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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도 살 만해!

2018-08-20 10:28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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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거리도 많은데 날씨마저 덥다. 그때 뇌리를 스친 문장, ‘마음 바캉스’.
그래, 비록 육신은 묶여 있지만 마음만이라도 호사를 누리자. 그런데 이 바캉스, 어떻게 떠나는 거지? 티켓을 끊기는 쉽지 않지만 한번 끊으면 평생 무료로, 언제든 다녀올 수 있다는데….
너무 피곤하다. 일만 해도 피곤한데 퇴근하면 육아해야지, 남편 밥도 차려야 한다. 뿐만 아니다. 상사 뒷담화에 맞장구도 쳐야 하고, 사내 파벌을 잘 분석한 다음 적절히 라인도 타야 한다. 남편이 여자인 친구와 다정하게 안부를 주고받진 않는지 휴대폰도 몰래 봐야 하고, ‘저장’을 누르지 않아 20쪽짜리 보고서가 날아가는 꿈도 꿔야 한다. 그래서 자도 피곤하다. 마음처방전이 절실하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그를 만나기 전 주변 워킹맘 10인에게 ‘고민거리’를 물었다. 수많은 얘기가 쏟아졌다. 그중 공통분모를 추렸다. 주제는 크게 남편과 조직생활로 나뉘었다.
 

요즘 너무 덥죠. 안 그래도 잠을 잘 못 자는데, 열대야 때문인지 더 심해졌어요. 뇌가 있는 힘을 다해 깨어 있으려고 해서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우리 뇌는 생존에 필요할 때만 잠을 재우지 않거든요. 전쟁터에서 적을 감시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것처럼 뇌가 과잉 각성 상태인 거예요. 오늘 못 자면 어떡하지, 하는 불면에 대한 불안감이 뇌를 더 각성시켜요. 그럴 땐 ‘오늘 밤새지 뭐’와 같은 역설적인 접근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꿈은 잠을 잘 못 자서 꾸는 건가요? 매일 색깔 꿈을 꾸는데요. 자주 꾸는 것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 꿈이에요. 제가 누른 층에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레퍼토리죠. 어떤 때는 지하 800층까지 가요. 총천연색 꿈은 힐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잠을 잘 못 자서 꿈을 꾸는 건 아니고요, 꿈은 모두가 꿉니다. 기억을 못 할 뿐이죠. 악몽은 일상과 비슷할수록 안 좋게 봅니다. 수능 날 컴퓨터용 사인펜 안 가져온 꿈이 대표적이죠. 반면 SF와 가까울수록 잘 잔 거예요. 그만큼 깊이 들어갔다는 거거든요. 그럴 땐 그냥 공짜로 재밌는 영화 한 편 봤다고 생각하면 되고요. 엘리베이터 꿈은 불안감의 발로로 보이는데, 지하 800층이면 SF 요소가 있으니 편하게 여기세요.

한 지인은 며칠 전 꿈에 남편의 전 여친이 나왔대요. 결혼 5년 차인데, 질투인지 아직도 그 여자가 너무너무 밉다고 하더라고요. 허허. 풋풋하네요. 저한테 오시는 환자분들은 남편이 미워 죽겠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분은 남편한테 애정이 있네요. 질투는 애정도와 관계가 깊거든요. 전 여친이 밉다는 건 남편을 사랑한다는 증거예요.

나름 심각해요. 소셜미디어로 전 여친 근황을 찾아보기도 하고 무척 괴로워하거든요. 아이고! 보지 마세요. 남편 휴대폰도 그렇고, 그런 거 보지 마세요. 어떤 주부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일기장을 봤는데, ‘엄마 밉다’고 씌어 있었다죠. ‘즉문즉설’에 나와요. 법륜 스님이 대답했죠. 남의 일기장 보는 건 나쁜 거라고.(웃음) 저도 제 아내 휴대폰 평생 안 봅니다. 적절한 공간을 존중해야 해요. 마음속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가지 욕구가 존재해요. ‘사랑해서 가까이 있고 싶다’와 ‘(너무 가까우면) 부딪치니까 자유롭고 싶다’. 함께하면 자유가 구속돼 떨어지고 싶고, 자유를 얻으면 외로워져 같이 있고 싶어요.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좋은 말씀이긴 한데, ‘그 여자를 잊는 법’을 꼭 여쭤봐달라던데요. ‘전 여친이 밉다’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아,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있구나’로 바꿔봐요. 그 감정을 1인칭으로 보지 말고 좀 떨어져서 전지적으로요. 그래도 안 되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꼭 좋은 감정만 갖고 사는 게 인생의 묘미가 아니거든요? ‘내가 살면서 질투라는 것도 한 번 해보네. 그래, 이런저런 감정을 가지고 사니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좀 더 버라이어티해지겠군!’이라고요.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질투에 끝까지 몰입해보세요. 그 여자를 정말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질투해보세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지겨워질 겁니다.(웃음)

