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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개막식 스포트라이트, 소프라노 황수미

2018-05-16 10:01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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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밤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계절은 바뀌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감동은 여운이 짙게 남았다. 소프라노 황수미도 한몫했다.

의상협찬 La Silhouette de Eugenny(02-518-3305)
# 제2의 조수미? 그냥 황수미
 
수려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흰 바탕에 금빛으로 수놓은 한복 드레스가 작은 손짓에도 물결치듯 반짝였다. 이목구비 또한 한복 드레스에 ‘묻히지’ 않았다. 야무진 입꼬리 사이로 내뱉는 선율은 유려했다. ‘올림픽 찬가’는 올림픽 개회식의 꽃으로 통한다. 동계·하계 올림픽 개폐막식은 물론, IOC 총회에서도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하이라이트다. 4년마다 한 번씩 듣는 이 노래를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는 소프라노 황수미(33)가 불렀다. 서울대 음대, 독일 뮌헨 국립음대 등에서 수학한 그는 쇼팽·차이콥스키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에서 2014년 우승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다. 현재 독일 본 극장(Theater Bonn)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아무래도 여태까지 선 무대 중 가장 컸을 것 같은데요. 그전과 뭐가 달라졌나요? 
그럼요. 화면으로 전 세계 사람이 보고, 실제로도 관객이 많은 공연이었죠. 의미가 남달랐어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들었던 무대고요. 이후로 찾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런 인터뷰도 포함해서요. 크고 작은 연락을 부쩍 많이 받고 있습니다.
 
수식어가 몇몇 있어요. 미녀 소프라노, 제2의 조수미 등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뭔가요?
아이고! 다 좋고 고맙죠. 그럼에도 부담스럽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해요. 퀸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는 제 이름 앞에 ‘퀸’을 붙이기도 했어요. 좀 오글거리고 싫어요. 하하. 그냥 소프라노 황수미가 좋아요. 담백하게.
 
여태껏 들은 찬사 중 최고는 뭔가요?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진심이 전해지더라는 얘기들이에요.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노래하는데, 그게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경험… 무척 신기했어요. 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요. 사람을 통해 나오는 것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면서 감정을 움직이는 게 말예요. 로봇은 할 수 없죠.
 
노래가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발성과 표현력이 발군이라는 평이던데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가 그랬다죠.
(독일에선) 제가 외국인이니까요. 우리도 외국 사람이 한국말 조금 잘하면 신기하잖아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외국인 치고 발음을 잘한다는 정도요. 그런 차원이지 싶습니다.
 
소프라노로서 황수미의 강점은 뭔가요?
다른 성악가와 비교해서 얘기하긴 어렵고요. 음… 비교하지 않는 게 저의 강점이에요.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할까요. 요즘도 올림픽 개막식에 나가고 나서 갑작스레 찾아든 관심이 물론 감사하지만, 감사와 기쁨을 넘어서 이런 걸 감당하고 견뎌내야 할 무게가 있잖아요. 두렵고 무섭기도 하지만 저는 언제나 ‘황수미’로 묵묵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자기 피알(PR)을 너무 안 하는 거 아닐까요?
주변에서도 그래요. 제 장점이자 약점이 될 수도 있는데, 너무 PR을 안 한다고요. 워낙 그래요. 스스로를 알리려고 나서는 성격이 못 돼요.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대에서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 외의 ‘쇼’로 관심을 받는 건 자제하고 싶어요. 노래로, 콘서트로, 오페라로 저를 알리고 싶습니다.
 
오페라 무대에도 선다고요?
정말 매력적이에요. 종합예술이죠. 조명, 가수, 의상, 무대.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사람은 대개 가수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공이 없으면 안 되는 것. 무대 뒤에 훨씬 많은 사람이 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프로 오페라 무대에 선 지는 4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재밌어요. 아직 배우는 단계이고, 레퍼토리도 늘리고 있는데요. <라보엠>의 미미라든지 <카르멘>의 미카엘이랄지 좋아하는 작품의 주역 가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사람들에게 딱 한 가지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무대를 꼽고 싶은가요?
<라보엠>의 미미를 꼽고 싶어요.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공연했어요. 워낙 꿈꾸던 무대이기도 했고요. 독일 본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연출 자체가 현대적이었어요. 미미가 암이 걸려서 죽는데 제가 실제 삭발을 하고 노래를 불렀거든요. 이런 연출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저는 아주 좋았어요. ‘미미’로 데뷔했다는 건 큰 의미였죠. 대학시절 콩쿠르에 나갔을 때도 미미의 아리아를 했고요.
 
