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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디자이너 지춘희

2018-10-12 09:53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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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이 가장 사랑하는 디자이너이자 청담동 며느리 룩을 만든 장본인.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가 홈쇼핑 채널인 CJ ENM 오쇼핑에 ‘지스튜디오(g studio)’를 론칭했다. 명품 디자이너의 새로운 행보에 뜨거운 관심과 반응은 첫 방송 45억 매출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세 번째 방송을 선보인 날, 청담동 미스지콜렉션 사옥에서 지춘희 디자이너를 만났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트렌드가 모여 있는 청담동 명품 거리. 미스지콜렉션 사옥은 오랜 시간 단정하고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늘 그대로, 요란하지 않지만 눈길이 오랫동안 머무는 것이 기본에 충실한 여성복이라 불리는 지춘희 디자이너의 옷과 닮았다.

한국 패션계에서 디자이너 지춘희의 존재감 역시 그 결을 같이한다. 한 벌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미스지콜렉션은 일찍이 수입 명품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여성의 선을 가장 잘 아는, 선이 다른 옷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덕에 갤러리아 명품관에 처음 입점한 한국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도 갖게 됐다.

지춘희 패션을 먼저 알아본 것은 당대 톱 여배우들이다. 배우 심은하가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그의 옷을 입으면서 ‘청담동 며느리 룩’이 탄생했고, 이나영과 이보영은 그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려 ‘지춘희 패션’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한몫했다. 김성령, 이정현, 이미숙, 김윤아 등 그의 옷을 사랑하는 여자 연예인이 많다. 그들은 지춘희 패션을 두고 ‘여자의 로망을 건드리는 옷’이라는 찬사를 내놓으며 ‘지춘희의 뮤즈’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이끌어오던 지춘희 디자이너가 홈쇼핑에 진출했다. CJ ENM 오쇼핑이 패션의 명품화를 선언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시대의 흐름을 눈여겨보던 지춘희 디자이너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반응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이 쏟아졌고, 첫 회 방송에서 주문금액 45억 원을 달성했다.
 

첫 회 방송 주문금액 45억
고급 소재와 선을 그대로 살린 지스튜디오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좋아요. 내 옷을 많이 입어주면 좋죠. 연기자가 자신이 연기한 드라마가 히트 치면 좋잖아요? 그런 심정이에요.

첫 방송 매진에 45억 주문금액은 경이로운 기록이에요. 홈쇼핑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프리미엄 시간대는 아니었거든요. 패션 취약 시간대인 일요일 오전에 방송했는데, 주말에 집에서 쇼핑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홈쇼핑의 생리는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매진되는 걸 보면서 가능성은 봤어요. 홈쇼핑 채널에도 프리미엄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앞으로도 홈쇼핑이 패션 채널의 주도적인 역할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춘희와 홈쇼핑, 낯선 조합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제안은 오래전부터 받았어요. 앙드레김 선생님이 시작하시기 전부터 속옷 제안을 받았었어요. 다만 그때는 홈쇼핑 시장이 낯설었고, 지금처럼 안정되지도 않았을 때라 그냥 넘어갔었죠. ‘홈쇼핑에 브랜드가 들어가면 이름을 파는 게 아니냐?’ 배짱을 부리기도 했고요.(웃음) 마음을 연 계기라면, 홈쇼핑이라는 것이 이제는 다른 창구가 됐잖아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어요.

어떤 부분이 긍정적인가요? 유통 채널이 백화점밖에 없어서 다른 경로를 살펴보고 있었어요. 저도 답답한 면이 있었죠. 일정 계층만 올 수 있었으니까요. 세컨드 브랜드 론칭을 두고 들쑥날쑥 집었다 놨다 했었는데, 그런 와중에 홈쇼핑을 가장 긍정적으로 봤어요. 지금 패션은 판매, 영업, 유통 환경이 죄다 바뀐 상황이잖아요. 예전에는 여행을 가려면 이것저것 관련된 책을 사서 공부를 했는데 요즘은 구글 하나만 보면 되잖아요. 음악도 블루투스로 들어요. 전에는 좋은 오디오를 사서 들었는데, 지금은 좋은 스피커를 사놓고 쳐다보지도 않아요. 이런 생활의 변화를 보면서 홈쇼핑이 괜찮은 채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용적이고 일상과 가깝고, 게다가 집까지 갖다주고요.

