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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수석무용수 부부 황혜민·엄재용

작년 11월 고별무대로 유니버설발레단 은퇴

2018-01-16 14:19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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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인 황혜민·엄재용 씨가 지난 11월 고별무대를 갖고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은퇴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발레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제2막을 함께 열어갈 두 사람을 만났다.
국내 최초의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로 유니버설발레단(이하 UBC)에서 15년 넘게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온 황혜민(40)·엄재용(39) 씨가 마지막 무대도 함께했다. 지난해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드라마발레 <오네긴>을 끝으로 은퇴한 것.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터라 팬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부부의 인생 제2막을 축복했다. 막을 내린 후에도 환호와 박수가 연이어 쏟아져 부부는 몇 번이나 다시 불려 나왔다.

2002년 <라 바야데르>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지젤> <호두까기 인형> <심청> 등 UBC의 모든 레퍼토리에서 910여 회 이상 파트너로 무대에 올랐다. 국내외 갈라 공연까지 더하면 1000회가 넘는다.

최고 자리에 있을 때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었다는 혜민 씨는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재용 씨는 아내와 함께 발레단에서는 은퇴했지만 무용수로서의 삶은 이어나간다고.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해외였는데 여행 중이었나요?
황혜민 둘이서는 아직 못 갔고요. 저만 친구들이랑 홍콩에 다녀왔어요.
엄재용 저도 아내가 가 있는 동안 혼자 다녀오려 했는데 몸살 기운이 있어서 집에서 쉬었어요. 1월에 같이 제주도에 가려고요.
황혜민 제주도부터 가고, 따뜻한 나라에도 가고 싶어요. 편안하게 쉬고 오면 좋을 것 같아요.

은퇴 이후 하루 일과가 완전히 달라졌겠어요.
황혜민 1주일에 하루만 쉬고 매일 아침 발레단에 나가서 연습했으니까요. 일단 늦게까지 잘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오후 1시까지 자봤어요.(웃음) 요즘은 오전 10시쯤 일어나서 점심 먹고,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골프 레슨도 받고 저녁 약속에도 다녀오고 그래요. 대신 발레는 하기 싫은데 스트레칭도 하고 러닝도 해요.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니까 부대끼는 느낌이 있어서요. 남편한테도 계속 살쪘느냐고 물어봐요.(웃음)
엄재용 저는 2018년 상반기까지는 일본에서 공연 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저께도 몸 풀려고 발레단에 나갔어요. 성인반, 취미반 레슨도 계속하고 달라진 게 거의 없어요.

혜민 씨는 오늘 사진 찍을 때 발레 포즈는 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제 발레라면 질린다’ 그런 마음인가요?(웃음)
황혜민 그런 건 아니에요. 발레단을 떠나면서 무용수로서도 은퇴하는 게 계획이었고, 그저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에요. 특히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공연이 많았거든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혼신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염색도 하고 싶다더니 실행했네요.
황혜민 마지막 공연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자르고 염색했어요. 애시그레이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완전히 탈색되지 않아서 색이 잘 안 나왔어요. 다음 주에 한 번 더 하려고요.(웃음)

은퇴 후 또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황혜민 첫째는 부상 걱정 때문에 하지 못하던 골프를 배우는 거고요. 두 번째는 책을 쓰는 거예요. 처음에는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쓰고, 잘되면 그다음에 ‘발레 따라하기’ 같은 책을 내고 싶어요.
엄재용 저는 일본 배낭여행을 가고 싶어요. 가깝기도 하고, 일본에서 많이 활동해서 일어를 할 수 있거든요. 2주 정도 일본 북부에서 남부까지 위에서 아래로 쭉 내려오면서 맛있는 음식들 먹고 싶어요. 도시마다 특산물이 있잖아요. 맛집을 워낙 좋아해요.
황혜민 나도 가고 싶다.(웃음)
엄재용 제가 꼭 혼자 가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했거든요.(웃음)

혜민 씨가 허락했나요.
황혜민 네. 그런데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가고 싶어요. 아마 제가 따라가면 남편이 원하는 대로 다니지 못할 거예요. 제가 20분 걷는 것도 힘들어하거든요. 이번에 친구들이랑 여행 가서도 오전 10시에 나가서 새벽에 숙소에 들어가곤 했는데 제가 계속 못 다니겠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저한테 노인네라고 그러더라고요.(웃음) 걷는 걸 안 좋아해요. 많이 걸으면 발레에 방해가 되니까 제 다리는 발레 할 때만 쓰는 걸로 충분하다 그러고 살았거든요.

발레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았겠어요.
엄재용 저는 운동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농구, 축구, 골프를 좋아해요. 발레 때문에 운동을 거의 포기했었죠. 이제 스키도 타고 싶어요.

