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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글 쓰는 사람 허지웅

신간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 엿본 그의 생각들

2017-01-23 10:08

글 : 임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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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에 가깝지만 인기 있는 글쟁이. 영화평론가 허지웅이 2년 만에 에세이를 펴냈다. <나의 친애하는 적>이라는 제목이 붙은 신간에는 허지웅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북콘서트 현장에서 나눈 이런저런 주제에 대한 이런저런 허지웅의 생각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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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허지웅은 늘 글을 쓴다. 본인의 블로그, SNS를 비롯해 신문지면, 영화 주간지에도 그의 이름이 붙은 글이 자주 나온다. 그의 글은 전문 분야인 영화일 때도 많지만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것들을 모으니 허지웅의 색깔이 분명한 책이 나왔다. <나의 친애하는 적>은 허지웅이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하다.
 
2년 만에 새 책이 나왔다. 책을 내기 전에 팟캐스트를 하려고 했다. 독자들 사연을 받아서 ‘세상엔 별일이 다 있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그걸 추려서 책으로 엮어볼까. 그런데 사연을 막상 받아보니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연이) 생각보다 끔찍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서 보내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연해질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할 수 없겠더라. 가난, 불행, 병 등 타인의 불행을 전시한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위로지만 사실은 ‘불행 서커스’로 소개될 수밖에 없다.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이후에 책을 내게 됐다.
꽤 오랜만에 나온 책인 것 같다. 내가 게을러진 줄 알고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지난 책을 낸 이후로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글을 쓰거나 방송국에 있거나. 그런데도 출판사 편집자는 “어떻게 이렇게 게으를 수 있느냐. 책이 안 나온다”라고 했고 나는 ‘그렇구나. 되게 별로다, 나라는 인간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지금까지 써온 원고들을 모아서 봤더니 거의 동아전과 수준이더라. 깜짝 놀랐다. 3년 동안 책이 안 나온 줄 알았는데 2년 지났고, 원고는 쌓여 있었다.
무슨 생각 하나, 요즘. 승리하는 경험이란 거.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탄핵이 가결됐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흐지부지 되었을 만한 상황인데, 광장에서 사람들이 계속 버텨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굉장히 놀랐다. 우리가 그동안 이겨본 적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겨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됐다. 슈퍼혁명가다. 이 정도 응집력을 가져본 적이 우리는 없었다. 중요하고 의미심장하고. 이 지점에서 작은 승리를 했다는 것이 벅차고 대단하다. 그걸 우리 세대에서 할 수 있다는 일은 훌륭한 일이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나? 나는 한국이 싫었다. 세월호. 단지 교통사고일 뿐인데 왜 그러느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분했다. 우리가 문제 삼은 것은 사고 이후다. 아이들이 빠진 다음 못 구해냈다는 것. 사고가 나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작동이 되어서, 그거 하려고 미친 세금을 다 내고 있는 건데 하나도 작동을 안 했잖나. 이번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생각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수십 번도 더 망했어야 할 사건들을 겪은 나라인데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이 이상은 안 된다’는 끓는점이 있었기 때문이구나, 지금 이걸 넘었구나,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훌륭한 사람들이구나…. 대단하다. 나는 이제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칼럼이나 SNS를 통해서도 어른 세대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이제 서른아홉이 된다. 곧 마흔이다. 참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나이다. 어린 친구들 입장에서는 늙은 아저씨지만, 스스로 어른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한 타이밍이 내 나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염려와 이대로 둘 것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른이라고 이야기하기에 애매한 위치의 누군가가 어른의 이름으로 자신을 자꾸 호출할 때 더 많은 자극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대의 이름으로 나 이외의 기성세대들을 많이 호출했다. 기분이 나쁜 분들도 계셨겠지만, 다행히 본인들이 느끼고 있던 것을 내 글에서 찾으시고 ‘맞다’고 동의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반대급부의 반응도 많다. 이른바 안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체가 된다. 불가능한 미션이다. 모든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입은 무의미한 입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말을 하면서, 모든 사람이 듣고 싶어 하고 싫어하지 않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그 말이 자기의 생각일 수는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살려면 내 편이 아닌 사람들도 감당해야 한다. 그 정도의 용기도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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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글을 써서 보여주고 싶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 그건 내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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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을 가지려면 평가에 대해서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평가를 받든 못 받든 상관없다는 감정이 필요하다.

