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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콩쿠르 휩쓴 10대 소녀 유망주들

2017-08-17 14:58

취재 : 황혜진  |  사진(제공) :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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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휩쓸며 기쁜 소식을 전해온 10대 유망주들을 만났다. 발레리나부터 바이올리니스트, 플루티스트까지 소녀 꿈나무들의 공통점은 춤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무대를 즐겼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한
발레리나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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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해볼까요? 이런 포즈도 할 수 있어요.”

어떤 자세를 취해도 아름다워 셔터를 멈추기가 어려웠다. 기자와 포토그래퍼의 계속되는 요구에도 힘든 내색 한번이 없으니 그 상냥함에 반해 더욱더 욕심이 생길 수밖에.

발레리나 박선미(18) 양은 지난 6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막을 내린 제13회 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 주니어 파드되(2인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한국 무용의 유망주다. 이번 우승으로 금메달과 2만 달러(한화 약 2천2백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수차례 입상해오긴 했지만,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이름을 남기게 돼 더욱 의미가 크다. 모스크바 콩쿠르는 스위스 로잔 콩쿠르, 미국 IBC(잭슨 콩쿠르),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와 함께 세계 4대 발레 콩쿠르로 통한다.
“사실 너무 큰 대회니까 경험 삼아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1차에서 3차전까지 치러지는데 무사히 3차까지 올라만 가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1차, 2차 발표를 기다릴 때마다 이번에만 붙게 해달라고 떨었던 게 기억나요. 많은 분들께 축하를 받았는데 작품을 잘했다는 말씀이 정말 기뻤어요.”

이번 콩쿠르에서 선미 양은 <탈리스만> <지젤> <돈키호테> 작품을 연기했다. 3월부터 연습을 시작하려 했지만 파트너의 부상으로 4월 중순에서야 작품을 맞춰볼 수 있었고, 한국에는 없는 러시아의 경사진 무대에 적응할 기회도 한두 번의 리허설 때가 전부였다. 심지어 해외 유학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만 공부했음에도 발레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러시아 본토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1등을 거머쥐었으니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재학 중인데 그곳에 좋은 선생님들이 계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연습시간은 짧았어도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께 제대로 배울 수 있어 큰 성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어 무용수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을 묻자 “상대적으로 부족한 무대 경험과 상체 표현력의 부족함”을 단점으로 꼽고는 “장점은 없는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마음가짐과 겸손함이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연습할 때는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는데 하나하나 늘어가는 제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그리고 그렇게 나아진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내줄 때 행복하죠. 특히 선생님께서 항상 ‘이번 무대는 어땠어?’라고 물어보시는데 ‘즐겼다’고 말할 때 가장 행복해요.”

어렸을 때부터 선미 양은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체육에 관한 것이라면 스스로 먼저 하겠다고 나서서 줄넘기대회나 육상대회에 나갔고 수영도 배웠다. 발레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대학시절 현대무용을 전공한 엄마의 권유였다.

“처음에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데 흥미가 없어서 그랬는지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배우게 되면서 발레가 정말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엄마 말씀이 제가 아플 때도 발레는 꼭 하고 싶어 했대요. 좋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면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단순히 취미 정도로만 생각했던 발레를 진지하게 전공으로 삼게 되면서 선화예중에 이어 선화예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한예종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들어가 두 교육기관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보통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때 영재원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한참 늦게 들어간 거잖아요. 친구들이 너무 잘해서 충격을 많이 받았었어요. 조용히 뒤에서 따라가려고 노력했었죠. 학교 끝나면 밤 7~8시, 바로 영재원으로 이동해서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12시였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영재원에서는 조금 더 어려운 걸 배우고 색다른 작품을 해보며 공연 연습도 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잘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나도 더 연습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올해는 한예종 무용원 실기과에 영재 입학하면서 고등학생 나이에 대학생이 됐다. 영재라는 말이 계속해서 따라다녔으니 성과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에 비해 뒤처져서 항상 많이 혼나는 편이었어요. 친구들은 워낙 잘했으니까 장학금 받아서 해외 유학 나가 있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못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저는 춤추는 게 마냥 즐겁거든요. 물론 성과에 대한 압박도 있지만 콩쿠르에 나가면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특히 해외 콩쿠르 같은 경우에는 모르는 분들로부터 받는 평가라 굉장히 감사합니다.”

이번 콩쿠르를 마친 후에는 함께 출전했던 이수빈(주니어 여자 솔로 2위 수상), 이상민(시니어 파드되 장려상 수상) 학생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있는 발레리노 김기민을 만나고 돌아왔다.

