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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만담가의 세상토크 05]도안사 선묵혜자 스님의 ‘평화의 불’ 신왕오천축국전

“한반도 전역에 평화의 불 밝혀질 날 머지 않아”

2018-05-22 14:00

글 : 장광혁  |  사진(제공) : 안규림&도안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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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경계를 지우려 수락산에 안개비가 내렸다. 사랑도 미움도, 전쟁도 평화도, 삶도 죽음도 하나라고 안개비가 일러준다. 당고개역에서 동막골을 지나 숨이 턱에 찰 즈음, 도안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취재진을 맞이한다. 공양간을 지나 주지 스님 방에서 숨을 고르는데, 한눈에 여법(如法)한 선묵혜자 큰스님이 두툼한 책 몇 권을 안고 들어오신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평화의 불 수놓다>라는 책자였다. 수인사를 마치자, 책에 ‘一心光明佛(일심광명불)’이라고 쓰시고는 가족 이름까지 물어 적어주신다.
/ photo by 안규림


장광팔: (자식 이름을 대며) 저는 내자하고 둘이서 딸 하나, 여식 하나 이렇게 골고루 둘을 두었으니 인구 절벽시대에 제 몫은 했습니다.(웃음)

선묵혜자: 저는 제 몫을 하나도 못했습니다.(큰 웃음)

장광팔: 도안사 소개부터 해주시지요.

선묵혜자: 수락산 도안사는 108평화보궁으로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원찰입니다. 도안사에는 전국 108산사에서 담아온 성토와 벽비(壁碑)를 조정해 모신 108평화보궁이 있지요.

‘불기카’ 집안에서 14세에 출가, 도선사 청담 스님 모셔

장광팔: 큰스님 어린 시절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선묵혜자: 충주에서 태어나 당시 초등학교를 마치고 열네 살에 출가해서 절밥 먹은 지 53년이 되었습니다.

장광팔: 그럼 임진생 용띠, 저와 갑장이시네요. 불교 집안이었나요?

선묵혜자: 소위 ‘불기카’ 집안이었어요. 할머니는 교회(기독교) 다니시고, 어머니는 성당(가톨릭) 나가시고, 저는 불교에 귀의했으니 ‘불기카’ 집안이었지요.(웃음)

장광팔: ‘불기카’는 아니고, 어머니는 절에 다니고 아들은 신부님이 된 어느 ‘불카’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동네 사람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어머니도 아들 신부님 성당에 열심히 다니셨대요. 그런데 어머니가 임종을 맞아 아들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는데, 숨을 거두시며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돌아가셨대요.(웃음)

선묵혜자: 서로 종교가 달라도 내 종교가 중하면 남의 종교도 존중해야지요.

장광팔: 청담대종사(1902~71)를 은사 스님으로 모셨다고요?

선묵혜자: 신라 경문왕 때(862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삼각산 도선사에서 한국 불교 정화의 기수였던 ‘청’자 ‘담’자 큰스님의 시자승이었습니다.

장광팔: 은사 스님께서는 엄하셨나요?

선묵혜자: 매사에 치밀하고 엄격했지만 자애로운 분이셨어요. 당시 제가 워낙 어려서 귀여워해주셨지요. 빗자루로 마당 쓰는 법부터 방걸레질하는 법까지 일상에서 이치를 깨치도록 가르침을 주셨어요. 콩나물을 다듬다 대가리가 떨어지면 모두 주워서 끓여 드셨죠. 그때는 살림이 어려워 죽을 쑤어서 공양했는데, 젊은 스님들이 배가 고파 죽을 되게 쑤면 ‘하늘에 보이는 별이 비치도록 묽게 쑤라’고 하셨어요. 근검절약을 강조한 말씀이지만 탐(貪)을 경계하신 가르침이었지요.

장광팔: 지금도 생각하면 주무시다가도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 없으세요?

선묵혜자: (미리 웃음) 큰스님께서 전방 군법당 위문차 출타하셨을 때 일이에요. 노보살 한 분이 큰스님 드시라고 떡을 쟁반 소복이 담아서 가져오셨어요. 그런데 마침 큰스님을 뵈러 법정 스님(1932~2010)과 다른 스님 몇 분이 오셨다가 한창 젊은 때이니 시장하던 차에 말릴 겨를도 없이 ‘이게 웬 떡이냐’(웃음) 하고는 그 떡을 다 드신 거예요.

장광팔: 배달사고가 났군요.(웃음)

선묵혜자: 다음 날 출타했던 큰스님이 돌아오셨는데, 때마침 전날 떡을 공양했던 노보살님이 쟁반을 찾으러 오신 거예요. 아이고, 큰일 났다 싶었지요.(웃음) 아니나 다를까 노보살님이 “큰스님, 어제 올린 떡은 잘 잡수셨어요?” 하고 물으니, 큰스님이 의아해서 눈을 크게 뜨시며 “웬 떡?” 하시자, “어제 올린 호박버무리떡 안 드셨어요?” 하고 다시 묻는 거예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큰스님이 “아, 그 떡! 호박버무리떡이 꿀보다 더 달더구먼. 참 맛있게 먹었어” 하셨어요. 노보살님은 흐뭇해하며 빈 쟁반을 가지고 돌아가셨지요.

