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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하루’저자이자 의사 남궁인

2017-11-21 11:04

취재 : 서재경 기자  |  사진(제공)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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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기도, 작가이기도 하다. 진지하면서도 유쾌하다. 따듯하면서도 냉철하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남궁인을 만났다.

장소협조 북바이북 판교점(031-704-0508)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작은 동네 서점. 그곳에서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이화여대부속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의 마지막 북 토크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첫 책 <만약은 없다>를 펴냈다. 이후 딱 1년 만에 응급의학과 의사의 하루를 담은 책 <지독한 하루>를 출간하고, 방송·강연·북 토크 등을 하며 3개월여 쉼 없이 독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물론 본업인 의사로서 진료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북 토크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설 없이 오롯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만을 되짚어간 것. 서른 명 남짓한 독자들이 모인 조그만 공간은 이내 따듯한 공기로 채워졌다.  북 토크를 시작하기에 앞서 저자 남궁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행사를 앞두고 긴장했을 법도 한데 그는 책 이야기부터 최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에피소드, 전교 100등에서 2등이 된 학창 시절 일화까지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와의 대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하루> 반응이 좋습니다. 자랑 좀 해주세요. <만약은 없다> 이후 두 번째 책이라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초반에 반응이 좋았어요. 지금까지 2만 부 정도 나간 것 같아요. 전작에선 저라는 개인을 드러내려고 했고, 이번 책에선 거기에 더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려고 했죠. 그런 부분을 독자들이 좋게 봐주셔서 화제도 되고 판매도 되는 것 같아요. 민망하네요.(웃음)

요즘 강연이나 북 토크, 방송 출연 일정이 많던데요. 책 나오고 상당히 바빴어요. 제가 거절을 잘 못해요. 본업이 의사라 작가로 활동하는 기간이 길지 않으니 여기저기서 불러주시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고요. 서너 달 바쁘게 지내다가 추석 연휴 때 좀 쉬었어요. 다음에 나올 책 원고도 다 써놓고. tvN <어쩌다 어른> 등 방송 프로그램 녹화도 몇 개 했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하루를 책에 담았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극한 직업’이라고 느껴지던데요. 응급실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요. 근무 자체가 못 견디게 힘들거나 그렇진 않아요. 그런데도 가끔씩 힘든 일이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께도 퇴근할 때쯤 중년 여성 한 분이 급사했어요. 욕탕에 둥둥 뜬 채 발견돼서 119에 실려 왔는데 돌아가신 거죠. 아드님께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건지 설명을 해드리는데, 그럼 보통 싸늘히 식은 팔다리를 붙잡고 통곡을 하시거든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얼마나 슬플까 싶죠. 저는 일방적으로 통보해야 하잖아요. 한 번 근무할 때 한두 번에서 많으면 다섯 번은 사망선고를 해요. 힘들죠.
 
책 제목을 <지독한 하루>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요?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결국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일이에요. 근무 시간인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사이 일어난 일이죠. 책 표지말에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라고 썼습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고, 무한히 늘어지는 것 같은 지독한 하루를 겪는 사람이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의사란 직업은 죽음에 익숙해져야 하잖아요. 그 과정이 힘들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힘들죠. 학생 때는 시체만 봐도 놀랐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익숙해져요. 병원에서는 환자 개개인을 환자로만 대하거든요.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병원에서만 통용되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사이에서 의문이 생긴 거죠. ‘이런 게 슬프지 않나? 끔찍하지 않나?’ 병원에선 냉철하게 판단하는 의사지만, 집에 돌아와선 그런 의문을 갖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 글을 썼습니다.

의사로 일하며 글까지 쓴다는 게 대단하다 싶었는데요. 책을 읽어보니 글을 통해서라도 풀어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절박했어요. 처절한 사건들이 간혹 있거든요. 그런 일들을 써놓지 않으면 그때 감정이 제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서도 힘이 들었어요. 글을 쓸 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제 신조가 슬픈 글은 쓸 때도 슬퍼야 한다는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이 울면서 쓰지 않으면 독자도 울면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쓰는 사람이 10만큼 슬프고 힘들어야 그게 간신히 1~2로 전달될 수 있다고 믿어요. 감정을 담아 쓴 글은 나중엔 보기도 힘들 정도죠. 최대한 이입해서 쓰려는 습관이 있어서 힘든 부분이 있어요.

