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3. people&

두 번의 이혼, 아들 잃고, 끈질긴 암과의 사투… 세상을 울린 파란만장했던 삶

이어령 전 장관 딸 이민아 목사

2014-03-13 14:52

지난 3월 15일 이민아 목사(53)가 세상을 떠났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장관을 영성의 세계로 이끈 딸. 큰아들의 죽음, 작은 아들의 자폐를 겪으면서 청소년 사역에 헌신한 마미미나. 갑상선암, 망막 박리에 이어 위암 판정을 받고도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소망의 빛을 전하고 싶다”며 죽기 직전까지 집회를 인도했던 사역자.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보는 데 사용하며 ‘땅에서 하늘처럼’ 살던 그가, 땅의 일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우리 민아, 그냥 편안히 보내주자
딸을 보낸 아버지는 엄마를 보낸 아이를 안고 무어라 속삭인다. 나이 차는 50년이 넘지만 두 사람은 이 순간,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다. 딸 이민아 목사를 먼저 하늘로 보낸 아버지 이어령. 그는 손녀 재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귀엣말을 한다.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나중에 다시 만날 거야.” 그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손녀는 눈물도 흘리지 못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일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듯 말간 얼굴이다. 엄마의 시신이 운구되어 깊게 파인 땅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모습만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 한쪽 팔로는 커다란 할아버지를 굳게 잡고 서 있다. 안경을 벗고 자꾸만 눈물을 훔치는 할아버지가 행여 휘청거리기라도 할까 봐. 이민아 목사가 쓰러지던 날, 119 구급차를 부른 건 딸 재연이었다. 이 목사는 지난해 위암 판정을 받고 난소와 뼈로도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항암을 하지 않으면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는데, 항암은커녕 진통제도 맞지 않고 1년을 살았다. 쓰러지던 날 낮에도 염색을 하고 귀고리를 샀다. 사인은 심장마비.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권했을 때 “우리 민아, 그냥 편히 보내자”고 반대한 건 아버지 이어령이었다. 

“응급실에 식구들이 모였어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연결했던 기구들을 모두 떼고, 둘러서서 찬양을 불렀어요. 마지막 가는 얼굴이 예뻤어요. 평온했고.”(고인의 친구) 

다섯 걸음 정도 앞에 있는 어머니 강인숙 교수는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발인예배부터 장지에 도착하기까지 시종일관 의연하던 그다. 딸이 누워 있는 관이 흙에 파묻혀 그 형체가 자꾸만 사라져가자 어머니는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강 교수의 작은 몸이 더 작아진다. 

아이는 엄마를 보내며 울지도 못하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미와 아비는 딸의 무덤 앞에서 끝내 눈물을 쏟는다. 그 모습을 보는 이의 마음이 똑같이 안타깝다. 입관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이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킨다. 숨죽인 통곡에 허리까지 수그러든 어머니를 지탱하고 있는 동생 이승무 씨(장동건 주연의 영화 <워리어스 웨이> 감독)는 누나의 관이 네모난 구덩이로 들어가 사라지는 모습을 오래오래 본다. 눈을 떼지 않는다.

That is only way
이것이 유일한 길이겠지요
 
“That is only way, Jesus. For your glory, your glory.”
(이것이 유일한 길이겠지요, 주님. 영광을 위하여, 영광을 위하여.)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고인의 남편 제프 스펜서 부캐너 씨다. 고인의 시신이 병원에서 운구차로 옮겨지는 동안 묵묵히 행렬을 따르다가 차 문이 열리고 관이 들어가자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겠지요(That is only way).” 울음과 함께 터져나오는 목소리.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천천히,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휘장이 덮인 고인의 관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민아야, 민아야.”

고인의 오랜 친구가 관 속에 누워 있는 이민아 목사를 부른다. 다정한 목소리다. 이민아 목사는 5년 전 큰아들 유진을 먼저 보낸 후로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고 한다.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서 쉬고 있는 거니까. 이민아 목사의 장례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각자만 알고 있을 고인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발인예배에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사람은 죽음도 두렵지 않을 그 무엇을 가져야 한다. 이민아 목사는 그걸 가진 사람이었고 불꽃같이 살다가 갔다”고 했다.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 통한의 눈물 흘리는 아버지 이어령 교수. 옆은 고인의 막내 딸

평화, 평화로다
고인의 아들 진성과 진영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들들은 아침 발인예배 중에 도착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아들들에게 앞자리를 내주었다. 아직은 낯선 어머니의 나라가 이제는 어머니가 묻힌 땅이 되었다. 고인의 친구가 말했다.  

“아이들이 많이 놀랐을 거예요. 살아서 헤어진 엄마를 시신으로 만났으니까….”

