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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2년, 임상우

마다가스카르 대사의 주부공감

2019-01-16 10:02

글 : 김보선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임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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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우 마다가스카르 대사는 2년간 주부 체험으로 ‘주부기본소득제’(?)를 주장할 정도로 주부 예찬가가 됐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주부라는 신세계를 알게 되어 ‘개안’했다고까지 말한다. 자녀들과 자연스러운 교감은 기본이다. 한창 커리어를 쌓는 시기, 잘나가던 외교관이 아내 대신 ‘독박육아’를 실천한 결과다.
임상우(46) 대사는 현재 마다가스카르 주재 대사이자 두 아이의 아빠다. 그는 지난 2015년 2월 육아휴직을 했다. 후배 외교관인 아내(39)가 스위스 제네바로 발령받자 육아휴직을 내고 따라가 2년 동안 전업주부 생활을 했다. 당시만 해도 외교부에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지금은 반대다. 2018년 초 임 대사가 마다가스카르 초임대사로 부임하자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남편을 따라 나섰다. 임 대사가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 각각 4세, 7세였던 아이들은 현재 7세(초등 1), 10세(초등 4)가 됐다. 스위스 공립학교에 이어 마다가스카르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20여 년간 직업 외교관 생활을 해온 임 대사에게 2년간의 주부 체험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부엌이 좋아졌다. 주부 예찬론자가 됐고 ‘천천히’를 주문하는 다정한 아빠가 됐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걸까? 지난 12월 초, 외교부 관련 회의 참석을 위해 마다가스카르에서 잠시 귀국한 임 대사를 만났다.

2018년 초 마다가스카르 대사로 부임했죠. 우리에겐 익숙한 듯하면서도 낮선 곳인데요. “왠지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나 오를 법한 나라죠. 바오밥 나무가 유명하고요. 많은 분이 조그만 섬나라로 알고 계시는데 사실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입니다. 면적이 한반도의 3배이고 인구도 2600만 명 정도 돼요. 현재 우리 교민이 240여 명 사시는데 대부분 선교사나 사업하는 분들이죠. 신기한 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아시아적 특성이 많이 보여요. 사람들도 동남아 사람 같고, 쌀이 주식이라 벼농사하는 농부들도 보이고, 밥 먹고 나서 숭늉 마시는 것도 우리 옛날 모습이죠. 그동안 대사관이 없었다가 2년 전에 대사관을 열고 2018년 2월에 제가 첫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육아휴직은 부인이 스위스에서 근무할 때 한 거죠? “아내가 스위스 발령을 받아 제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으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미 지난 2008년 첫째가 태어났을 무렵 콩고민주공화국에 발령받아 2년간 홀로 산 경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래서 육아휴직을 결심했죠. 이젠 입장이 반대가 됐어요. 아내가 본인의 커리어를 희생하고 지금 마다가스카르에 휴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미안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 결심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주변에서 예외적으로 보긴 했죠. 한참 중견 커리어 레벨에 있을 때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승진이나 이런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아내의 육아 전담에 대해 그동안 별로 문제의식도 없었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죠. 엄마가 커리어 희생하고 육아휴직하고 다 그러잖아요. 저도 그리 생각했는데 해외 나갈 시점이 됐을 때 주위에서 농반 진반으로 아내가 일 잘하는데 왜 내 커리어만 챙기느냐는 충고를 들었어요. 맞는 말인 거 같고, 무엇보다 같은 외교관인 아내에게 두 아들의 독박육아를 시킨 미안함이 있었죠. 그동안의 미안함을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다 싶어 결심했죠. 막상 육아휴직을 하고는 주위에서 격려도 많이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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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상징으로 통하는 바오밥 나무

외교보다 어려운
학부모 모임

실제로 주부 역할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주부 역할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해보니 정말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부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주부는 일단 노동 강도가 상상을 초월해요. 오전 6시 이전에 깨어 아침 준비하고, 도시락도 싸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 안 살림 이것저것 하다 보면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없어요. 사무실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커피 한 잔 정도 여유는 낼 수 있잖아요. 애들까지 능숙하게 멀티태스킹을 하는 프로 주부들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해요. 특히 해외에서 아이들 적응시키려면 학부모 모임에도 끼어야 하는데 이게 사실 외교보다 더 어려워요. 공식도 없고 어디 업무협조 받을 데도 없고. 스위스 엄마들 틈에 끼어 친한 척하면서 아이들 적응시키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하하. 2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주부들의 세계에 개안(開眼)하게 된 거죠.”

