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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으로 홈런 날린, 간호사 출신 소설가 정유정

‘7년의 밤’으로 홈런 날린, 간호사 출신 소설가 정유정

2014-03-13 15:11

올여름 단연 돋보이는 스릴러 소설이 있다. ‘7년의 밤’이다. 마성의 매력이 풍기는 이 소설은 특별한 홍보 없이 독자의 입소문만으로 ‘대박’이 났다. 그런데 이 책을 집필한 정유정 작가는 소설보다 더 재밌는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천방지축 동네 말썽꾸러기에서 백의의 천사 간호사로, 궁극에는 소설가로 거듭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7년의 밤’
7년 전 우발적 사고로 한 소녀를 죽게 한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사내와 딸을 죽인 범인은 물론 범인의 아들에게까지 복수를 하려는 소녀의 아버지와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철저한 취재와 치밀한 스토리로 현실감 있는 ‘스릴러’를 전한다.


 이승엽 티셔츠 입고 쓴 ’7년의 밤’ 진짜 홈런을 날릴 줄이야  
 

지난 4월 출간된 ‘7년의 밤’은 6월 중순까지 9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어느 서점이건 베스트셀러 목록엔 어김없이 ‘7년의 밤’이 올라 있다. 특별한 홍보 없이 독자의 반응만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탄탄한 스토리, 명확한 캐릭터에 매료된 영화업계의 러브콜이 잇달았고, 5월 중순에는 원작료 1억원에 러닝개런티까지 받는 조건으로 영화 판권이 팔리기도 했다. 그야 말로 대박이 났다.

‘7년의 밤’ 인기가 대단하네요. 여기저기서 다양한 반응들을 보내올 텐데 어떻게 느끼세요. 지방에 사는데다 밖에도 잘 안 나가고 인터넷도 안하니까 솔직히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끔 서울에 올라와보면 독자들 반응이 느껴져요. 물론 다 좋은 것만 있는 건 또 아니고 무서운 독자들도 있어요.(웃음) 확실히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좀 들어와요. 오늘이 마지막 인터뷰일 텐데 이제부터는 다 끊고 본격적으로 또 글을 써야죠.

이번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면서요. 그 전 작품인 ‘심장을 쏴라’도 마찬가지고요. 집필할 때부터 영화가 되는 소설을 노리신 건가요?(웃음) 에이, 그런 건 아니에요. 나는 영화에 문외한이에요. 아들이랑 ‘신밧드의 모험’ 보러 갔던 기억만 겨우 나요. 감독, 피디 같은 비주얼에 예민한 분들이 제 책을 좋아한다고 하시던데 서사구조 자체가 확실한데다, 주인공의 내면을 명확한 행동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영상으로 제작하기가 유리하다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 제의를 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녀의 소설은 영화로 보고 싶은 작품 1순위로 급부상하며 영화계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았다. 정식 판권구매 제안서를 보낸 제작사만도 총 15군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번 소설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몇 년 전에 어린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공기총에 맞아 호수에 버려진 끔찍한 사건이 있었어요.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었는데 범인이 평소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대요. 그런데 정작 죽은 아이는 집에서 학대를 당했다더라고요. 그 사건을 잘 분석해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이번 소설 속에 많이 반영이 됐죠.

정신병자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정신병동에서 생활할 만큼 사전 취재를 꼼꼼히 하신다고 들었어요. 특히나 이번 소설은 유난히 취재과정이 어려웠다고요.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소설에 보면 댐 유역의 구조나 스쿠버다이빙 과정에 대한 설명이 꽤 자세하게 들어가거든요. 남편이 119 구조대원이라 잠수교관님을 소개해줬는데 잠수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까 미리 관련 서적 일곱 권 정도를 독파하고 찾아갔죠.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씀을 알아듣겠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전문적인 학술용어 말고, 진짜 다이버들이 쓰는 은어 같은 게 있잖아요. 아무래도 소설 속에 그런 용어를 녹이는 편이 좋겠다 싶어 몰래 스쿠버다이빙 카페에 다이버인 양 회원으로 가입해서 이것저것 염탐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살을 덧붙였어요. 주인공이 댐 수문을 열어서 마을을 수몰시키는 만큼 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필요했고요. 내 남동생이 토목기사라 잘 아는 토목시공기술사님을 연결해줬는데 그분이 직접 댐 수문까지 데려가서 기계 작동법이니 용도 같은 실질적인 부분을 알려줬어요. 또 범죄 얘기가 들어가야 하니까 수사나 조사 같은 영역에서도 전문가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마침 고향 선배가 남부지검 검찰 수사관이라 원고를 보여주면서 진짜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물었죠. 정말 주위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소설 못 썼을 거예요. 좀 피곤해도 저는 그렇게 확실한 게 좋아요. 소설이 아무리 허구라지만 독자를 납득시키려면 개연성이나 현실성에는 빈틈이 없어야 하거든요.