책 쓰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취재는 따로 필요 없을 테고요. 취재 과정은 전혀 필요 없죠. 제 직업 얘길 하는 거니까. 그래서 작가들이 부러워해요. 취재한다고 쓸 수 있는 내용도 아니라며 부럽다고.(웃음) 삶과 죽음은 누구나 얘기하고 싶어 하는 주제잖아요. 제가 겪은 일들을 쓰지 않고 버틸 수 없는 지점까지 오면 그것들을 머릿속으로 굴려서 한 편의 글을 만들어요. 취재하고 결을 맞춰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쓰고 싶은 것들을 써뒀다가 모아서 책으로 만드는 거죠.

가장 가슴 아프게 보낸 환자가 있나요? 너무 많아요. 최근엔 새벽 5시쯤 환경미화원 한 분이 오셨어요. 쓰레기수거차가 후진하는데 뒤에 매달려 있다가 차에서 굴러떨어져 치인 거예요. 병원에 온 지 10분 만에 돌아가셨어요. 새벽 5시에 거리를 청소하는 분이 나쁜 일 한 게 뭐가 있겠어요. 저는 선악은 잘 모르지만, 남들 자는 새벽에 거리를 청소한 분이 왜 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찔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살릴 수가 없었어요.

책에도 묘사했듯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우연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독자들이 그런 얘길 하시더라고요. 드라마에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가는데 제 책에선 결국 다 죽는다고요. 사실 애초에 죽을 정도 위기가 아니면 환자가 저한테 오지도 않잖아요. 90% 이상이 죽어가요. 그런데 그 경계가 종잇장 같은 거예요. 가령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몸을 던졌어요. 앞으로 고꾸라지면 즉사인데, 뒤로 넘어져서 목숨은 건지셨죠. 레일 하나, 벽 하나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리는 거더라고요. 저는 보통 그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만 보는 거죠.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남궁인이 정의하는 죽음이란 뭔가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죽음은 그 자리에 조용히 찾아와요. 죽음이 제게 오면 ‘이번엔 내 차례구나’ 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두렵겠지만 노력하는 거죠.

예전에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우선 정신의학과 도움을 받으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의사잖아요. 제가 그런 위기를 겪기도 했고요. 정신과 치료가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혼자만 생각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죠. 생명이 소중하다는 건 뻔한 말이잖아요. 현실적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자신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건 치료 받고 나아졌을 때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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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로 살면 감정을 정화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글쓰기 외엔 뭘 하시나요? 주로 책을 보고 글을 써요. 글이 써지지 않으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도 보고, 가끔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달리기도 해요. 결국 생각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작업을 계속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제겐 다 환기예요. 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게 살아온 것 같아서 최근에 컴퓨터를 한 대 샀어요, 게임을 해보려고.(웃음) 게임을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시간도 필요하더라고요.
 
머리가 쉴 시간이 필요한 건가요? 네. 그런데 또 10시간씩 게임하다보면 자괴감이 들어서 결국 또 워드 켜고 글을 쓸 것 같아요.(웃음)

시간 낭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되게 힘들어해요. 그냥 삶의 기조인 것 같아요. 뭐라도 쓰고 뭐라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예전에는 혼자 노는 것까지 타임테이블을 짰을 정도예요.(웃음) 몇 시까지 무슨 책을 보고, 몇 시까지 글을 쓰고, 몇 시까지 건반을 치고. 그런데 최근엔 책이 나오고 서너 달 관련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좀 쉬고 싶더라고요.

