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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마치고 돌아온 추미애 귀국 후 첫 인터뷰

“자연인으로 보낸 지난 2년… 정치요? 아직 때가 아니죠”

2006-10-02 18:32

지난 2004년 총선 낙선 이후, 그해 8월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 추미애 전 의원. 그녀가 남북관계와 외교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있는 동안 아이들과 스스로에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추미애 전 의원.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자연인으로 보냈던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며

모교인 한양대에서 만난 추미애 전 의원은 스타였다. 법학과 77학번인 그녀에게 자신을 ‘법학과 후배’라고 소개한 학생은, 추미애 전 의원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했다. 2년 전 미국행을 선언하고 지난 8월말에 돌아온 추미애 전 의원. 귀국 후 그녀의 첫 행보는 정치권이 아닌 대학 강단이었다.

지난 9월 18일, 한양대에서 첫 강의
추미애 전 의원은 이번 학기부터 ‘동북아시아 국제관계’ 강의를 진행한다. 학교 안에는 ‘추미애 교수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이 과목 외에 국제학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실무특강’이라는 강의도맡았다.
강의를 마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추미애 전 의원에게 이제부터 교수님이라고 호칭을 바꿔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 어린 인사를 건넸다. 
“제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추미애다’라고들 하시죠. 우리 막내아들이 얼마 전 동네에서 할머니들이 제 얘기를 하는 걸 들었대요. ‘추미애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들이 지나가니까 아이한테 ‘추미애 아들 아니냐’고 하시더래요. 아는 척하기도 그렇고 모르는 척하자니 어색하고 그랬나 봐요. 집에 온 아들이 이럴 땐 어떻게 하냐고 묻더라고요(웃음). 교수든 의원이든 저야 상관없어요.”
귀국 후 맨 처음 갖는 공식적인 자리. 학생들과 2시간 동안 소통한 후 추미애 전 의원의 첫 경험 소감은 어땠을까.

“2시간 내내 조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학생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오늘 강의 준비하느라고 정말 품을 많이 팔았어요. 지난 10일 동안 원고 쓰는 데에만 몰두했습니다. 강의 후 소감이라면 저도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죠. 강의 준비를 위해 원고를 쓰다 보니 처음엔 망망대해 같았어요. 하지만 차츰 저 스스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학부 강의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추미애 전 의원은 첫 강의에 대해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당분간은 학교 강의에만 몰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분간은 정치 일정은 없고 강의 일정만 있을 뿐이에요. 모교인 한양대에서 교수직 제의를 받아 수락했는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면 너무 신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선약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여행 다니며 소중한 시간 보내
추미애 전 의원은 지난 2004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그해 8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교로 유학길에 올라 남북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뉴욕에 있으면서 한반도의 위치, 미국의 대 일본 정책 등에 대해 공부했어요. 공부를 해보니까 대부분 외교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이 많더라고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막상 미국에 살아보니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추미애 의원의 의견이다.
“미국은 겉으로 보면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저도 영화나 시트콤 같은 거 보면서 참 자유로운 나라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미국 중산층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대단히 보수적이고 가정적이고 종교적이에요. 미국에서 2년 동안 지내보니 겉에서 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더군요.”
추미애 전 의원은 아이들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서성환 변호사와는 1986년에 결혼해  이듬해에 큰딸 재현이, 1989년에 둘째 재영이, 1993년에 태어난 막내아들 재휘를 두고 있다.
“미국서 애들이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봤어요. 저는 영어공부에 방해가 될까 봐 보지 말라고 했죠.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보니 아이들에게 못 보게 한 것이 후회가 되더라고요. 제가 2년 동안 비운 사이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놓친 게 많더군요(웃음).”
미국에 있는 동안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녔다.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캐나다로 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거기도 미국에서처럼 쇼핑백이 공짜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카운터에서 쇼핑백 값을 따로 받더라고요. 계산하고 나서 차로 왔는데 출발할 때 보니까 딸애가 쇼핑백 봉투를 서너 개 그냥 가지고 왔더라고요. 여행 중 차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버리려고 가지고 온 거예요. 하나에 50센트니까 2달러 정도를 안 주고 온 거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되게 안 좋았는데 딸이 여행 도중 노트북을 잃어버렸어요.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벌을 주시는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했죠. 한편으로 이런 경험을 통해 캐나다는 환경문제에 민감하다는 걸 배울 수 있었죠. 미국과는 다른 문화적 차이가 느껴졌어요.”
미국생활에 대해서 추미애 전 의원은 한편으로 힘든 점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에서는 모든 일을 저 혼자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많이 어려웠어요. 한국에서는 지난 8년 동안 은행 갈 시간도 없어서 늘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지요. 그나마 대신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막상 미국에 가니 제가 실생활에서는 바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은행 업무부터 모든 일들을 다 제 손으로 해야 하니까 많이 힘들더라고요. 실생활의 체험들을 모두 거기서 해보고 온 것 같아요.”

한국에 머물던 남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
2년가량의 미국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고 한다. 낙선 후 유학을 택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환경이 다른 곳에 적응하고 그런 가운데 공부하자니 참으로 힘든 때가 많았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밤에 혼자 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제 인생과 정치 역정, 남북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 등으로 눈물을 흘렸던 때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추다르크’ 등의 닉네임으로 부르며 강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힘들 땐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사람이란다.
“가정주부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 시부모와 부모님, 형제를 두고 있는 그야말로 평범한 여자예요. 온갖 상념 등으로 밤에 한숨도 못잔 날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딸아이가 카메라 기자들이 혹시 인천공항에 나올지 모르겠다면서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른 비행기로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요.”
가장 미안하면서 고마웠던 사람은 바로 남편 서성환 변호사다.
“남편에겐 늘 고맙고 미안한 생각뿐이에요. 낙선한 부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지치기도 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추미애 전 의원은 남편과 자주 연락을 취했다. 개인적으로 힘들 때뿐 아니라 모든 일을 서로 공유했다.
“미국에서 교포들이 시사지를 가끔 보여줘요. 제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와 있고 전혀 모르는 얘기가 나와 있는 거예요. 한국에서 보도되는 내용이 너무 앞서 나가거나 터무니없을 때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어봅니다. 한국 분위기는 어떤지, 어떤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지…. 그때도 남편이 많은 도움을 주고 의지를 북돋워주었습니다.”
서성환 변호사는 한양대 법대 동기동창으로 고시생 시절에 만났다. 7년 열애 끝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 서 변호사는 같은 학교 같은 과 커플인 고시준비 시절부터, 정치인이 된 지금까지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는 사람이죠. 또한 바쁜 엄마 밑에서 반듯하게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은 늘 바쁜 생활에 쫓기는 저에게 제일 큰 힘이 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치활동 일체 거절, 강의만 전념할 것
추미애 의원은 미국에 있는 동안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을 일체 거절했다.
“오죽하면 귀국했더니 사람들이 제가 많이 변했다고 해요. 미국에 머무는 동안 정치권에 있는 어떠한 사람과도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냉정하다거나 쌀쌀맞다는 인상을 받는 건지…. 하지만 사람들과 멀어졌다거나 제가 변했다는 건 사실과 달라요. 그냥 공부에 집중하느라 그런 거죠. 미국에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너무 외롭게 지내지 말고 골프라도 배우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하지 않았어요.”
추미애 전 의원은 정치에 관한 입장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당분간은 정치인을 만나거나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고 모교인 한양대학 강의에만 전념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못다한 남북관계와 통일에 관한 공부를 더 할 계획입니다. 올 연말까지는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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