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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란을 말한다

<천경자 코드> 출간한 천경자 화백 차녀 김정희 교수

2017-08-30 10:00

취재 : 서재경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김정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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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미인도>의 진위 논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故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유가족 측과 ‘진작(眞作)’이라고 주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가 밝히는 지난 26년간의 ‘<미인도> 위작 논란’과 천 화백 그림 속에 담긴 비밀 <천경자 코드>, 그리고 그리운 ‘엄마’ 천경자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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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 몽고메리대 교수가 어머니의 작품으로 알려진 <미인도>가 위작인 이유를 분석한 책 <천경자 코드>의 출판을 알린 것이다.

김 교수는 <천경자 코드>를 통해 <미인도>가 그려진 시기로 추정되는 1977년도에 천 화백이 그린 작품 7점과 <미인도>를 미학적·과학적 방식으로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천 화백의 작품 7점과 <미인도>는 홍채를 표현하는 방식, 인중의 유무, 입술을 그리는 방식, 스케치 선의 유무, 그림도구로 숟가락을 사용했는지 여부 등 다섯 가지 부분에서 차이를 보였다. 김 교수는 이 다섯 가지 차이점이 천 화백이 본인 작품에 숨겨놓은 비밀 코드, 즉 <천경자 코드>라고 명명했다.

2015년 천 화백 별세 이후 김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을 허위사실유포와 사자명예훼손 등으로 고소·고발했다.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에서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감정보고서를 발표했음에도 검찰은 안목 감정 등을 근거로 <미인도>에 진품 판정을 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들은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에 김 교수는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제출한 상태다.

“허수아비를 갖다놓고 사람이라고 우겨서, 이게 사람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심장을 꺼내 보여야 하는 심정이에요.”

<천경자 코드> 출간 후 <여성조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처절한 심경을 전했다.
 

<미인도>, 기득권 싸움의 희생양인가

천 화백이 <미인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91년 3월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서 <미인도>가 천 화백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천 화백의 지인인 박현령 시인이 이 사실을 전해준 것. 천 화백은 곧바로 국립현대미술관에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진품이 아니라는 천 화백의 주장에도 불구, 그 해 4월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를 발표한다. 당시 천화백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김 교수는 “작품 관리에 철저했던 분이셨기 때문에 사건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담배만 태우셨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미인도>는 10.26 사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압류된 물품 중 하나다. 신군부는 김재규를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지만, 그의 재산 목록 중엔 값어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미인도>가 거의 유일한 귀중품이었기에 신군부 입장에선 꼭 진품이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미심쩍은 부분이 많음에도 검찰은 김재규의 집에서 <미인도>가 나왔다는 것이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증거란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검찰의 주장이 억지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김재규 씨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가 안 맞죠. 작품의 원래 출처를 얘기 못 하는 거니까요.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권력자 후손이 내놓는 작품은 90%가 가짜라고요. 권력자에게 받은 작품인데 감정을 맡기겠어요?” 

김 교수는 <천경자 코드>를 통해 밝히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제가 밝히고자 하는 진실은 두 차원으로 나뉘어요. 하나는 <미인도>의 진작 또는 위작 여부고, 다른 하나는 화랑계와 미술계가 치졸하게 기득권의 안위를 위해 한 작가를 희생시키려 했는지 여부예요. 그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안 그래도 미술계 경기가 안 좋은데 왜 신뢰를 실추시키려 하느냐고요. <미인도>가 가짜가 되면 미술계의 신뢰가 더 실추된다 이거죠. 그런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모른 척하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거죠”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미인도> 위작 논란’을 단순히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들의 싸움에 한 작가가 희생당한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진실을 밝히려는 이유가 의무감 때문이냐고 묻자 “제가 이걸 정리하지 않으면 후세에서 누가 밝히겠어요.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를 지금 공개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왜곡이 될까 싶었죠. 그래서 <미인도>의 진위 여부도 중요하지만, <미인도>를 진품으로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원한 거죠”라고 단호히 말했다.
 