 
# 엄마, 가족
 
어머니와 함께 방송 출연을 하고 있지만, 허지웅은 가족에 대한 시선이 조금 쿨한 편이다. 가족이지만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성인이 된 이후로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살아온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요즘 어머니와 함께 출연하는 <미운 우리 새끼> 방송이 화제다. 방송에 출연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수원에 혼자 사시는데, 아무도 안 만나고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내실 때도 있다.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저러다 아프시면 어떡하지. 그런데 방송 나오시고는 동창들도 찾으시고 많이 웃으신다고 하더라. 내가 그래도 효도 한 번은 했구나, 잘 출연했다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은 효자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효자 비슷한 것도 아니다. 나는 사실 효자를 이해도 못 한다. 나 같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기에. 부모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 (부모로 인한) 정말 많은 고민들이 있다. 결국 부모와 나는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 맞잖아. ‘타인이다’가 출발이다. 독립을 하고,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가족이라도) 꼭 이해를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부모님들이 나 같은 자식은 키우지 않길 바란다.(웃음)
가족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들린다. 떨어져 나온 지 오래되어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가족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파이팅을 해줘야 하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상대가 부역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편한 관계를 종종 언급하는 아버지, 이제 용서를 하셨나. 용서는 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신은 없다고 믿는다.(웃음) 용서를 하느냐 안 하느냐, 그를 미워하느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굳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용서를 굳이 받아야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약간 얄미울 때가 있다. ‘잘못을 했으면 감당하고 살아야지, 이제 와서 왜 두 다리 뻗고 자려고 하나. 얄밉다.’ 그런 생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상 깊게 본 영화 중에서 <천국에서의 5분간>이라는 작품이 있다. 어렸을 때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인데, 그에게 복수하는 마지막 5분에 결국 용서를 한다. 그런데 용서를 하고 나서 홀가분한 사람이 되어 있다. 남겨져 있는 리암 니슨도, 용서하고 떠나는 사람도 평안해 보였다.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들 중 하나다. 용서해줘야 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아꼈다가 먼 훗날 가장 잔인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 때 용서를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가족에 대한 태도가 늘 독립적이다.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가 아니라 서로 폐만 안 끼치고 살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일찌감치 들었다. 부모와의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갈라서시는 과정에서 못 볼 걸 많이 봤다. 98년부터 집에서 한 푼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 허지웅
 
누구나 그렇듯, 마흔을 앞둔 허지웅은 과거의 허지웅에 비해서 성장하기도 했고 그대로이기도 하다. 고시원 생활을 하던 청년은 이제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정확하게 묻어나는 여유로운 집을 소유한 싱글남이 되었고, 어른 세대도 얼굴을 알아보는 유명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마흔을 앞둔 나이, 어른과 청년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그다.
 
고시원 생활을 잘 마친 본인을 돌아보는 소감은 어떤가. 나는 고시원 생활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너무 좋았다. 스펙터클하고. 이야기를 하기엔 애매하지만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흥미로웠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좋았다. 15만원짜리 방이었는데, 내가 벌어서 살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비슷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결벽증에 가까운 청소 실력으로 ‘먼지웅’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내가 청소하는 것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줄 몰랐다. 방송 나가고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하고 내 책을 좋아하는 분들도 젊은 층이 많은데, 이제는 어른들이 잘해주신다. “그 이상한 애, 미운 우리 새끼 나오는 이상한 애!” 하시면서. 나는 ‘그게 이상한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절대 다수가 이상하다고 하면 이상한 거겠지.
언제부터 그렇게 청소에 집착했나. 고시원 시절부터 주변 정리를 해놓는 습관이 있었다. 청소는 귀찮지만 인생에 영감을 준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게 뭘까 싶다. 아마 누구라도 24시간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상하다. 나와 같지 않은 것을 이상하다고 부르는 것이지.
기분 좀 상했나. 그렇다고 크게 기분 나쁘진 않다. 놀라긴 했지만. 우리는 모두에게 서로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이상함을 어떻게 극복하고 관리할 것인가, 거기에서 인간관계도 출발한다. 다 나 같은 사람이면 인간관계가 뭐가 어렵겠나. 그렇지 않으니까 어렵지.
방송에서 보이는 자신의 삶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최근에 차를 팔았다. 보통 사람들은 차를 팔고 나면 또 차를 사지 않나. 나도 차를 샀다. 새 차를 몰고 가다가 친구를 만났는데, “너 차 팔았잖아, 방송에서 거짓말을 해? 으하하” 하더라. 방송에 나오지 않는 내 인생은 거짓말이구나. 너무 놀랐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타인의 인생을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왜곡되고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것인가. 파란만장하고 이상한 것 같다.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힘은? 얼른 글을 써서 보여주고 싶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 그건 내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가지려면 평가에 대해서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평가를 받든 못 받든 상관없다는 감정이 필요하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겼나? 행복할 것 같다. 처음에 글을 쓸 때의 나보다 더 유명하고 화려해 보이니까 이제 행복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타인의 평가는 내 의지와 무관하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개인적으로 행복해지고 싶고 분노가 아닌 긍정의 힘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대로라면 앞으로도 불행할 예정이다. 개인적인 칼럼이든 지면에 나오는 칼럼이든, 거의 대부분은 그 글들을 접하는 시기에 쓴 글이다. 그 태도가 변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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