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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열의 k글로벌 아티스트를 찾아서 08]기호와 제스처의 이중주, 옥정호

2018-08-17 09:21

글 : 배기열 아트식스 예술감독(부사장), 트라바움창의아트센터 대표관장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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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가 천착한 마임극(mimiqu)에서 제스처는 신체적, 음성적, 감정적 동작 또는 표현을 뜻한다.

제스처는 ‘몸짓’ ‘손짓’ 등으로 표현될 수 있으나, 단순히 몸이나 손의 움직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심리적 과정의 표현이고 어떤 대상에 대한 신호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다른 유기체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하여 취하는 자극으로서 행위이기 때문이다. 제스처를 취하는 이유는 어떤 대상의 반응을 이끌어 그 의미가 성립된 반성적 의식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다. 즉, 제스처는 유발자와 자신에게 똑같은 태도를 갖는다.

인간은 자신의 목소리를 타인이 듣는 소리와 달리 들을 수 있고, 또 들으면서 상대방이 반응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언어는 바로 음성적 제스처의 산물이며 유용성과 상징성이 가장 높은 기호이다. 언어는 제스처의 주체와 그 제스처가 나타내는 내용과 상대방을 연결하는 삼각관계를 지닌다.

나의 제스처는 ‘헛된 비극의 제스처’와 ‘헛된 희극의 제스처’로 나뉜다. 마치 동전의 앞뒤처럼, 거울의 상처럼. 제스처를 드러내는 것은 헛된 것이며 ‘현실의 비참’을 비참으로 증언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엉성한 흉내 내기’로 표현한다. ‘엉성한’에 관객은 의아해하지만 그것은 ‘미치지 못한’으로 해석될 수 있고, 흉내 내기 즉, 제스처의 제스처로 읽힌다면 단순한 형상을 캐리커처 한 것이 아니라 캐리커처의 형상화를 통해 사실화로 전위된 것일 수 있다. - 작가 노트 중에서

작가 옥정호를 알고 지낸 지도 16년이 흘렀다. 유머러스하고 과감한 그의 제스처는 오히려 필자에게는 신중하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늘 그렇듯 진취적인 사람의 내면은 겸손하며 때로는 한없이 부끄러워 현실과 매칭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는 늘 세상을 비웃고 조롱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신비로운 마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늘 허무하고 괴이한 퍼포먼스 혹은 제스처를 통해 뒤틀린 사회를 풍자하고 냉소적 시선으로 상징화하려 한다. 재밌게도 그는 작업의 출발은 체력을 기르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그 행위가 다소 어렵고 육체적으로 힘을 요하는 것이지만 특히 그의 작업 태도는 책무를 반드시 완수하려는 의지의 표명이고, 스스로 올곧게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육체적 고통을 되풀이하면서 사회의 아픔을 보듬고 더불어 일원이 되었다. 그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실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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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서양화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과 퍼포먼스를 하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반드시 붓과 캔버스가 유일한 표현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미디어가 도구이며 표현수단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히 사진은 생각보다 현실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를 담기에 적합하고 간편했습니다. 초현실적 세계를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프랑스 작가 외젠 앗제의 작품처럼 말이죠.

초창기 <기념촬영>(2001~2002) 연작처럼 교회의 첨탑, 국회의사당의 돔 부분을 머리에 쓰고 촬영했던 작업들이 시작인 것이지요. 신도시 전원주택 앞에서 팻말을 들고 촬영한 <하하하>(2003)라는 작업으로 옮겨가고, 2003~2004년 무렵 플라잉시티(flyingCity)그룹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혼란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늘 궁리만 하다가 <이순신 장군상>과 <자유의 여신상>이 한미 양국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마술쇼에 등장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념물이나 지자체 마스코트와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전의 교회 탑이나 웨딩홀은 다른 작가들이 지나친 것들을 차별화된 시각으로 언급해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기념물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리 신선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웃음) 제가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입장이 좀 더 세심하게 전제를 깔았어야 했다고 봅니다.

<예식장 시리즈>(2006)처럼 의도한 그 ‘이상한 판타지’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세요. 요즘은 많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판타지는 거의 서구식 이야기 구조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지요. 예를 들어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등 말이죠. 우리가 TV에서 은연중 세뇌된 고정관념 같은 것이 주입해놓은 것들, 스스로 생산해낸 이미지가 아닌 누군가가 제공해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것들 말이죠.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궁전을 본뜬 예식장, 모텔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선 도심의 모습도 일종의 판타지를 구성한다고 본 것입니다. 한참 비웃고 조롱하다 보니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근본적인 사회구조로 관심이 옮아갔어요. 그리고 그 근본적인 구조 안에서 다시 그것을 인식하는 제 자신으로 시선이 이동한 것입니다.

<거룩한 풍경>(2012) 연작에서 요가 자세를 선보였는데, 예전부터 요가수행을 했는지요. 요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안양 무지개>(2007) 연작을 할 때만 해도 요가열풍이 일어나는 것이 싫었습니다. 요가를 비판적으로 보다가 지금은 몸의 움직임, 본질적인 몸뚱이로 보게 된 것이지요. 일단 동작이 단아하잖아요.(웃음) 그런 행위를 갯벌(뻘짓)에서 엄청 열심히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본 거죠. 갯벌에서 하는 요가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자세도 그렇고, 물이 고여 점점 침잠하게 되더군요.

