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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편집장의 ‘편집장의 밥 한 끼 합시다’ 03]“아재개그는 말장난 아닌 지적인 언어유희”

2017-12-01 09:55

글 : 이창희 편집장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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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개그’가 꽃을 피운 적이 있다. 1950~60년대 얘기다. 당시엔 ‘만담’으로 불렸다. 만담 하면 장소팔(작고), 고춘자(작고) 콤비를 꼽는다. 두 사람은 서로 곁말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을 웃겼다. 아재개그를 다시 꽃피우려는 이가 있다. 장소팔 씨 아들 장광혁(65) 만담보존회장이다. 그는 올해 서울 인사동에 장소팔극장을 열고, 12월 4일 아재개그콘서트를 올린다. 그는 ‘장에 소 팔러 갔다가 나왔다’는 선친의 예명 장소팔(본명 장세건) 어원을 차용해 ‘장에 광 팔러 갔다가 나왔다’는 장광팔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인터뷰를 하며 원 없이 웃어보긴 처음이다.
천부적인 만담가였던 장소팔(작고) 선생은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고인은 만담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본 듯 딸은 약대를 두 아들은 의대와 법대를 보내겠다고 했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선친의 끼를 이어받은 차남 장광팔은 그 끼를 살려보고 싶었다.

장광팔은 유년시절 선친의 심부름으로 선친과 만담 짝을 이루던 이은관(인간문화재, 작고), 고춘자 댁을 무시로 드나들며 대본을 전하고, 선친의 전화당번을 도맡아 꼬마집사로 불렸다고 한다. 만년필로 만담을 쓰는 선친 곁에서 잉크를 넣어드리고, 미숫가루도 타드렸다. 선친이 사랑방에서 방송 전에 고춘자 선생과 맞춰보는 만담을 엿들으며 미래 만담가의 싹을 틔우며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타고난 만담의 끼를 보여주는 한 대목.
선생님 “왜 동요를 따라 부르지 않지?”
장광팔 “유치해서 동요는 못합니다.”
선생님 “그럼 무슨 노래 부르니?”
장광팔 “팝송이나 엔카(일본가요) 부릅니다.”
선생님 “요즘 유행하는 ‘삼다도소식’ 부를 줄 아니?”
장광팔이 3절까지 기가 막히게 부르자,
선생님 “3절까지 가사 좀 적어줄래?”
장광팔 “제가 가사를 다 쓸 줄 알면 왜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겠어요?”
선생님이 “하긴 그렇지” 하며 두 눈을 꾹 감더란다.
 

유년시절부터 차고 넘치던 만담의 끼, 선친 사후 본격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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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은 타고난 재기와 유머에다 글재주가 뛰어나 선친의 뒤를 이을 천부적인 만담가로 어릴 적부터 주위의 기대를 모았다. 이런 그가 만담을 하기 시작한 것은 선친이 작고한 2002년부터다.

“선친께서는 저를 만담 후계자로 키울 생각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저의 만담 데뷔는 당신 사후로 미뤘습니다. 당시 만담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아들의 장래를 염려한 탓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만담을 선친께서는 쑥스럽게 여기신 것 같아요. 선친은 2002년 4월 ‘나는 심심해서 죽는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장광팔은 대학에 들어가서 선친의 특집방송 만담원고 집필을 도와 구성작가 노릇을 하며 직접 만담을 사사했다. 선친이 고춘자 선생 별세 후 김보화, 이경실, 김미화 등 개그우먼들과 대화만담을 했을 때도 만담구성은 장광팔의 몫이었다. 선친이 돌아가신 2002년엔 ‘장소팔선생 기념사업회’를 설립했고, 2009년엔 선친이 전성기를 보낸 청계천 7가 다산교 앞에 장소팔 동상을 건립했다.

그가 방송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법률신문사 출핀사업단 대표, 유머 컨설턴트, 공연예술 감독 등 다양한 일을 하던 그는 그해 교통사고로 3개월가량 병원에 입원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유머집 <20초에 사로잡아라>를 썼는데, 이를 본 박일훈 당시 국립국악원장이 그해 추석 특별행사에서 이것을 만담식으로 진행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때 만담 파트너로 만난 이가 KBS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맹구(이창훈) 파트너였던 개그우먼 안춘자(본명 안숙희, 개그맨 안일권의 누나)였다.

만담은 통상 두 명이 말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선친은 이춘자(작고), 고백화(작고), 백금녀(작고), 고춘자(작고), 김보화(개그우먼), 김미화(개그우먼) 씨 등과 짝을 이뤄 만담을 했다. 장광팔도 여러 명을 만담 파트너로 뒀다. 안춘자를 비롯 코미디언 서영춘(작고) 씨 딸 서현선(개그우먼), 양희승(개그우먼) 등과도 콤비를 이뤘다.

“만담을 10분 하려면 보름은 연습해야 합니다. 만담으론 생활이 안 되니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시간을 쪼개서 연습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다들 만담을 오래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장소팔극장 열고 아재개그를 통한 만담 부활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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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오빠’를 부르는 가수 최현(왼쪽)은 장광팔과 가요만담도 진행한다.

