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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유정_히말라야에서 민낯을 보았다

2014-06-24 11:11

<7년의 밤>, <28>의 작가 정유정이 난생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네팔 히말라야로 향했다. 변비와 고산병, 산거머리로 점철된 등정기는 그녀의 숨겨진 민낯을 가감 없이 까발린다. 정유정의 웰컴 투 히말라야!



지금 문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정유정이다. 40대 문턱에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한 그녀는 아줌마의 뒷심과 내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2년 만에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휩쓸더니 이내 <7년의 밤>으로 독자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지난해 전염병을 소재로 한 신작 <28> 이후 본의 아닌 휴식기를 가진 그녀가 얼마 전 첫 여행 에세이를 냈다. 목적지는 해발 5416m의 안나푸르나 쏘롱라패스. 생애 첫 여행은 지질했고 위험천만했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아임……”
목소리가 목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주문받으라는 말이 뭐더라.
생머리 언니는 목을 쭉 빼고 멀뚱멀뚱하게 쳐다봤다. 왜 그래? 하듯. 욱하고 성미가 치밀었다.
내가 여길 왜 왔겠니. 식당에 빨래하러 왔겠니?
“아임 헝그리.”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중

소설만 놓고 보면 아주 치밀하고 이성적인 작가일 것 같은데, 이번 에세이로 커밍아웃했어요. 나 선머슴이다, 하고요.
소설 보고 제가 아주 치밀하고 차분하고 이성적일 거라 생각을 많이 하세요. 이 책을 통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본래 제 모습을요.

제대로 보여줬는데요?
(웃음) 사실 좀 부끄럽긴 했어요. 너무 드러냈나 싶더라고요. 애초에 콘셉트를 ‘아무것도 숨기지 말자’로 잡았어요. 기존에 센 소설을 써왔으니 이번에는 독자들을 재밌게 해주자는 것도 있었고요.

주변 반응이 어때요?
일단 웃기니까 좋다고 해요. 제 책이 웃긴 건 아마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이후 처음일 거예요. 

안나푸르나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원래 아드레날린 중독자처럼 위험한 상황에 저를 밀어넣는 걸 좋아해요. 온 몸과 마음이 그 위험을 타개하기 위해 초집중을 하거든요. 그걸 제가 이겨내는지 못 이겨내는지도 보고 싶고요. 위험을 극복한 후의 쾌감들이 고통과 비례하는 즐거움으로 돌아와요. 모토라고 하면 좀 거창한데,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거든요. 하여튼 도박을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누가 말린다고 안 가는 스타일은 아니죠?
일단 꽂히면 누구도 못 말려요. 고집이 세요. 고무래 정씨가 똥고집계의 숨은 강자예요. 최씨나 강씨보다 고무래 정씨가 은근히 고집이 세요.(웃음)

김혜나 작가(<정크>, <제리>)와 동행했어요. 둘이 짝은 잘 맞았나요?
성격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체력적인 페이스가 잘 맞았어요. 김혜나 작가는 요가 강사였기 때문에 체력이 좋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산을 좀 탔던 사람이고요. 서로 ‘힘들어서 더는 못 가겠어요’ 이런 소리는 안 하는 거죠. 근성도 있고요.
 


밤새 두통에 시달렸다. 움직이면 골이 흔들리고, 가만있으면 날카로운 통증이 양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마른기침이 터질 땐 금고아를 쓴 손오공처럼 머리를 싸매고 엎어졌다. 으슬으슬 춥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리랑고개를 넘는 것처럼 숨이 찼다. (중략) 
답 없는 질문을 반복하느라 머리가 바빴다. 감기냐, 고산증이냐.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중

안나푸르나 산거머리가 그렇게 독하다면서요.
나무 이파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사람 지나가면 그 위로 툭 떨어져요. 피를 몽땅 빨아먹는 통에 난리법석을 피웠잖아요.(웃음) 아유, 징그러워. 요만해서 가늘거든요. 처음엔 다리털인 줄 알았어요. 근데 피를 빨면 이만큼 두꺼워지더라고요. 그 산거머리는 아주 새까매서 보자마자 비명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잠을 청하려고 비아그라까지 먹었어요. 근데 그거, 진짜 먹어도 돼요?
비몽사몽이 돼서 엉뚱한 소리 하고 이상한 꿈 꾸고 그랬죠. 비아그라 먹고 꾸는 꿈의 특징이 현실하고 환상하고 섞이는 거예요. 안 그러는 사람도 있다는데, 저는 그랬어요. 

