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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성우,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

2012-05-16 15:44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스무 살에는 서른이 되면, 서른에는 마흔이 되면… 그때의 내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막상 그 나이에 이르면 나는 여전히 어리숙하고 인생은 꾸준히 어렵습니다. 그건 일흔이 되고 아흔이 되어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올해 방송통신대 영문과에 입학하신 정한택 선생님은 아흔 살 신입생입니다. 240만 동문 중 최고령입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계시다 정년퇴임을 하셨고, 교단에서 내려와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영시를 더 잘 읽고 싶어서.
여자 성우 1호 김세원 선생님은 50년간 방송을 해오신 현역 방송인입니다. 그중 40년은 생방송을 해오셨다고 합니다. 최근 SBS <짝>의 내레이션을 하면서 젊은 층에게는 “멋진 목소리를 지닌 신인 성우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선생님은 지금도 마이크 앞에 서면 늘 떨리는 게 신인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올해 예순다섯인 전동화 선생님은 생전 처음 유니폼을 입어봅니다. 일생 광고일에 종사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오신 분인데,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로 일하면서부터는 매일 출퇴근 도장을 찍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매일 아침 싱그럽게 인사를 건네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하시네요.
괴테는 여든둘에 일생의 역작 《파우스트》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고대 비극의 원형 《오이디푸스》 3부작이 완성된 건 그리스의 작가 소포클레스가 여든이 되던 해였다고 하고요. 예순다섯에도, 일흔에도, 아흔에도 인생은 새롭고, 여전히 배울 것투성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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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닝, 워즈워스… 영시 읽고파 영문학과 지원했죠
 방송통신대 입학한 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정한택(90)

오늘은 수업이 오후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 오시라고 한 거예요. 오늘 수업은 영어를 주로 공부해요. 내가 귀가 좀 나빠가지고, 나이가 90이 넘으니까 귀도 안 들리고 그래요. (보청기 꽂으며) 이제는 잘 들려요. 공부 다시 시작하니까 좋죠. 난 공부하는 건 좋아한다고. (영자 신문 꺼내며) 이런 게 다 영어 아니요. 영어다 보니 모르는 단어가 나와요. 하나하나 찾아보는데 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작은 사전을 들고 다니는데 아주 편리해요. 여기 옆에다 놓고 찾아가면서 읽고 그러죠. 굉장히 좋아요. 안 나오는 건 큰 사전을 찾아요.
저는 심리학 교수였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퇴임한 후에도 읽고 싶은 영어 책을 읽으려면 좀 힘이 들더라고. 그래서 아예 영문과 공부를 해보자 싶어 통신대학에 원서를 넣었어요. 통학하는 건 아니고, 집에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교편은 오래 잡았죠. 초, 중, 고, 대학에서 한 60년 정도 가르쳤어요. 제가 스물두 살에 조치원초등학교 선생이 됐어요. 일제시대에 경성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했고요. 2년 만인 스물네 살에 해방이 됐어요. 해방이 되니까 일본 사람들이 다 본국으로 돌아갔어요.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자리가 텅텅 비어서 공주공업학교로 발령이 났어요. 경성사범 다닐 적에 말이요, 서울대학교가 경성제국대학이었는데 거길 지나다니면 눈물이 나요. 왜 나는 저 학교를 못 갔나 싶어서. 해방이 돼서 당장 학교에 가봤어요. 학생을 모집한다는 방이 붙었어요. 심리학과는 두 명을 뽑았는데, 영어와 논문시험을 봤어요. 그렇게 스물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을 했죠. 그러곤 예순다섯에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서울대학교에 교수로 있었고요. 그 후로도 교편을 잡았어요. 충남에 호서대학이라고 있는데 총장이 충남대에서 같이 근무하던 사람이에요. “정 교수, 우리 학교로 와.” 하더라고요. 갈 데가 없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학교에서 20여 년을 근무했어요. 당시 그 대학은 심리학과가 없었어요. 내가 들어가면서 생겼죠. 그리고 여든일곱 살까지 가르쳤어요. 그때는 제 발로 나왔어요. 