 내가 소설가가 된 진짜 이유  

어릴 적부터 동네 아이들을 모아다놓고 이것저것 ‘짬뽕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는 그녀는, 그러니까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처음엔 멋있어 보여서, 나중엔 가슴이 끓어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그녀는 그러나 간호사가 됐다.

어릴 시절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제 고향이 전남 함평인데, 동네에서 아주 소문난 말썽쟁이였어요. 박쥐를 잡는답시고 건물에 올라갔다 향나무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동네 뒷산에서 불장난을 하다 눈썹을 다 태워먹기도 했어요. 우리 학교 주변에 굴이 하나 있었거든요. 거기다 무를 저장해놨는데, 그걸 훔쳐 먹겠다고 애들을 끌고 들어가지 않았겠어요. 웅덩이처럼 푹 파인데다 무를 저장해놓는 바람에 거기서 기어 나오지를 못해서 내내 갇혀 있었어요.(웃음) 나중에 주인이 와서 아주 혼~ 났죠. 내가 하도 말썽을 피우고 다니니까 엄마가 책을 그렇게 사줬어요. 다행히 책은 또 좋아해서 그거 읽고 있는 동안에는 얌전했으니까요. 책을 읽고 나름 상상력까지 덧붙여서 동네 애들 모아다 천막극장 변사 떠들듯 떠들었어요. 예컨대 땅속에 지하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는 왕을 모시는, 아주 반짝반짝한 드레스를 입는 여자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왕이 차례대로 그 여자들을 죽인다는 식의 스토리를 들려줬던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애들이 재밌다고 눈을 반짝이더라고요. 어린 나이었지만 그게 참 좋았어요.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게…. 그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소설가를 꿈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소설가가 아닌 간호사가 됐죠.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저를 의대에 보내고 싶으셨대요. 그래서 초등학교도 6살에 들어갔어요. 의대가 6년 과정이니까 남들이랑 똑같이 졸업하려면 2년 먼저 학교에 가야된다고요. 그런데 의대는 못 가고 간호 대학교를 들어갔어요.(웃음) 취직해서 돈 벌면 야간 국문과에 들어갈 생각부터 했는데 어머니가 간암에 걸리셨어요. 제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3년을 앓았는데 그때가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암울할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엄마 병수발 하랴, 집안 살림 돌보랴 그 꽃 같은 나이를 즐길 여유가 하나도 없었죠.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나요. 어느 날이던가 엄마가 검붉은 피를 토하고 있는데 남동생이 군대를 가겠다고 머리를 박박 밀고 왔더라고요. 눈이 펄펄 오는 겨울날 꼭 어디 잠깐 놀러간다는 사람처럼 나서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어요. 누구 하나 따라가 줄 형편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입대한 동생이 집으로 옷을 보내왔는데 때마침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엄마가 그걸 껴안고 서럽게 울더라고요. 그때 우리 집 분위기가 그랬어요. 그래도 내가 누난데 면회 한번은 가야 되잖아요. 입대한 지 1년 만에야 강원도 양양 부대로 동생을 찾아갔는데 애인처럼 차려입고 오래서 생전 입지도 않던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었죠. 애인이 가야 외박 허가가 난대요 글쎄. 그때 군인이 잔뜩 들어찬 군용 트럭을 얻어 타고 외박을 나갔는데 그 수많은 눈들이 다 내 다리에 몰리더라고요.(웃음) 뭐 농담이고, 그날 동생이랑 양양 바닷가에 앉아서 엄마 얘기는 우울해질까봐 빼고, 밤새 소주를 퍼마시면서 그놈의 미니스커트 얘기만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면서도 슬퍼요. 아마 그 시절에 제 성격이 많이 변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다 끊고, 매일 엄마랑 식구들만 돌봐야 했으니까요. 모욕감을 견디는 법도 배웠고…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와 회의를 겪어가며 철이 든 것 같아요. 그게 소설을 쓸 때 큰 자양분이 되더라고요.

