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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의상감독 이진희 디자이너

2018-12-11 00:57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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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북촌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 하얀 건물에 멋스러운 붓글씨로 쓴 간판이 보인다. 의상디자이너 이진희가 론칭한 브랜드 ‘하무(HAMU)’ 매장이다. 세련된 우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상에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옷들이 멋스러운 공간과 기분 좋게 어우러져 있다.
이진희 디자이너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의상감독으로 대중에게 먼저 알려졌다. ‘박보검, 송중기, 김수현이 입은 한복을 만든 사람’이라고 알려져 한복 디자이너로 소개될 때가 많지만, 20여 년간 무대미술과 영화의상 작업 등을 통해 디자인 스펙트럼을 넓혀온 디자이너다. 최근에는 영화 <안시성>의 의상감독을 맡아 고구려 시대 의복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옷과 함께 부대껴온 그에게 브랜드 론칭은 자연스러운 목표였다. 본인만의 철학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5년여 만에 꿈을 완성했다.

꼼꼼한 성격답게 공간에 공을 많이 들였다. 론칭 3주째,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면서 소개한 공간은 구석구석 개성이 깃들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경옥과 함께 작업한 결과다. 1층에는 실내 정원 겸 갤러리 공간과 의상을 제작하는 작업 공방을 들였다. 사무 공간이자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쇼룸과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2층은 소재별로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품위 있는 그의 옷 스타일과 꼭 닮았다.
 

물의 춤, 하무(河舞)
자유롭고 야성적으로 물이 춤추듯

이진희 디자이너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단아하고 참하다. 대화를 나눠보면 목소리 톤도 높지 않고 조용한 편이다. 그런데 본인은 “일할 때 성격은 정반대”라고 말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야성적인 면도 많단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스케일이 크고 굵직한 작품에서 무대미술가, 의상디자이너로 활동하려면 추진력과 파워는 필수 덕목이다. ‘하무’라는 브랜드 이름은 그런 그의 성향을 토대로 탄생했다.

“브랜드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름 짓는 데도 못지않게 오래 걸렸어요. 저를 어디에 가두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름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면 작업에도 더떤 틀이 생기잖아요.”

‘하무’는 물 하(河)와 춤 무(舞)의 조합이다. 글자 그대로 ‘물의 춤’이라는 뜻이다. 물이 흐르는 듯 자유롭고 야성적이며 생명의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작업 방식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제가 부산 사람이라 물을 좋아하기도 해요.(웃음) 혈기왕성했을 때는 태풍이 오면 일부러 바다에 나가 파도가 들이치는 걸 기다렸다가 보기도 했어요. 생명력이 있고 야성적이도 한, 자유로운 에너지가 좋았어요. 옷을 통해서도 그런 야성성을 깨우고 싶어요. 저는 언어가 아닌 기운으로도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옷에도 기운이 있죠. 물의 춤처럼, 생명력과 에너지를 브랜드에 담아가는 게 목표입니다.”

한복 작업을 많이 한 탓에 그가 한복 브랜드를 론칭한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물론 한복은 그에게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한복을 모디파이드한 옷을 주로 다룬다.

“한복 원단이 유니크하고 우아한 매력이 있는데, 현대 옷으로 제작하려면 후 가공할 때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제 작업은 그 한계를 넘었으면 좋겠어요. 방향은 열려 있죠. 시작은 한복으로 했지만, 그다음은 중세로 갈 수도 있고요. 20년간 무대의상을 하면서 경험한 많은 세계를 통해서 하무의 아이덴티티를 양식화해서 풀어가는 게 앞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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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구분, 사이즈, 불필요한 장식 없는 옷
소재에 집중하며 옷의 본질 찾는다

하무의 옷에는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성별 구분이 없고, 사이즈도 없다. 불필요한 장식도 없다. 한복을 토대로 옷의 본질, 원형을 찾아가는 디자이너의 성향이 이런 결과물을 만들었다.

“디자인을 할 때 마이너스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초창기에는 중세 로코코나 바로크 양식이 좋아서 화려한 걸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은 빼기 작업을 하고 제 철학을 입히는 작업이 즐거워요.”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재다. 편한 라인의 소재가 옷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무대의상 작업을 하면서 소재의 힘을 더욱 크게 느꼈다.

“소재가 주는, 물성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거친 마에서 오는 에너지와 실크에서 오는 에너지가 다르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이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입었을 때 불편하면 옷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복에서 모티프를 딴 그의 옷은 소매 부분이 특히 편안하다.

옷에 관해서는 확고한 철학을 완성했는데, 패션 시스템을 잘 모르고 시작한 일이라 브랜드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내심 ‘브랜드가 어렵겠어?’ 하고 시작했는데, 너무 다른 시장이더라고요. 패션업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조언도 많이 들었죠. 다 듣고 느낀 결론은 트렌드에 맞추고 쫓아가려고 하다 보면 결국 무너지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디자인하는 것이 좋고, 옷을 짓는 것도 좋아요. 체하지 않게 오래 하는 것이 목표라 모든 것에서 제 방식을 찾아 맞춰나갈 생각이에요. 살아남으려고요.”

그런 생각 중 하나가 시즌제를 없애는 것이다. 매 시즌 의무적으로 옷을 생산해내기보다는 본인의 호흡대로 천천히 가고자 한다. 어떤 시즌에는 창의적인 작업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상황을 열어두겠다는 심산이다.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콜라보 작업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오프닝 파티할 때 이곳에서 행드럼 공연을 했었어요. 제가 가르치는 한예종 제자들은 춤을 췄고요.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런 자유로움이 좋았어요. 공간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연주나 전시 등 아티스트들과 다양한 협업을 해보고 싶어요.”

의상감독 출신인 이진희 디자이너의 행보는 특이한 편이다. 그와 같은 길을 걸은 디자이너가 국내에는 없다. 그는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비슷한 해외 디자이너로 크리스찬 라크르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꼼데가르송 등 역사주의 패션디자이너들을 꼽았다. 과거에서 모티프를 따와 해석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과 함께 이진희 디자이너와 하무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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