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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 성우 정형석

2019-01-22 09:11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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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성대’의 주인공은 누굴까. 자못 궁금했다. 만나보니 의외다 싶었다. 실례지만 ‘커피소년’ 이미지일 줄 알았다고 했더니, “막상 보면 거란족 스타일이라 다들 난해해한다”고 했다. 목소리는 멜로인데, 외모는 느와르였다. 성격은? 글쎄. 잠깐 봤지만 ‘드라마’에 가까웠다.
귀를 열어두면 알아서 술술 기어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입자에 모서리가 없고 성질은 유순해서 귀에 집어넣어도 이물감이 없을 것 같다. 소리를 만질 수 있다면 그의 목소리는 이런 제형일 듯하다.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공감할 거다. 중저음임에도 질척거리지 않아 부담 없고, 싱거운 농담을 던져도 가볍지 않다. 요컨대 ‘잡음’이 전혀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자연인’)의 성우 정형석 얘기다.

내레이션을 가만히 듣다 보면 재밌다. 진지하고 곱상한(?) 어조로 어설픈 랩을 하는가 하면, 받아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농을 치고 웃기도 한다. 애드리브도 많다.

“아무래도 현장성이 담겨야 하잖아요. 옆에서 얘기해주는 것처럼 해도 되느냐고 했더니, 그러라더라고요. 대본이 있지만 제작진이 많이 열어준 덕분에 애드리브를 많이 치는 편이에요. 시청자분들이 좋아하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자연인>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본 지 7년째. 풍월을 읊는다는 시간의 곱절. 그들의 삶을 통해 느낀 점이 궁금했다.

“자연에선 끼니마다 시간과 공을 들여요. 씨를 심고 수확하고, 다듬어서 밥을 해 먹죠. 그런데 도심에선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어요. 모든 게 바로 반응하니까요. 주문하면 밥이 바로 나오고,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답이 오죠. 기다림에도 미학이 필요한데 말이죠. 빈 공간 속에서 기대와 인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자연인은 그 속에서 때론 무료하기도 하겠지만 기다림의 가치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치유의 목소리

그는 2006년 KBS 성우로 입사했다. 14년 차. <자연인>뿐만 아니라 현재 방영 중인 주방기기, 자동차, 면도기, 커피 등 여러 광고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최근 5년만 따져도 약 100편의 광고를 찍었다는 후문. 이쯤이면 대한민국에서 그의 목소리를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틈틈이 각종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DJ를 맡은 적도 있다.

“다큐멘터리는 주로 사라져가는 것들, 그래서 아련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와요. 저도 그런 게 좋아요. 덤덤한 속에 감정을 담는 거요. 라디오는 EBS <책처럼 음악처럼>이란 프로그램이었어요. 광고도 없고, 게스트도 없어서 온전히 혼자 끌어가야 했어요. 설레면서 떨렸어요. 처음엔 되게 ‘버벅거렸죠’. 사연을 읽고 바로바로 멘트를 해야 하는데, 잘 못 하겠더라고요. 음… 그렇죠… 그렇군요, 네 그래요, 하며 뜸을 자주 들였죠.”

웬일. 받아치지 못해서 그런 건데, 그 ‘뜸’이 청취자들에겐 울림이 됐고, 치유가 됐다. 진심으로 사연을 곱씹는 걸로 들려서다. 이를테면 포즈(pause)까지 목소리 영역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대단한 능력이다. 그는 “초반의 미숙함을 청취자들이 그렇게 포장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심야 프로그램은 몸은 힘들지만 정서적으로는 좋았다. 사람들과 ‘진심’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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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그리고 배우

목소리에 감정을 제대로 싣는다 싶었는데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원래 배우다. 연극과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5년간 뮤지컬 <난타>에 출연했다. 한 선배가 “목소리가 좋다”고 권유해 성우 시험을 봤고, 단박에 합격. 연기로 데뷔했지만, 그때부터 성우 이력이 풍부해졌다. 하지만 꾸준히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다. 필모그래피를 묻자, 피식 웃었다.

“아주 짧은 역할밖에 없어요. <인랑>에도 출연했는데, 저도 절 못 찾았거든요. <다시, 봄>이라는 영화에서도 완전 단역으로 한 장면 나왔고요. <퍼펙트맨>에서는 ‘그랜저남’이라고 조진웅 씨와 시비 붙는 역할을 했어요. 아!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나왔고요. 짧았지만, 오디션 두 번에 걸쳐 따낸 거예요. 그나마 저를 좀 발현시켰다고 할 만한 건… <약장수>라는 영화예요. 마찬가지로 단역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성우’라 칭하지만, 그는 배우 청사진도 함께 그리고 있다.

“돈 잘 버는 배우가 아니라 ‘괜찮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듯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배우요. 성우 너무 좋죠. 편하고 안정적이에요. 하고 싶은 일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연기할 때는 느낌이 달라요. 촬영 직전까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슛 들어가면 온전히 저를 던지는 것이 좀 더 ‘활어’ 느낌이라고 할까요. ‘결국 무슨 연기를 하고 싶은 건데’ ‘네 재능이나 정서는 어느 정도인데’라며 끊임없이 자문하고 채찍질하면서 살아 있음도 느끼고요. 모르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죠.”
 

살아 있다는 것

그는 2009년 성우 박지윤과 결혼했다. <겨울왕국> 안나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조언도 많이 한다. 그는 “아내는 365도 각도에서 일과 가정을 두루두루 챙기는 매우 성실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면서 “그런 게 귀감이 되고 존경스럽고, 고맙다”고 했다. 슬하엔 8살 아들, 6살 딸을 뒀다. 그는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행복하다. 아이들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아들은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하고, 딸은 토끼가 되고 싶다고 한다”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스스로도 인정한 안정적 직업을 두고, 더군다나 토끼(가 되고 싶다는) 같은 자식도 있는데, 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본인도 찾기 힘들 만큼 단역을 맡는지.

“나이 들고 주름이 파인다고 늙는 게 아니라 설레는 일이 줄어드는 게 늙어간다는 증거 같아요. 꿈꾸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설사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요. 행여 꿈만 꾸다 갈지라도 훌륭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원하는 무언가를 다 이루고, 더 이상 설렘이 없는 삶보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꾸는 게 낫지 않나요?”

‘꿈’이라는 빤한 키워드로 이토록 멋진 대사를 뽑다니. 문득, 그의 연기생활이 기대됐다. 참고로 개봉을 앞둔 이영애 주연의 <나를 찾아줘>에도 나온다. 민박집 ‘황 사장’ 역인데 마찬가지로 아주 짧게 나온다니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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