지금은 다시 밖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전과 달라진 게 있나요? “일단은 부엌이 친숙한 공간이 됐어요. 지금도 아침과 주말은 제가 해요. 더 중요한 건 제가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는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그걸 애들도 맛있게 먹는 게 너무 좋아요. 아내도 좋아하고요. 요즘도 애들 좋아하는 갈비탕, 곰탕 해주면 잘 먹어요. 배고프면 아빠를 찾고 ‘아빠, ○○ 해줘’라고 말할 정도는 됐어요.”

곰탕은 조리 과정이 좀 복잡할 텐데요? “주말에 몰아서 하면 돼요. 돼지갈비도 감자탕식으로 하면 아이들이 좋아해요. 너무 맵지 않게요. 마다가스카르에는 한우 대신 물소지만 물소 갈비로도 비슷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주방용품도 꼼꼼하게 살펴보게 됐어요. 프라이팬 종류도 용도에 맞게 다 체크하고… 주부를 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내가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고 재미있어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된 점은 정말 좋은 변화죠.”

주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겠네요? “당연하죠. 주부는 사회에서 가장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아니, 직업 축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주부 노동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주부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노동에 대한 보상이 없으니까 무료 봉사활동 정도로 취급되는 거죠. 그래서 ‘주부기본소득제’ 같은 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봐요.”

책을 낸 계기도 그런 인식 변화를 위한 것이겠죠? (임 대사는 전업주부로 산 자신의 경험을 담아 <스위스 아이처럼 스위스 아빠처럼>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하루에 몇 시간씩 생각나는 대로 썼어요. 이런저런 경험과 시행착오를 일기 비슷하게 기록해뒀거든요. 책을 낸 건 아내가 아이디어를 줘서 시작한 거예요. 아빠들이 요즘 육아휴직을 많이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처럼 특이한 경험을 기록해서 전파하면 좋지 않겠냐고 권했어요.”

책이 나오고 주위 반응이 어떤가요? “신선하다면서 좋아해요. 외교부 내 도서관에도 외교관들이 쓴 책이 비치되어 있는데, 대개 국제 정치정세 이런 책들이잖아요. 제 책이 특이해서인지 대출순위가 높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전업주부나 아이 키우는 여성들의 응원이 많아요. 전업주부의 어려움에 대해 너무나 공감한다는 반응이 많아요. 하루 종일 바쁘잖아요. 제일 먼저 깨서 아침 준비하고 가장 늦게 다음 날 찬 준비하는 게 주부잖아요. 거기다 아내는 바쁘다고 집에 와서도 계속 일하고. 그게 쌓여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죠. 그런 것들을 적나라하게 쓰니까 주부들이 대리만족이랄까, ‘남자들도 한번 당해봐라, 이게 얼마나 힘든 건지’ 이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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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안 보고
남녀가 육아휴직 쓸 날 기대

아직 우리나라는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우리 사회에서 남성 육아휴직은커녕 육아휴직 제도 자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은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의 육아휴직 경험을 책으로 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솔직히 고민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상향 평준화되어 어느 직장에서나 눈치 안 보고 남녀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날이 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감히 책을 냈습니다.”

책을 낸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임 대사는 책 인세 수입은 마다가스카르의 어린이 복지사업에 전액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임 대사답게 부임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가서 보니 너무나 안타까운 게 많은 나라더라고요. 세계 네 번째 최빈국인데,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 나라보다 더 못사는 나라죠. 인구의 80% 정도가 하루 2000원 이하의 생활을 해요. 지방에 내려가면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마음이 아파요. 책이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지만 책을 사는 독자들이 마다가스카르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셈이죠. 마다가스카르는 지리상으론 인도양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관문입니다. 동식물의 90%가 마다가스카르에서만 발견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죠.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에 원조기관이 나오고 엄청 활발한 외교활동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아직 신설 공관이라 이것저것 할 일이 많지만 민간에서도 조금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외교라는 게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독자 여러분도 마다가스카르에 관심을 가지고 대사관 페이스북이라도 한번 들여다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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