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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와이프 김선진의 일상

배우의 아내, 중국진출 앞둔 뷰티사업가

2016-01-18 09:38

글 : 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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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문득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슈퍼와이프.’일과 가사, 자녀교육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는 데다 성공까지 했다. 배우 조민기의 아내이자 국내 메이크업아티스트 1세대로 이름을 알린 그녀의 다음 목표는 중국을 무대로 한 제2의 사업적 도약이다. “아직은 더 일하고 싶다”는 김선진 대표의 에너제틱한 일상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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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이름만 들어도 아는 메이크업아티스트가 많아졌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화장보다 분장이 익숙하던 그 시절, 우리나라에 메이크업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없었다. 그런 불모지에 싹을 틔운 메이크업아티스트 1세대가 바로 이경민, 김청경 그리고 김선진이다. 뷰티숍 끌로에를 필두로 라끌로에, 엔끌로에를 이끌고 있는 김선진 대표를 만났다. 알려졌다시피 그녀는 배우 조민기의 아내이기도 하다.

‘신인배우’ 조민기보다 잘나간 
‘베테랑’ 메이크업아티스트


김선진 대표가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여 년 전. 당시 영화계에서 배우들의 메이크업을 책임지던 그녀는 잘나가는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녀가 당시만 해도 새파란 신인이었던 조민기와 결혼하기까지는 고작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어요. 어떻게 메이크업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됐나요?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제 직업이 아니더라고요. 한 달 나가고 ‘이 직업은 나랑 안 맞는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른 회사 취직을 알아보던 중에 잠깐 시간을 내서 차밍반에 갔어요. 그때는 화장품회사에 차밍반이 있었어요. 자기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 개인 레슨 같은 거였죠. 그래서 메이크업을 배웠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문반으로 바꿨고, 전문반이 끝나자마자 파리로 연수를 다녀왔어요.

당시엔 메이크업아티스트라는 직업이 굉장히 생소하지 않았나요?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정말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 당시엔 화장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수적으로 약간 메이크업을 해주는 정도였지, 전문적으로 메이크업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드물었어요. 영화판에는 분장하시던 분들이 계셨죠. 수염 붙이고 흰 머리 색칠하는 그야말로 분장이요. 그때 제가 영화판에서 처음 메이크업을 시작했는데, 광고계에는 이경민 원장님, 김청경 원장님 같은 분들이 계셨어요.

어떻게 영화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영상 서클 멤버였어요. 선배들이 “우리 이번에 영화 찍으니까 네가 한번 (배우들 화장을) 해볼래?” 이렇게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일하면서 한계나 차별은 없었나요? 

그러기엔 그 당시(1990년대)가 우리나라의 광고나 영화 시장이 한창 좋아지는 타이밍이었어요. 덕택에 그 바람을 타고 저희 세대들이 1세대라는 지칭을 얻으며 승승장구했죠. 지금은 시장이 힘든 시기지만, 그때는 1년에 영화를 몇백 편씩 찍고 투자도 많이 받던 때였으니까요.

영화계에서 배우들 메이크업을 하면서 남편을 만난 건가요? 

그렇죠. 저는 1989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여태까지 쭉 일사천리로 일을 했어요. (영상 서클) 선배들을 등에 업고 많은 작품을 했고, 나름 자리를 잘 잡고 있던 메이크업아티스트였죠. 반면 저희 신랑은 <첫사랑>이라는 영화 오디션을 보러 온 신인배우였어요. 당시 저는 심사위원이었고요. 저랑 이명세 감독님이 워낙 친했거든요. 감독님이 “선진아, 얜 어떠니?” 하고 물으면 “쟨 너무 별로예요~”, “얘는 괜찮네요” 하고 평을 해주었죠. 그때의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 정말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때 남편 첫인상이 어땠어요? 