아직도 해야 할 공부가 많아요 
저는 학교생활을 아주 재미있게 했어요. 지금도 아무 유감이 없어요. 책 읽는 게 취미인데, (손에 든 책을 보여주며) 이 책은 영시집이에요. 제가 시를 좋아하거든요. 이걸 쓴 사람은 유명한 시인이에요. 로버트 브라우닝이라고, 그 사람의 시인데 열어보면 (목을 가다듬고 낭독) ‘The year’s at the spring/ and The day’s at the morning/ The morning’s at the 7’(Pippa’s Song 中)이라는 시가 있어요. 세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가 좋은 거다(All’s right with the world)라며 끝나요. 영시가 아주 좋아요. 운율도 좋고, 내가 직접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나거든요. 그래서 가끔 시를 읽는데 참, 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관, 인생철학,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음가짐 이런 게 나타나요. 시는 마음이 지저분하면 쓸 수가 없어요. 시인은 마음이 깨끗한 모양이야. 시를 읽으면 시인의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저는 낙제해도 좋은 겁니다. 졸업이 아니라 공부하는 게 목적이니까. 아무 걱정거리가 없고, 편하게 하는 거죠. 저는 평생 공부가 재미있어요. 책 보는 게. 다른 거는 별로 안 합니다.
아침에 세 시에 일어나요. 대신 저녁 아홉 시에 자요. 목욕하고 이 닦고 씻다 보면 네 시에 신문이 와요. 신문은 네 가지를 보니까 한 보따리예요. 하나는 영자신문이에요. 이거 다 읽으려면 시간 엄청 걸려요.(웃음) 시간을 들여서 읽어요, 사전 찾아서 일일이 써가면서. 영어 공부는 주로 이걸로 하죠. 신문 다 읽으면 헬스클럽에 가요. 운동기구가 많아요. 수영도 하고 워킹도 하고 역기도 들고 그렇게 한 시간 해요. 그럼 땀이 나니까 지하에 가서 사우나를 하고, 그럼 아침 일곱 시 반 정도 돼요.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들으러 가죠. 영어 공부는 해도 해도 부족해요. 한이 없어요. 문화센터도 다녀요. ‘영시의 향기’라는 강좌를 수강 중이에요. 



people 2

마이크 앞에 앉으면 마음은 언제나 신인
여자 성우 1호 김세원(68)

1964년에 TBC 동양방송 성우 1기로 입사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니까 스물하나 정도 됐겠네요. 한국외대 불문과를 다녔는데, 교내 방송국에서 활동했어요. 지금 라디오 방송의 DJ는 학교 방송국이 먼저 시작했어요. 사연 읽고 노래 틀고 하는 방식이요. 저는 그쪽이 맞았는데, 당시 방송사 라디오 방송은 드라마 위주였거든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어색하고. 입사 초기에는 저한테 일이 많이 안 왔어요. ‘아, 나한테는 (이 일이) 안 맞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외교관이 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밤의 플랫폼>을 시작한 건 1970년이에요. 11년을 했죠. 그때 DJ는 써준 원고를 읽는 게 아니라 웬만한 스크립트는 직접 썼어요. 음악도 직접 골랐고요. 저는 팝송과 유럽 음악을 좋아해서 그쪽 음악을 많이 소개했죠. 샹송을 처음으로 튼 것도 저희 방송이었어요. 덕분에 해외에 나가기 힘든 시대였는데도 외무부 초청으로 프랑스에 다녀오기도 했죠. 라디오를 진행할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었어요. 시를 읽다 보면 몰입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청취자들이 똑같이 느껴요. 마이크 너머로 전달되는 느낌이 있는 거죠. <밤의 플랫폼>은 딱 15분짜리 방송이었어요. 지금도 그 프로그램의 시그널을 들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에요. 듣는 분들도 그렇다고 해요. 그들에게 제 목소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청춘의 흔적 같은 거겠죠.
그 후로는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김세원의 가정음악실>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프로그램에 진행자의 이름을 넣은 건 제가 최초였죠. 아, 또 있어요. 저는 방송할 때 물도 마시고, 침도 삼키고, 자연스럽게 했어요. 그전에는 “아유, 방송에서 그런 소리가 나가면 되나” 하며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럼 어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고 했죠. 그러고 보면 배짱이 좀 있었어요, 제가. 자연스럽게 청취자들과 친근해지는 건 좋았는데, 가끔 방송국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어요. 입구에서는 저랑 잘 아는 사람이라고, 친척이라고 둘러대고 스튜디오까지 올라오는 거죠. 어떤 분은 제가 아이가 둘 있는 엄마라는 얘기를 듣고 놀라는가 하면, 제 목소리만 듣고 또래인 줄 알았던 어떤 나이 지긋하신 분은 생머리에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나오니까 당황하시더라고요. 금반지 세 돈을 보내면서 결혼하자는 분도 계셔서 한동안은 방송국 뒷문으로 다니기도 했어요. 