장광팔: 이제 날벼락 떨어질 때만 기다리셨겠네요.(웃음)

선묵혜자: 그래서 제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 왜 보지도 못한 떡을 달게 자셨다고 했는지 여쭙자 “그래야 노보살님 마음이 흡족하지 않겠느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방편이란다” 하시는 거예요. <법화경>의 방편품(方便品)을 이렇게 쉽게 깨우쳐주신 게지요.

<중아함경>에서 붓다가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이 필요하지만, 일단 강을 건넜으면 그 뗏목을 버려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하신 가르침에서 뗏목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닐진대, 그래서 붓다는 다시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신 걸까. ‘한반도 평화’ 이야기를 꺼낼 방편으로 ‘파랑새’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관음조 파랑새 도안사에 3년째 날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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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파랑새가 도안사에 3년째 날아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선묵혜자: (숲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문을 가리키며) 저, 저기 파랑새가 날아가네. (창밖을 내다보니 파랑새는 이미 멀리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장광팔: 탐심 가득한 눈에 관음조(파랑새)가 쉽게 보일 리 없지요.(웃음) 파랑새는 언제부터 도안사에 둥지를 틀었나요?

선묵혜자: 2016년 5월이에요. <삼국유사>에서 파랑새는 관세음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며, 고려 불화에 꽃을 물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이 사실적이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답니다. 중국에서는 삼보조(三寶鳥), 일본에서는 불법승(佛法僧)이라 부르는 길조인데, 희귀한 철새이지요.

장광팔: 전에는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철새라 했는데, 요즈음은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유권자를 철새라고 한답니다.(웃음) 길조(吉鳥)가 나타나고, 길조(吉兆)가 나타났나요?

선묵혜자: 2016년 5월 파랑새가 둥지를 튼 후, 도안사가 그동안 숙원하던 문화재 전통사찰로 지정되었어요. 또 이듬해 5월 파랑새가 도안사를 찾았을 때 제가 대한불교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큰스님께서도 50년 전 당시 파월 총사령관 채명신 장군과 상의 끝에 군승 파송을 결정하였는데, 저한테 부처님 탄생 성지에서 이운해온 ‘평화의 불’을 접근하기 어려운 군부대 사찰에 분등(分燈)하라는 소임을 주신 것 같아요.

장광팔: 파랑새는 북한 천연기념물(제82호)로 북녘 묘향산 보현사에 둥지를 튼 것으로 아는데요. 올 5월에 또 108평화보궁 남녘 수락산 도안사에 둥지를 튼 걸 보면 남북정상 판문점선언 이후 우여곡절이야 왜 없겠습니까만, 한반도에 평화가 올 길조이기를 서원해봅니다.

선묵혜자: 자,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지만 우리 밖에 나가서 파랑새를 탐조(探鳥)해볼까요? 저기 까치집 보이죠? 그 옆 가지 왼쪽에 앉아 있는 게 암놈이고, 까치한테 집 비우라고 위협 비행을 하는 게 수컷입니다.

장광팔: 왜 남의 집을 차지하려 하지요?

선묵혜자: 파랑새는 집을 지을 줄 몰라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꼭 저 까치집에 둥지를 틀었어요. 어떻게 그 먼 거리에서 수락산 도안사, 그것도 저 까치집을 정확하게 찾아 날아오는지 조물주가 알려준 GPS 성능이 대단하지 않나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까치가 새끼 두 마리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집을 비워주려 해도 우중에 새끼 한 마리가 날지 못해 명도이전을 못 하고 있는 형국이에요.(웃음)

장광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던데(웃음) 건물주 까치가 먼 데서 찾아온 손님에게 자기 집을 내주다니 손님 접대가 극진하네요.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鵬自遠方來 不亦樂乎·벗이 있어 먼 곳에서 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군자의 배려인가요?
파랑새가 ‘평화의 불씨’를 물고 북한 보현사에 ‘평화의 불’을 분등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평화의 불’ 이운(移運)은 어떻게 원력을 세우셨나요?

108산사순례기도회 ‘평화의 불’ 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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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묵혜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이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반도의 중심 월악산 덕주사 순례 때 “부처님의 가호와 평화와 자비심으로 병고 액난과 다툼 그리고 시기 질투를 멀리하고,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고, 인류는 불행을 여의고 행복을 성취하기를 발원합니다”라고 ‘평화의 불’이 원만하게 이운되기를 발원한 것입니다. 발원문을 읊는데 일원상 무지개가 대낮의 보름달처럼 둥그렇게 떠오르는 거예요.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 108명이 더욱 ‘평화의 불’ 이운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가 되었지요. 2013년 4월 네팔 카트만두로 향하는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장광팔: ‘평화의 불’에 대해 알려주시죠.

