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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소리가 나는 그림

[rtist & artist 3+]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 현대 작가 에버하르트 로스

2015-01-06 15:39

예술가에게 예술가가 뮤즈가 되기도 한다.
독일의 작가 에버하르트 로스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음악에 취해, 그 영감으로 완성한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작품은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왔다. 무용가에겐 안무를, 비보이에겐 힙합 댄스를, 시인에겐 시를, 화가에게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마력이 그의 작품 속에 있다. 이번에는 한 미술작가의 붓을 움직이게 했다.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에버하르트 로스는 우연히 접하게 된 황병기의 음악에 취해버렸고, 자기 그림의 빛깔을 찾았다고 판단했다. 늘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 그였지만, 가득 참과 텅 빔이 들어 있는 황병기의 음악에는 뭔가 다른 울림이 있었다. 가장 동양적인 황병기의 가야금 선율이 지구 반대편 서양 작가의 귀를 사로잡은 운명의 순간이었다. 이 사소하고도 우연한 일은 작업에 있어서 항상 명확하지 않은 무언가로 괴롭던 작가에게 명쾌한 해답을 가르쳐줬다. 로스는 이 순간을 “내가 크게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온 느낌이었다. 이제 내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를 알 것 같다. 나는 소리의 빛깔을 찾고 있고, 소리를 그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올해로 음악활동 60년을 맞은 황병기는 작곡가, 가야금 연주자로 독보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한 한국 음악계 최고의 거장이다. 현대음악과 국악을 접목시킨 작품으로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올랐으며, 가야금이라는 악기의 새로운 지평을 연 가야금의 명인이기도 하다.

황 명인은 올해 <가야금 산조> 앨범을 펴내면서 거장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연주시간만 70분에 이르는 곡으로, <가야금 산조> 가운데 최장 규모다. 즉흥성보다는 치밀한 구성미에 중점을 뒀다. 이 산조를 두고 바흐의 선율보다 담백하고 아름답다는 많은 이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눈을 귀로 여기다

두 사람이 가야금 소리가 담긴 그림 앞에 섰다. (눈을 귀로 생각하라)라는 타이틀이 붙은 로스의 작품이다. 황 명인은 본인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마음이 그저 고맙다.

황병기_ 외국 화가가 나에게 헌정하는 전시는 처음이에요. 작품이 좋았어요. 현대 작가들 보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해한 경우가 많아요. (로스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니까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더라고요. 나는 그런 걸 좋아해요. 정성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죠. 가까이에서 보면 선으로 되어 있어요.

로스_ 아시다시피 2013년 <비단길>과 <춘설>, 두 개의 선생님의 앨범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작업했어요. 소리가 침묵으로 변할 때, 그 가득 참과 텅 빔 사이의 변화는 이 음악을 매우 강렬하게 느끼도록 해줘요. 선생님 작품은 허튼 가락, 즉 산조의 대가이면서 19세기 기법을 21세기의 것으로 격을 높여놓았습니다.

황병기_ 산조는 가야금이나 또 다른 국악기로 독주하는 주된 연주양식이에요. 흐트러진 가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가득 참 속의 텅 빔, 텅 빔 속의 가득 참을 표현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로스_ 선생님 음악은 예술가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해서, 다른 분야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무용 공연이 많은 것 같아요.

황병기_ 그런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닌데, 제 모든 곡이 무용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신기해요. <비단길>로 안무를 짰는데 아름다웠어요. 한국무용 안무가 배정애의 <춤춘향>도 좋았고, 비보이와 함께했던 <미궁>도 좋았어요. 그 공연들은 직접 가서 관람했는데, 모두 감동적이었어요. 음악의 눈으로 봤을 때도 참 잘했다 생각했어요. 이번에 나온 <산조> 앨범은 이화여대 김명숙 교수가 공연을 올릴 예정이에요. 전곡이 70분이나 걸리는데 이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감의 원천은?

창작을 하는 많은 예술가들은 저마다 영감을 얻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기도 자연이기도 음악이기도 시이기도 하다. 로스 작가는 비교적 구체적이다. 40년 전 미국의 피아노 연주가 키스 자렛의 첫 번째 앨범과 유진 헤리겔이라는 독일 철학자가 쓴 자그만 책 <활쏘기 예법에 있어서의 선>은 그의 작품에 뜻밖의 영감을 줬다.