아내가 자신의 휴대폰을 몰래 보는 걸 남편이 알아챘을 때 남편 기분은 어떨까요? 애정이 있는 부부라면, 아내가 어느 정도 의심을 해도 귀엽게 봐줄 수 있겠죠. 약간 피로감은 들겠지만. 그런데 사이가 안 좋은 부부인데 그 모습을 들켰다? 그러면 변호사를 찾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남편이 인정욕구가 지나쳐 고민이라는 사연도 있었어요. 왼손이 하는 거 오른손이 모르게 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공치사하고 칭찬받으려고 해서 피곤하다고요. 남자들은 칭찬받고 싶어 하죠. 등수에 예민하거든요. 여성은 공감에 예민하고요. 예를 들어 아내가 ‘여보, 월급이 너무 적어요’라고 했다고 쳐요. 아내는 ‘적은 월급임에도 내가 쪼개서 살림을 잘하고 있다’는 걸 공감받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월급의 양이 적다’는 것만 듣고 ‘돈을 더 벌라는 얘긴가’라고 받아들이죠. 아내한테 자꾸만 인정받으려고 해서 피곤한 부분은 남편과 얘기해서 적정선을 찾아야죠. 언젠가 한번 칭찬을 잘해줬었나 봐요. 서비스는 한번 늘이면 줄이는 게 힘들기 마련이죠.
 

# 완벽할 필요 없어!

대부분의 워킹맘이 그렇다. 회사와 가정 어디에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다. 자연히 자괴감이 든다. 어디에도 몰입하지 못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을 앓고 있다. 다른 말로 번아웃. 윤 교수는 이를 “마음과 연애를 해야 하는데 부하 직원처럼 부려먹기만 해서 마음이 파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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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일하는 티’를 좀 내는 게 좋은가요? 예를 들어 상사가 ‘요즘 힘들지?’라고 했을 때 ‘일이 좀 많긴 하네요’ 식으로요. ‘아이고, 아닙니다요’가 반사적으로 나와서 고민이라는 친구도 있어요. 그게 바로 마음한테 갑질하는 거예요. 상사가 보면 싫어할 수도 있지만, 저는 ‘봉급 받을 때 미안한 마음으로 일하라’고 말합니다. 생색을 안 내면, 상대방은 기대치를 올려버리거든요. 100을 할 수 있지만 70을 하라는 거죠. 70을 하다가 80을 하면 칭찬받는데, 100을 하다가 80을 하면 욕먹거든요. 그게 조직생활의 처세술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으로도 좋아요.

상사가 자꾸 다른 상사의 뒷담화를 해서 곤란하다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동조하지 않으면 배제될 것 같고 그렇다고 같이 욕할 수도 없고…. 대충 맞장구쳐주고 있지만 너무 피곤하대요. 뒷담화를 같이 하면 조폭 수준의 동질감이 형성되죠. 나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내가 올라가거나 남을 깎거나. 후자가 더 쉽죠. 맞장구를 치면 당연히 피곤하죠. 누군가 공감해주는 덴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뒷담화라는 게 술, 담배 같은 거라서 좋은 거 하나 없는데, 또 끊기는 쉽지 않아요. 거리를 좀 두거나 그게 어려우면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수밖에 없어요. 조직생활에서 월급은 반은 그런 몫의 대가라 생각해요.(웃음)

프레젠테이션이 잦은 회사에 다니는 한 주부의 이야기예요. 대중 앞에 서면 언제부턴가 목소리가 벌벌 떨린대요. 원래는 스티브 잡스급이었는데요. 어느 날 유명 가수가 찾아와서 상담을 했어요. 무대공포증이 있다고요. 그분이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건 아무도 상상 못 할 거예요. 시상식 자리에서도 너무 떨린다고,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할 때는 전혀 안 그러는데, 제가 취미로 밴드 활동을 하거든요. 언젠가 전자기타를 치는데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더라고요. 연주를 아주 망쳐버렸죠. 괜찮다가 갑자기 그렇게 됐다면,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건 아닌가 싶습니다. 완벽하려고요. 완벽주의는 자기 불안의 증거예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되 평가는 후해야 해요. 둘 다 엄격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어요. 평소 마음의 기대치를 낮추고, 성공을 넘어서 일 자체에 가치를 둘 필요가 있어요.

워킹맘 10년 차인 어떤 분은 싱글 시절 업무 성과와 지금을 자꾸 비교하게 된대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상 그러질 못하니 조바심이 난다고요. 스스로 채찍질하고 계시네요. 채찍질이 바로 마인드컨트롤, 즉 마음조정이에요. 에너지를 써서 행동화하려는 의식이죠. 예컨대 ‘초심을 지키자!’ ‘긍정적으로 살자’와 같은 다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분은 ‘예전에는 미친 듯이 달렸는데’ 하면서 스스로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는데, 지금은 열심히 달려야 할 때가 아니라 마음이 ‘너 지금 충전할 때야’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중이에요. 뇌과학 분야의 한 학자는 이렇게 설명했어요. ‘뇌’라는 시장(市場)에 ‘마음조정’과 ‘마음충전’이라는 회사가 있어요. 이 둘은 협력사가 아니라 경쟁사죠. 뇌라는 시장에서 서로 점유율을 높이겠다고 해요. 여기서 마음조정이 점유율을 높이면? 번아웃이 오는 거죠.