On Air, 추억으로 향하는 플랫폼
SBS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하고부터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죠. 특히 젊은 사람들은 “와, 잘하는 신인이 나왔나 보다.”라고들 한대요. 제 나이가 올해 예순여덟인데, 막 떠오르는 신인처럼 화제가 되니 저도 신기해요. PD대상에서 상도 받고요. 방송을 49년 했는데도 마이크 앞에 서면 늘 떨립니다. 내레이션을 할 때든, 방송을 할 때든 제 목소리는 듣는 분께 맞춰져 있어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죠. 시간이 오전이냐, 저녁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방송에 대한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이었죠. <짝>이 화제가 되면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생겨 여러 군데에서 제의가 들어오는데, 그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양하고 있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방송을 많이 하는 것보다 욕심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게 제가 오랜 시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니었나 싶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일이 정말 즐거워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 저는 생방송을 오래한 탓에 (한 40년 정도 한 거 같아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일어나면 먼저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어줍니다. 잠깐이라도 하는 거랑 안 하는 거랑은 달라요. 그리고 방송국 스튜디오에 와서 마이크 앞에 앉죠. 48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마음은 같아요. ‘ON AIR’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people 3

싱그러운 하루의 시작, 아침에 인사할 때 제일 기분이 좋죠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 전동화(65) 

월급쟁이일 때는 광고대행사에 오래 있었습니다. 독립해서는 에이전시를 운영했고요. 즐겼죠, 광고를.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많아요. 근데 다 10년 전, 20년 전이다 보니 대중에게는 다 잊혔어요. 개인적으로는 슬픈 일이에요. 모두 주옥같이 만든 건데 결국은 다 없어졌잖아요. (제가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작품을 남겼다면 그게 그림이든 조각이든 남아 있을 텐데, 그런 깊은 아쉬움이 있죠. 완전히 손을 뗀 건 2007년이에요. 그때도 같이 일했던 광고쟁이들 모아가지고 신사동에서 4년 동안 같이 생활했어요. 우선은 제가 놀 데가 없으니까.(웃음) 다들 쫓겨나기 전에는 한가락씩 하던 사람들이니까. 근데 가만 보니까 다들 점점 처지더라고요. 어깨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목숨 걸고 뭔가를 하던 사람들인데 안됐죠.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러시아어 공부를 1년 동안 열심히 했어요. 수업은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 했는데 그 세 시간 수업 들으려고 열 시간씩 공부했으니까요. 우리 나이 되면 이걸 어디에 써 먹어야겠다 그런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 러시아 선생하고는 만날 수업 끝나고 보드카 마시러 다니고 그랬거든요. 

