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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극복한 세계적 소프라노 김영미

2014-03-13 15:25

파바로티가 감동했던 소프라노 김영미. <나비부인>의 초초상, <라보엠>의 미미 같은 낭만적 여주인공으로 이름 높던 그는 요즘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55세의 나이에 어렵기로 이름난 오페라 <노르마>에 새로 도전하는가 하면, 새벽 예배에서 노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세계무대를 헤쳐나가면서 30년 넘게 자신을 힘들게 했던 분노와 우울, 공포를 이제는 모두 씻어버렸다고,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노래를 삶의 목표로 삼았다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상처받은 사람들 위로하는 
                          치유의 노래를 할 겁니다"

강바람이 포플러 잎사귀를 기분 좋게 흔드는 초여름 오후, 김영미는 긴 머리를 틀어올리고 편안한 블라우스 차림으로 웃음을 던졌다. 노래 잘하던 당찬 꼬마 시절부터,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이야기, 또 외로움과 두려움, 자부심이 한데 섞여 들끓던 이탈리아와 미국 무대의 경험은 물론이고, 어렵게 지켜낸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고백한 <프리마돈나 김영미처럼>을 막 펴낸 그는 요즘이 어느 때보다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50대가 30대, 40대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아줌마’ 인생의 발견, 남편에게 기대를 안 하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더라는 부부 생활의 지혜부터, 대중목욕탕에서는 제발 ‘아는 체’ 안 해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까지 그는 정말 소탈하게 ‘함께 누리고 싶은 삶의 기쁨’을 말했다.
“우울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2004년이에요. 일본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할 때였습니다. 비올레타가 죽음에 앞서 ‘아디오 델 파사토(지난날이여 안녕)’ 하고 통절한 심정으로 부르는 노래인데, 이상하게 맨숭맨숭하고 안 되는 거예요. 1막의 ‘이상해 이상해’는 잘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좋다고 했지만 나 스스로는 겉돈다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무릎 딱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노래 순서에 아디오, 델 파사토, 하고 시작하는데 소름이 쫙 끼쳐요. 코러스가 다 울고. 아, 나의 마에스트로는 그분이구나, 빛이 환하게 느껴지면서 정말 모든 두려움이 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지난날이여 안녕’은 바로 그 자신의 노래였다. 

“안녕, 지난날의 행복했던 꿈들이여, 장밋빛 내 얼굴은 창백해지고,
알프레도의 사랑도 이제 없어.
내 영혼의 안식과 위로는 어디에.  안식! 위로!
아, 버림받은 이 몸. 주여, 용서해주소서. 나의 가엾은 영혼을, 주여! 굽어살피소서!”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파바로티와 함께 출연했던 김영미는 화려한 오페라 무대뿐 아니라 그 뒤편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체험했다. 부와 명예, 인생의 화려함만 가득할 것 같은 프리마돈나의 세계는 노래 실력만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적인 지원, 세계 시장을 노리는 대기업 스폰서, 그리고 또 흥행에 목숨 건 대형 오페라극장과 음반업계의 이해가 얽히고설킨 복마전 같은 곳이었다. 노래 실력 하나만 믿고 혈혈단신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던 가난한 나라의 젊은 소프라노는 최고 점수를 받고도 1등을 할 수 없는 콩쿠르 체제와 콩쿠르 1등을 하고도 오페라 출연 계약이 뒤틀어지는 흥행 시스템으로 인해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우울증과 공포증이 가슴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국에 와서 대학교수가 되고 세계로 공연을 다니면서도 우울과 공포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매일 진정제를 4분의 1쪽씩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고백하는 그는 그날의 체험 뒤로 세상의 무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제가 무대 위에 서면 정말 카리스마가 넘친다고들 그러세요, 하지만 저는 아주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이에요. 걱정이 많고 100% 완벽주의자고. 그래서 별명이 김소심이었어요. 그런데 실은 소심한 것도 하나의 습관입니다. 살면서 보니, 성격도 절반 이상이 습관이에요. 습관적 소심증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겁부터 나는데, 저는 지난 30년을 그게 다 겹친 채로 살았어요. 연주해야죠, 공부해야죠, 또 결혼한 다음에는 가족이 있지요. 그걸 다 제가 틀어쥐고 100% 완벽하게 해내려니 제 마음은 속으로 다 무너지고 사람들하고도 힘들었지요.”
