게 젊다는 말은 작품의 생물학적 온도인 것 같아요. 온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글부글 완성되지 않는 상태로 젊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박준 시인이 출판계에 활력을 준 데는 이견이 없다. 그가 펴낸 두 권의 시집이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출판계가 침체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패배주의에 젖어 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우리도 시의 시대가 있었어요. 1980년대를 그렇게 봐요. 지금 시의 시대가 끝난 건 아닌 것 같아요. 트렌드에 밝은 사람을 ‘힙스터’라고 하잖아요. 제 생각에 힙스터는 절대 종이를 멀리하지 않아요. 과거보다 시를 읽는 절대 인구는 줄었지만, 마니아층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그런 흐름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출판시장의 변화나 트렌드를 민감하게 읽게 되는데요. 출판시장의 침체와 문학의 침체는 다른 결이 있어요.”

일상에 충실하면서 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그의 삶이 당분간 달라질 일은 없어 보인다. 그 속에서 새로운 도전이나 목표를 꼽아보니, 언젠가 그림이 들어가는 시를 쓰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는 산문도 좋아하고 동시도 좋아해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같은 작품을 읽으면 너무 좋아요. 시는 행과 행 사이에 침묵 혹은 여백이 있잖아요. 맑은 시에 그림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시인이라고 글쓰기에 다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맑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좋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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