그때 한창 신해철의 테리우스 머리가 유행했어요. 그렇게 머리를 기르고는 멋있는 척하면서 왔더라고요. 오죽하면 제가 “쟤 머리 좀 올려보라고 그러세요” 그랬다니까요? 하하하. 그런데 조민기 씨가 김혜수 씨 상대역으로 뽑힌 거예요. 저는 저보다 어린 줄 알았어요. 어려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반말로 “너 귀엽다!” 그랬어요. 근데 본인이 생각하기엔 동갑이거나 제가 자기보다 어리다고 생각했나 봐요. “우리 민증 깝시다?” 그러더라고요. ‘어쭈’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저보다 한 살 위래요. 그래도 사회생활 하다가 만나서 그런지 호칭은 주로 민기 씨예요. 기분 좋으면 여보, 기분 나쁘면 야.(웃음)

그렇게 만난 신인배우와 8개월 만에 초고속 결혼을 했죠. 조민기 씨가 대시한 건가요? 

사실 첫눈에 반하진 않았어요. 제가 후배한테 “우리 영화판에 귀여운 애가 있는데 소개해줄게” 그랬으니까요. 근데 결국 제가 좋아하게 된 이유는 정말 자상해서예요. 그 자상함에 빠져서 결혼했는데 지금은 그 자상함에 질리기도 하죠.(웃음)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그래, 이게 정답이다’ 하고 사는 게 결혼이잖아요. 저희가 벌써 23년을 살았더라고요.

질릴 정도로 자상한 남편이라, 바람직한데요?

신혼 초엔 그런 게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둘도 없는 술친구예요. 일 끝나면 같이 술 한잔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게 저희 낙이죠.

잘나가는 메이크업아티스트가 신인배우와 결혼한다니까 집에서는 반대 안 하던가요?

제가 결혼해서 1년 반 동안 학비를 준 학부모예요.(결혼 당시 조민기는 아직 대학생이었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없고, 아직 대학생이고, 배우라고는 하지만 신인이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모두 반대를 했죠. 근데 저희 친정엄마가 너무 예뻐했어요. 지금도 늘 “우리 조 서방”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첫눈에 반한 건 우리 엄마예요.(웃음)

뭐가 그렇게 맘에 드셨대요? 

자상하잖아요. 어른들한테 너무 잘하고요. 집에 와서 밥 먹고 늦으면 자고 가라고까지 하실 만큼 감싸셨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어요.

어머님이 혜안이 있으셨네요. 결국 성공한 배우가 됐잖아요. 

그때도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젊은 사람 괄시하는 거 아니다. 자상하고 착하면 됐지.” 그래서 지금 엄마가 대접받고 계시죠.(웃음)

신인에서 톱스타가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물론 좋았겠지만 불안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23년을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어요. 정말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요. 근데 살면서 생기는 문제라는 건 배우의 부인이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크고 작고의 문제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다만 계속 같이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죠. 근데 제가 보기에 우리는 살 팔자였던 것 같아요.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애가 생겼어요.(웃음) ‘그래, 여기까지인가 보다’ 할 때마다 뭐가 됐든 이슈가 터져서 우리 둘을 합심하게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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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와 중국 유학, 미국 명문대까지…
‘자식농사 풍년’


지난 11월 인기리에 종영한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민기와 딸 조윤경 양의 모습이 방송에 공개됐다. 윤경 양은 올해 대학교 1학년, 풋풋한 새내기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섐페인캠퍼스(세계 랭킹 63위)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재원이기도 하다. 아무도 중국 유학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김 대표는 아이 둘을 중국으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딸이 올해 명문대 이공계에 입학했어요. 부모가 모두 방송예술계에 몸담고 있어서 이쪽 피가 흘렀을 법도 한데요. 

맨 처음엔 아나운서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근데 그 아이가 아나운서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예요. 월급이 적어서.(웃음)

아직 어린데 돈에 밝은가 봐요?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욕심이 좀 많았어요. 작은 통장에 돈이 모이면 큰 통장으로 옮겨요. 적금통장 같은 거죠. 어렸을 때부터 그 아이는 그런 식으로 해왔어요.

그렇게 하라고 경제관념을 가르친 건가요? 