많은 성악가들이 미미를 노래했는데요. 그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나요?
미렐라 프레니라는 이탈리아 소프라노가 있어요. 그분의 미미가 정말 아름다워요. 학창 시절부터 오래 봐왔죠. 꼭 <라보엠>이 아니더라도 제겐 지금 모든 작품이 데뷔예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매 순간이 데뷔 무대인 거죠. 무대마다 도전이고,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요. 한 작품 한 작품 전부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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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함보단 묵직함
 
끼가 많아 보였다. 자연스러운 컷을 위해 춤을 추는가 하면, 노래도 했다. 예쁜 얼굴은 차라리 덤이었다. 그는 정작 자신에게 따라붙는 형용사들을 어색해했다. ‘황수미’ 자체로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노래는 언제부터 했나요?
사진 포즈도 남다르던데 무용도 했었다고요.   하하. 무용은 어릴 때 잠깐 했었는데 신체 변화가….(발육이 남다르다 보니까(웃음)) 안 되겠다 싶었고요. 워낙 예능 쪽에 관심이 있었고, 욕심도 있었어요. 노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요. 어린 시절 경북 안동에서 살았는데, 안동 KBS 합창단에서 활동했었어요. 노래는 합창단 선생님 권유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죠.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나요?
음악을 한 집안도 아닌데 부모님이 열린 생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였는데 나중에 “그땐 네가 취미로만 할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힘들었지만 뒷바라지해주신 거죠. 제가 서울예고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아버지는 속으로 ‘떨어졌으면’ 하셨대요. 하하.
 
어린 나이라 떨어져 지내기 싫으셨나 봐요. 어머니는요?
엄마는 되길 바라셨어요. 연년생 여동생이 있는데, 거의 반 이상을 떨어져서 보냈죠.
 
음대 재학시절엔 시련도 있었다죠. 교수가 공부로 대학 온 거냐고 했다고요.
시련이라기보다는… 안동에서는 1등이었는데 서울대를 갔더니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대학에 들어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정말 잘한다’는 건 위아래 10~15년을 아울러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아차, 싶었어요.
 
누구에게나 그런 변곡점이 있죠. 그게 황수미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거고요.
대학 4년 내내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냈어요. 남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부모님이 이렇게 뒷바라지해주셨는데, 전공을 잘 살려서 꼭 보답해드려야 하는데…. 성악가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조차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화가 나는 거예요. 충격은 받았는데, 좀체 뜻대로 되지 않는 제 모습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과연 죽도록 노력해본 적이 있나? 없었던 거예요. 그저 ‘내가 쟤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 왜?’ 타인과 비교하며 끝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었죠. 다른 사람과 비교는 의미가 없잖아요. 어제의 ‘나’와 비교하기로 했어요. 연습할 때도 그저 묵묵히 내 음악을 들으며 점검하고 그랬죠. 지금도 다른 사람은 신경 안 써요.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고맙죠. 나를 더 단단하게 한 시간이었어요.
 
‘어제의 나’와 경쟁한다… 자신과의 싸움인 거죠. 어떤 아티스트처럼 되고 싶으냐고 묻고 싶었는데 질문이 무의미한데요.
‘소프라노 황수미’라는 이름 자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커요.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전에 보던 황수미와는 다르다’는 평가는 싫어요. 저를 다잡아야죠. 황수미를 다잡아야죠.
 
그럼에도 궁금해요. 롤 모델 진짜 없어요?
존경한다, 닮고 싶다 이런 차원보다는 여자로서, 성악가로서 대단하다 싶은 분은 있어요. 저도 결혼을 했고, 아직 아이는 없지만….
 
결혼하셨군요.
하하. 굳이 얘기한 적이 없었네요. 2016년 8월에 했어요. 캠퍼스 커플이었고, 노래하는 분이랍니다. 독일에 같이 있어요.
 
말이 잠깐 끊겼는데 롤 모델이요.
여자 성악가로 아이를 낳고 활동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몸이 악기인데,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치면서 몸이 많이 바뀌기 때문이죠. 그런 차원에서 독일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45)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두 아들을 다 케어하면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거든요. 
 
출산이란 경험이 표현의 폭을 넓혀주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아요. (자녀) 기대는 하고 있어요. 하하.
 

올해 그는 유난히 바쁠 예정이다. 4월 초 통영국제음악제를 시작으로 4월 말 서울시향과 베르크의 ‘일곱 개의 초기 가곡’ 한국 초연,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2주년 무대 등을 앞두고 있다. 데뷔 앨범도 녹음한다. 내년 초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발매할 계획이다. 앨범이 발매되는 시점에 다시 한 번 내한 리사이틀 투어를 진행한다. 새로운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독일 본 극장에서 <잔니 스키키> 라우레타, <피가로의 결혼> 수잔나 역에 도전한다. 하반기에는 독일 비스바덴 극장에서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돈나 안나 역도 맡을 전망이다. 이외에도 7월에는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바우와 모차트르 <레퀴엠>을 연주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프랑스 앙상블 마테우스의 헨델 <리날도> 투어에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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