아팠던 지난날을 말하면서 김영미는 줄곧 소녀 같은 웃음을 지었다. 한 시절을 견디어 이겨낸 사람의 자부심이 든든하다. 중간에 휴대폰이 진동했다. 딸과 남편. 인터뷰가 몇 시쯤 끝나는지, 몇 시에 데리러가면 되겠느냐고 묻는 전화다. 콩쿠르에 우승하던 이야기를 잠깐 미루고, 결혼과 가족으로 이야기가 방향을 틀었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결혼은 한국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어요. 엄마가 특히 심했지요. 유학 갈 때도 ‘이탈리아 남자는 다 바람둥이다’, ‘남자는 다 도둑이다’ 하면서 절대 연애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게 나도 모르게 완전히 세뇌가 되었나 봐요.”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파바로티와 ‘사랑의 묘약’으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뉴욕시티 오페라와 공연을 다니고 있었다. “세계적인 오페라 프리마돈나가 되려면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연주 활동이 바빠서 결혼을 못하겠습니다. 만약 한다면 아내가 그렇게 활동하는 것을 이해해주는 외국 사람과 하겠습니다, 했더니 엄마가 저 결혼시키려고 아예 뉴욕으로 오셨어요.” 연주 활동을 이해하고 지원할 만한 남편감으로 찾아놓은 사람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던 엄마 후배의 아들이었다.
그는 남편을 소개하기 전에 웃기부터 했다. “좀 서먹서먹한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청혼은 또 어땠게요. 로맨틱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죠. 로스앤젤레스에 쌍둥이 빌딩이 있어요. 꼭대기가 회전 스카이라운지예요. 거기서 만났는데 ‘웬만하면 같이 살지요?’ 그래요. 근데 그때는 그런 썰렁한 청혼이 조금도 섭섭하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재차 물었죠. ‘뭐요? 결혼하자구요, 합시다.’ 하하하. 그렇게 진행됐죠.”
장미꽃 바구니도 없었고 화려한 선물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결혼을 할 수 있었고 결혼이 유지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선물 상자 500개 쌓는 남자였으면 오히려 안 되었을 거예요. 제가 어려서부터 혼자 세상과 싸우며 살아서 그런지, 남자를 좀 우습게 봤어요. 근데 남자가 서먹서먹하니까 오히려 더 어렵게 여겨지는 거예요.” 신혼 때 1년의 3분의 2는 미국 전역으로 연주를 다니느라 남편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연주 떠나면서 ‘굿바이’ 하고, 돌아오면서 ‘하이’를 반복했던 신혼 초 3년여를 그는 ‘냉랭하고 건조한 생활’로 기억한다.
“그 서먹서먹한 게 아주 신물이 났어요. 사소한 일로 많이 싸웠죠. 하지만 남편은 아무리 심하게 싸웠거나 먼 거리라도 마지막 연주회 날에는 반드시 연주 장소에 와서 공연을 본 뒤 함께 집으로 돌아왔어요.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다고 하자 김치찌개를 밀봉해서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온 적도 있지요.”
결혼하고 9년 만에 딸 서영이를 얻었다. 너무너무 기쁘고 고마웠다. 임신한 것을 알고는 오페라 계약도 다 취소했다. 그러나 남편과의 갈등은 오래 계속되었다. 남편이 이탈리아 밀라노 지점장으로 갔을 때 함께 갔다가 싸움 끝에 먼저 돌아와버렸다.
“1년 후 남편이 귀국했지만 한 집에 살면서 말 않고 지내는 냉랭함이 계속되었지요. 딸아이가 가장 힘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지내던 중 평생 김영미의 가장 큰 후원자이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중국에서 공연 중이었고 엄마는 “가정생활을 원만히 해야 영미가 연주를 잘할 수 있다. 영미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사위에게 남겼다.