집사람이 좋아해요,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주니까 
제가 근무 중인 맥도날드의 시니어 크루는 경쟁률이 좀 높아요. 제가 들어갈 때는 30 대 1 정도 됐어요. 면접관이 어린 친구들이랑 일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제가 했던 광고일은 다 젊은 사람들이랑 해온 겁니다.”라고 대답했던 게 생각이 나요. 합격하고는 나름 기뻤죠. 활력도 생기고. 광고일은 매일 달라지잖아요. 늘 변화가 있고, 생활리듬도 매일 다르고요. 프리 스타일로 살다가 지금처럼 매뉴얼이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좀 다르긴 하죠.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일하는 건 좋아요. 제가 먼저 다가가서 말도 걸고 먼저 웃기도 하고요. 월급 받으면 처음 석 달은  며칠 만에 다 쓰기도 했어요. 백만 원이 약간 안 되는 돈인데 평소 씀씀이가 있다 보니까.(웃음) 집사람이 보고는 “힘들 게 일해가지고 그게 뭐냐?” 하기도 하고, 그렇게 쓰면 며칠 지나서 또 용돈을 받아 써야 하잖아요. 그게 나도 힘든 거야. 그래서 월급통장 체크카드를 아내한테 아예 줬어요. 그러니까 내가 갖다준 것보다 더 써도 당당하죠. “나 반찬 뭐 먹고 싶어.” 이런 이야기도 당당하게 하고요. 집사람은 제 평생 고마운 사람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한 적이 없어요. 지금은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꼬박꼬박 월급 들어오는 걸 보면서 집사람이 좋아해요. 이전까지 월급을 가져다준 일이 없었거든요.
일하기 전에는 맥도날드에 올 일이 없었죠. 지금은 7개월째 아침 열 시에 출근해서 오후 여섯 시에 퇴근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이곳 센트럴시티점은 워낙 유동인구가 많기도 한데 점심시간에는 더 정신없죠. “아버님, 양상추 좀 부탁드려요.” 그러면 “응~” 하고 번쩍 들어 가져다줘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저를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저는 이름 앞에 수식을 넣어 불러요. 아름다운 민정 씨, 예쁜 매니저님, 이렇게. 생각해보면 일하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침에 이 친구들이랑 인사할 때인 거 같아요. 아침 햇살같이 싱그러운 친구들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서 같이 웃으며 시작하면 하루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제가 여기서 근무하는 게 어떻게 소문이 좀 나서 옛날에 알던 친구들도 연락이 오곤 하는데, “야, 부럽다!” 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뭔가 해봐야겠다.” 그러는 친구도 있어요. 물론 “나이 들어서 임원 자리도 아니고, 매장에서 뭐하는 거야.” 하는 사람도 있죠. 근데 저는 자리는 별로 신경 안 써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면 그만이죠. 근데 한 7개월 하니까 조금 좀이 쑤시긴 해요.(웃음) 남은 인생은 공부하고 싶어요. 재밌을 것 같아. 유학 공부는 계속하고 싶어요. 공부하고 싶은 건 많죠. 특히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아마 잘 모르고 살아서, 그게 후회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아흔에 방송통신대에 입학한 분이 계시다고 하니, 저한테도 자극이 되네요.(웃음) 





  silver people & golden age 

인생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1 존 밀턴은 44세에 과로로 시력을 잃었다. 16년 뒤 예순이 되던 해, 그는 《실락원》을 썼다.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육안이 어두워져 심안이 열렸다. 시력을 잃은 대신 영의 눈으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2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정치가로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다리에 쇠붙이를 대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부인 엘레나와 함께 산책을 나간 어느 날 부인이 말했다. “나는 당신 다리를 사랑한 게 아니에요. 지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부인의 말은 그가 열등의식과 패배감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도화선이 됐다. 이후 루스벨트는 네 차례나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3
영국의 파우자 싱은 100세가 되던 해 토론토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단·장거리 세계 신기록을 여덟 건이나 세웠고(100세 이상 부문),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성공해 세계 최고령 완주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20여 년 전 사고로 부인과 자녀를 잃은 뒤 절망에 빠졌다가 삶을 되찾으려 마라톤을 시작한 그는 89세에 첫 마라톤 완주, 93세에 최고령 완주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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