“기민 오빠가 발레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대학생활부터 발레단에 들어가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어요. 사실 러시아 사람들은 동양 무용수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발레단이기도 한데 기민 오빠가 들어간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선미 양도 러시아 발레단 입단을 목표로 한다. 특히 마린스키 발레단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당연히 마린스키 발레단에 가고 싶은데…. 꿈을 크게 가지면 가능할까요? 3학년 때 조기졸업을 하고 러시아 발레단에 들어가는 게 목표예요. 저 발레리나는 동양인인데도 춤을 정말 잘 춘다는 말을 들으면서 관객들에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음악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가슴에 품은
플루티스트 노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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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참가한 국제 콩쿠르였거든요. 통역을 안 해주니까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수상자 발표를 듣는데 ‘이치방(최고 또는 으뜸)!’이라는 단어에 이어 제 이름이 호명됐어요. 정말 1등이 맞나 싶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죠.”(웃음)

플루티스트 노유민(14) 양은 지난 5월 일본 다카시마 시에서 열린 비와코 국제 플루트 콩쿠르에서 일반부문 1위를 차지하며 1백10만 엔(한화로 약 1천1백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18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부문이 있었지만 유민 양이 33세 이하의 일반부문에 참가하면서 청소년부문에서는 17살의 중국 연주자가, 일반부문에서는 당시 만 나이 13살이었던 유민 양이 각각 우승을 하게 됐다.

“곡 목록을 살펴보니 일반부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입상보다는 경험이 목적이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라운드의 음악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수원시향과 협연을 했던 곡(메르카단테의 ‘플루트 협주곡 E단조’)의 2악장이었어요. 익숙한 곡인 만큼 준비도 더 철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습 때는 선생님이나 엄마가 함께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온전히 혼자다. 두렵거나 긴장되는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 유민 양은 “무대 밑에서는 떨리기도 하지만 곡이 시작되면 노래에 바로 몰입되고 오히려 긴장이 풀린다”며 “엄마가 항상 음악과 친구가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작곡을 전공했던 유민 양의 어머니는 피아노학원을 운영했었다. 딸이 플루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학원을 접고 매니저 겸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어머니가 이번 콩쿠르를 치르던 중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며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3라운드 무대에서 실수가 있었고 엄마 몰래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나온 유민 양이 결과 발표도 듣지 않고 호텔로 돌아가려 했던 것.

“저희 가족은 가톨릭 신자인데 유민이가 그랬어요. 1, 2라운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연주하고 3라운드에서는 본인이 굉장히 좋아하는 ‘상캉 소나타’가 미션 곡이니 자기 자신을 위해 불러보겠다고요. 아마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겨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낙담한 딸을 가까스로 달래 3라운드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4라운드 결선 전 반주자와 맞춰보는 기회를 놓칠 뻔했던 것이다. 유민 양 어머니는 “아무리 훌륭한 전문가도 미스 터치가 안 날 수 없는데, 전체적으로 음악의 흐름이 좋다면 작은 실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심사위원장이었던 구니타치 음악대학 오토모 다로 교수님도 강평에서 유민이를 칭찬하며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유민 양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플루트를 시작했다. 다니고 있던 피아노학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플루트 특강을 했는데, 악기의 반짝이는 예쁜 모습과 영롱한 소리가 유민 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플루트를 배운 지 8개월 만에 서울대 음악대학 관악콩쿠르에서 최연소 1등을 하고 이화경향 콩쿠르 플루트 부문에서도 최초로 5학년의 나이에 1위를 거머쥐었다. 콩쿠르 우승 비결을 묻자 유민 양은 ‘간절함’을 이야기했다.

“정말 열심히 연습해요. 플루트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니까요. 음악을 잘하고 싶어 학교도 그만두었으니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다니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의 이예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자주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사랑해야 하는 거라고요.”

초등학교 졸업 후 예원학교에 입학했던 유민 양은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올해 한예종 영재원에 들어갔고 중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는 아이들의 경우 슬럼프를 빨리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민 양도 올해 짧지만 강렬했던 한 차례의 음악적 침체기를 지나쳤다. 유민 양의 어머니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학교도 그만두고 열심히 하기로 한 것이다 보니 아이도, 선생님도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 중 한 분이 굉장히 엄한 편이신데 호되게 혼난 이후로 유민이가 플루트를 그만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행복이고, 또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시킨 음악이었기 때문에 저도 울고 아이도 울고 가슴앓이를 많이 했죠. 딱 일주일만 깊게 고민해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만 악기를 잡지 않아도 생각이 나서 힘들어하는데 정말 플루트에 손도 대지 않더라고요. 그러고 일주일 뒤에 하는 말이 도저히 책을 버리지 못하겠대요. 그래도 음악을 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간이 오히려 약이 됐다. 어느 누가 시켜서가 아닌, 본인 스스로 선택한 음악에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집중력도 높아졌고 간절함도 자라났다.