“엄마의 편지가 참 부담스러웠어요. 또 한편으로는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는구나, 하고 감당할 수 없이 공허감과 허탈감이 밀려오는 바람에 덜덜 떨리고 아팠지요.” 그런 가운데 공연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왕 사는 거 서로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남편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요구를 했다는 것도 깨달았지요.”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변하니까 문제가 해결돼요. 기브 업. 기대를 안 하면 됩니다!” 김영미는 이 말을 하며 하하 웃었다. “남편의 성격을 존중하면 된다. 내 성격은 어떡하느냐고요? 내 거는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바라면 바랄수록 더 상처만 됩니다. 저 인물은 화성에서 왔다. 저 화성인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내 근본이 그걸 받아들이고 내 안에서 잘 소화를 시켜야 됩니다.” 중간은 없다. 그는 부부 사이에는 아드레날린이 나오거나 엔도르핀이 나오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 사람으로 인해 내가 성장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해요. 우리가 흔히 이 웬수, 그러잖아요? 한번 마음을 바꿔보세요.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을 거야, 내가 한번 숙여보자.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고 제가 많이 깨달았어요. 이렇게 한번 가는 건데, 내가 손해 좀 보면 어떠냐? 찾아먹으려 하지 말자. 상은 내가 차리고 먹는 사람은 따로 있다. 부스러기가 많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니까 다 풀려요.” 물론 고통스럽다. 그도, 혼자 운 적이 한두 번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픈 만큼 빛난다는 게 지난 몇 년의 체험이다. “예전에는 장을 본 무거운 짐을 당연히 남편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빤히 보고만 있었죠. 요즘은 내가 짐을 불끈 들면 남편이 달려와요. 자기가 한다고. 내가 포기하는 게 많아지면서 남편의 반응이 빨라지고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연주를 가기 전에 남편 식사를 모두 준비해놓고 나갔다. 시간이 없어 쩔쩔매면서 음식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보고만 있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원망을 없애니 남편이 달라졌다. 바쁠 테니 나가서 먹자고 한다. “전에는 남편이 못마땅하면 즉시 말했지만 이젠 일단 접어둡니다. 그 자리에서 불만을 말하면 싸움만 되니까요. 남편은 여전히 쇼핑을 싫어하지만 이제는 ‘운동한다고 생각하자’며 두 시간 이상 쇼핑해도 불평을 안 해요.” 그는 “결혼이 음악보다 더 힘든 연주”라고 말한다. “결혼은 어느 한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야 하는 무대거든요. 근데 지난 몇 년간 깨달은 게, 결혼도 음악처럼 훈련과 연습을 하면 누구나 프리마돈나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지난해 오페라 <노르마>를 한 뒤 그는 성악가로서 자신의 삶에 또 하나의 자신감과 목표를 추가했다. “소프라노들은 <노르마>에 대한 도전 의식이 있습니다. 참 어렵고 좋은 작품인데다 마리아 칼라스가 하나의 전범을 만들어놓은 셈이라 잘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오페라를 5년이나 쉬었는데 <노르마>는 장장 2시간을 풀 보이스로 버텨내야 하는 작품이에요. 내가 감당이 될까, 또 소심증이 나오는 거예요. 근심, 불안, 초조… 그런 것을 하나씩 내려놨어요. 이 모든 음 계열과 호흡과 조절이 가능한 것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들어갔어요. 연습에 들어가고 나서 이탈리아 지휘자, 연출자가 더 놀랐어요. 여기, 한국에 노르마가 있다고 이탈리아에 전화까지 걸더라구요. 같이 공연하는 동료들도 김영미는 나이를 거꾸로 먹느냐며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연습이 공연처럼 신났지요.”