그럼에도 두 분 다 발레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발레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황혜민 어렸을 때는 내성적이었거든요. 눈을 마주치는 것도 수줍어했는데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성적인 성격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성격으로 바뀌었죠. 연습할 때는 선생님이 이렇게 저렇게 코치해주시지만 무대에 딱 서면 혼자잖아요.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그동안 연습한 것, 배운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무대, 그것 때문에 발레를 계속한 것 같아요.
엄재용 저도 비슷해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성취감도 있고 거기에서 오는 자기만족이 크니까요. 발레는 대사만 없을 뿐이지 온몸으로 말하고 표현하는 거거든요. 노래 부를 때 말하듯이 부르라고 하는 것처럼 저희도 말하듯이 표현하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런 점이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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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아도 권태기나 슬럼프가 있었겠죠.
황혜민 이제 끝났으니 얘기할 수 있는데 매일매일 힘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아프거든요. 저는 많이 다친 적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덜 아픈 편이었을 텐데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매일 아침에 나가서 연습을 했을까 싶어요. 책임감에 그 아픔도 적응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하루하루를 반복했던 것 같아요. 연습이 잘되는 날도 있고, 잘 안 되는 날도 있는데 그래도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보면서 해온 거죠.
엄재용 저는 무릎 수술 두 번, 발목 수술을 한 번 받았는데 그때가 슬럼프였어요. 생생히 다 기억이 나요. 추운 수술 방에 들어가서 혼자 가만히 누워 대기하는 10분, 15분이 지옥 같았어요. 이 수술을 하려고 발레를 했나, 이렇게 다치면서까지 발레를 해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들거든요. 입원해서 며칠 동안은 더 이상 못 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재활을 하면서 점점 무대가 그리워지죠. 정신 차려보면 스튜디오에서 연습하고 있고, 정신 차려보면 무대였어요.(웃음)

은퇴 공연 마지막 커튼콜 장면에서는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잊을 수 없는 무대였겠어요.
황혜민 사실 공연 첫날 아침부터 눈물이 글썽글썽하곤 했는데 공연은 공연이니까 참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은 단장님이 막이 오르기 전에 공연 내용에 대한 해설을 하시면서 울먹거리시는 거예요. 제가 첫 신부터 등장하거든요. 무대 뒤에서 몇몇이 같이 울었죠. 그래도 공연은 공연이니까 1막, 2막 잘 해나갔는데 3막 때는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많이 슬펐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죠. 공연 끝나고 후배들이 꽃을 들고 나오는데 친한 후배는 저보다 더 많이 우는 거예요. (혜민 씨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동안 활동하던 모습이 영상으로 나온 것도 그렇고, 관객들도 많이 우시고 다 감동적이었어요.
엄재용 무척 행복했어요. 축복 속에 은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끝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좋은 사람들과 마지막 무대를 함께하면서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유니버설발레단에서만 약 15년, 학생 시절까지 합치면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발레 한 가지만을 꾸준히 해온 건데 그쯤이면 발레도 좀 쉬워지나요?
황혜민 발레는 끝이 없어요. 마지막 무대도 그랬고요. 절대 쉽지 않고, 완벽함도 없어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매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완벽한 무대가 있을 수 없고, 100점이라는 정해진 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표현할 수 있는 색이 다 다르니까,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채 계속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엄재용 항상 전 공연보다 나아져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잖아요. 예술이라는 게 쉬워졌다고 생각하면 그건 자만이죠.

두 분은 그동안 1000회가 넘는 공연 함께 했잖아요. 눈빛은 말할 것도 없고 뒷모습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아나요?
황혜민 발레를 할 때는 특히 그렇죠. 서로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뭐가 불편한지 바로 알고, 중심이 조금만 비뚤어져도 잡아주니까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예요.
엄재용 워낙 오래 함께 했으니까요. 서로 불편한 것들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고칠 수 있죠.
황혜민 턴을 할 때 남편이 가끔 뒤에서 ‘배!’라고 할 때가 있어요. 배에 힘주라는 소리죠. 공연하는 중에 복화술도 많이 해요.(웃음)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고 연애 10년에, 올해로 결혼 8년 차입니다. 싸움 한 번 크게 해본 적이 없다고요. 비결이 뭔가요?
황혜민 소리 지르고 싸운 적은 없지만 삐치고 그런 적은 있죠. 둘 다 속으로 삭이는 성격이에요. 저보다는 남편이 많이 참는 편이죠.

혜민 씨 말이 맞아요? 재용 씨가 많이 참는 편인가요?
엄재용 (말없이 미소)
좌중 하하하하.
엄재용 저희는 발레를 오래 같이했잖아요. 파트너로서 가장 중요한 게 서로간의 배려거든요. 같이 호흡을 맞추는데 누구 하나가 자존심을 세우면 안 돼요. 매너 있게 배려해야 더 좋은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죠. 하루 종일 발레를 하면서 그게 몸에 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매너와 배려가 일상에서도 버릇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부부 무용수를 파트너로 안 붙이는 경우도 많아요. 싸우는 사람도 많거든요.(웃음)

2세 계획이 있다고요. 아이가 발레를 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엄재용 우선 능력이 있는지 봐야죠. 평생 누구의 딸이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텐데 그걸 넘어설 능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황혜민 저는 안 시키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저희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또 모르겠어요. 발레하기에 완벽하게 태어나서 자기가 하고 싶어 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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