선묵혜자: 네팔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3000년 동안 타오르고 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세계 53개국 불이 합쳐져 뉴욕 유엔본부에서 타오르고 있는 ‘평화의 불’을 합한 불입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네팔 룸비니 동산 마야테비 사원 앞에서 타오르고 있는 이 ‘평화의 불’은 룸비니 평화재단에서 관리하는데, 통 크게(웃음) 우리나라에 불씨를 나누어주기로 한 것이지요.

장광팔: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한반도 DMZ까지라, 신라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떠오릅니다. 

선묵혜자: 그렇습니다. ‘구법의 길’을 찾아 젊은 수행자 혜초 스님이 천축(天竺·당시 인도)에 도착한 게 723년이니까 1300년 만에 ‘평화의 길’을 찾아 대장정에 나선 것이지요.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은 723년 신라 경주를 떠나 뱃길로 중국 광저우를 거쳐 천축에 도착했고, 귀로는 육로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의 수도인 장안(시안)까지 2만㎞를 여행한 기록이지요.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이나 중국 현장 스님 <대당서역기>보다 500년 앞선 기록인데, 1908년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가 돈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발굴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내졌어요. 우리에게는 2011년에야 비로소 공개되었지요. ‘평화의 불’ 2만㎞ 이운 대장정은 1300년 만에 새로 쓰는 ‘신왕오천축국전’이라 할 만하지요.

장광팔: ‘평화의 길’이라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선묵혜자: 꺼질세라 불씨를 가슴에 품고 오느라 화상까지 입으며 ‘평화의 불’을 안고 온 길이 바로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과 티베트, 중국과 신장 위구르 등 분쟁지역인데, 이곳에 ‘평화의 불’을 밝히고 평화의 수를 놓았기 때문이지요.

장광팔: ‘평화의 불’이 한반도에 도착했을 때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선묵혜자: 인천항에 도착한 ‘평화의 불’은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에서 ‘분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꿈꾸다’ 대법회와 함께 채화경에 점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진각 마지막 철책선 바로 앞 한반도 지도에 ‘평화의 불’을 밝힌 초를 장엄하기 위해 언덕에 다다른 순간, 일심광명 무지개가 지상에서 일자(一字)로 솟구쳐 참석한 모든 분이 새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때 큰스님을 소개하고 인터뷰 내내 대장정 일정 등 큰스님 기억을 되살려주던 최연수 회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결정적일 때마다 무지개가 떠서 큰스님 별명이 ‘무지개 스님’이에요.”(웃음)

장광팔: ‘파랑새 스님’ 별칭도 붙여드릴게요.(웃음) 큰스님 원력으로 ‘평화의 불’이 북녘 땅에서도 타오르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108산사순례기도회의 금강산 신계사 성지순례 추진

선묵혜자: (창밖을 가리키며) 저 파랑새가 불씨를 물어다 북녘에 둥지를 튼 묘향산 보현사에 봉안하는 날이 조만간 올 것입니다. 108산사순례기도회는 1차적으로 평양 광법사와 금강산 신계사에 봉안하고, 묘향산 보현사, 개성 영통사 등에 순차적으로 순례할 계획입니다.

장광팔: 2010년 이미 큰스님께서는 신계사 순례를 준비하며 공양미 300석까지 모연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선묵혜자: 당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스님과 조선불교도연맹 사이에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신계사 성지순례가 약속되어 있었어요. 불단에 올릴 공양미까지 준비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무산됐습니다. 이제 종단의 공식 창구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북한과 협의를 진행할 작정입니다.

장광팔: 108산사순례기도회와 108평화순례단의 사찰 순례가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선묵혜자: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떠나는 사찰 순례 의미와 더불어 먹거리 구매를 통한 농촌과의 상생 그리고 순례 지역 소외계층을 돕고, 나아가 신행 활동을 통해 남북교류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장광팔: 마지막으로 석가탄신일을 맞아 <여성조선>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선묵혜자: 문수동자게(文殊童子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한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중국 당나라 화엄종 무착 스님이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께 들었다고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일상의 마음과 몸가짐이 참다운 도(道)와 둘이 아니라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가르침을 <여성조선> 독자들에게 ‘부처님 오신 날’ 선물로 전합니다.

<선묵혜자 스님 프로필>
선묵혜자 스님은 14세에 청담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서울 북한산 도선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을 거쳐 청담학원 이사장, 불교신문사 사장과 도선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며, ‘풍경소리’ 대표이사, 대한불교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 도선사 회주, 도안사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모르는 마음> <살아 있는 동안 꼭 읽어야 할 부처님 말씀 108가지> <그대는 그대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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