“8월 말에 개최되는 이탈리아 국제 콩쿠르를 준비 중이에요. 하루 8~10시간 정도 연습하는데요. 시간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집중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독주회도 많이 하고 싶고, 오케스트라에도 들어가고 싶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항상 감사할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음악가가 되겠습니다.”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바이올리니스트 강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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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아빠가 태명을 바흐라고 지어주셨어요. 음악을 못하셔서 음악 잘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대요. 지금도 집에서 저를 바흐라고 부르세요. 아빠만요.”(웃음)

태명부터 남달랐던 바이올리니스트 강나경(14) 양. 지난 6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10회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의 영예를 안아 상금 5천 달러(한화 약 5백60만원)를 받았다. 1997년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권혁주가 2위를, 2015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피아니스트 예수아가 1위를 차지했던 이 대회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를 전공하는 청소년들에게 국제무대 등용문으로 꼽힌다.

앞서 나경 양은 2010년 음악교육신문사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이화경향 콩쿠르를 비롯한 국내 다수의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2013년 일본 유로 아시아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최연소 1위, 2016년 메뉴힌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주니어 4위 등 권위 있는 세계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건 6살 때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엄마의 권유로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인연이 시작됐다.

“학원 선생님이 손을 한번 보시고는 바이올린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얼굴도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를 닮았다면서요.(웃음) 저도 해보니 바이올린이 더 재밌었고요.”

놀이공원에 가는 것과 ‘셀카’ 찍는 것을 좋아하는 영락없는 10대 소녀지만 무대에서만큼은 프로 중의 프로다. 이미 10살 때부터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원시향, 울산시향, 청주시향 등과 성공적인 협연을 펼쳐왔다. 성인 연주자들 중심에 서서 장시간 집중해내고, 또 간주가 나오는 동안 음악을 여유롭게 즐기기까지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경 양은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는 떨리는데 막상 음악이 시작되면 괜찮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나경 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무대에 서는 걸 워낙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또 “연주하는 동안에는 음악에 빠져서 하지만 연습할 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 똑 닮은 두 모녀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물론 무대 체질을 타고난 나경 양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온 때가 있었다. 무대 공포증이 생겨버렸던 것.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연주가 있으면 즐거웠어요. 그런데 5학년 때 나갔던 이화 콩쿠르에서 한 번 실수를 했어요. 중간에 연주를 살짝 멈춰버렸죠. 그런 일이 처음이었는데, 예선에서 탈락했어요. 선생님께도 많이 혼났고요. 그 이후로는 1년 넘게 무대에서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이듬해 재도전해 1등상을 수상하며 무대 공포증도 함께 극복했다. 콩쿠르에서 꾸준히 우승하는 비결을 묻자 “연습밖에 답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전 10시 반에 연습실에 도착해서 밤 11시까지 연습하고 그러거든요. 선생님 옆방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는 거예요. 누가 더 많이 연습을 하느냐가 수상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자그마한 손을 만져보니 딱딱하고 두꺼운 굳은살이 앳된 얼굴과 대조돼 그간의 노력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연습이 너무 힘들어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나경 양의 어머니는 “예전에 바이올린이 하기 싫다고 말할 때도 있었는데 정말로 그만둘까 봐 남편과 함께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면서 “그러면 진짜 관두라고 악기를 쌓아놓으니 그다음부터는 그런 말을 안 하더라”고 했다. 나경 양은 “제가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앞으로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경 양은 연습시간 확보를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들어가면서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국제 콩쿠르를 많이 나가다 보니 학교 공부와 병행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홈스쿨링을 하면서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졌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어요.”

올해 삼일미래재단 장학생,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 포럼 장학생으로 선정된 나경 양. 9월에는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앞두고 있다. 나경 양 어머니에게 딸이 어렸을 때부터 영재라는 말을 들어온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었는지 물었다.

“아이가 음악을 하며 항상 스스로 만족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그런데 영재라고 불리니만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하죠. 어릴 때 반짝 잘하다가 사라지는 사람들 많다는 얘기도 많이 하잖아요. 콩쿠르에 따라가면 나경이는 잘 자는데 저는 밤에 잠을 못 자요.(웃음) 아마 제가 더 긴장을 하나 봐요.”
 
워킹맘이기 때문에 딸의 곁을 지켜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콩쿠르를 준비할 때 엄마가 가장 많이 챙겨야 하는데 선생님들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세요. 이번에도 제가 일하는 걸 아시다 보니 마지막에 딱 한 번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아이가 고집이 센 편인데 그만큼 엄하게 잡아주시기도 해서 감사하죠. 바이올린계의 대모로 불리시는 김남윤 교수님께서는 아이가 콩쿠르에 나갈 때 악기를 직접 빌려주시기도 해요.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나경이가 입고 온 옷도 대회 나갈 때마다 의상을 협찬해주시는 분께서 콩쿠르 우승 기념으로 선물해주신 거예요.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나경 양도 “훌륭한 선생님들께 받은 레슨을 토대로 무대에 올라가 박수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앞으로 관객들이 듣고 행복해할 수 있는 음악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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