초반에는 밥도 거의 못 먹고 변비 때문에 고생깨나 했던데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죠. 먹을 게 볶음밥밖에 없으니까 나중엔 사과에 집착하게 되고요. 사과를 먹으면 변비가 좀 나아질 것 같은 (웃음). 그나마 셰르파 배낭에서 한없이 사과가 나와서 마지막까지 사과의 힘으로 올라간 것 같아요.

한국 사과와 다른가요?
한국 사과는 달다면 거긴 셔요. 아주 새콤달콤해요. 맛이 야무져요.

고산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어요. 남편이 무진 반대했을 텐데요.
반대하든가 말든가.(웃음) 사실 집에서뿐 아니라 지인들도 반대를 해요. 어지간히 하라고, 고산병 걸려서 죽을 뻔했는데 또 가고 싶냐 그러거든요. (그녀는 2년 뒤 에베레스트에 오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네팔병’에 걸린 것 같아요. 불치병이라고 하던데요? 한 번 갔다 오면 다시 갈 때까지 몇 년을 그리워한대요.

평소 체력관리를 좀 하는 편인가요? 
많이 하는 편이죠. 안 하면 힘없어서 (소설을) 못 써요. 평상시엔 동네 복싱장에서 1시간씩 복싱해요. 싫증 나면 종목을 바꾸죠. 복싱을 한 7년 했는데, 복싱만 한 건 아니고 중간에 마라톤도 하고 이것저것 바꿔가면서 했어요.   


- 위험천만했던 생애 첫 여행인 안나푸르나에서 김혜나 작가와 함께.

배웅하는 설산들 위로 수많은 순간들이 흘러갔다.
마르상디 강가에서 어머니를 보낸 아침, 죽음과 대면해 있었던 쏘통페디의 밤, 다울라기리의 마법에 걸렸던 새벽, 뻐꾸기가 울던 한낮의 고레파니 계단…… 기억하는 모든 순간마다 안간힘을 쓰는 내가 있었다. 버리려고, 견디려고, 겁먹지 않으려고.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중

등반하면서 과거를 떠올린 대목이 많던데, 이번 등정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맞아요. 헤밍웨이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결국 마주치는 건 자기 자신이다. 그런 비슷한 말을 했는데, 정말 어딜 가나 마주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인 것 같아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쏘롱라패스에 올랐을 때예요. 내가 여길 올라왔구나, 하는 감동보다 안나푸르나가 나를 받아줬구나, 하는 감동이 컸어요. 안나푸르나에 오를 때는 ‘내가 여길 올라가고야 말 거야’가 아니라 ‘나를 좀 받아주세요’ 하고 기원하는 심정이 돼요. 산이 안 받아주면 못 가거든요. 그래서 거길 도착했을 때는 안나푸르나가 나를 받아주었다는 감격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꼭대기에 오르니까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뭔지를 보여주더라고요. 주변에 모래와 바위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새도 없고 풀 한 포기 생명체가 없어요. 그걸 내려다보는데 거기에 인간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까 생명체 중에 인간이 제일 독해요.(웃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큰 게 뭘까요?
결국 땅이 아니라 저 자신을 보면서 걷고 또 걷는 기분이에요. 그저 나 자신, 못난이 자신과 만나요. 정말 포기하고 싶고 나약한 자신. 내가 정말 여길 왜 왔을까, 지질하게 후회하고요.(웃음) 이런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었어요. 갔다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게 된 데에 있어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사람이 아무리 솔직해지려고 해도 허세가 없을 수 없는데, 그곳에서는 내 허세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요.(웃음) 완전히 나 자신의 민낯과 만나는 시간이에요. 히말라야에 가서 홀라당 벗은 오로지 제 민낯과 만났고, 그게 좋았어요.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죠. 쉬운 일도 아니고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게 대자적 존재,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건데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에요.(웃음)

생각해보면, 나는 낮잠조차 자지 않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밤이 되기 전에는 침대에 눕지 않았다.
어쩌다 낮잠이 든 날엔 눈뜨자마자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였다.
낮잠 따위에 시간을 썼다는 게 스스로 용서되지 않았다.
휴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안나푸르나에 왔고, 그걸 되찾았으므로 이제는 뭔가를 해야 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중