진성 군은 이민아 목사가 《땅끝의 아이들》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 소개했던, 오랜 시간 자폐를 앓은 아이다. 원래는 둘째지만, 큰아들 유진 군이 2007년 하늘나라에 가면서 장남이 됐다. 스무 살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아들은 발인부터 장지까지 고인의 영정을 들고 의젓하게 산에 올랐다.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큰형이 갑작스럽게 죽고, 작은 형은 자폐를 앓는 모습을 지켜본 셋째 진영 군은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고 한다. 늘 어떻게 하면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민아 목사가 병환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안 “엄마는 한국에 있지만 저는 여기(미국)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며 전보다 오른 성적표를 보내오기도 했다. 갸름한 얼굴에 짧은 머리, 쌍둥이처럼 꼭 닮은 두 아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묵묵히 지켰다. 

밤새 내리던 비는 경기도 양주의 교회 묘지에 도착할 때쯤에는 그쳐 있었다. 덕분에 우산 없이 시신을 묘지까지 운구할 수 있었다. 맑은 공기와 비에 젖은 흙내음이 공원묘지에 가득했다. 누군가 시작했는지 모를 찬송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1. 영정을 든 고인의 아들. 
2. 발인예배에서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 
3, 4. 마지막 인사를 하는 유가족과 조문객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시련이
축복이라는 걸
 

이민아 목사의 Heavenly life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딸인 이민아 목사의 기도 덕분에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문턱을 넘게 된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다. 스물둘에 등단해 시대의 지성으로 살아온 이어령 전 장관은 젊은 시절 성경을 분석했고 이를 논리적으로 비판했다. “내가 노아라면 혼자 살겠다고 방주를 짓지 않았을 것”, “6·25 전쟁 당시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며 무신론자로 살았다. 그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린 건 딸이었다. 망막 박리로 딸의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는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서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도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아버지의 눈으로 본 딸의 삶은 참혹했다. 스물두 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훌쩍 떠난 딸은 첫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갑상선암을 앓았고 망막이 찢어지는 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목숨처럼 사랑했던 큰아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혼수상태에 빠져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재혼 후 낳은 둘째 아들은 자폐 판정을 받았다. 

어느 아버지에게나 맏딸은 특별하다. 이민아 목사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공부를 좋아했고, 잘했고, 책을 좋아했고, 글을 잘 썼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3년 만에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다. 변호사 자격을 받아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임용됐고, 청소년 사역을 시작하면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당시 동양 여성 중에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많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남 없이 자라온 큰딸이었다. 그런데 딸은 불행했다고 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어령의 딸’로 살아온 날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산 시간이라고 했다. 딸이 가장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아니었다. 자폐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떠난 하와이에서 변호사가 아닌 낮은 주급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엄마로 살 때였다.

“아름다운 섬 하와이, 딸을 따라 허름한 교회에 갔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과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 4월의 새벽 봄빛이 그렇게 빛나지만 않았더라면, 새벽 공기가 그렇게 푸성귀처럼 풋풋하지만 않았더라면, 결코 나는 그렇게 외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세례받는다’라고. 먼 데서도 민아의 눈에 아침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2007년 7월 24일, 이 전 장관은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 높은 상아탑에서 내려왔다.
“오늘부터 저는 신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많은 직함을 갖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이 길이 외로울 수도 있지만 신자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싶습니다.”

아들이 죽던 날,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이어령 전 장관의 회심에 ‘딸의 실명’이 있었다면, 이민아 목사의 회심에는 ‘아들의 죽음’이 있었다. 1981년 결혼한 김한길 전 의원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진 군. 이민아 목사는 자신의 생애에 가장 기뻤던 순간을 ‘죽을 것 같은 진통 끝에 첫아이를 낳아 눈을 마주친 순간’이라고 했다. 버클리대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아들, 가출한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 먹이고 입히며 보살폈던 마음 고운 아들이 어느 날 쓰러졌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혼수상태에 빠졌다.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년을 매일같이 울면서 신을 원망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성경에 써 있는데, 우리 유진이만큼 부모를 사랑한 아이가 없는데요? 부모 말 안 듣고 말썽부리는 아이들은 다 잘살고 있는데 왜 우리 유진이만 데려가시나요?”라고 대들었다. 그러다 그 부모 말 안 듣고 말썽부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전에도 검사, 변호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문제를 상담해왔다. 하지만 그때는 엄연히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구분하는 벽이 있었다. 아들이 죽은 뒤 그 벽이 사라졌다. 술과 마약에 빠진 아이는 사랑이 그리워 그것들을 찾는 것임을 알았다. 자신도 부모의 사랑이 그리워 알코올과 록에 빠져 지내던 시간이 있었으므로. 서른 명이 아이들이 그녀를 ‘마마미나’라고 불렀다. 유진 군의 엄마는 죽고 ‘땅끝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됐다. 그리고 2009년 그는 목사 안수를 받는다. 아들의 죽음 후 그의 기도대로 된 것이다. 