광주항쟁을 직접 겪고 난 뒤에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면서요. 네, 고등학교 때부터 광주에 나와 살았는데 그때 5.18 광주항쟁을 겪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5월 27일 비가 오던 날이었어요. 시민군들이 도청을 사수하고 있는 가운데 광주외곽에 벌써 군인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날 저녁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하숙집에 모여 번개탄에 삼겹살을 구워 먹더니 트럭을 타고 전남도청으로 나갔어요. 시민군들을 돕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든 거죠. 그날 밤 총소리가 정말 대단했어요. 어찌나 무섭던지 빨리 잠이라도 잤으면 했는데 눈이 말똥말똥한 거예요. 재미없는 책을 읽으면 졸음이 올 것 같아서 대학생 오빠 방에서 책을 한 권 골라들었는데 그게 켄 키지(Ken Kesey)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어요. 무심코 한 장 넘겼을 뿐인데 정신을 차리니 마지막 장이더라고요. 창문으로 파란 먼동이 터왔고 까닭 모를 눈물이 계속해서 쏟아졌어요. 그때 느꼈죠. 나도 사람의 마음에 용암을 던져 넣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그럼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 부턴가요. 제가 간호사 생활 5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 9년을 일했는데 직장 그만두기 1년 전부터 소설을 썼어요. ‘열한 살 정은이’라는 제목인데 운 좋게 책으로 나오기도 했죠. 자신감이 좀 붙데요.(웃음) 본격적으로 책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과감하게 직장을 나왔어요. 동료들이 선물해준 몽블랑 만년필을 들고요. 그렇게 무명작가 생활을 겪다가 ‘이별보다 슬픈 약속’, ‘마법의 시간’이라는 두 권의 책을 냈어요. 계속 공모전에 도전하긴 했는데 영 안 되데요.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도 많이 아팠어요. 난소가 파열돼서 심하게 하혈을 했거든요. 응급실 가서 수술을 받고 있자니 내가 뭣 하러 이 고생을 하는가 싶더라고요. 때려치울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조금만 더 해보자. 조금만 더, 그러면서 버텼어요, 진짜 좋은 날이 오긴 오데요.(웃음)
(그녀는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문학상을 탔으며, ‘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그리고 오늘의 걸작 ‘7년의 밤’을 써 내려가기에 이른다)

소설 쓰기가 굉장히 고통스럽다고 들었는데, 어떤가요.글이 막히기 시작하면 진짜 힘들어요. 설사 가갸거겨를 쓰더라도 책상에 엉덩이 딱 붙이고 오래 앉아 있는 놈이 이기는 건데, 정말 머리가 복잡하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 싶으면 소주를 한 글라스 마시고 자버리던가, 깜깜한 산에 혼자 올라가는 방법을 쓰죠.(웃음) 그러다 뭔가 번뜩이는 게 있으면 얼른 헤드렌턴을 켜고 적어요. 그렇게 풀린 글들이 많아요. 답답해서 벽을 노려보고 있다가 정 안 되겠으면 고양이 밥도 주고. 야구를 워낙 좋아하니까 이승엽 선수 유니폼을 입고 앉아서 기다려보기도 하고. 뭐 그래요. 남들은 좀 특이하게 볼 수도 있는데 우리 가족한테는 너무 일상적인 모습이라 괜찮아요.

 동생친구였던 내 남편과 북극곰 같은 내 아들  

남편분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우리 남편이 내 남동생 친구에요.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내가 자기한테 밥을 유난히 많이 퍼줬다나….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대요. 집안 살림하느라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고맙게 결혼을 하자더라고요.(웃음) 무엇보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나중에 글을 쓴다고 들어앉아도 먹여 살리겠더라고요. 나는 결혼하기 전에 딱 그랬어요. 집 살 때까지만 직장에 다니고 그 다음부턴 소설 쓰겠다고.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세월이 지나서 남편이 피츠버그에 응급의학 공부를 하러 갔는데, 전화에다 대고 ‘나 이제 일 그만 둘란다.’ 그랬더니 진짜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때 제 연봉이 남편의 두 배 정도였는데 두말 않고 허락하는 걸 보니 참 고마웠어요. 우리 시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요. 참 배려가 깊은 사람이에요. 지금도 내가 워낙 바깥 활동하는걸 싫어하니까 퇴근길에 대신 장도 봐다주고, 소설도 꼼꼼히 봐주고 그래요.

아드님이 하나 있죠? 소설가로 성공한 엄마를 꽤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덩치는 이따만 한데 말수가 적어요. 뭐가 좋은지 나쁜지 말을 안 하니까 잘은 모르겠는데 자기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다 책상 위에다 내 책을 떡 하니 올려놓더라고요. 한번은 학교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내 책을 들고 와서 이거 읽어본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기에, 우리 아들이 ‘그 책, 우리 엄마가 쓴 건데요’ 그랬대요. 선생님이 믿지도 않았다지만.(웃음) 

그녀의 표현대로 이날의 인터뷰는 ‘찜질방 수다’에 가까웠다. 누군가 그녀의 소설을 두고 ‘날 것’의 느낌이란 평을 했듯 기자가 만난 정유정 작가는 어딜 어떻게 익히고 양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과거를 털어놨고, 현재를 표현했으며, 미래를 내다봤다. ‘나만의 저잣거리’ (그녀로선 책이겠다)에 서서 이야기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꿈이라는 그녀는 ‘인수공통전염병’ 즉 인간과 동물에게 공통으로 감염되는 전염병을 주제로 차기작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간호사 출신인 만큼 의학용어는 문제없으니 이제 머리 싸매고 앉아 수의학, 동물심리학, 바이러스학을 공부할 차례란다. 그녀의 다음책에는 또 어떤 홈런이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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