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3. people&

클래식 같은 아버지 황인용 사진찍는 아들 우섭

father&sun

2014-03-13 16:07

2007년 봄, 한 아들이 집을 떠났다. 아들은 35일 동안 길을 걸으며 카메라 셔터를 쉴새없이 눌러댔다. 그리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말없이 검고 둥근 레코드판을 꺼냈고, 턴테이블에 올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게 했다.

모던한 쇠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딕성당을 본떠 천장을 한껏 높인 널따란 공간이 나타난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빈티지 스피커로 자체가 하나의 오디오가 되어버리는 공간. 포토그래퍼 황우섭 씨가 아버지인 방송인 황인용 씨를 위해 사진을 찍어 작은 아트북을 만든 그 공간. 우섭 씨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바로 그 공간. 파주 헤이리에 있는 음악감상실 카메라타다.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성악가의 노랫소리를 헤치고 다가와 조용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이가 포토그래퍼 황우섭(37) 씨다. 황인용(68) 씨는 잠깐 자리를 비웠단다. 향긋한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순례자의 길을 돌아 당도한 카메라타
그가 최근에 낸 책 ‘두 남자의 산티아고 순례일기’를 재미있게 읽은 후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지난해 각기 다른 나이와 직업, 성향을 가진 일곱 명의 사람들과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같이 갔던 이 한 명과 함께 그때의 이야기와 사진을 책으로 엮어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이 길은 프랑스 접경지에서부터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길. 세계적인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순례자’를 썼고 그 외 많은 문인과 일반인들이 걷고 감동을 받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황우섭 씨는 일행들과 함께 10kg이 넘는 배낭에 커다란 카메라까지 메고 피레네산맥을 넘어 하루 30km 이상, 35일 동안 행군하여 총 800km(서울~부산간 거리 430km)의 장정을 마쳤다. 옛날 순례자들도 먹었을 법한 소박한 식사와 거친 잠자리, 그리고 눈과 비가 섞여 오는 진창 속을 걷느라 수없이 물집이 잡히다 못해 아예 껍질이 벗겨져버린 두 발을 견뎌내면서….
책을 읽다보니 언뜻 저자 황우섭 씨의 아버지가 파주 헤이리에서 ‘카메라타’라는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는 방송인이라는 부분이 보인다. 앗! 그럼 황인용 씨와 부자지간? 확인해보니 정말이었다. 카메라타에서 아버지와 함께 만나자는 청에 황우섭 씨는 흔쾌히 응했다.
마침 황우섭 씨는 산티아고 길에서 찍은 사진을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8월 3일까지 전시 중이었다. 지난해 봄, 다녀온 직후에 전시회를 한번 가졌고 이번에 책 출간을 기념해 다시 한번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다녀와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무엇이 변했느냐고 묻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무척 난감해요. 제가 보기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길을 걸었던 의미는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가면서 지금부터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의 제 삶이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겠죠.”
힘들었던 만큼 완주한 다음에는 체력적·정신적인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황우섭 씨. 그 말은 그동안의 정신적 방황에의 종지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10대 때부터 심한 아토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인생의 많은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다고 말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나 적응을 하지 못하고 2년 만에 귀국,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으나 다시 길을 잃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30대 초반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번 산티아고 여행으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요즘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건축가 조병수 씨의 작품들을 사진집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음악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황우섭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 황인용 씨가 카메라타로 들어왔다. 그는 기자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다음 어디론가 사라졌다. 순간 음악이 끊기고 현악기의 음률이 들려온다. 다시 나타난 그는 그러나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사라졌다. 곧 또 다른 음악이 들려왔다.
“어려서부터 집안에는 늘 음악이 흘렀어요. 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시는 일이 턴테이블에 음반을 거는 거였죠. 집에는 가구가 없는 편인데 거실은 물론 방마다 오디오가 한 대씩 있었어요. 가끔은 각 방에서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클래식은 물론 재즈, 팝 등 다양한 음악을 들었죠. 지금도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다 아버지 영향일 거예요.”
어느새 황인용 씨가 테이블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방송에서 그의 얼굴을 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주름살이 조금 더 늘고 머리카락이 조금 세었을 뿐, 그는 건강해 보였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여전했다. 그에게는 산티아고 여행이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이 아이는 굉장히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한 안목은 저에게 부족한 면이지만, 예술가라면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고부터는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더욱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비판적인 면도 있지만 세상을 보는 폭이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도 많이 옅어졌죠. 앞으로 아들이 하는 일에 큰 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한껏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부자의 눈빛이 공중에서 얽힌다. 음악과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이 꼭 닮은 부자는 우섭 씨가 성인이 되고 카메라타가 생기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서로 그리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음악을 들으면 같은 부분에서 감동하고, 좋은 음악을 만나면 ‘이렇게 좋은 음악을 왜 사람들이 몰라줄까’하면서 함께 행복해 한다고.
“아들과 딸이 한창 성장할 때 저는 좋은 아버지가 못 되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정신적인 직무유기를 했다고나 할까요. 가족여행은커녕 함께한 추억이 많지 않아요. 많이 바쁘기도 했지만 아버지로서의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직이나 예절 같은 인류 보편적 덕목은 가르쳤지만 아이들의 진로를 일찍 알아서 도와주거나 하질 못했죠. 그저 알아서 잘하겠지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들에게뿐 아니라 이 아이 누나에게도 신경을 못 써줬어요. 미술을 전공했는데 유학의 기회도 마련해주지 못했죠. 그게 후회스럽습니다.”
그에게서 의외의 회한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아들 황우섭이 나선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얼굴 뵙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바쁘셨어요. 그땐 그것이 무척 불만이고 섭섭하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일에 푹 빠지고, 그 일로 인정받는다면 그 쾌감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는 것을 아니까요. 누구라도 아버지처럼 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는 그 정도의 위치에 오를 수 없죠.”

아들아, 행복하게 살거라
아버지가 보는 아들은 ‘저력이 있는 사진가’. 자신은 사진에 문외한이어서 잘 모르겠다고 겸손해하면서도 ‘몇 작품은 가능성을 보이는 것 같다’며 흐뭇해한다.
“이제 시작이니까 앞으로 정진해야죠. 칭찬도 받아야 하지만 혹평도 받으면서 점점 성장했으면 합니다. 광고 사진이나 상업 사진도 좋지만 제 마음 같아서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도 방송을 하면서 ‘밥벌이를 위해서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아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굶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명작이란 예술가가 만들고야 말겠다며 매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사진을 찍지 않으면 못 견디겠고, 일을 즐김으로써 아들의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제라도 자신이 즐겨 입는 청바지와 티셔츠에 어울리는 열린 마음으로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싶다는 황인용 씨.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아들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좀더 좋은 사진도 찍을 수 있겠죠.”
아들이 화답한다.
“앞으로 제가 생각하는 것을 사진으로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더 열심히, 더 많이 찍어야죠.”
아버지와 아들의 얼굴에 동시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미소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 실내에 흐르는 음악 속으로 녹아들었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