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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냠냠' 펴낸 시인 안도현

2014-03-13 15:33

‘어른을 위한 동화’를 써오던 안도현 시인이 이번에는 ‘아이를 위해 시’를 썼다. 음식을 소재로 쓴 동시 40편을 묶어 동시집을 냈다. 스스로를 초등학교 6학년쯤이라 생각하고 썼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흥겨움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심(詩心)을 읽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어찌된 일인지 안도현 시인은 아랫목에 머물 줄을 모른다. 아직 군불이 지펴지지 않은 윗목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냉랭한 바닥을 체온으로 데워가며 시를 쓴다. 시가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에도 그는 시를 쓴다. 시를 잊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자꾸만 따끔따끔하게 해 돌아보게 만든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고 시작하는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마음 뜨끔한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번에는 시 중에서도 변방에 있다는 ‘동시집’을 냈다. ‘동시집’이라는 말이 생경할 정도로 동시는 이제 교과서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천연기념물’이다. 생태학습장에 갇힌 토끼는 더 이상 ‘깡총깡총’ 뛰지 않고, TV에 등장하는 거북이는 바닷속을 ‘엉금엉금’ 헤엄치지 않는데도, 교과서는 여전히 그렇다고 한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아이들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이렇게 죽은 언어, 박제된 묘사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동심을 누리기 힘든 요즘 아이들에게, 유년의 풍성한 기억을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궁리한 끝에 어린이를 위한 시집 <냠냠>을 썼다. 그가 차려준 마흔 가지 음식을 오물오물 집어먹다 보면 잃어버린 미각을 되찾은 듯 동심이 살아난다. 예컨대 ‘좍좍 퍼붓는 굵은 장대비로는 칼국수를 만들자 / 가랑가랑 내리는 가는 가랑비로는 소면을 만들자 / 오고 또 오는 질긴 장맛비로는 쫄면을 만들자 - 빗줄기로 국수 만드는 법-’ 같은 시가 그렇다. 내리는 빗방울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무심코 흘려보내던 것들이 ‘아, 그랬었지’ 하며 되돌아온다. 냉랭하던 일상에 훈기가 돈다. 시의 힘이다.  

시인,
동시집을 내다   
간담회 날, 안도현 시인은 오랜만에 찾은 서울을 다소 곤혹스러워했다. ‘얇은 동시집 한 권 내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게 쑥스럽다’면서. 그러면서도 ‘동시가 얼마나 중요한 장르’인지 동시를 쓰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났는지’를 이야기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확신에 찬 눈빛, 힘 있는 목소리다. 그가 다른 소재가 아닌 음식 동시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삶에서 중요한 일이 먹는 거 아닌가요? 물론 지금은 먹을 게 넘쳐서 고민인 시대지만요. 음식이란 단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닙니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 때 아이가 옆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이 돼요. 요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지켜보고, 그 빛깔과 냄새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냠냠>에 수록된 ‘밀가루 반죽’이라는 시에는 그런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칼국수 만든다고 /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주물러요 /-나도 좀 만져봤으면 / 저리 물러가 앉으라고 / 엄마는 손사래를 쳐요 / -주먹만큼만 떼어 줬으면 / 손에 묻히면 안 된다고 /엄마는 고개를 저어요 /-탁구공만큼만 떼어 줬으면 / 축구공만 한 반죽을 엄마는 혼자서만 굴려요 /-나는 하느님처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엄마는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밖에 못 만들어요
서울에 있던 1박 2일 동안 안도현 시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하루에 인터뷰만 5~6개,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됐다. 일정을 마치고 전라북도 완주, 거처로 내려간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서울에서보다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시라고 했다. 그렇다면 군더더기 없는 날것 그대로의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우리는 완주로 갔다. 