저희 신랑은 아이들이 “휴대폰이…”까지만 얘기해도 벌써 사 오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그걸 제일 싫어해요. 저는 항상 딜을 하거든요. “내가 네 휴대폰 사줄게. 넌 나한테 뭐 해줄 거니?”라고요. 반면 신랑은 마음이 약해요. 아직도 미국에 있는 아이들은 뭐가 필요하면 가족 카톡방에 얘기하지 않고 아빠한테 몰래 얘기해요.

윤경 양이 고등학교 시절 중국에서 유학을 했던데, 부부에게 교육철학이 있었나요? 

사실 저희는 부모가 아이를 끼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유학은 생각조차 안 했죠. 저희 신랑은 더더욱 그랬고요. 근데 딸이 외고에 들어갔어요. 그전까지는 애들 학교에 신경을 안 썼는데, ‘그래, (들어가기 어렵다는) 외고에 들어갔으니 내가 한번 극성엄마의 본보기를 보여주마’ 하고 6개월 동안 정말 극성엄마의 표본을 보였어요.

근데 왜 잘 다니던 외고를 그만두게 하고 중국으로 보낸 건가요? 

사실 외고 다니는 아이들은 실력 있는 아이들이잖아요. 근데 그 아이들한테 뭘 하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물어보면 “성적 봐서요”라고 답해요.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애들을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잡아 돌리면서 오히려 꿈을 없애는 거예요. 정말 재미없어 보였어요.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것이 답이 아닌데. 그때가 마침 제가 중국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할 무렵이었어요. 마침 베이징에 갔다가 거기 사시는 분한테 “여기 국제학교 어때요?” 하고 물어보니 너무 좋다는 거예요. 7월 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에 가서 학교 투어하고 시험 보고, 8월에 바로 입학했어요.

남편 반응은 어땠어요? 

신랑이 “너 나한테서 아이들을 떼놓으려는 이유가 뭐야? 그다음 네가 계획하는 게 뭐니?”라고 말할 정도로 너무 심각하게 반대했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전부 저한테 캐나다도 호주도 아닌 중국에 왜 보내느냐고 그랬고요. 답은 하나였어요. 가까워서. 내가 언제든지 가서 볼 수 있다는 장점 하나로 중국에 보냈어요. 그리고 사업하느라 오가면서 보니까 중국시장에 대한 가능성도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중국말 하나만 제대로 해도 사는 데 걱정 없겠다 싶었죠.

아이들만 유학 보내면 탈선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은 없었나요? 

거기에 대한 믿음은 있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질 애들이 아니에요. 제가 정말 엄하게 키웠거든요. 저희 집은 상과 벌이 확실한 집이에요. 잘한 것에 대해서는 세상천지 잘한 것처럼 최고라고 칭찬해줘요. 잘못하면? 죽어요.(웃음) 되게 엄격하게 키웠어요.

어릴 때부터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줬나요? 

본인이 열심히 하기도 했고 남들 하는 것처럼 학원도 다녔죠. 그리고 시험이 있으면 한 달 전부터 디데이였어요. 그때만큼은 아이들이 끝나는 시간에 저도 무조건 집에 들어와요. 그리고 한 방에 상 펴놓고 같이 공부를 했어요. 만화책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 옆에 앉아 있었죠. 아이들이 문제지를 다 풀면 제가 빨리 채점해서 틀린 건 다시 보게끔 하고요. 대신 시험이 끝나면 원 없이 놀게 해줬어요.

가족이 다 모이면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저희는 평소에도 늘 같이 있는 스타일이에요. 아침에 눈뜨면 침대로 와서 엉겨 붙어요. TV를 보려면 우리 방에 와야 하니까요. 저희는 그렇게 뭉쳐 있는 시간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신랑이 (아이들을 유학) 보내기 더 힘들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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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과의 기억, 잊을 수 없다”


1990년대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그녀와의 작업을 원했다. 강수연, 박중훈, 심은하, 최민수, 심혜진 그리고 고 최진실이 그랬다. 신인 시절부터 김 대표는 결혼할 때까지 함께한 배우 고 최진실을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는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숍이 총 몇 개죠? 