그는 요즘 가수 최현과 가요만담을 한다. 특히 내년에 1958년 개띠생들이 회갑을 맞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58년 개띠오빠’ 노래를 작사했다. 가수 이용복 씨가 편곡하고, 가수 최현이 노래하는 이 곡은 58년 개띠연합회 지정곡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 도쿄에는 만담전용 소극장이 200여 개에 이릅니다. 오사카는 300여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견습생에서 스승에 이르기까지 계속 바통을 이어받듯 하루 종일 만담공연을 합니다. 한데 우리나라에서 만담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얘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는 성미 때문인 것 같아요. 좀 말하려면 중간에 딱 자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장광팔 만담보존회장은 본격적인 이야기장을 만들어보겠다며 지난 9월 1일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에 장소팔극장을 열었다. 선친이 인사동에서 태어나기도 했거니와 인사동이 만담의 본원지라는 게 동기였다.

“만담의 원조격인 박춘재 선생이 공평동에서 태어나셨고, 그 뿌리가 선친까지 이어진 것이어서 인사동에서 다시 이야기 문화를 꽃피워보고 싶었어요. 친구인 김덕수(사물놀이 장고 연주가)도 불러 소리와 이야기의 만남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12월 4일 장소팔극장에서 아재개그콘서트가 열린다. 방송 코미디 작가인 김재화 씨가 쓴 <아재개그 레전드 500> 출판기념회를 콘서트로 진행하자는 장광팔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이 콘서트엔 전현직 개그맨, 코미디언들이 총출동한다고.

“아재개그를 구세대의 말장난으로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아재개그는 만담의 곁말을 쓰는 것으로 지적인 언어유희지 말장난이 아닙니다. 물론 세대간 웃음의 메소드가 다른 것은 인정합니다. 요즘 아재개그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만담이 부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주 고무적입니다.”

장광팔 회장이 들려주는 아재개그 하나. 분식집 고발사건.

‘들기름이 구속됐다는군. 참기름이 고소해서. 참기름도 구속됐대. 참기름과 평소 앙숙이던 라면이 불어서. 옆에 있던 김밥도 구속됐어. 말려들어서. 김밥 속의 계란도 후라이치다가 구속됐대. 뒤에 가만히 서있던 식초도 구속됐대. 가만히 있다가 심심해서 괜히 초를 쳤거든. 걔들 면회 가던 아이스크림은 교통사고가 났대. 차가 와서. 근데 이 사건의 배후에는 소금이 있었대. 소금이 다 짠 거래. 그런데 고구마가 나서 잘 무마를 했다는군. 고구마가 다 구워삶아서.’
 

악극, 무성영화, 아재개그콘서트, 민요만담경연대회 준비 중

장광팔 회장은 악극과 무성영화도 준비 중이다.

악극은 KBS <가요무대> 작가인 김진성 씨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악극으로 풀어보자”는 제안에 따른 것이다. 장광팔은 변사 겸 만담가로 브리지 역할을 하면서 가요를 중간에 삽입한다는 것이다. 박재란 안다성 남일해 남상규 금사향 씨 등 옛 가수들을 등장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현대판 <불효자는 웁니다> 무성영화는 대략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무성영화는 거창 상천마을에서 마을사람 전원을 등장시켜 올 초 상영하기도 했다. 

“예술감독 후배를 따라 거창연극제에 갔다가 2인극을 하면서 마을과 연계한 무성영화를 했으면 좋겠다 싶어 상천마을 사람들과 <이수일과 심순애> 무성영화를 만들었어요. 돈이 200여만원밖에 되지 않아 100여 명에 이르는 모든 마을 사람과 강아지까지 등장시켰어요. 올 초 마을 앞 개천에서 상영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마을 사람 전원이 등장했으니 일종의 마을 앨범 같은 영화죠. 주민들로부터 명예마을주민증을 받았어요.”

장광팔 회장은 LP 레코드판에 녹음하는 만담 대본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내년엔 민요만담경연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밥 한 끼
장광팔이 자주 찾는 인사동 ‘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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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만담보존회 회장이 자주 찾는 음식점은 인사아트 인근 한정식집 하연이다. 반찬이 술안주로 넉넉할 만큼 가성비 좋아 술자리는 거의 하연에 갖는다는 것. 장 회장은 “제철에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 안주로 나와 입맛 돌리는 데 그만이다”며, “홍어삼합도 좋지만 감기 걸렸을 때는 홍어찜이 최곱니다”라고 귀띔했다. 특히 이곳의 80년 된 진천막걸리는 입에 착착 감기고 다음 날 숙취가 없어 즐겨 찾는데 다만 조금 비싼 게 탈이라고.
 
 


만담의 역사

만담이란 우습고 재미있게 세상과 인정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만담이라는 용어는 신불출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오사카의 만자이(漫才(만재))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것. 만담은 일본의 라쿠고, 만자이와 달리 궁중에서 행해지던 나례 중 소학지희와 민중들의 웃음문화인 재담에서 비롯되었다.

장소팔은 생전에 “만담은 재담의 아들이요, 개그의 아버지”라고 정의했다. 만담의 뿌리는 고종황제 때 가무별감을 지낸 박춘재 민요재담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후계자가 장소팔이다. 이후 계보를 이어받은 이들이 코미디언 ‘뚱뚱이와 홀쭉이’ 양훈(작고)-양석천(작고), 구봉서(작고), 배삼룡(작고), 서영춘(작고), 송해, 박시명(작고), 이순주 씨 등이다.

만담은 출신지를 불문하고 서울 토박이말로만 써와 이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보고나 다름없다.
 
 

 
<장광팔 프로필>
장광팔의 본명은 장광혁. 1952년 장소팔 씨 2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
만담보존회장, 장소팔극장장, 장소팔기념사업회 이사, 정해복지 상임고문, 강남문화예술협동조합 이사장 저서 <스토리를 입혀라> <소통의 유머리더십> <서울의 전통문화 장소팔 만담> <20초에 사로잡아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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