‘지스튜디오’의 콘셉트는 뭔가요? 기존 ‘지콜렉션’의 느낌은 가져가요.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원단이에요. 좋은 원단을 쓰는 데만 신경 썼습니다. 낮은 가격으로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오래 함께해온 업체들이라서 가능했어요. 이탈리아 톨레뇨 같은 회사들이죠. 아무리 홈쇼핑 시장이 좋아도 (단가 문제로) 선뜻 참여하기 어려운데 기존 미스지콜렉션과 거래하던 쪽이었고, 한국 사무실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준 부분도 컸어요.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이나영 씨가 모델로 등장한 것도 눈길을 끌었어요. 이나영이 홈쇼핑 광고에 등장한 것은 홈쇼핑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치를 한발 업그레이드해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죠. 가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어요. 홈쇼핑이 가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죠.

타깃층은 30~50대 여성인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구매 연령대를 분석했더니 젊은 사람들 비율이 의외로 높게 나왔대요. 특히 서울지역에서 30~40대 연령이 많아서 고무적이에요. 홈쇼핑 내 젊은 브랜드들보다 연령대가 낮다는 점이 의미 있었습니다. 브랜드가 오래되면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홈쇼핑을 이용하고 싶어요.

홈쇼핑을 이용해보신 적이 있나요? 제가 속옷을 좋아해요. 언젠가는 선이 예쁜 속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요. 홈쇼핑 속옷에도 관심이 많아서 모든 브랜드를 다 사봤어요. 홈쇼핑을 열심히 보는 편이에요. 속옷을 수십 개 배달시켜보고,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도 홈쇼핑에서 산 게 많아요. 최유라 씨 나와서 설명하면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힘이 있잖아요.(웃음) 홀딱 넘어가서 사게 되죠.

홈쇼핑의 생리를 잘 아시겠는데요? 그게 지스튜디오에도 도움이 됐겠고요. 제품으로 규격화되어 있는 게 아닌 이상 받아보면 실망스러운 것도 있어요. 반품하는 것도 생기고요. 받았을 때 실망스럽지 않게 하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재료를 정직하게 쓴 것도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 역할은 거기까지예요. 패션쇼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옷을 만들고 나면 무대 뒤에서 매무새 봐주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에요. 이후에는 잘하든 못 하든 그건 모델의 몫이에요. 모델이 잘하기를 뒤에서 응원해주는 것밖에 할 게 없어요. ‘너 최고야, 예뻐!’라는 마음으로 응원하죠. 홈쇼핑도 마찬가지예요. 함께하는 사람이 잘해야죠. MD, PD의 몫이지, 제 손을 떠난 것들이에요. 저는 다음 기획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해야죠. 뭘 더 잘할 수 있나, 개선해야 하나,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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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시작된 지춘희 스타일
여행으로 얻은 영감이 미감 만드는 절대 자산

‘품위 있다, 우아하다, 여성스럽다.’ 지춘희 패션을 사랑하는 뮤즈들은 지춘희 스타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유행처럼 생긴 ‘청담동 며느리 룩’이라는 말도 일맥상통한다. 한 끗 차이의 품위와 우아한 분위기의 여성스러운 옷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지춘희의 자연에서 얻은 미감과 영감이 더해진 결과다.

지춘희와 청담동 며느리 룩은 실과 바늘처럼 붙어 있어요. 심은하 씨가 입었을 때부터 그렇게 불린 것 같아요. 저는 대놓고 섹시한 건 싫어요. 감췄는데 은근히 섹시하고 여성스러운 게 좋아요.

디자이너 지춘희의 패션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선과 색 그리고 소재인 것 같아요. 제가 여자니까 포인트를 잘 알지 않을까 싶어요. 여자만 공감할 수 있는 취약점을 커버하면서 동시에 여자만의 감성을 짚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공주일 수도 있고 소녀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인데, 최대한 잘 표현하려고 해요. 색을 많이 쓰는 편이고, 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지춘희의 미감은 타고난 건가요, 후천적 노력의 결과인가요? 미감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훈련해서 잘하는 사람이 있고, 천부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충북 청주가 고향인 저는 자연에서 풍요롭게 자랐어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많이 누린 것이 자산입니다. 지금 저를 버티게 하는 건 여행이에요. 여행을 통해 많이 체험하면서 영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사회현상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그걸 패션에 반영하기도 하고요. 패션은 사회현상이에요.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시간, 이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혼자 다른 기분을 낼 수는 없잖아요. 패션은 흐름을 많이 타기 때문에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를 알아야 트렌드도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책임감으로도 느껴지네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건 신문을 열심히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래된 습관이에요. 지금은 많이 줄여서 신문 4개만 봐요. 그런 과정을 통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세대 간에 구분 짓지 않고,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도 다 같이 살아가는 걸 인지해요. 모두 같이 일하고, 이 사회를 구성하길 바라고 책임감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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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아는 사람, 유행을 이끄는 사람
멋과 맛을 아는 사람

