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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열의 글로벌 k아티스트를 찾아서 01]찰나를 훔친 예술가 권대훈

2017-11-17 09:14

글 : 배기열 아트식스 예술감독(트라바움창의아트센터 관장)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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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길을 잃어 두려움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지요? 그것도 알고보니 아주 작은 숲에서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잎의 싱그러움이 살 끝을 파고들어 뇌에 민트 같은 자극을 전달하는 그러한 기분 좋은 숲에서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어보신 적 있으세요?”(작가 노트 중에서)

권대훈(45세) 작가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숲에서 길을 잃다>(사진 왼쪽) 연작은 오랜 영국생활에서 겪은 생경함과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이방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구나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공포를 어느 정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가로와 세로 픽셀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그 픽셀 조각들은 빛에 의해 다시 존재를 드러내는데 가로, 세로 조명에 의해 각각 반대 위치에 있는 픽셀들이 사라진다. 이는 그림자 게임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착시와 환영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들은 생활하다가 구석구석에서 영감이 떠오르고 그것에 매달리다가 상실감을 갖거나 회복하려는 연속적인 삶을 산다. 결국 작품을 한다는 것은 종교 같은 것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고 발표하면 후회와 부족함에서 오는 아픔이 또 가슴을 찢는다. 작가라는 소리 듣는 게 익숙해지기도 전에 잊히지나 않을까 약간은 두려움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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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작가의 주된 화두는 ‘기다림’과 ‘기억’이다. 작품에 녹아있는 인간의 성찰 과정을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사실적이라기보다 어떠한 순간의 기억을 떠올려 존재하지 않는 환영에 공간을 가두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권 작가는 인체 해부학을 완벽하게 익힌 후 조각을 시작했다. 단순히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각품에 배경을 함께 만들어냄으로써 마주한 화면이 보는 각도에 따라 평면이었다가 입체였다가 한다. 전체 사이즈가 1m 내외에 불과하다는 것에 놀라고, 그 대상들이 섭외를 통해 연출된 것이라는 치밀함에 또 놀란다. 작품(사진 3)은 광장에 서있는 고독한 인간이 보이지 않는 대상과 끝없이 소통하고 있다.

“늘 버스를 타거나 창밖을 내다볼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동시에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늘 궁금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사진 2) 연작은 자소상이며 제목에서 암시하다시피 무인 삼림지대에 놓인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삼림지대처럼 자신의 창을 통해 심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과 투영된 빛의 강약과 투사된 그림자는 심령술사처럼 사람들의 미묘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권 작가의 주된 화두는 ‘기다림’과 ‘기억’이다. 작품에 녹아있는 인간의 성찰 과정을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사실적이라기보다 어떠한 순간의 기억을 떠올려 존재하지 않는 환영에 공간을 가두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피터 데메츠(Peter Demetz), 윌리 버지니에(Willy Verginer)의 정지된 대상과는 다르다. 이 작가들은 역동적인 대상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지만, 권 작가는 오랜 정지 동작을 봉인함으로써 영원히 멈춘 채 박제화될 것 같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피터 데메츠 작품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의 삶이 뒤에서 잡힌다. 윌리 버지니에 작품은 부분채색을 통해 대상 자체를 잡거나 그로테스크하게 인간과 동물의 언밸런스한 장면을 잡는다. 아론 데메츠(Aron Demetz)는 미완성된 인간 형상을 자연스럽게 노출함으로써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권 작가는 대상의 모습이나 장면보다는 그들의 기억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은 주로 빛이 들어오는 창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인물을 소재로 한다. 여기에서 빛은 짧은 순간, 곧 찰나의 기록이다. 이런 짧은 순간은 대개 이미지로 저장되기 마련인데 권 작가는 이렇게 기억 속에 그려진 이미지가 견고한 실제의 재현이기보다는 언제든 변형되어 흩어질 수 있는 불안한 상상 혹은 왜곡된 이미지일 수 있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온갖 존재하는 사물은 나름대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애써 표현된 조각 위로 과감하게 물감을 발라 표현한다. 그 색은 무척 강렬하고 단순한 것처럼 보이나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색과 조각 그리고 빛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인물들의 코스튬과 포즈가 무척 섬세하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군상은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탁월한 색감각과 조각적 기술이 무척 인상적이다. 공통적으로 이 작가들은 액자소설처럼 인물들이 마치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 조각품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듯 보인다. 마치 도자기나 공예품 같은 오브제처럼 인식된다. 이것은 자연주의에 기초를 둔 고도의 초현실주의 기법인 것이다.

실물보다 작은 사이즈의 조각들이 작품의 색상 혹은 실물을 표현한 작품 전체를 무색하게 만드는데, 이는 디테일로 리얼리티의 밸런스를 살포시 빗나가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특히 색상의 경계 혹은 그림자의 경계가 착시를 통해 결국 드러남으로써 환영을 극대화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을 마치 훔쳐보는 관음증까지도 유발한다.

권 작가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 동상(사진 1)으로 유명하다. 2013년 서울에 러시아 시인 푸시킨 동상이 건립된 데 대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내에 박경리 동상이 세워지게 된 데 따른 것이다. 마치 사물 혹은 대상과 상황 혹은 배경은 문학처럼 풀 한 포기가 인간의 존재를 위로할 때도 있고 혹은 인간에게 무음의 노래가 들릴 때 그 위안과 허상을 즐기는 환희마저 부여하고 있다. 이는 사소한 행위를 하고 있는 대상들을 찰나의 시간에 가둠으로써 가능한 것이리라.

인간은 날마다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수천 년 역사 속에 존재한 인간은 스스로 보채는 몸짓을 계속하지만 바라보면 언제나 다른 소리, 다른 얼굴, 다른 빛깔을 머금고 있다.

권 작가의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응어리가 조금씩 풀릴 때마다 그 기억과 시간들은 하나씩 이야기를 던져줄 것이다. 스스로 그것을 은밀하게 써두어야 할 의무를 느끼면 바다처럼 초조와 걱정의 비늘도 털어내고 안개와 작은 섬의 슬픔도 죽이는 그 찰나, 이를 악물듯 가슴에 품으려고 하는 동안 작가 자신으로부터 살점처럼 찢겨나가던 고뇌의 시간들이 모여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작가의 몸부림이 처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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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훈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 부교수
1999년 서울대 조소과(학사-석사), 2004년 영국 런던대 슬레이드 미술학 석사
잭 골드힐 어워드 영국 로열아카데미 오브아츠 수상(2011년),
2005년 영국왕립조각가협회(2005년), 중앙미술대전(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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