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향

바로가기 모음 이벤트 동영상 카드뉴스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3. people&

서툴지만 당당했던 촌년들의 성장기

서수민 예능피디 & 조선희 사진작가

2017-02-16 09:50

취재 : 임언영 기자  |  사진(제공) : 신승희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경북 포항과 칠곡에서 나고 자라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했다. 풍운의 꿈을 안고 연세대 의생활학과 학생이 되었으나 전공보다는 각자의 꿈이 더 좋았던 두 사람. 교집합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숨겨진 25년 절친 스토리를 들어봤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본인의 이름 석 자 이외에 다른 수식이 필요가 없다. <개그콘서트>, <프로듀사> 등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을 책임졌던 서수민 피디와, 연예인의 파격 사진부터 영화 포스터까지 독보적인 작품성을 인정받는 조선희 사진작가가 그렇다.
 
교집합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은, 그러니까 지금의 서수민과 조선희가 아니었던 소위 ‘찌질했던’ 25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온 친구 사이다. 그들은 일찌감치 전공 공부보다는 각자 좋아하는 영역을 찾아서 스스로 움직이던 사람들이었다. 사진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자라온 환경과 코드가 맞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친구가 됐다.
 
이후 한 친구는 사진을 계속하고, 한 친구는 연극에 빠지게 됐지만 우정은 계속 이어졌다. 단칸방 자취도 함께 했고, 서로의 알몸을 보고, 숨기고 싶은 가족사와 연애사를 공유하면서 각자 좋아하는 분야에 매진하는 서로를 응원했다.
 
 
# 촌년들의 성공기
 
하는 일도, 성격도, 취향도 많이 다른 두 사람인데 돌아보니 통하는 것이 많았다. 서툴고 부족하고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스스로 일어났던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중 가장 굵직한 것을 꼽으라면 길들여지지 않는 강한 기질을 가진 ‘촌년의 힘’이다.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또 다른 사진동아리 친구인 출판사 대표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을 했다. 어쩌다가 술자리에서, 순식간에 화끈하게 이루어진 일이다.
 
 
제목이 끝내줍니다. <촌년들의 성공기>.
 
서수민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진짜 이 제목으로 할 줄 몰랐어요. 전 여기서 두 포인트를 인정할 수 없어요. 성공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촌년인 것도 인정 못 해요. 저는 시(市) 출신이에요. 그것도 대통령을 배출한 포항시. 
조선희 서울시민 아니면 다 촌년이지. 나는 촌년이에요. 성공은 생각하기 나름이잖아요? 법칙이 없어요. 자기 마음이지 뭐. 이 나이 되도록 성하게 잘 살고 있으면 성공한 거예요.
 
 
25년 지기 친구와 함께 책을 낸 소감은 어떤가요? 서수민 피디는 첫 책이죠?
 
서수민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활자로 했을 때, 그 활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안 내려고 버티다가 책을 내게 됐어요. 막상 작업을 해보니 책에 진심이 담기는구나 싶어요.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한 보상, 정리인 것도 같고요. 나는 시행착오를 건너온 사람인데, 똑같은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조선희 저에게는 여섯 번째 책이에요. 책을 읽는 것이 좋고, 활자화가 되든 안 되든 혼자 뭔가 생각하고 쓰는 것이 좋아요. 첫 책을 2004년에 냈는데, 그때 제 목표가 죽을 때까지 10권의 책을 내는 거였어요. 책이 안 팔리더라도 그 정도 고민하면서 살아보자는 것이었는데, 이번 책의 의미는 25년 지기 친구와 많은 것을 나누는 것이겠죠.
 
 
작업하면서 내 친구의 몰랐던 점을 새롭게 안 지점이 있나요?
 
조선희 ‘생각보다 여성스러운 아이였구나’와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았나’요. 많이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피디라는 직업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본인이 나서는 것보다 상대를 빛나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친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안 부분은 그런 거예요. 
서수민 오래된 친구지만 흔히 생각하는 여자들처럼 다정다감하진 않아요. 스킨십도 없는 편이고. 같이 살았었고. 그런데 그게 익숙해요. 우리는 힘든 것을 서로 나눈 적이 없어요. 그런데 책을 보면서 내가 했던 비슷한 고민을 이 아이도 했구나, 그런 것들이 저에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내가 선희를 바라보고 있고 선희가 바라보는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둘이 같이하기 잘한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른 만큼 서로가 많이 변했죠?
 