안목이 뛰어난 사람, 그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고, 유행을 선도할 수밖에 없다. 여행을 위해 일한다는 지춘희에게는 패션 외에 여행, 미식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평소에는 뭘 하고 지내세요? 잘 놀아요.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해요. 새로 생긴 식당, 맛있는 곳, 트렌디한 곳을 잘 알고 사람들에게 소개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유행 퍼트리기 좋아해요. 요즘 남산, 성수동이 재미있더라고요. 모르는 동네, 재미있는 동네 열심히 다니려고 합니다.

미식가로도 유명하시고요. 우리나라에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았을 때도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 찾아다녔어요. 지금은 음식점이 너무 많아졌지만요. 직접 요리도 해요. 시장에도 자주 가고요. 봄철에 나물 날 때는 나물 사러 다니고, 이것저것 겨울 해풍에 말린 물메기도 사고 그래요. 연중행사처럼 하는 일이 개두릅을 얼려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 거예요. 꿀 나오는 철에 벌집째 주문해서 그걸로 디저트를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해요.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에 관한 지식이 많은 편이에요. 수산시장에도 자주 가고 가락시장, 하나로 마트, SSG, 마켓컬리, 네이버 페이 산지직송도 많이 이용해요. 맛있는 거 찾아서 먹으러 다니고, 정보를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제일이죠. 일하는 사람들 만나서 밥을 먹다 보면 제철 음식을 먹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여름 민어, 겨울 대구, 봄에는 나물처럼 계절별로 싱싱한 것들을 챙겨서 먹어요. 집에 손님들이 오는 것도 좋아해요.

뮤즈라 불리는 여배우들과도 자주 소통하겠어요. 자기 삶을 열심히 살고,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친구들이 좋아요. 이나영, 김성령, 이정현 등과 자주 어울려요. 같이 여행도 다니고요. 저는 인연이 되어서 알면 서로 노력하는 편이에요. 노력하는 사람들만 곁에 남죠.

옷 만드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부지런하시네요. 뭐든지 열심히 해요. 여행도 열심히 다니고, 쉬는 것도 바짝 잘 쉬어요. 시간별로 정해서 잘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사람이 옷만 팔아요. 외국에서 쇼를 할 일이 있어도 여행지를 즐기려고 노력해요. 일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여행이 삶의 원동력이군요. 제일 좋아하는 게 여행이에요. 그걸 위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은 데 많이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곳에서 자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에요. 제 목표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여행 기다리면서 자료 찾는 시간도 좋아합니다. 전에는 관련 책을 모으는 게 일이었어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출판되지 않은 책을 구해서 보고 가기도 했어요. 요즘은 매일 밤 구글 지도를 찍어요. ‘여기 가서 이 식당 가야지’ 하면서 찾아보는 시간이 재미있어요.

최근 다녀온 곳 중에서 좋았던 곳이 있다면요. 미얀마 좋았어요. 색감이 아프리카 느낌이 나더라고요. 여행이란 게 남의 나라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이 사는 거 보는 거잖아요. 그들의 독특한 삶이 좋았어요. 여름휴가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 갔었는데 거긴 와인이 좋았습니다. 점점 자연 쪽으로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뭐든지 열심히 즐겼던 것이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인가요? 열심히 많이 보고 많이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한 분야에서 일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것이 결국 성공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인생을 꿈꿔본 적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단 한 번도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의심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건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밥 먹듯이 해왔기 때문에 후회도 없어요. 워낙 꼼지락거리고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이거(패션 디자이너) 안 했어도 무언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어디선가 90세까지 일하겠다고 하셨어요. 그 마음은 변함이 없으신가요? 디자이너로서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때까지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이에요. 늘 움직임을 읽는 사람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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