<거룩한 풍경> 연작 중에 자신을 배제한 풍경 사진이 있습니다.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풍경이 함께 놓이면 의도치 않았던 내러티브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상상했지요. 그런데 관람객이 읽어내지 못하더군요. 단순히 ‘풍경 사진’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사실 ‘풍경 사진’이 아닌 ‘풍경’을 찍고 싶었거든요. 풍경을 찍었으나 풍경 사진이 아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인간 삶의 팍팍함, 관계의 팍팍함이 드러나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도록 물리적인 시선의 이동도 이끌어내야 하고, 사진적인 완성도도 어느 정도는 획득해야 하고… 욕심이 과한 작품이었습니다.

플라잉시티그룹은 아주 진지한 사회문제를 다루다가 조습, 고승욱 작가처럼 옥 작가도 그저 실소(失笑)와 풍자를 유발하는 작업을 선보이셨는데,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늘 신경에 거슬렸어요. 주변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가볍고 유쾌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지적하는 풍자의 방식을 유효하게 적용해야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직설적인 유머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작업의욕을 상실해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혹스러운 시기였지요.

작업은 어찌됐든 재밌어야 한다고 봅니다. 옥 작가의 작품은 늘 재미가 있고 실소를 자아냅니다. 저도 제 작업이 그렇게 보였으면 합니다. 작업할 때 항상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부분이 ‘심각한 이야기는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거든요. 심각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100분 토론>만으로도 충분했지요. 심각한 이야기를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심각함을 더 잘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 다소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업을 할 때 바로 전에 했던 작업을 다시 참조하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 뭐 이런 식으로 점차 변화를 주면서 진행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가진 기질을 늘 생각하고 그걸 잃지 않으려고, 잊지 않으려고 했죠. 아시다시피 제 성격이 원래 발랄해요.(웃음)

시대가 바뀌고 풍자해야 할 현실이 평온하면 소재가 줄어들고 옥 작가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발랄할 수 없는 것 아닌지요. 하하! 저는 어쩔 수 없는 작가인가 봅니다. 제 개인적인 상황이 녹록지 않고 발랄하게 작업하는 게 힘든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극복하고 작가는 현재 자신의 몸뚱이 혹은 영혼에 예민해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정신과 육체도 뜨겁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또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그 너머를 바라보고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지금껏 작업에서 고수해오던 풍자를 넘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작품이 잘 팔리는 작업도 아니고 힘들게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저생계비 수준이죠. 하지만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작업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욕심은 없어요. 배 관장 같은 분과 도란도란 즐겁게 살고 싶네요.

작가노트 중에서 헛된 비극의 제스처, 헛된 희극의 제스처, 제스처의 제스처는 무슨 의미인지요. 제 작업은 기호와 제스처의 이중주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흉내 내기이지요. 그것이 현실을 풍자하지만 그 제스처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실화되는 순간 무지개가 뜨겠지요.(웃음)

최근 작이 무척 궁금합니다. 수행, 요가 등 퍼포먼스가 포함된 작업인지요. 주제는 <미망(迷妄 혹은 彌望)의 세계>입니다. 멀리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2016년은 무기력한 한 해였습니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무조건 놀았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 촛불시위 등등 너무나 혼돈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의자 위에 배를 깔고 수영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등에 최소한의 물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돌고래를 방생하기 위해 최소한의 물만 제공하는 것을 보고 이 현실이 최소한의 조건만 제공되는 것 같았어요. 요즘 다시 칸트의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윤리에 관한 책입니다.

향후 계획이나 작업 방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9월에 갤러리 조선에서 대대적인 개인전을 합니다. 현대자동차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작업은 잠시 잊고 지낸 유머, 유쾌함을 담고자 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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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인간은 몸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그것은 절대적 자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의 발로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늙고 병들고 유약한 인간 본연의 신체적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옥 작가는 자신의 몸의 한계를 유머와 풍자를 섞어 제스처로 표현하고 있다. 승려들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초월하기 위해 학대, 수행, 고행의 과정을 겪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헛된 비극의 제스처, 헛된 희극의 제스처는 그 수식어가 말해주듯이 애초에 그 욕망을 상실해버렸다. 단지 제스처의 제스처인 것이다. 얼마나 의지박약하며 허무한가.

메를로 퐁티는 “인간의 사유는 몸과 무관할 수 없고 오히려 몸을 통해 배어나오는 것”이라 했다. 사유란 단순히 두뇌의 작용이 아니며 몸의 활동인 것이다. 옥 작가가 몸을 통해 이 세상의 부조리한 대상들의 의미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은 일종의 몸의 사유작용인 것이다. 옥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불편함을 가시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언급한 낯선 익숙함(uncanny)-인간에게 익숙한 것이 가장 기괴하고 낯선-의 골짜기 입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조롱하고 풍자하는 세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쌍생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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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호 작가
1974년 출생.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졸업.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대학원 졸업 개인전 2017 <되감기>, 상업화랑, 서울 / 2015 , 갤러리 조선, 서울 / 2014 <‘in the field’>, Contemporary Art and Sprits(CAS), 일본, 오사카 외 다수 주요 전시 경력 2018 <제주4.3 70주년 네트워크 프로젝트, 잠들지 않는 남도>, d/p, 서울 / 2017 <도시.도시인>, 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 2016 <국립현대미술관 x 국립현대무용단 퍼포먼스 : 예기치 않은> 외 다수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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