답보 상태라 여겨져 ‘달려야 한다’고 각성하고 있지만, 사실은 쉴 때라는 거죠. 휴가를 다녀오거나 아니면 아예 퇴사를 하는 건 어떨까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쉰다’로 생각하면 안 돼요. 물리적 시간만 확보된다고 쉴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일을 안 하면 자동충전이 되는 게 아니에요. 머릿속에서 일 생각을 하고 있으면 쉬어도 피곤한 거거든요. ‘충전’이라는 개념을 물리적 시간에서 찾지 마세요. 한 환자는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치열하게 달려서 대형 로펌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더래요. 회사가 워낙 크니까 일도 많고 힘든가 보다 싶어서 작은 로펌으로 옮겼대요. 더 힘들더래요.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뇌가 쉬어야 하는 상황인데 회사를 옮긴 거죠.
 

# 소탈한 감성의 묘

마음 바캉스는 언제 떠나는 게 좋은가요? 일과 중 가장 바쁠 때 쉬어 가는 차원으로? 아니면 잠들기 전에? 시간을 정해놓고 ‘떠나자’ 해서 떠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충전 장치가 돌아야 가능해요. 자주 떠나는 게 좋고,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훈련을 해보세요. 하루 10분, 20분이라도 내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길 추천합니다. 보통 자연, 문화,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충전이 잘 이뤄져요. ‘행복’은 본질적인 존재의 목적이에요. 행복학자들은 행복이 생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행복하자’ 한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행복은 반응이라는 거죠. 행복이 반응처럼 일어나려면, 결국 연구 개발이 필요한 거예요. 내가 뭘 할 때 행복감이 잘 반응하는지. 근데 또 이걸 숙제처럼 여기면 안 돼요. 한 환자분이 뭘 하면 행복할지 생각하고, 찾아서 하고 있는데 재미가 없대요. 그걸 숙제처럼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음충전을 목표로 삼으면 마음조정이 일어나 더 피곤해요. 마음충전은 결과여야지 목표로 삼으면 매우 어려운 목표가 돼버리죠. 

교수님도 마음 바캉스를 떠나세요? 매일 새벽에 수영을 합니다. 그게 정신과 의사 일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일할 때보다 수영할 때 더 행복감을 느끼거든요. 하하. 지금은 완전히 시스템화됐어요. 수영이 저한테는 일과나 숙제가 아녜요. 자동으로 행복해집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어떻게 보시나요? 법륜 스님 말씀도 잠깐 하셨지만, 의학과 영적인 건 양극단에 있으면서도 왠지 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결코 양극단이 아니에요. 실제로 영성의학이라는 것도 있고요. ‘마음충전’을 종교적, 철학적으로 바꾸면 ‘수용’이거든요. 의식적으로 좋게 받아들이는 ‘조정’이 아니라 그냥 흡수되는 수용이요. 인생의 상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삶의 여유죠. 건강한 영성을 가진 사람에게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있다는 건 그 사람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좋은 관계’가 행복을 이루는 제1 원칙이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불신이 있을 수 있는데,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신이 있다는 걸 믿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따봉이죠. 건강한 영성은 정신의학적으로도 매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 ‘수용’이 사람을 허무주의로 빠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조건적인 받아들임? ‘원래 다 그런 거야’ 같은 거잖아요. 약간의 허무주의는 외려 도움이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면, 그때 에너지가 올라갈 수도 있거든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에 보면, 일본에서 행복한 일이 없는데 20대의 행복지수가 올라간 거예요. 이유를 살펴보니 청년들이 수용단계를 거쳐 도인(道人)이 된 거죠.

내려놓자, 충전이 되는 거군요. 힘들 땐 긴 글을 읽는 것도 벅찬데요. 그때 신속하게 떠올릴 만한 글귀나 구절 있을까요? 교수님이 마음에 새기고 있는 진리 같은 것도 좋고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거예요. 기대치를 낮추는 거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주인공 시점에서 벗어나서요. 멀리서 관객으로 내 삶을 바라보면서 ‘내 인생도 살 만하네. 내 인생만 힘든 것도 아니야. 원래 인생은 이런 거였어’라고 해보는 거죠. 기대치를 낮추고 소탈한 감성을 가질수록 강한 긍정성의 충전이 일어납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 시대 고민해결사로 통한다. 각종 라디오, TV, 강연을 통해 답답한 사람들에게 속 시원한 심리 처방을 내려줬다. 저서로는 <윤대현의 마음성공> <마음 아프지 마>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지난 6월 펴낸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는 발간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나를 무시하는 직장 후배 어떡하나요, 툭하면 입 닫는 남편 때문에 복장 터져요, 과거 트라우마에 아직도 매일 시달립니다” 등 약 50가지 고민과 처방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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