시인에게
묻는다  
“정문으로 들어가지 마시고, 주차장을 나와서 왼쪽을 보면 조붓한 길이 나올 겁니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술관’이 보여요. 그 건물 4층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전임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 삼례 IC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멀리 캠퍼스가 보인다. 그런데 학교가 정문 바깥에 있다니? 거기다 ‘조붓한 길’은 또 어디란 말인가. 학교에 도착하니 의아했던 마음 대신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주차장을 나와서 왼쪽을 보니 정말 ‘약간 좁은 듯한( ‘조붓하다’의 사전풀이)’ 길이 등장했고, 본 캠퍼스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예술관과 기숙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연구실 문을 여니, 실내인데도 ‘탁 트인’느낌이다. 책들이 빼곡하나 답답해 보이지 않고, 한쪽에는 평상이 자리 잡고 있다. 방학인 요즘, 시인은 가끔 평상에 누워 책을 읽고 차를 마신다. 평상 위에는 2010년 1학기 문예창작과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가 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은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선생님일까.
“글쎄… 그건 학생들한테 물어야 하는데.(웃음) 잘 놀아주는 선생님?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한테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잘 놀아주고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시인은 1985년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교단에 섰다. 1994년에는 산서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이어갔고, 2004년부터는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치 아이가 성장하듯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차례로 지나왔다.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일(문예창작)을 가르치니까 같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같은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나누는 건 즐거운 일이죠.”
문예창작이 즐겁다니 창작의 고통을 아는 이에게는 다소 난감한 이야기다. 시인은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기에 즐거워하는 건 아닐까. 다른 문학, 다른 장르에 비해 ‘시’는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선천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아뇨. 시는 노력해야 쓸 수 있습니다. 시를 자기 삶에 끌어당기려는 노력이죠. 저는 재능도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성실한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거든요. 영감, 감수성 그런 게  시의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야 해요. 제 경우엔 시를 쓰는 시간보다 (시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깁니다.”
올해 5월에는 <연어> 그 후의 이야기인 <연어 이야기>가 출간됐다. 시인은 그 책을 펴내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했다. 하루에 한두 줄을 쓰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몇 줄 몇 줄을 보태어 한 권의 책이 완성됐다. 소설로는 중편 분량인데도 한참이 걸렸다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같은 과정을 거쳐 1996년 출간된 <연어>는 얼마 전 100쇄를 찍었다. 어른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동화’라는 장르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시인에게도 특별한 작품이다. ‘안도현’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와 교사를 오가며 고갈된 시기, 스스로 ‘글만 쓰면서도 살 수 있겠구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연어>의 마지막 장면이 알을 낳고 죽는 겁니다. 언젠가는 그 알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겨진 알이 어떻게 되었는지를요. 알이 깨어나 성장하고 방황하고 동경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건 (<연어>의 주인공인) 은빛 연어와 눈 맑은 연어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때 사람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가 필요할까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동화도 졸업하는 줄 알았다. ‘동시’만큼 ‘동화’도 어디서 크게 환영받지는 못하는 장르다. ‘시인이면 시를 쓰지 왜 자꾸 다른 걸 하느냐, 사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싶어 그런 것 아니냐’는 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시인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일이다. 그간 그의 시선은 ‘낮은 데 있고, 뒤처지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에 머물러왔다. 그는 그게 시를 쓰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빛나고, 높고,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건 꼭 시인이 아니어도 된다고 말이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살고 싶다   
시인이 그 마음, 그 자세(예컨대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하고, 그런 이야기를 문학의 품에 담으려면)를 유지하려면 가족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시인과 ‘남편’ 그리고 시인과 ‘아빠’의 역할이 충돌하지는 않는지.
“우리 가족들은 제가 워낙 자상하지 못하고 말이 없는 걸 아니까요. 우리 아이들도 아빠가 시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가는 거 같고요. 가족들하고는 잘 지내는데(웃음) 오히려 제 글을 본 사람들이 저를 따뜻하고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실제 만나보고는 제가 숫기가 없고 하니까 오해하는 경우가 좀 있죠.”
만나본 바에 따르면 시인은 분명 다변가는 아니다. 그러나 안도현의 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의 시가 얼마나 마음속에 ‘조붓한 길’을 내는지. 길가에 버려진 ‘연탄재’를 보면서도 그 온기를 지켜주려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가 말이 없다면 그가 ‘너에게 묻기’ 전에 끊임없이 나에게 물어서 그럴 것이다.
“<너에게 묻는다>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저도 몰랐어요. 그래서 ‘아, 사람들이 짧은 걸 좋아하는구나’ 했죠.(웃음) 사실 여기서 ‘너’는 ‘나’입니다. 저 스스로에게 묻는 거죠.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있는지.’”

얼마 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과, 시를 쓸 수 없는 현실을 은유한다. 주인공 미자는 시를 통해 낭만적인 감성을 회복하려 하지만, 시를 쓰기엔 이미 망가진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감독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시를 세워두었다. (실제로 영화 <시>에는 안도현의 시가 등장하기도 한다.) 시인은 그 경계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이 매양 맑고 깨끗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쓰는 시가 ‘천사표 시’가 아니더라도 소수의 독자와 함께 시를 지켜가기를 바란다. 그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시적인 생각을 하는 것,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사탕 하나를 건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조금은 ‘시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겠느냐고. 그는 그렇게 시의 힘을 믿으며 살고 싶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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