조선희 변했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잘 안 봤을 때도 1년에 한 번은 보는데, 변했다는 생각이 그리 안 들어요. 한결같이 똑같이 엉덩이도 크고. 
서수민 사진작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옆에서 보기에도 아슬아슬할 때가 있었어요. 야생에서 자기 영역을 만드는 것이 월급 받는 직장인인 저와는 다르잖아요. 그때에 비하면 그렇진 않으니까. 여유로움이 있죠. 
조선희 저는 힘들면 힘들다고 표시하는 스타일이고 수민이는 안 하는 스타일이라서, 술을 마시면 저의 힘듦으로 귀결이 되죠.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땐 밥 먹을 돈도 없고 차비도 없었어요. 지금은 차도 있고 밥도 두 그릇씩 먹고 집도 따뜻해요. 그런 게 변한 것이겠지만, 변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이번 책 작업은 드라마 <프로듀사> 작업 이후 두 번째 공동 프로젝트죠?
 
조선희 수민이랑 일을 한 번 같이 해봤는데, 놀랐어요. 고집을 말할 줄 알았는데 안 그러더라고요. “그래? 그렇게 할까?” 할 이야기 있을 때 하고. 놀랐어요. 제 분야에서 더 아는 부분을 어드바이스 비슷하게 말하면 “그래?” 하면서 받아들이더라고요. 
서수민 <프로듀사>가 저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인 것 중의 하나가 드라마라는 점이었어요.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후회하면서 시작해서 다시는 안 해야지 했거든요. 선희에게 개인적으로 SOS를 보냈어요. 그런데 “네 첫 드라마는 내가 찍어야지” 하면서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더라고요. 저는 이 작품 하고 다시는 안 할 거였기 때문에.(웃음)
 
 
본문이미지

# 대학시절 우리는 ‘코드가 맞는 또라이’
 
연세대 의생활학과 90학번의 정원은 44명이었다. 성적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서수민 피디와 조선희 작가는 하위 10% 언저리에 있었다. 3.0에 한참 모자라는 학점은 두 사람의 훈장이다. 비록 전공 공부에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열과 성을 쏟던 뜨거운 청춘이었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심지어 자취도 함께 한 사이죠. 처음에 어떻게 친해지게 됐어요?
 
서수민 우리는 마이너였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도, 과에서도 마이너였어요. 생각도 적성도 마이너였던 것은 촌년이라는 키워드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이 또 우리를 결집시키는, 고집과 에너지를 갖게 한 포인트였어요.
 
 
두 분 모두 전공과 무관한 길을 걸으셨어요.
 
조선희 이런 거 있잖아요. 우리 과 친구들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오래 공부한 친구들인데, 우리는 그냥 공부하고 시험 보고 그러다가 온 케이스예요. 그러니까 딱 내 것은 아니라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저는 사진, 수민이는 연극에 매진했죠. 
서수민 저도 처음에는 사진서클이었어요. 그런데 5월에 그만뒀어요. 비싼 카메라를 살 수 없었거든요. 재봉틀 사느라 돈을 썼는데 카메라까지 살 수가 없었어요. 선희는 카메라를 샀고 저는 못 샀죠. 사진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선희에게 할 말 있다고 하고 서클을 그만둔다고 말했어요. 
조선희 그때 감정은 잘 모르겠는데 빛이 생각나요.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런데 사진에 뜻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연극을 더 좋아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서수민 선희는 사진을 계속 하고 저는 연극을 했죠. 그러다가 나중에 언니 결혼식 사진을 선희가 찍었어요. 엄마가 선희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셨나 봐요. 저에게 “너는 왜 저런 거 안 하냐”고 하셔서 결혼식장에서 화가 빡 나더라고요. 엄마가 카메라를 안 사줬는데.(웃음) 후회는 안 해요. 저는 선희가 사진을 시작하는 것,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다 지켜봤어요. 선희의 영역을 제가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결과론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있으셨던 거죠.

서수민 선희가 사진을 하고 싶어 하는 것과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제게 피디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세워놓으면 왜 되고 싶은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다 다르거든요. 저는 제가 중심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작업과 제가 일원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작업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물리적으로 카메라는 장비 살 돈이 없었어요. 
조선희 수민이는 똑똑했어요. 대학교 때 우리끼리 모여서 스터디도 하고, 졸업하기 전에는 전시 준비도 했어요.
 