그는 한국 사회가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는 50대가 넘어서 노래 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0대가 넘어서 노래를 잘하면 이상하게 봐요. 외국에서는 40, 50대 중년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대접받는데 우리는 20대가 제일 예쁘다고 하지요. 이건 우리나라 여성들이 꿈이나 희망은 30대에 모두 끝나는 것이라 여기며, 남편이나 자식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닐까요. 20, 30대의 젊음과 매력에 집착하지 말고, 또 다른 매력을 찾아 승부를 걸면 거기서 아름다움이 나타날 겁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체험이기도 하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 딸을 낳고 완전히 아이에게 매달렸습니다. 연주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음악가로서는 적잖은 값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한 달 만에 오페라 <라보엠> 무대에 섰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출산 2주 후부터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고음이 안 나왔지만 다음 날 하나 올라가고 그 다음 날 또 하나 올라가서 일주일 만에 소리가 다 나왔다. 하지만 엄마 역할과 성악가 역할을 놓고는 엄마 쪽에 더 무게를 두었다.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 피아노에 올려놓고 연습했다. 아기는 피아노 밑을 기어다니다가 잠들기도 했다. 좀 더 커서는 레슨하는 엄마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학생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 혼자 킥킥 웃기도 했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사람답게 만들어준 것은 ‘엄마’라는 역할이었지만, 그 때문에 음악가로서의 삶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1995년 자장가를 모아 ‘자장자장’이라는 음반을 냈다. 사람들은 김영미도 이젠 끝이야, 그렇게 말했다. “저는 혼자 생각했어요. 아니, 난 지금 시작이야, 인생의 막다른 곳에서 내가 어떻게 되나 보자, 그렇게 이를 악물었습니다. 성악가로서 정말 가고 싶은 자리에 안 불러줄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정말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힘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네가 태어난 이유가 뭐냐, 음악이다. 음악을 하려면 주변에 평강이 와야 한다, 그런 말씀이 들리면서 하염없는 울음이 나왔습니다. 나는 빛나는 보석이다, 나의 보석은 감출 수 없다, 그렇게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금 김영미는 부모가, 선생이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아이들이 마음속에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갈망을 스스로 꺼내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분이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만난 욜란다 마뇨니 선생님이세요. 처음 이탈리아에 가니 다들 한국이 어딘지도 몰라요. 좀 안다는 사람이 북이냐 남이야 묻고. 꼬레아노라면 깔보고. 그런데 욜란다 선생님이 제가 처음 노래하는 것을 듣고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목소리가 정말 예쁘다고, 자기랑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겠냐고 하셨어요. 저만 보시면 ‘요 작은 인형아, 작은 인형아, 너는 노래를 하러 왔니?’ 하면서 모든 걸 다 가르쳐주셨어요. 어디든 저를 세우셨고요.” 그가 평생 사모했던 성악가는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 그리고 욜란다 선생님이다. “두 분 다 참 따뜻하신 분이에요. 저는 레나타 테발디의 우아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참 좋았어요. 칼라스 콩쿠르에 나갔을 때 레나타 테발디를 만났는데, 너무너무 우아하고 여왕 같았습니다. 정말 거구였고 머리카락은 불타는 주황색이었죠. 심플한 실크 드레스를 입은 그 모습이 정말 멋지더군요.” 물론 파바로티도 잊을 수 없다. 자신과 함께 공연할 성악가를 뽑는 콩쿠르에서 김영미의 노래를 들은 그는 “고음이 유난히 곱고 호흡이 길다”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키 작고 동양인 외모로 주눅 들어 있던 저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주었죠.” 콩쿠르 1등을 하고도 ‘라보엠’ 주역을 다른 수상자에게 내놓아야 했던 김영미에게 파바로티의 위로와 칭찬은 평생 마음에 남아 있다. “너의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 앞이 창창하니까 절대 서두르지 마. 영미, 나랑 <라보엠> 하기로 한 약속 잊지 마.”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딸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와 함께 바로 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김영미의 눈초리가 길어지고, 입이 초승달 모양이 된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렇게 기쁨을 주는 딸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서 음악은 않겠다던 아이인데, 엄마랑 같이 사진 찍자는 요청에는 오케이했단다. 엄마보다 훌쩍 키가 크고 어른스럽다. 그 딸과 나란히 서며 김영미는 말했다. “저는 이제 세상에서 높이 치는 화려한 오페라 무대에 욕심나지 않아요. 새벽도 좋고 한밤도 좋아요. 어디라도 좋아요.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하고 살리는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가겠습니다.” 자선음악회든, 새벽 예배든, 아무리 초라한 무대라 해도 음악은 치유를 하고 위로를 준다고 그는 믿는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이 맑아지고 평화를 맛보도록 하는 것이 그가 노래하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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