이번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원고가 잘 안 풀려서’였어요. 다녀오니까 좀 풀리던가요?
이 에세이를 쓰게 된 이유가 다음 소설을 예열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도 있어요. 문장도 안 쓰면 굳어지잖아요. 작년에 소설 <28> 내고 조금 방황했기 때문에 문장이 굳어진 데다 바로 열이 안 올라오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이 에세이 쓰면서 슬슬 열을 올려보자 했는데 의외로 빨리 써졌어요. 두 달 만에 후딱 썼죠. 

다음 작품은 사이코패스를 일인칭으로 한 소설이 될 거라고 했는데요. 초고를 빨리 쓰는 걸로 유명한데, 어느 정도 완성이 됐나요?
초고는 6월부터 들어갈 예정이고 지금은 시놉시스 쓰고 있는 단계예요.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이 아무래도 영향을 미치겠죠?
저에게 휘발유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동력이요. (이번 소설을 쓰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심리스릴러고, 어떤 사건이 크게 터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걸 긴장감 있게 잘 끌고 가려면 제가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절망도 많을 것 같은데,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이번 소설은 전과 달리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딱 맞닥뜨리는 거잖아요. 안나푸르나에서 죽음을 맞닥뜨린 경험이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죽음을 마주하면 죽거나 살거나인데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취재를 열심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가장 비싼 취재를 했네요.
맞아요. 가장 가치 있는 걸 얻어 가지고 왔죠.

신작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으로는 2015년 말까지 원고를 완성하고 2016년 초에 나올 것 같아요.

기존에 쓴 소설들도 그랬지만, 선한 인물보다 악한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에요.
(악한 인물은) 이야기적이죠. 선한 사람은 이야기할 게 없어요. 착하게, 평탄하게 사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무슨 할 얘기가 있겠어요. 전기나 써야지.(웃음) 작가마다 글의 테마가 있다면 제 테마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선한 본성은 들여다보나 마나 이야기할 가치가 없고, 그보다 악한 본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발현이 되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 자신부터가 궁금해요. 모든 사람들에게는 악한 본성이 있고 제 안에도 사이코적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에는 착한 기질도 있고요. 근데 우리 안의 윤리적인 기질이 악한 본성을 누르기 때문에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미운 사람 있으면 가서 한 대 확 쥐어박고 싶잖아요.(웃음) 그걸 극대화해 밀어붙이면 순수 악인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거죠. 그래서 제 안의 사악한 기운을 극대화해볼까 합니다.(웃음)

아들도 엄마가 쓴 소설 좋아하나요?
제 책은 안 봐요. 아니, 소설 자체를 못 보는 것 같아요. 강요하진 않아요. 언젠간 보게 되겠지, 하는데 가끔 부글부글 끓죠. 하하. 우리 엄마가 작가라는 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용돈을 잘 주니까.(웃음) 

남편은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해요?
남편은 이번 책을 좋아하더라고요. 자기가 조연으로 출연을 하잖아요.(웃음) 또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마누라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까 ‘쌤통이다’ 하는 식으로 아주 좋아해요.(웃음) 소설 중에서는 아무래도 <7년의 밤>을 좋아하고요.

<7년의 밤>도 영화화가 결정됐고 <내 심장을 쏴라>는 곧 크랭크인에 들어가요. 캐스팅은 맘에 드나요?(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 원작 영화에는 여진구, 이민기가 캐스팅됐다.)
저 원래 여진구 씨 팬이에요. 집에 TV가 없고 영화를 안 보기 때문에 얼굴만 알지 연기는 못 봤었어요. 근데 지난번에 장준환 감독님과 영화 <화이> GV 행사를 하면서 처음 연기하는 걸 봤어요. 근데 김윤석 씨한테 안 밀리더라고요. ‘이 친구, 야무지네’ 생각했는데 캐스팅이 됐더라고요. 이번에 고사 지내러 갔을 때 보니까 살이 빠져서 얼굴이 여릿여릿해요. 저는 뭐, 굉장히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사진 강현욱
촬영협조 LUDEN LOQUEN SPACE(02-722-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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