이곳 끌로에가 모체고 2호점이 라끌로에, 3호점이 엔끌로에예요. 어느 순간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인이 돼버렸는데, 아직은 물러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제 브랜드(아이시셀)를 내면서 현장 일을 계속하고 있고 그 무대가 중국이에요.

중국의 메이크업 문화나 트렌드는 어때요? 

우리나라의 예전이랑 똑같아요. 저희(메이크업아티스트 1세대)가 불모지에서 이제 막 메이크업을 시작했을 때의 그 느낌과 참 유사해요. 좋은 건,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들면 장인으로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약간 불편하고 올드한 쪽으로 치부해버려서, 아직은 일해야 할 나이인데도 손을 놓는 케이스가 많아요. 근데 중국은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되게 서구적이에요. 사람들끼리 만나서 나이 물어보는 걸 되게 싫어해요. 그래서 중국 클럽에는 나이 제한이 없죠.(웃음)

중국으로 사업 무대를 넓힌 지는 얼마나 됐나요?

올해로 5년 차예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중국에 가느냐고 할 때부터 움직였어요.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중국 내에 총 4개 매장을 오픈했어요.

유명 메이크업아티스트 하면 꼭 단골 연예인들이 있죠. 대표님은 어떤 연예인들을 담당했었나요?

그 당시 가장 핫한 연기자들과 작업을 했었어요. 최민수, 심혜진, 심은하, 최진실, 박중훈, 강수연, 손예진, 한가인…. 그들이 다음 작품을 할 때도 꼭 저를 찾았고요.

다들 쟁쟁한 배우들인데, 혹시 좀 까다로운 연예인은 없었나요? 

제가 좀 기가 센가 봐요.(웃음) 그 정도로 까다로운 연예인은 별로 없었어요. 또 저랑 잘 맞았으니까 계속 저를 찾았겠죠. 잘 지냈고 그들이 결혼할 때까지는 쭉 함께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예인이 있다면요? 

저한테 가장 애잔한 건 아무래도 최진실 씨예요. 처음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결혼 전까지 그의 전성기를 함께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추억, 그의 가족에 대한 추억이 너무 커요. (최)진영이부터 시작해서, 제가 그들의 집에 가서 메이크업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직업만 수십 년 걸어오면서 슬럼프나 매너리즘은 없었나요?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단순해서인 것 같아요.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 단순화해요. 이왕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수습만 생각하지 걱정은 안 해요. 처리하고 끝난 일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말자는 게 제 철칙이에요.

이제 아이들도 모두 성인이 됐고, 중국시장 진출도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했어요.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고 할까요? 

저는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제 브랜드를 론칭해보니까 훨씬 즐겁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중국에선 제 나이를 절대로 몰라요. 아마 젊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웃음)

피부가 정말 좋은데, 메이크업아티스트는 평소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나요? 

철저하게 화장발이에요.(웃음) 마사지라는 걸 한 적이 없어요. 마사지에 대한 개념도 없고, 성질이 급해서 오래 못 누워 있어요.

피부를 위해 지키는 생활습관 같은 게 있나요?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1년에 한 번 보톡스 조금 맞는 것 외에는요. 다만 메이크업을 한다는 건 지워야 하고 씻어야 하는 거예요. 그만큼 나한테 시간을 투자해야 하죠. 근데 메이크업을 안 하면 (세안이나 보습 등을) 건너뛰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여자들이 어느 정도는 메이크업을 해야 관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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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  ( 2016-01-28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17   반대 : 12
솔직하고 간결한 인터뷰네요∼∼상벌이 확실한 교육..저도 그래서 그런가 ∼기분좋네요∼^^
  짱이여  ( 2016-01-25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43   반대 : 7
멋진여성이네여∼∼∼
  어쩌냐  ( 2018-03-09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6   반대 : 2
에고...참...
  셋째맘  ( 2016-04-09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2   반대 : 3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파이팅입니다★
아이시센 써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