검찰이 수사 방향을 정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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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와 비교 분석된 작품 7점
1 <미인도>
2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3 <미모사 향기>
4 <나비와 여인의 초상>
5 <별에서 온 여인>
6 <수녀 테레사>
7 <멀리서 온 여인>
8 <여인 측면상>

관련자 처벌을 위해선 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4월,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국립현대미술관 전·현직 관계자 6명을 허위사실유포 등으로 고소·고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관계자들이 불기소처분을 받은 것이다.

“중간에 검찰이 편파적으로 수사 방향을 잡은 걸 느꼈어요. 수사 발표할 때 보니 현대미술관 주장이 검찰 주장이더라고요. 당시 감정했던 사람들이 화랑계 실세들이었고, 그들이 증언을 많이 했어요. 그럼 우리한테 반박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검찰이) 우리하고는 연락이 두절되다시피 한 거죠. 수사 당시 공동변호인단은 <미인도> 옆에 있지도 못하게 했어요. 계속 감정 장소도 옮기고요. 그때마다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니까 검사가 ‘그럼 그만둡시다’라고 하더라고요.”

김 교수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의심 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교수는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것을 떠나, 천 화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것인데 검찰의 수사 방향이 지나치게 <미인도>의 진위 여부 판정으로 흘러갔다고 했다.

“이 사건 하나를 검사 4명과 노승권 차장이 담당했어요. 왜 이렇게 검사가 많이 붙었는지 모르겠어요. 이 사건은 명예훼손 사건인데,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누가 기소되고 이런 것 대신 <미인도>가 진품이라고만 발표했어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사건인지도 모를 거예요.”

검찰은 자체 과학 감정을 시도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자, 감정기관에 <미인도> 감정을 의뢰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의 초청을 받은 프랑스 뤼미에르광학연구소(이하 뤼미에르) 감정팀이 <미인도>와 천 화백의 다른 작품들을 다중 스펙트럼 기술로 촬영하여 1650개 단층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총 9가지 검증에서 미인도와 비교대상 작품들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수치상으로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0.000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뤼미에르가 내놓은 결과였다. 하지만 한 달 후, 검찰은 뤼미에르의 감정을 뒤집고 ‘안목 감정’ 등을 근거로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결국 뤼미에르의 감정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뤼미에르 측이 곧바로 반박 기자회견을 통해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관계자 고소 위해 ‘친생자 확인’까지 해야 했던 비극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26년 만에 <미인도>를 대중에 공개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행동을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사용해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기가 막히죠.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도 아닌데, 검찰 수사 결과가 진품이라고 나오니까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전시한 거잖아요. 그 그림은 어머니가 가슴이 찢어지게 가짜라고 주장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전문가들 중에도 소신 있는 분들은 가짜라고 얘기하세요. 그리고 과학감정기관에서도 가짜라고 했는데. 게다가 그림에 ‘경자’라는 사인이 있어요. 이건 엄연한 저작권법 위반이거든요.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의 이름을 거기에 도용한 거니까. 어머니가 아셨으면, 억장이 무너지셨을 거예요.”

하지만 김 교수가 가장 억장이 무너졌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명예훼손으로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천 화백의 친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친생자 확인 소송’까지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천 화백과 그의 두 번째 남편인 故 김남중 씨의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로, 천 화백과 김 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 교수는 천 화백의 친자임을 법적으로 입증받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사자명예훼손’ 수사를 의뢰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세간의 반응은 김 교수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가 ‘유산 상속’을 위해 ‘친생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웃기는 일이죠. 온 세상이 다 (천 화백의 딸인 것을) 아는데 사진, 책, 자료를 내도 판사님이 유전자 검사까지 하라고 하니까 참담했죠. 그래도 거쳐야 할 과정이니까 그냥 했어요. 또 하나 괴로웠던 것은 사람들이 다 재산 싸움 난 거라고 얘기한 거예요. 진실이 아니니까 무시했죠. 저나 오빠나 어머니 작품이 우리 소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좌절하게 되는 순간마다 김 교수에게 힘이 되어준 이는 남편이었다. 김 교수의 남편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는 <천경자 코드> 출간에 큰 역할을 했다. 직접 조지타운대 동료 교수들과 함께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증거들을 파헤친 것이다. 그렇게 나온 증거들이 바로 <천경자 코드>에 실린 핵심 주장들이 되었다.