“우리 유진이가 엄마, 아빠 이혼하고 힘들었던 기간에 흘렸던 모든 눈물들 다 씻어주시고,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엄마, 아빠 사랑하는 좋은 아이로 잘 길러주셔서, 우리 아이의 장례식에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 대신 아버지, 어머니 사랑 못 받고 하나님 모르는 아이들에게 저를 보내주시면, 제가 그 아이들 위해서 열심히 사역하고, 하나님이 제게 주신 청소년 사역 비전, 중보사역을 하겠습니다.”

암세포가 전해준 메시지
“왜 암이 재발했을까…?”
2011년 위암 판정을 받고, 이민아 목사는 잠잠히 물었다. 이미 갑상선암을 치료받은 경험이 있었다. 호르몬 질병인 갑상선암에 완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실명을 가지고 왔던 망막 박리 증세도 아버지의 회심 후 7개월 만에 사라졌다. 기적의 연속이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뒤로는 청소년 사역자로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술과 마약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을 벌이던 중이었다. 그런데 암세포는 위를 지나 난소, 뼛속까지 퍼지고 있었다.
“민아가 말했어요. 다 용서했는데 끝내 하지 못한 게 있었던 거 같다고요. 마음속에 있는 걸 다 끌어냈는데, 그 끝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게 있었다고요. 그건 남편으로 인한 상처였어요. 그 상처는 깊은 세포막에까지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어요. 민아는 ‘상처는 꺼내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아. 우리 결혼생활하면서 받은 상처들을 한 번 꺼내보자. 그게 없으면 사랑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아픔이 암세포가 된 것 같다고 했어요. 세포에 질리도록 붙어 있는 상처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어요.”(고인의 친구)

자신에게 일어난 일 중 어떤 것도 우연은 없다는 게 이민아 목사의 믿음이었다. 그리고 2주 동안 두 명의 남편을 용서했다고 한다. 첫 번째 남편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은 너무 어렸다. 아버지에게서 얻지 못한 사랑을 첫사랑인 그에게서 받고 싶었다. 스물둘에 미국으로 함께 유학을 떠났다. 흑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밤에는 주유소 일, 낮에는 햄버거 가게 일을 하며 공부했다. 반대하는 결혼을 한 터라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아이 낳고 공부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5년 만에 헤어졌다. 

재혼 후 2남 1녀를 낳았다. 특수 자폐 판정을 받은 진성 군을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초등학교를 다섯 번이나 옮겼고 중학교도 1년 다니다 쫓겨났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와이 크리스천스쿨로 옮긴 뒤 1년, 자폐 증상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 곁에 있기 위해 변호사를 그만두고 보조교사로 일했다. 넷째인 딸이 태어난 후로는 늘 곁에 있어주고 싶어 일을 하지 않았다. 큰아이의 죽음, 둘째 아이의 자폐를 겪으며 들어서게 된 청소년 사역에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의견충돌이 있었다. 사역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변호사 일을 그만두는 건 반대했다. 사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남편과는 그렇게 헤어졌다. 

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상처인데, 암세포가 드러나면서 함께 드러났다. 이민아 목사는 그렇게 치료받고 갔다. 위암 역시 곧 다 나을 거라는 믿음 속에서 살았다. 서너 시간씩 이어지는 집회도 마다하지 않고 일정을 소화했다. 자신도 암환자이면서 병에 걸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해주었다. 어쩐지 3월에는 집회 일정이 없다고 의아해하던 그는 3월 15일, 하늘로 돌아갔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민아 목사에게는 치유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암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진급’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으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완전한 치유가 있습니다.”(오정현 목사)

기독교는 아이러니의 종교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어야 한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한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 ‘땅에서 하늘처럼’ 살아온 이민아 목사. 끝까지 치유의 믿음을 놓지 않았던 그는 그렇게 완전한 치유를 받았다. 


- 1981 이화여대 졸업식에서 아버지 이어령 전 장관과


첫 남편인 김한길 전 의원이 이민아 목사와 헤어진 뒤 쓴 글
-《눈뜨면 없어라》 중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 anyway
미국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 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참고도서 《땅끝의 아이들》(이민아, 시냇가에심은나무), 《땅에서 하늘처럼》(이민아, 시냇가에심은나무), 《지성에서 영성으로》(이어령, 열림원)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