 
서로 모르는 이야기가 없으실 것 같아요. 연애사부터 가족사까지.
 
서수민 친구들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것이 선희예요. 
조선희 저는 예전부터 사랑제일주의예요. 나이가 들어서 몸이 늙는 것처럼 마음도 늙으면 좋은데, 이상하게 몸만 늙지 마음은 안 늙어요. 나는 그게 너무 괴로워요. 친구들에게도 능력 되면 자유연애 하면서 애나 낳고 내 일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게 멋있다고 말해요. 프랑스식으로.(웃음) 저는 지금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가졌죠. 소유했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것이 많다는 뜻이에요.
 
 
본문이미지

# 끝없이 성장하는 것이 성공의 잣대
 
열정이 뜨거웠던 두 사람은 끝내 각자가 좋아하는 영역을 찾아냈고, 각자의 분야에서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여자로서의 삶도 훌륭하게 완성했다.
 
 
두 분은 다 갖춰서 바랄 게 없겠어요.
 
서수민·조선희 그 말이 제일 싫어요! 
조선희 딸도 없는데. 
서수민 아들도 없는데.
 
 
일단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누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과 가정을 모두 성공적으로 가졌으니까요.
 
조선희 가졌다는 것은 소유했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것이 많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서, 저는 그런 생각 해봤어요. 남편에게 말한 적도 있어요. “우리 지금 헤어지면 안 되나?” 이렇게요. 너무 진지하게. 아들에게도 말한 적 있지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하기엔 그들이 받을 상처가 너무 많은 거야.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 
서수민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후회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싱글맘으로 살겠다? 이것도 아니에요. 다양한 방식이 있는 삶을 보자는 거예요. 결혼도 했으니 다 가졌다고 접근하지 말고, 삶의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동경하는 각자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보자는 말이에요. 
조선희  역시 수민이는 너무 똑똑해요. 맞아요, 그 이야기예요. 누구나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가본 길과 가보지 않은 길이 있잖아요. 내가 만약 결혼을 안 하고 애도 없이 지금의 삶을 산다면 엄청 외로움을 느꼈을 거예요.
 
 
그럼 거꾸로,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나요?
 
조선희 지금 이걸 이루기 위해서 25년의 시간을 보냈어요. 앞으로 내게 그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이것을 위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요.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요즘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20대 초반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 안식년을 가지면서 여행을 다니고 나랑 대화를 할 거예요. 
서수민 얼마 전에 치통이 있었어요.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고 검사를 했는데 충치가 없대요. 생각해보니 2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요. 너무 아픈데 충치가 없다고 해서 혼자 속으로 ‘이렇게 치료 거부를 당하나’ 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요즘 스트레스 받으시나요?” 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2년 전은 <프로듀사> 시작할 때였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악물었던 거죠. 맞는 것 같아요. 회의하다 안 풀릴 때 보면 내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져요. 내가 필요 이상으로 이를 악물고 살았구나.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가 궁금합니다.
 
서수민 올해의 화두는 내 안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회사를 나왔고, 사랑하는 가족과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지 찾아야죠. 아등바등하는 것은 답이 아닐 테니,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조선희 저는 올해 안식년을 계획하고 있어요. 혼자 여행을 가려고요. 나를 내려놓고 싶어요. 우리처럼 뭔가 불태워서 사는 사람들은 그게 쉽지 않아요. 일중독이기도 하고 그런 것이 있는데, 일에서 벗어나는 것도 내려놓음의 일종인 것 같아요.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잊혀도 괜찮은, 그런 연습을 해야 하죠. 
서수민 최근에 책을 하나 추천받았어요.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라는 제목의 책이에요. 저는 매사 반응을 했거든요. “다 갖춰서 좋으시겠습니다” 하면 “내가 뭘 가졌는데?”, “화면보다 예쁘십니다” 하면 “화면에 어떻게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요. 주변 사람들도 힘들고 나도 그렇고.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해요.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올해는. 
조선희 사람이 아프거나 나이가 들거나 하면 덜 반응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반응을 한다는 것은 아직 젊다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읽는데 <프로듀사>가 생각나더라? 커튼 뒤의 이야기 했잖아. 사람들은 커튼 앞에 있는 환상을 듣고 싶어 하지 현실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거든. 피디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줬잖아. 역시 수민이는 대단해!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