공감 능력이 뛰어납니다. 의사로서 장점일까요, 단점일까요? 없는 것보단 무조건 있는 게 낫다고는 생각해요. 그렇다고 환자와 같이 울거나 하는 건 아니고, 공감하면서 끈기 있게 환자를 대하는 것까지가 딱 좋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감정을 참아내기가 힘든 순간이 있겠지요. 누가 슬퍼하는 걸 보는 건 항상 힘들어요. 제 앞에서 우시는 분은 정말 안 좋은 일을 겪으신 거잖아요.

책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료인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진상 환자’가 그렇게 많나요? 제가 ‘진상 환자’를 겪은 일을 글로 쓰면 대부분 이게 실화냐고 하세요. 하지만 의료인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죠.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인 중 폭행을 경험해본 사람이 90% 이상일 거예요. 심지어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 난 아저씨가 피를 흘리며 실려 왔는데, 그 와중에 간호사 엉덩이를 만진 거예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요. 인식 개선이 먼저인 것 같아요.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얘기하는 건 조심스럽고, 힘든 상황을 알아주십사 하는 거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함께 치료하는 공간이니까 협조만 잘해주셨으면 해요.

소셜미디어에 글을 자주 올립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몇 년 전부터 소셜미디어로 소통을 했어요. 처음엔 책을 내려고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게 좋았거든요.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좋아해주는 데 보답하려고 계속 읽을거리를 제 계정으로 써내려가다보니 작가가 된 거예요. 소셜미디어는 반응이 즉시 오고, 잘못된 것도 바로잡아줘요. 좋은 피드백이 있는 공간이죠. 도움이 많이 돼요.

대학에 갈 때 글 쓰는 것을 전공할지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의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우선 어머니가 가라고 했어요.(웃음)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문예창작과에 갔을 수도 있어요. 의대 간다고 글 못 쓰는 거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는 제가 설마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쓸 줄은 모르셨대요.

마냥 말 잘 듣는 아들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의외네요.(웃음) 사실 어머니 말씀을 잘 들은 건 의대를 간 게 마지막이에요. 그 후론 꾸준하고 치열하게 어머니 말씀을 안 들었어요.(웃음) 글을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글을 썼고, 아르바이트나 세계일주도 반대하셨는데 결국 했죠. 응급의학과도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결국 그것들이 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고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고2 때까지 전교 100등 하다가 1년 만에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고3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공부만 했어요. TV도 안 보고, 컴퓨터도 안 하고. 성적이 쭉 오르더라고요. 수능은 전교 2등 했어요.

집중력이 뛰어나군요. 그때는 좋았어요.(웃음) 농담을 해도 언어영역 지문을 갖고 했을 정도니까요. 수능 끝나고 문제집을 리어카로 실어 갔어요. 독서실 자리가 바닥부터 끝까지 문제집으로 가득했었거든요. 시중에 나온 문제집을 하루 한 권씩 풀고, 오답 노트도 만들고 했었죠.

글을 보면 한없이 진지할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보니 재미있습니다. 평소엔 밝아요. 농도 잘 치고.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진지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만나보면 그렇지 않아요. 글 쓸 때만 한없이 진지해지는 거죠.

솔직히 저도 만나기 전에 걱정했어요.(웃음)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제 글을 보고 “쟤 미쳤나봐. 집에 가서 글을 쓴대”라는 반응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쟤한테 저런 자아가 있었구나” 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죠.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의 뒤를 이을 책은 무엇인가요? 오늘 초고를 수정해서 냈는데, 독서일기예요. 제가 웬만하면 책을 계속 읽으려고 하거든요. 그걸 기록한 내용이에요. 책을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일기니까 가벼운 내용들이고요. 의사이자 독서가인 저의 시선으로 제가 재미있어하는 부분이 뭔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 책은 연말에 나올 것 같아요. 내년쯤엔 따듯한 글을 한번 써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지독한 하루>를 어떻게 읽기를 바라나요? 제 글을 보기 전까진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모르셨을 거예요. 저는 다른 걸 떠나서 독자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응급실이란 현실 공간에 실제로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대리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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