김 교수는 “자기 일도 많은데, 이 일에 도움을 줘서 고맙죠. 남편이 어머니를 존경해요. 늘 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요. 뤼미에르 감정 때도 어머니 작품의 단층 사진을 보고 감동했더라고요. 어머니의 그림은 단층이 참 예쁘대요, <미인도>는 추한데”라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운 나의 엄마,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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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역설)가 많은 분이셨던 것 같아요. 끈질긴 생명력이 있으면서도 소녀같이 여리시고. 그림도 아름다운 꽃을 그리면서도 여인의 눈은 무섭게 표현하셨죠. 그렇게 엇갈리는 양면을 갖고 계신 분이셨어요. 일관된 건 그림에 대한 열망이 있으셨다는 거죠. 가난 탓에 셋방에 3대가 살면서도 그림을 그리셨어요. 방이 넓지 않아서 그림을 비스듬히 눕혀놓고 그리셨대요. 유일하게 어머니가 벽에 그림을 기대어놓고 그리셨던 때죠.”

김 교수는 ‘엄마 천경자’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천 화백은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젊었을 적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여동생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을 맛봐야 했다. 첫 남편과의 결혼 실패 후 만나게 된 두 번째 남편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그는 이미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사랑을 하는 데에도 열정적인 분이셨어요. 첫 남편분은 너무나 어렸을 때 만나셨고 언니를 낳으셨어요. 전쟁 통에 어머니가 일본에서 돌아와야 하는데 표를 못 구하니까 그분이 구해주기로 한 것이 연이 됐다고 해요. 성격이 안 맞아서 오래 못 사셨죠. 제가 생각하기에 어머니는 (두 번째 남편인) 저희 아버지를 굉장히 사랑하셨어요. 어머니는 주변에 문인, 동료 등 남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한 번도 스캔들이 없으셨죠. 아버지만 사랑하신 거죠. 두 분 다 센 성격이셔서 결국엔 헤어지셨지만요. 아버지는 본처랑 헤어지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하고 결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수군댔지만 끄떡도 안 하셨어요. 어머니가 60년대에 처음으로 일본에 가서 전시를 하셨는데, 그때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동창회가 열렸대요. 그런데 그분들이 학교에 투서를 내서 ‘이렇게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고, 조강지처가 아닌 사람이 동창회에 올 수 없다’고 했대요. 그런데도 끄떡없으셨죠.”

김 교수는 어머니와 아버지 관계를 이상하다고 여겨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고.

어머니의 작품 중 가장 애틋한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엔 “<누가 울어>라고 제가 모델을 한 그림이 있어요. 완성도가 치밀해서 경외심이 우러나오는 작품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리신 <환상여행>도 좋아해요. 완성이 안 됐기 때문에 어머니의 숨결을 느낄 수 있거든요. 두 작품을 완전히 다른 이유로 좋아하는 거죠”라고 답하며 미소 지었다.
 

지난한 싸움, 그 끝은?

<천경자 코드>를 집필한다고 했을 때 모든 형제들이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천 화백의 장녀인 이혜선 씨는 이 싸움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엄마를 끝까지 모셨던 언니는 생전에 엄마가 아니라고 한 것을 뭐 땜에 더 왈가왈부하느냐고 했죠. 어쩌면 그 말이 맞았을지 몰라요. 떠들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고, 오히려 진품으로 못 박으려고 할 것이라고.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진행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김 교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들에 대해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하고 작품의 폐기를 주장하겠다고 말한다.

“현대미술관에 가봐도 관객들은 ‘작가가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러지?’ 하면서 지나가세요. 그런데 정작 전문가들에겐 ‘천 선생 작품 중에 가장 탁월하다’라고 하는 우스운 소리도 들었어요. 저는 <미인도>를 진작으로 만들며 거짓말로 어머니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들이 사과하고 작품을 폐기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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