로스_ 저는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선생님 음악을 접하기 전에 서양의 고전음악과 재즈의 요소를 조합해서 자연스럽게 즉흥적인 작품을 하는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은 작품 만드실 때 무엇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황병기_ 내가 간절히 표현하고 싶은 바가 있을 때 창작을 해요. 내가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할 때가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나는 그렇단 말이에요. ‘시계탑’을 만들 때 그런 경험을 했어요. 97년도에 제가 대장암 수술을 받기 위해서 서울대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수술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입원실을 돌게 되어 있어요. 수술 끝나고 운동을 해야 하니까. 그땐 지금보다 더 대장암 치사율이 높았어요. 제 평생 처음인데, 수술하기 전에 죽어도 좋다는 서약을 써요. 그때 비참한 상태에 도달해서 밤에 시계탑을 보는데, 남쪽 창문을 통해서 보는 시계탑이 굉장히 아름다운 거예요. 내가 그 세상에서 왔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인 것 같았어요. 뭔가 굉장히 아름다운 곡을, 내가 비참한 상태라고 해서 비참하고 슬픈 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 쓰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상하고 퇴원하자마자 바로 작업을 했어요.

로스_ 선생님은 논어와 시 등 문학작품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으시죠?

황병기_ 네, 맞아요. 논어에 좋아하는 구절이 많아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정주의 <추천사> 등도 아끼는 작품이에요.

로스_ 내 작품은 공간의 틈, 휴지의 의미가 점차 중요해지게 되었어요. 이와 비슷하게 황 선생님의 음악은 곡이 연주될 때의 소리와 그 소리 사이의 침묵의 순간들에 바쳐진 것이에요. 소리가 침묵으로 변할 때, 그 가득 참과 텅 빔 사이의 변화는 이 음악을 강렬하게 느끼도록 해요. 선생님은 예술가가 타고난다고 보세요?

황병기_ 되려고 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배운 게 아니에요. 배우고 가르칠 수 없어요. 김소월, 서정주 시인이 누구에게 시 작법을 배워서 그렇게 훌륭한 시를 쓴 건 아니잖아요. 저도 작곡법을 누구에게 배운 일이 없어요. 가르친 일도 없고요. 못 가르치겠더라고요. 연주는 가르치는데.




예술가의 운명

처절하게 고통스러운 순간이 훨씬 많은 것이 예술가다. 이것은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로스_ 작품을 하면서 언제 제일 행복하세요?

황병기_ 새로운 곡 작업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원래는 반대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강단도 없어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스스로,행복이 뭔지도 잘 몰라요. 그냥 사는 거지. 전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할 수 없어요.

로스_ 저는 선불교의 가르침을 좋아해요. 선불교는 저에게 리듬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가르쳐줬어요. 리듬은 일차적으로 호흡, 들숨과 날숨의 교환, 가득 참과 텅 빔을 의미해요. 제가 그림의 숨을 들이마시면 그림은 그 숨을 저에게 토해내요. 제가 그림을 보면 그림은 나를 보고요. 제가 그림의 소리를 들으면 그림은 다시 소리를 들려줘요.

황병기_ 가끔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은지 질문을 받아요. 우리나라 예술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비석을 세우고 야단들인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고갱은 자기 작품을 불 질러 버렸어요. 한용운 <님의 침묵>을 좋아하는데, 그 책의 백미는 후기예요. 그 짧은 몇 줄을 보면, 내 시를 후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냥 읽고 끝내달라는 말이 있어요. 그리고 정치가 덩샤오핑(등소평)을 멋있다고 느껴요. 어마어마한 중국 인구를 먹고살게 하기 위해서 휘두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죽을 때 자기 장례식은 가족장이라고 했어요. 백년 소평(百年小平)이라는 말이 있어요. 백년 앞을 내다보는 인물이라는 뜻이에요.

로스_ 그저 현재를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겠죠?

황병기_ 행복할 것도 없고, 그냥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거예요. 행복이라는 말도 너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행복한가 안 한가, 아무 소용없는 짓이에요. 그냥 제가 생각하기로는, 나이 먹은 사람이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추억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미래에 너무 급급할 필요도 없고. 현재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이 과거에 집착할 수도 있지만 미래에 많이 집착할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이 갖는 고민과 고통은 과거나 미래에서 오는 것이지 현재에서 오는 것은 드물다고 해요.

로스_ 맞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황병기_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고 싶어요. 범아시아적인 예술을 하고 싶어요. 이게 범세계적인 음악을 쓰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로스_ 선생님과 분야도, 살아온 환경도, 작업도 다르지만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기분을 느끼니 행복합니다. 가야금 연주 꾸준하게 하실 거죠?

황병기_ 체력상 가야금 연주 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매일매일 해요. 딱 정해진 건 아니지만 밤에 많이 해요. 자기 전에는 항상 음악을 듣는데, 주로 서양 클래식, 그중에서도 바흐를 많이 들어요.

로스_ 이번에 나온 <산조> 앨범이 바흐에 못지않은 명반이라는 말씀을 안 드렸네요.(웃음)


황병기 …
193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 서울대 음악대학에서 강의하던 1962년 최초의 현대 가야금 곡인 <숲>을 썼다.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3년 호암상, 2006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았다. 


에버하르트 로스 …
1959년 독일에서 출생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 해외입주 작가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린다.

사진 방문수 취재협조 JJ 중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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