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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행복한 예술 애호가로 키우는 법

주성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2017-06-15 08:24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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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 현장에 40년 넘게 몸담아온 주성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을 만났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또 아이들을 행복하고 창의적인 예술 애호가로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주성혜는 자타공인 예술교육 전문가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학 학사·석사·박사,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인류학 박사를 수료하며 꽤 오랫동안 학생의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몸소 경험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된 지도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친구들과 제자들 대부분이 예술가가 되기를 꿈꿨고, 예술가가 되거나 되지 않았으며, 그들 곁에 함께하는 부모 또한 숱하게 만나왔다.
 
그렇게 예술교육 현장에 40년 넘게 몸을 담아온 그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을 맡아 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꾸려온 지 3년이 되어간다. 예술교육과 도저히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주성혜 원장이라면 문화와 예술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정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지난 5월, 곧 있으면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그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아쉬운 기색도 홀가분한 기색도 없었다. 그저 매일 하던 일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즐겁게 해나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만 전해졌다.
 

다음 주에 큰 행사를 앞두고 있다면서요. ‘2017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인데요. 국내외 유명 예술가, 예술교육자들과 함께 세계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변화와 성과를 점검하고 공유하는 시간이에요. 올해에는 참가자를 4백 명 받기로 했는데 금세 마감되는 바람에 대기 순번을 매겨야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요.(웃음) 저희 진흥원이 2005년에 설립됐는데요. 처음 시작할 때 예산 80억원에 직원 8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예산 1천3백억원에 직원은 1백10명이 넘으니 굉장히 커졌죠? 그만큼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문화예술 사업이 많아지고 다양해졌다는 이야기지만, 질적으로 좋은 교육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많이 고민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은 질적 제고를 위해 내실을 다지는 시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도 전시에 비중을 두기보다 토론에 중점을 두기로 한 거예요.
 
우리나라 예술교육의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지나치게 기술교육에 치중돼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 생각해보면 높은음자리표를 잘 그릴 줄 알아야 하고 화음기호 맞출 줄 알아야 하고 또 다음 가사에 알맞은 리듬은 무엇인지 찾는, 그런 시험을 많이 봤잖아요. 거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못했어요. 그런 음악교육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자녀를 피아노학원에 보내시죠. 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교육자도 있지만 대다수의 학원에서는 여전히 도레미 치면 파솔라시도를 쳐야 한다는 식으로 음악을 가르치고 있어요. 바이엘 치고 다음에는 체르니 몇 번을 치고, 정해진 답과 순서가 있는 거죠.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구도와 샘플을 그대로 똑같이 그리게 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어떤 식의 예술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예술이 즐겁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진도를 빨리 빼지 못하고 몇 주째 같은 곡을 치고 있더라도 다그칠 것이 아니라 이 곡이 재미있는지, 이 부분을 조금 더 크게 치거나 느리게 치면 더 재밌지 않을지 함께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표현할 수 있게 해야 하죠. 예술이 재밌고 좋은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서에 공감하고 몰입하기 때문이잖아요. 노래를 열중해서 부르면 얼마나 속이 시원해요. 발성이 잘 되는지 리듬이 잘 맞는지, 기술적인 것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더 이상 즐겁지 않잖아요. 물론 예술을 더 잘 즐기려면 문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을 원하는 아이가 아니라면 예술이 즐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애호가로 자랄 수 있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되길 원하는 아이라면요? 예술가를 키우고자 하는 전문 예술교육의 경우에도 지나치게 기술에 치중돼 있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예술고등학교 커리큘럼이 4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술교육이 창의교육이나 체험교육 방식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히려 일반 학교에서 많이 나오고 있죠. 훌륭한 예술가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어떤 음악가는 그저 느린 곡을 기교 없이 천천히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게 하죠. 그 감동은 서커스를 보면서 나오는 감탄과는 다른 것입니다. 기술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에요.
 
자녀에게 그러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그 부분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으로서가 아니라 학생으로, 교육자로 40년 동안 예술학교를 경험해온 저의 사견을 말씀드릴게요. 자녀에게 예술가로서의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린 나이에 판단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흔히 영재를 찾아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영재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가 맨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을 때 한 달 먼저 시작한 친구, 반 년 먼저 시작한 친구보다 잘했을까요? 어릴 때는 먼저 시작한 아이가 잘하는 아이로 보입니다. 경쟁의 기준이 기술 습득의 수준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들은 기술을 도구로 삼아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철학이 묻어나는 예술을 하지요. 예술은 스스로 많은 것들을 겪어보고 생각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저 직업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뛰어나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어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하는데, 영재 여부를 가리는 연령대는 그런 경연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거죠.
 
그렇다면 자녀가 어린 나이에 기술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재 판별 검사를 받으러 가는 분들도 계신데, 만약 아이가 그 검사에서 탈락한다면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차단한 결과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나는 영재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해요. 한편으로는 자부심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음악계에서는 영재라고 불리다 조로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영재를 많이 발굴해 국가적으로 나서서 홍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자라 30대가 된 후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예술계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는 친구와 관계하는 경험, 독서를 바탕으로 하는 간접경험 같은 것들을 쌓는 것이 중요해요. 지식과 기술 중심으로 키워지는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골방에 몇 시간씩 들어가서 때마다 들어오는 밥만 먹으면서 성장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그 분야의 기술자가 되거나 도태하는 자가 될 수 있어요. 부모도 모르는 세상이 얼마나 많나요. 아이를 놓아두면 그 아이는 부모가 알지 못하는 세계까지 훨씬 더 다양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른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연주자나 발레리나가 된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장님의 자녀는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랐나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딸이 하나 있는데 많이들 궁금해하세요. 저는 일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셨어요. 어머니와 교육관이 달라 실랑이를 좀 했었죠.(웃음) 저희 어머니는 요즘으로 치면 대치동 엄마 같은 분이셨어요. 저 스스로도 호기심이 많았지만 그런 어머니 덕분에 제가 예술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교육자로서 기획자로서 음악평론가로서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그런데 보통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들 그래요. 내 자식은 예술 안 시킨다고요.(웃음) 저도 아이가 예술계로 가겠다고 할까 봐 두려웠어요. 다른 경험들을 다양하게 해보길 바랐죠. 그런데 어머니가 피아노를 조금은 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너는 어떻게 음악 선생님이라는 아이가 레슨 선생님도 구해주지 않느냐고 나무라셨어요.(웃음)
 
그래서 선생님을 구해주었나요? 저희 학교 졸업생을 선생님으로 모셨죠. 대신 절대로 테크닉을 가르치려 하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만화 <세일러문> 노래를 쳐달라고 했죠. 저희 아이에게는 그게 최고의 노래였거든요. 아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죠. 건반에 대해 관심이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짬짬이 쉬는 시간에 아이는 칠 수 없지만 굉장히 신기한 음악들, 예를 들어 모차르트나 브람스가 보여줄 수 있는 엄청난 세상들을 보여주라고 주문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니까 불안해하셨죠. 하지만 굉장히 깨어 있는 분이기도 하거든요. 제 좌우명이 ‘나는 주성혜다’예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심어주신 건데요. 다른 친구가 무슨 일을 하건 제가 무슨 일을 하건 “너는 주성혜다”라고 말씀해주시곤 했죠. 결과적으론 절 믿고 맡겨주셨어요.
 
딸이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는데 어느 쪽 진로를 택했나요?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제가 3년 정도 휴직하고 유학을 다녀왔어요. 그때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갔는데 그동안 바이올린도 시키고 가야금도 시키고 원 없이 이것저것 시키셨죠.(웃음) 방학 때 제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또 유야무야되고요.(웃음) 저희 아이도 커서 유학을 갔거든요. 어떻게 지내나 보러 갔더니 워싱턴DC 시립 오케스트라에서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걸 지원해서 받고 있더라고요. 자기가 배운 곡을 연주자마다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는지를 들으며 비교하고 분석하고 상상하고 재밌어하면서요. 언젠가 한번은 같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저를 원망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한테 왜 더 열심히 음악교육을 시키지 않았느냐고요.(웃음) 어떤 길이어도 아쉬움은 남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아이가 음악을 더 잘 즐기는 사람이 되길 바랐던 거니까요. 딸아이는 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도 놀라울 만큼 음악을 듣고 분석하는 깊이가 깊어요. 그래서 저희 아이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행복한 애호가입니다.
 
딸이 예술가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정말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세계적인 예술가는 정말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예술가들은 예술 안에 존재하는 재미, 몰입하고 물음을 던지고 감정을 풀어내고 표현하고 상상의 시간을 갖는 그런 것들에 미쳐서 평생을 걸어가는 거거든요. 부모나 선생님이, 어른들이 보기에 매끈한 테크닉을 가르치고 껍데기를 흉내 내는 법만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엄마나 선생님 때문에 더욱더 경직되고 예술을 등지게 되는 일도 많죠. 저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꿈이 과학자, 성악가, 지휘자, 작곡가, 음악학자 등으로 계속 바뀌었어요. 지금 누가 제 전공이 뭐냐고 물으면 음악과 예술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 예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 같은 것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어릴 때는 결코 상상할 수 없던 길이었어요. 커가면서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인생의 과정에서 창의력을 기르고 예술을 즐기며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예술교육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학부모들이 요구하면 교사도 학교도 빨리 변해요. 엄마들이 나서서 창의적 예술교육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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